지독한 여름, 그럼에도 숨쉴 이유가 있다 (선물이)

개인적으로 가장 끔찍하고 지독한 여름이었습니다. 

한때 사랑했고, 행복했고, 같이 가정을 만들고 인생을 같이 하기로 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건 역시 끔찍한 일이군요. 소피아 말이 모든 이혼은 힘든 거지만, 너처럼 힘든 이혼은 보기도 드물다. 그도 그럴것이 첫 이혼 신청서를 내고 6개월간의 숙고 기간이 있고, 그 뒤에 두번째 신청을 하면 끝이 나는 이 이혼 준비 기간동안, 여전히 한 아파트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먼저 거북이가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살수 없는 상황이었고, 제가 많이 아파서 이 사람과 싸울 힘도 없었고 (헨릭 말이 싸울힘은 없는데 그걸 듣고 참을 힘만 있냐?) 이사를 갈 힘은 더더욱 없었고, 또 선물이를 위해서 변화가 좋지 않다고 하니 제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비 한번 안내린 대단한 여름이었는데, 휴가를 가는 것도 싫었고, (어딜 이 사람과 간다는 게 너무 이상하고 싫었어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보냈습니다. 어제 마지막 서류 싸인했습니다. 

휴가가 7주인데 이번에는 4주만 썼습니다. 12월에 한국에 가면 쓸려고 하는 생각도 있고, 사실 6월말 7월 초에 출장갈 일이 있어서 더 길게 쓸수도 없었고요. 


이번 여름이 정말 끔찍했던 또다른 이유는, 제가 무척 사랑하고 존중한 친구 로스마리를 갑작스럽게 잃었습니다. 함께 박사 과정을 시작했던 사람, 그런데 지난 3년간은 집 가까운 지역 (제가 사는 곳에서 차로 1시간 30분은 가야 집이 나와요) 다른 대학으로 직장을 옮겨서 자주 연락하지 못했지만 늘 제 마음속의 소중한 친구를 너무나 갑작스럽게, 제가 뱅쿠버에 출장간 사이에.  지난 6월 초에 어느날 머리가 아파서 응급실에 갔더니, 뇌출열이라고. 수술을 하고 나서 처음에 눈을 마주치는 것, 그 순간이 지나자 한달간 코마.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소식을 그때 좀 싸우는 것 아닌 싸움을 하고 있던 헨릭한테 전하자, 왜 이렇게 나쁜 일들이 너한테 일어나지? 왜지? 듣고 있기도 힘들다란 메일. 그 답으로, 내가 이런 메일을 보낼 때 너한테 바라는 건 그냥 hug 다, 라고 보냈더니, 스웨덴 돌아온 다음날 당장 전화를 하고, 저녁을 먹기로 하고, 만나면 hug 해줄께. 헨릭보고 나 눈물이 안나와 라고 했었는데, 지난 주 장례식날 (여기서는 한달뒤에 장례식하는 게 하나도 안이상하답니다...) 아침부터 토를 하고 싶더군요. 당일날 하나도 못먹고, 친구 남편과 아이들 보고 울다가 온 뒤, 그 다음날로 아팠습니다. 


벵쿠버에 있는 동안 몽블랑 만년필을 하나 샀습니다. 제가 늘 원한던 거에요.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빠 유품으로 받았었는데,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지요. 그때는 사실 몽블랑이 어떤 만년필인지도 몰랐어요. 저는 늘 만년필을 써왔습니다. 제가 늘 농담으로 내 꿈의 남자는 나한테 몽블랑 사주면서 나한테 편지쓰세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벵구버에서, 혼자가 되는 저를 위해 저 스스로 선물했습니다.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것과 같은 모델로요. 이제 이 만년필만 쓰게 되는 군요. 그런데 처음으로 쓴 게 선물이 일기와 로스마리에 대해 쓴 제 일기. 


선물이는 무럭 무럭 자랍니다... 아니, 밥을 안먹어서 엄마 속을 마구 마구 썩이면서 동시에 엄마를 막 웃게 하면서 자랍니다. 여름동안에 알렉산드라란 여자 친구도 사귀었습니다. 발을음 못해서 저희 집에서는 산드라 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 애도 이제 그게 자기 이름이라고 생각하더군요. 어떤 날은 무려 아침 8시에 벨을 울리며 선물이와 같이 아침을 먹는 산드라, 솔직히 살짝 이럴 떄는 짜증이 나는 데 그나마 이 애랑 같이 있으면 아침을 더 먹는 선물이. 아이고 다행이다. 


하루는 스털링에 있을 때 스카이프로 전화를 하는데 엄마 이게 뭐야? 라고 묻더군요. 스웨덴어로 검은 차 라고 대답하니까, 'no, black car' 라고 영어로 답하더군요. 순간 뭐????유투브를 통해 스스로 찾은 어린이 영어 프로그램을 통해서 영어를 배웠다고. 집에 돌아오니까 언제는 what's this? 라고 묻는 거에요. 제가 도대체 뭘 가르키는 지 몰라서 뭐라고? 하니까 아, 엄마는 영어를 못하는 구나, 스웨덴어로 묻더군요. 하하

요즘에는 러시아어도... 헨릭이 막 웃더군요. (이게 다 헨릭과 올가 때문이라고 제가 말합니다.) 

원래 적어도 여섯개의 단어를 가지고 한 문장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선물이는 아직도 그걸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농담반으로, 이 녀석은 대신에 세단어로 말할 수 있는 언어의 숫자를 늘리고 있다니까, 라고 말하니까 헨릭왈, 누가 아나, 이미 다 할줄 알고 있는데 안하는 지 나중에 설국열차 속의 남궁민수처럼 다 할 줄 알는 걸 보여줄지도 몰라. 설국열차를 봤다면서 자기가 본 최고의 디스토피아 영화라고. 저도 봤습니다. 이번 주말에 저녁먹으면서 영화이야기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요 며칠 전, 선물이 보다 세네살 정도 더 많은 남자 아이들이 선물이 보고, 야 너 바보니? 왜 이 말만 하니? 라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이런 말 처음 들어요. 선물이 유치원 친구들은 원래 선물이는 그런 아이, 산드라 처럼 같은 나이 또래 애들도 선물이를 이상하게 안보는데 ... 순간 내가 너무 보호된 세상에 사나? 선물이를 이해하고 받아주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보호된 세상.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저런 아이들의 시선이 당연한 세계로 가야 하는 건가? ... 마음이 참 아팠어요. 


엄마가 소시지 싫어하는 거 아는 선물이 입에 비엔나 소시지 물고 다가와 뽀뽀하잡니다. 제가 뽀뽀하니까 막 웃는 군요.    


오랜만에 쓴 글 길어졌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이가 예쁜데 가끔 저 예쁜 아이가 쑥쑥 자라 버리는게 너무 소중해서 아깝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선물이도 그렇게 예쁜 때를 지나고 있나보네요.

      • 이제 안기도 힘들 정도로 컸어요. 너무 아쉬워요

    • 말만 들어도 묵직하도록... 힘든 여름을 보내셨네요.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께 받으셨었다는 몽블랑 만년필도 궁금하고(우와 몽블랑!) 외국어를 마구마구 습득하고 있다는 선물이의 웃는 얼굴도 궁금하고 그렇습니다. 가아아끔이라도 소식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커피 공룡님 글을 항상 좋아해요. ^^

      • 위로 감사합니다. 아버지 한테 받은 그리고 제가 산 몽블랑은 meisterstuck 145 입니다


        선물이는 지금도 밖에서 웃으면서 뛰어다녀요

    • 큰 아이들의 말에 제가 다 가슴이 아프네요.선물이와 커피공룡님 남은 여름 행복하게 보내세요.

      • 네, 이번 여름은 참 덥고 길어요

    • 고생하셨어요. 밥이 비행기처럼 날라가야 잘 먹는 어린이들도 많죠.


      예능으로 어린이키우기 예쁜 점만 구경하는데 밥을 잘 먹는 것 만으로도 저렇게 칭찬 받다니 저 때가 행복이다 싶어요. 

      • 잘먹고 잘자고 잘싸고, 그러면 효도입니다. 정말이에요

    • 힘든 시기 보내시는게 안타깝네요. 가까이계시면 따뜻한 밥이라도 한끼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나마 선물이가 위안이 되시는것 같아 다행입니다. 아이들은 나중에 자라서 부모와 말도 안섞을지 몰라도 부모 품안에 있는 그 시기에 할 효도를 다 하는것 같아요. 존재 자체가 기쁨입니다.


      힘내시고 이겨내세요. 여름은 곧 지나갑니다. 좋은 일만 생기실거예요.
      • 네 정말 그런 생각해요. 부모의 사랑보다도 이 시기에 아이들의 사랑은 참 조건없는 사랑이구나 하면서요. 


        요즘엔 장난이 무척 늘어서 하루에도 웃을 때가 더 많아 졌어요

    • 숨쉬는 거지요 . 처음엔 뭐가 틀렸는지 몰랐어요.




      기회가 되면 한 번 봅시다.

      • 아, 지적 감사합니다. 고쳤어요

    • 왜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마음이

      따듯해지나요? 괴로움의 토로와

      담담함. 아이의 사랑스러움. 그 아이가

      떠날 세상. 모든게 두려우면서도

      기다려집니다. 앞날에 무슨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부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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