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메이지유신


학창시절 국사 선생님은 종종 소위 말하는 '역사에 가정하기'를 하셨습니다.

북학에 눈을 뜬 소현세자가 살아남아 왕위를 계승했더라면,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일찍이 개항했더라면,

우리가 일본보다 앞섰을 지도 모르며 치욕적인 식민지배를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식으로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뭐가 못해서 일본보다 뒤쳐졌던 것일까라는 문제를 고민했을 때

결국 개항의 시기를 앞당기지 못하고 세계정세를 파악하지 못한 조선 지배층의 무능에 대해 화살을 돌리더군요.

다시 말해, 조선의 지배계층만 각성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거라는 얘기인 거죠.

뭐 조선의 조정과 지배계층이 무능했다는 비판은 일정 부분 타당하긴 한데, 그렇다면 과연 일본의 조정과 지배계층은 달랐느냐? 라고 묻는다면

저는 일본의 새로운 지배계층이 달랐다고 말하고 싶군요. 


사실 일본의 개항은 서구열강의 위협적인 요구에 굴복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식의 개항은 당시 서구열강이 관심을 가지는 어느 지역에서나 있었던 일이에요.

흑선소동같은 사건이 당대 일본인들에게 어느정도 영향을 주긴 했지만 개항 그 자체가 메이지유신의 추진동력으로 설명되는 건 어딘가 부족해 보입니다.

왜냐면 애당초 에도막부 역시 조선 조정의 흥선대원군과 마찬가지로 '쇄국'이 기본적인 모토였던 데다가 페리함대의 위협에 어쩔 수 없이 개항을 한 것뿐이지

이들이 당시의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미래에 대한 대단한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오히려 그러한 움직임은 중앙권력과는 멀었던 지방의 영주들에게서 나타납니다. 

   

메이지유신은 에도막부의 중앙 엘리트들이 주도한 게 아니라 그들이 정치권력을 다이묘들에게 빼앗기는 (구체적으로는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번주들)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변화였습니다. 사쓰마번의 다이묘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쟁 이후부터 도쿠카와 가문을 따랐기 때문에 

에도막부의 중앙권력에서는 다소 거리가 먼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비치같은 인물들은 사쓰마 번주 밑에서 일하던

하급무사들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메이지유신은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개혁이었던 거죠.


보통 일본의 대국굴기를 단순히 개항을 한 뒤 메이지유신으로 부국강병을 이루어 서구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프로세스로 생각합니다.

근데 이미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사쓰마번은 번의 자체적인 역량만으로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대등한 전력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사영전투이지요.

일본에 거주하던 영국인 4명이 사쓰마 번주의 행차길을 방해해 그중 한 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쓰에이'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에 영국은 에도막부와 사쓰바번에 각각 배상금을 요구하는데 정작 중앙정부인 에도막부는 순응적으로 배상금을 지불한 반면 사쓰마번이 거부하는 배짱을 보여줍니다.

영국함대 7척이 사쓰마번 (지금의 가고시마 현)을 공격하는데 그 결과 비록 사쓰마번이 물적자원 면에서 많은 손실을 입었지만 인명피해는 영국군이 더 컸을 정도로 

사쓰마 번은 만만치 않은 전투력을 보여줍니다. 이 전투로 사쓰마번은 전국적으로 위상이 높아졌고 영국마저도 이들의 힘을 인정하게 되지요. 


이쯤되면 도대체 사쓰마번은 뭐지? 라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가 '역사에 가정하기'를 하며 수없이 상상했던 국제정세에 민감하고 청사진을 내놓는 선각자형 지배계층이

바로 사쓰마의 다이묘 가문이었습니다. 일본은 아시다싶이 에도막부가 중앙권력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각 번들도 나름의 권력으로 자치를 확보하는 구조였는데

수백개에 달하는 번과 다이묘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기 용이했던 사쓰마번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국제정세에 둔감하지 않은 다이묘 가문이 존재했던 거지요. 그리고 사쓰마의 다이묘는 일왕과 쇼군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며 시류를 적절히 이용해 점차 중앙권력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이후 사쓰마번은 조슈번과 연맹을 맺고 드.디.어 메이지유신을 일으키고요. (A급 전범 대량생산 1등 공신이 이들 번이기도 합니다)


'역사에 가정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한다면 

조선도 각 군,현의 수령들이 자체적인 권력과 자치를 기반으로 여러가지 정치적 실험을 해볼 수 있고 그 중에 한 두명이 우연히 얻어 걸렸다면 

부국강병에 이를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하는 게 좀 더 구체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 조선은 철저한 중앙집권에 오로지 중궈밖에 모르는 바보였어서.........이러나 저러나 쉽지않죠.....역사에 가정으로 아무리 손을 대도 쉽지 않음.....

    • 그냥 재수가 없었던거에요


      조선이 개막장이던 시대에 구시대를 대체할 새시대를 이끌 사람들이 내부에서 생겨나지 못하고


      일본제국주의가 들어온거죠.


      아무리 앞뒤가 막힌 성리학자들이 이끄는 조선이라 해도


      그 이념에 걸맞는 국가였다면 전쟁한번 못해보고 일본에 정복당하지는 않았겠죠.


      개항후 러일전쟁까지 일본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조선이 체계가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였다면 얼마든지 벗어날수 있을만큼 강력하진 않았죠.







    • 조선은 한번도 지방이 제대로 '튀었던' 적이 딱히 없는, 완벽에 가까운 중앙집권 국가였죠. 따라서 자치라는 것은 무리수로 보이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그것을 조선이 상업과 경제에 상대적으로 무심했던, 사농공상에서 주원인을 찾습니다만(중앙이던 지방이던 부가 축적되어야 힘을 기르고 뭐라도 해보죠), 어찌되었든 역사에 가정이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가정은 역사학의 몫이 아닌 것이죠. 인과관계를 따져 원인을 제거할 때 다른 무엇이 거기 끼어들어 어떻게 전개될지는 그야말로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요. 애초에 그 인과관계란 것도 역사학자들이 불완전한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지, 확증된 사실은 아니거든요. 따라서 만일 어떠한 사람이 인과관계를 넘어서 '만일'이란 소리를 시작한다면 이미 그사람은 역사학도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겁니다. 

      • 일본도 오랫동안 사농공상 사회이긴 했는데 사쓰마번의 경우가 좀 별났던 것같습니다. 에도막부가 쇄국정책을 고수하는 동안에도 밀수를 통해 번의 재정기반을 다져나갔죠. 각 번들이 각자도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제관념이 생겨난 게 아닌가 합니다. 일본에서 근대적인 공장이 처음으로 세워진 지역도 바로 이 사쓰마번이고요. 물론 중앙정부의 계획이 아니라 순전히 사쓰마 번주의 자체적인 투자에 가까웠죠. 

        • 예전 일본사 가르치던 교수님이 생각나네요. 결국 지형적환경특성이 양자의차이를 갈랐다고.. 일본은 산세가 한국과 비교할수없이 험하고 도시들도 대부분 방어가 용이한 천혜의 요새라 지방자치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고했었죠. 에도에서 멀수록 꽁수를 부리기는 더 쉬웠을 거구요.
    • 재밌는 얘기 감사합니다. 유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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