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무서움의 생산력

납량이 어울리는 계절,

여기저기 공포이야기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보다가 그렇다면 나도, 갑자기 생산(=잉여)력이 솟네요.

에볼라 바이러스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에 어서! (공포 초반엔 늘 이런 촐싹거림이 있잖습니까?) 



1. 공포감각

해마다 전자모기향 훈증기 모델이 미묘하게 바뀌어서 짜증이 납니다. 새로운 훈증기와 교체용 리퀴드가 합해진 구성이 예전 모기향 리필 사는 것보다 저렴하니 상술인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신제품을 또 사게 되니까요. 무서움의 생산력 어쩌고 하더니 왠 모기향 얘기냐고요? 시골 한밤중 마당에 모깃불 피워 놓고 애들 야외 화장실 가는 거 무서워하는 줄 알면서도 어른들이 짖궂게 도깨비나 무당집 얘기 하던 그런 분위기~~~~를 노린 패러디 ..... 는 아니고요. 

새 훈증기가 무서워요-ㅁ-; 양 조절과 시간 타이머 기능이 추가돼서 오~ 편리하겠다 싶었는데, 한밤 갑자기 어느 구석에 미묘한 불빛이 느껴져서 깜짝 놀라 쳐다보면 걔가 은은한 불빛으로 켜져 있는 겁니다. 아침엔 자동으로 꺼져 있어서 작동버튼을 꺼둔다거나 콘센트에서 빼둔다는 걸 깜빡 했다가 저녁이 되면 또 그 묘한 불빛에 깜짝 놀랍니다. 앞으로 어떤 기능이 더 추가될 지 모르겠지만 "전자모기향, 이~이제~ 시이작합니다...." 같은 목소리 추가 기능까지는 안 나오겠지요? 소리 공포까지 추가된다면 경기 일으킬 지도 몰라요;  방심하다가 쿠쿠밥솥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소리에도 종종 기겁했으니까요. 음성지원 off 하려다가도 가끔 사람 소리가 그리울 때도 있어서 놔두고 하다 보니 계속 당하지요.



2. 떠내려가는 사람들

휴가철과 태풍은 항상 겹치고 그걸 알면서도 굳이 낯선 곳, 도움도 쉽지 않은 곳을 택해 떠난 사람들의 사고 소식은 매해 이 즈음의 뉴스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계곡 인근에서 자다가 물이 불어나 고립되는 행락객, 무리하게 탈출시도하다가 불상사를 당하는 사람, 파도가 장난이 아니라는데 해안가 근처로 가서 휩쓸리는 사람, 떨어진 간판에 맞아 사고를 당하는 사람 등 그 레퍼토리들도 똑같아요. 이번 '나크리' 피해 중 청도 잠수교를 건너던 일가족 7명 사망 소식은 이상하게 뇌리에 남아요. 평소 사고가 잦아서 정상적인 다리를 놓아달라 민원을 제기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은 행정 공백과 안전 불감증, 몰려 온 피서객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하는 지역주민(숨어서 야영하는 사람, 자기 흥을 깬다고 시비 붙으려는 사람... 많은 유형이 있겠지만은), 물살 속에 막상 뭐가 깃들어 있을 지 모르는 채 돌진한 차. 사고에 휩쓸리게 된 걸 깨달았을 때 그 일곱 사람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살아야한다 그런 생각을 했겠지요. 그 좁은 차안에서는 정말 눈깜짝할 사이 당했을텐데. 흙탕물로 가득한 차를 끌어내는 영상을 보여주지만 거기 아무도 없다는 건 이미 들은 바죠....여지없이 세월호 생각이 스쳤어요.

언젠가 계곡에 놀러 갔을 때 일행 하나가 수박을 건지려다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 간 적이 있어요. 우리는 처음엔 장난이지 하고 실실 웃기도 하며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점점 어,어,,,어가 됐지요. 다행히 구조되어 돌아온 그의 눈빛은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우리의 호들갑 속에서 그는 여전히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를 동시에 보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어요. 

삶이란 대체로 떠내려가는 기분을 들게 하지만 그게 물리적 힘으로 다가올 땐 정말 가라앉고 있단 느낌이 들어요.



3. 익사시키기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에 인상깊었던 짧은 에피소드가 있어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안 읽으신 분은 패스~~궁금해도 읽지 마세요! 저는 경고했습니다;)

이번 소설은 에피소드들이 등장인물을 따라 아주 짧게 짧게 배치되어 있어서 희곡이나 영화시나리오처럼 느껴지더군요. 장면도 그렇게 그려져요.

제가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이거 예요. 

다리에서 뛰어내린 여자는 수영 실력을 갖춘 터라 쉽게 죽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합니다. 그래도 노력하려는데 아뿔싸, 자신을 구조하러 뛰어든 소년까지 다가옵니다. 여자는 끌려 나가지 않기 위해 그 소년을 익사시켜 버립니다. 파국이든 뭐든 어떤 매듭이 지어지면 다른 절절함이 순식간에 사그라질 때가 있죠. 여자는 물에서 나와 자동차로 돌아갑니다. 다음 고민은 맨발로 어떻게 수위실을 잘 통과할 수 있을까 입니다.

이 책을 보고 영화를 봤는데 스티브 맥퀸 [헝거]였습니다. 위 이야기와 묘하게 얽혀 생각에 빠지게 하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감옥에서 마지막 단식투쟁을 하려는 주인공 바비에게 잘 아는 신부가 찾아와 그의 계획은 무모한 자살행위라고 말립니다. 바비는 어릴 적 일화를 들려 줍니다. 크로스컨트리 경기를 위해 낯선 곳에 도착한 소년들은 계곡가에서 심한 상처로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아직은 살아있는 망아지를 발견합니다. 격렬한 운동경기를 하는 소년들 답지 않게 어떻게 해야할 지 우왕좌왕합니다. 그곳에 나타난 신부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 있으라고 말한 뒤 어디론가 간 사이, 어린 바비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망아지의 머리를 물 속에 넣고 익사시킵니다. 그로 인해 어린 바비는 소년들에겐 존경받는 리더가 되고 신부에겐 크게 혼이 납니다. 이 일은 그가 평생 투쟁의 리더가 된 숙명적 계기인 셈아죠. 어릴 적 그 순간도, 감옥에서의 이 순간도 그렇게 밖에 선택할 수 없는 바비.

여자와 바비는 둘다 누군가를 죽이고 살립니다. 여자는 소년을 죽이고 뱃속의 아이와 자신을, 바비는 망아지와 자신을 죽이고 미래에 자신의 처지에 있을 누군가를. 행위에서 의미를 들여다보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 행위가 범죄라면 공포는 더욱 배가되고 거기에 뚜렷한 의미마저 없다면 더더욱.




4.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닌데 무서운 이야기를 생각하다보니 결국 죽음이 한가득 출연.

이 바낭 쓸 동안엔 그나마 잊고 있었는데, 후덥지근함이 다시 몰려 오네요. 아.






    • 개천에 물살이 하나도 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몇 명 건너는데 깊이가 허리까지도 안 오는 것 같아서 저도 (다른 위치에서) 덩달아 건너다가 (분명 물 위에서는 고요한데) 밑에서 제 다리를 휩쓰는 물살과 제 몸을 둥둥 뜨게 만드는 물의 힘이 느껴져서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하얗게 질려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건너편에 있던 어떤 분이 나무 작대기 같은 걸 내밀어서 그거 잡고 간신히 건넘) 개천에서 물장난치다 떠내려가는 일이 어떻게 생기는지 제 몸으로 이해했던 날이었습니다.  

      • 아, 그 느낌 알아요. 위에는 고요한데 아래는 힘의 소용돌이 같은 상황. 진흙탕에 빠진 적 있는데 이때도 정말 엄청난 중력의 힘을 느꼈죠;;;

    • 죽음을 생각하면 서늘해지는 느낌이 있어서 여름에 공포 영화에도 많이 등장하는 거 같아요


      슬픈 일입니다 정말 강한 물살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무기력해지는지


      이길려고 도전하면 안되는 것이 몇가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가를 가더라도 (아직 갈 생각은 없지만...) 조심 또 조심해야겠습니다

      • 위험에서 기지를 발휘해 살아남는 일도 운이 받쳐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더군요.



    • 어떤 때는 사는거 자체가 공포스러운 때도 있지만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니.. 그 말을 늘 믿어 봅니다.

      • 어릴 적엔 귀신 정도에 무서움을 느꼈지 사는 거 자체에 큰 공포감은 없었는데, 인터넷 활성화 이후로 섬뜩한 세계 곳곳의 사건 사고, 정보들, 미디어들을 접하게 돼서 공포의 판도가 더 넓어진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이도 물론 무시못할 기반이 되는 것 같고요.

    • 삶이란 대체로 떠내려가는 기분을 들게 하지만 그게 물리적 힘으로 다가올 땐 정말 가라앉고 있단 느낌이 들어요. -> 정말 마음에 드는 문장이네요.


      행위에서 의미를 들여다보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 행위가 범죄라면 공포는 더욱 배가되고 거기에 뚜렷한 의미마저 없다면 더더욱. -> 이 문장도 마음에 들고요.


      하려는 이야기의 핵심을 통과하는 문장이었어요. 인상적입니다.





      • 공감 말씀 감사드립니다. 뇌과학, 인간심리, 범죄심리학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 책들의 저자들도 제 의구심과 두려움의 심리와 거의 흡사하더군요.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사례들과 속수무책의 사건들을 보면, 언제나 공포와 극복은 당하는 자의 몫이죠. 절규처럼 남는 "why"

    • 로긴을 부르는 인상적인 글입니다...정확히 어떤거다 말은 못하겠지만 전 이 글이 참 좋습니다.


      쿠쿠의 취사가 끝났습니다 소리에 혼비백산했던 일인 추가네요^^(손에 들고있던 물엎지름ㅋㅋ)

      • 분명 나만 이런 게 아닐거다! 했는데 동지 만나 매우 반갑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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