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이들은 줄어드는데 영유아 입장 문제가 지금 거론되는 걸까?
전 좀 기분이 이상해요. 왜 이 시점에서 이런 담론이 나오는 걸까, 란 의문이 들어요.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은 계속 줄어들어가잖아요.

20년 단위로 0~14세 인구를 따로 빼봤어요. 주민등록법상의 등록되어 있는 인구인데 98년에 천만명 이하로 떨어졌어요. 가장 최근에는 7백만명이에요. 위쪽으로 갈수록 현재와 가까워져요. 당시 인구대비로 계산했을 때 대략 98년에는 전체 인구 대비 21%에서 2014년에는 14%로 줄었죠.

10 ~ 15세를 빼고 5세 단위로 짤라봤어요. 적어도 10세 이상은 부모가 통제 할 수 있을꺼잖아요? (그리고 학교를 다니는 애들의 학원 등 사교육 시간 통계를 생각했을 때 그 애들을 보기 쉽긴 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군요) 이 표는 왼쪽으로 갈수록 현재와 가까워져요. 2010년 0~5세 아동은 230만명 정도 되고, 5~9세는 250만명 정도 되요. (도표를 볼 때 주의할 점은 가장 아래 선이 0이 아니라는거.) 제가 궁금한건 왜 1995 ~ 2001년 사이에 이런 담론들이 나오지 않았느냐는 거에요. (양쪽의 고점은 대략 350만명) 그리고 과거 한국에서는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부모와 중시하지 않는 부모의 비중이 현재와는 달랐던 걸까요? 한 명만 기르는 부모들이 늘어나서 갑작스레 아이들에게 예의를 가르치지 않게 된 걸까요?
그리고 이건 공간 사용자 대 공간 사용자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 제공자 대 공간 사용자 문제에요. 사용자간 감정은 이 논리에 아직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공자 측에서 손님을 가려받겠다고 말한 것이고, 대상자 외에는 제공자와 정서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편으로 보여요. 사회에서 공간을 관계없는 비-또래집단과 함께 공유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을꺼에요. 제가 볼 때는 어쩌면 이건 소수 대 다수 형태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는 시간이 가면 나이를 먹어 그 범위에서 벗어나겠지만 아이-부모 구조는 한국이 없어지지 않는한 꾸준히 존재하는 범주일 거잖아요.
1. 중요한건 지금 집단예의를 따져서 아이가 없는 공간을 만드는 경향이 아닐 수 있다는 거죠. 사업체 입장에서의 편의라면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2. 집단예의를 따진다고 한다면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공간 내에서 어디까지를 수용할 수 있는가를 따져야겠죠. 몇몇 지적이 그렇듯 아동에 관한 불편을 해체하면 다른 집단에게도 똑같이 적용시킬 수 있는 것도 있죠.
3. 또한 공간을 점유하는 서비스가 어디까지를 제공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봐야겠죠. 조용함을 원한다면 도서관이나 독서실에 가는게 맞겠죠.
4. 과연 문제의 원인이 통제 불능의 아이들인지 조금 헷갈리네요.
+ 내용이 공간 공유의 문제 전체를 다루지 못해서 내용에 걸맞도록 수정했습니다.
+ 혹여 더 필요하겠다 싶은 통계 범주가 있다면 말해주시면 나중에라도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더 포용력이 적어지고 이기적이 된 것도 클 겁니다.
옛날에는 어린아이들이나 노인들은 당연히 어느 정도 참아드려야 하고 양보해야 한다 라는 의식이 있었다면,
이젠 내가 가장 중요하고 부정의는 참아도 내 불편은 못 참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죠.
사회가 저질화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1999년 스타벅스가 한국진출했듯이 그당시(1995~2001)는 카페, 외식문화가 전반적으로 왕성하지 않았고, 제 기억으로는 그런 곳 출입시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강남권은 모르겠으나 특별한 날 정도에나 가는 거였지 지금처럼 흔한 일상이 아녔죠. 지금은 외식 문화가 흔해진 것과 더불어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고 대접받으려는 심리가 강해졌죠.
키즈카페에서조차 사고가 잦은데 일반 사업체에서 아이들 관리 업무까지는 너무 과중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소방시설/응급상황 대처 교육이 오히려 더 시급할 정도죠.
이 문제는 카페/외식사업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관점 차이기도 하죠. 여유를 즐기고 싶은 건 공통이지만 아이들을 데려오는 분들 경우 아이로 인해 발생되는 여러 문제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방관하는 행동이 자주 목격되니 좀더 논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시끄러움의 폭탄 어른들은 주의를 준다거나 하는 상식선의 타협을 시도해 볼 순 있겠지만 주의에도 아랑곳없이 다시 제맘대로 움직이는 아이들과 재차 지적시 더욱 노여워하는 그 부모들이라는 이중의 사태에서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지죠. 차라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심리가 노키즈존 얘길 나오게 만든 거라고 봅니다. 이번 스타벅스 건이나 지난 채선당 사건처럼 블랙컨슈머스러운 사건들이 그런 선택을 생각하게도 합니다. 타협에는 언제나 배척심리도 끼여드는 것이어서 노키즈존=아이퇴치로 생각해 좋아할 사람, 비난하는 사람이 나올 수 밖에 없지만 서도요.
대체로 장소에 합당한 분위기와 서비스를 원해서 이용하는 거 아닙니까? 가족모임이 흔한 외식장소는 제외하더라도(이런 곳은 아이들을 위한 장소구분이 꽤 있는 편이기도 하고요) 카페경우는 노 키즈에 대한 선택적 장소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건 다른 우려인데, 담배, 술냄새 나는 곳까지 아이를 데려오는 분들 가끔 보는데 부모들의 공공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더 심층을 내려가자면 외식산업의 동향, 소득 비례, 외식산업 소비층 연령별 통계 등의 자료까지 살펴보셔야 할 걸요. 절대 하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이들 수와 관계없이 세상이 변했죠. 그게 꼭 긍정/부정으로 볼 사항은 또 아니겠고요.
저 어릴 때만해도 어른들이 아이들 보고 고추 좀 보자 하곤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죠.
옛날에야 아이들 똥 기저귀 아무데서나 갈 수 있고, 노상방뇨 아무데나 시켰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행동을 보고 그려려니 할 세상도 아니고요.
때와 장소를 가렸으면 좋겠는데, 사방이 탁 트인 곳에서 아이들 오줌 뉘이고 하는 걸 보면 멀리 가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작년엔가는 맥도날드에서
컵(일회용 컵 아님, 다시 이용하는 플라스틱컵)에 아이 오줌 뉘는 엄마보니 확 짜증이나고 그러더군요. 아이라도 바로 앞에서 오줌 싸는거 보고 싶지
않고, 그것도 다시 이용하는 컵에다 오줌 싸게하는거보니 어휴... 암튼 요즘은 과거랑 다른 세상이죠 뭐.
얼마전 중국 지하철 내에서의 과도한 음식섭취 문제, 아이 쉬를 차내 바닥에 보게 하는 행위 등의 뉴스가 생각나네요. 한국의 노키즈 문제로 걸고 넘어지는 것들과는 쨉도 안되는 사안;;
그런데 문화선진국이라고 말하는 파리 도보시 개똥을 살피지 않으면 반드시 당한다는 이야기도 듣다 보면 공공의식의 갭이 참으로 넓구나 싶었어요.
한국은 어느 정도의 수준인 걸까 싶기도 했네요. 어떨 땐 너무 예민한 거 같고 어떤 건 또 나이브한 거 같기도 하고.
조금 다른 얘긴데 지하철에서 젖병에다 오줌을 누게하는 할머니도 봤어요... 어지간히 급했나봐요
글을 쓰고 자기 전에 누워서 생각하는데 이게 세대론적인 지적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란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 젊은 세대들은" 말이에요. "요즘 젊은 부모들은"으로 모호하게 시작하는 불평불만이 아니라면 무언가 부모의 인성과 수준을 과거로부터 비교할만한 정보가 제겐 필요하더라구요. 영가설을 세워본다면 "한국의 부모들은 원래 예전부터 그랬어."랄까요. "변한건 부모들이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이다."도 괜찮겠군요.
제게 아이들의 수가 중요한 이유는, 아이-부모 조합의 수가 많다면 그 중 10%가 예의가 없는 행동을 보인다고 할 때 아이의 수가 증가할 때 그 수도 증가하겠죠. 그리고 줄어들 때도 마찬가지로 전체 인구 대비 비례에서는 줄어들겠구요. 즉, [정말 아이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가 증가했는가?]의 문제겠군요. 과거보다 가족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수준이 낮은 부모가 늘어났다는 추측은 저로서는 좀 이상해요. 1. 전체 대비 부모가 될 수 있는 사람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가혹한 진입장벽을 뚫고 선택되는 사람들이라 유추할 수도 있다. 2. 자식이 한 명밖에 없을 때도, 교육론과 인성에 대한 자원을 단 한명에게 투자하기 때문에 역으로 생각했을 때는 더 많이 투자한다고 유추할 수도 있다. 성패의 기회가 한 번뿐이기 때문에. 3. 특정한 가족 구조의 모델링은 같은 가족 구조 내에서 문화가 형성되어 구비될 수 있다. 즉, 아이-부모 조합에서 학부모 또는 영유아부모가 모이는 집단이 있으리라 유추할 수 있으며 서로 일정한 양육 이상-모델을 나눌거라 추측되기에 갑자기 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질리 없어 보인다.
다른 관점에서는 아이가 과거보다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공간에 많이 노출되었다는 의견도 있는데, 그도 상당히 흥미로워 보입니다. 지난번에 잠깐, 한국인은 영화 말고는 놀거리가 진정 없단 말인가? 로 국가 여가통계 같은걸 좀 뒤져봤었죠. 그걸로 글을 쓰진 못했습니다만. 거기에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이 97년도부터 시작했으니까 그것도 같이 비교해서 추측해봐도 좋겠죠. 저는 잘 모르겠는게 정말 카페로 대표되는 범-세대간 공유의 공간이 과거에는 없었는가 하는 궁금증이 들어요. 그럼 그 전까지는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모일 때(특히 밀집 상업 지역)는 도대체 어디에서 만났느냐는거죠. 제 입장에서는 고점을 찍었을 때 아이-부모가 큰 소비자층으로 묶여 전략적으로 투자가 되어오다가 줄어들기 시작한 이래 슬슬 내쳐지고 있는 흐름이 아닌가 싶단 말이죠. 아니면 아이 있는 부모(특히 모)가 사적인 시간에 사회로 진출하는 숫자가 늘어났다고 봐도 되겠죠. 그렇다면 영가설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원래 예전부터 이랬, 는데 우리에게 보이지 않았을 뿐이고 이제 우리에게 보이기 시작했어." 음, 집단간 공간 공유의 변화를 증명해내야 된단 말일까요.
마지막으로, 실질적인 부모의 질적 차이를 알아볼만한 검색어를 떠올리는게 좋겠죠. 가장 먼저 단순히 생각나는건 학력인데, 제 생각에 과거보다 학력은 당연히 더 올랐을거란 말이죠. 부모를 10년 단위 세대로 쪼갠다 했을 때 말이에요. 전번에 보니 출산 연령도 10 ~ 15년 정도 통계가 나와 있던데 그걸로 부모의 평균 연령을 추출할 수 있을 거 같고. 그렇다면 도대체 부모의 인성이란건 뭘로 검색해야만 그 변천 과정이 나올까요? 제가 생각이 가 닿는건 형사/민사 통계인데 과연 그걸로 입증가능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까요? 교육계열 통계는 어떨까요, 어렵지 않을까요? (그런걸 대립가설로 둔다면) 과연 정말 과거의 늙은 부모들이 지금의 젊은 부모들보다 더 나았다는걸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사회의 분위기가 변해서 이런 요구가 나오는 거라면 어디서 확실한 근거를 얻을 수 있을까요?
문_ 밑에서도 댓글로 가끔 나왔지만, 문제 해결은 [아이를 맡겨두고 따로 외출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가장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이더군요. 그 전에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걸 혹시 간절히 원하고 그렇게 해야된다고 생각하는지 부터 파악해야겠지만 말이에요. [외부에서 모임을 가질 기혼여성은 중류층 정도]라는 유추도 흥미로워요. 한 1, 2년 전인가 아이돌보미에 대한 끔찍한 기사들이 여러 차례 올라오고 특집 보도 같은 것도 있었죠. 그러고보면 한국에서의 양육 과정의 모델들은 숨막힐 정도로 부모에게 가혹한 요구를 하는 편이고, 그나마 부모도 부모로서가 아니라 그 나이대의 평범한 사람으로서 삶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조금씩이나마 늘려나가는 과도기라 생각되네요. "요즘 젊은 엄마들은 자기밖에 몰라"란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겠구요. (실제로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만 흔히 들었다고 전해지는 문구)
한국에 식모가 옛날에 더 많았는지는 살펴봐야겠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나라도 도시는 시골서 올라온 가정부가 한국보다 많은 편이긴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