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를 연습할때 가장 난감한 것
좋은 음악은 야금야금 아껴듣는 성격이신가요? 저는 그렇습니다. 요 며칠 제드의 신곡이 나왔길래 24시간 내내 들었더니
음악이 물려버렸네요. 처음 들었을때의 기쁨이 계속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뜩이나 저는 타오르는 것도 빠르지만
식는 것은 더 빠른 것 같습니다.
기타를 꽤 오랫동안 치고 있는데 아주 곤란한 점이 이겁니다. 어떤 곡이 맘에 들어서 연습을 시작합니다. 거의 제 실력보다
높은 수준의 노래를 시작하죠. 천재가 아닌지라 한페이지를 띄엄띄엄 치는데만 해도 일주일이 넘게 걸립니다. 그래도 여기
까지는 괜찮습니다. 뭔가 원곡의 모습이 슬쩍 보이는 것 같은 느낌에 더 열심히 연습을 하게 되죠.
그런데 모양이 어느정도 갖춰질 때 쯤이면 질려버립니다. 근 한달을 투자한 노래가 치고 싶어지지 않는 겁니다. 멋지게 연주를
하려면 지금부터가 중요할 터인데 느낌이나 완성도는 대충 넘어가버리고 이제 다른 곡에 꽃혀서 그 곡을 치기 시작합니다. 계속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서 지금 칠수 있는 노래가 손에 꼽을 정도네요.
그나마 물리지 않을 것 같은 스탠다드 재즈 곡들을 치고 있는데 간당간당합니다.
+이쪽 계통 뮤지션들이 보통 그런 것 같지만 제드는 좋게 말하면 색이 분명하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복제가 심한 것 같네요.
메이저?로 올라와서 낸 노래들이 비슷비슷한 걸 보면요. clarity가 대박을 쳐서 그런가 다 비슷하게 들립니다.
제가 기타칠 때 느낀 거랑 넘 똑같아서 놀랬어요. 와 이런 천상의 곡이 있나, 하고 연습 시작하다가 웬만큼 치게 되면 질리기도 하고 내가 곡을 망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항상 6~70% 정도 완성되면 손놓곤 했거든요.
요샌 다른 이유로 못 치고 있습니다. 이사온 후로 뭣 좀 튕겨보려고 하면 옆집에서 벽을 두드리더라고요.
동지분을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저도 제가 곡을 망치고 있단 느낌 많이 받았어요 ㅠㅜ.
저도 관악반 경험이 있어서 트럼펫을 연주했었는데 이게 특정한 연습실 아주 방음이 잘된
곳이 아니라면 도저히 할수가 없었어요 연습실이 버스타고 한시간 거리에 공짜가 하나 있었는데
하다가 그만뒀더랬죠
http://www.youtube.com/watch?v=4Q3ecCC_X1g
lee morgan - gary's notebook 제가 좋아했던 곡이에요
노래 좋네요. 그나마 기타는 다행인 것 같아요. 드럼에 취미를 붙여볼까 하다가 비슷한 이유로 시작하질 않았죠.
뭐든 몸 가까이에 있어야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장소나 물품이 필요한 것은 접근하기가 힘들어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우쿨렐레 연주자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한 곡을 연습한다는 건, 그 곡을 너무 지겹도록 반복해서 치면서 아주 지긋지긋해지는 과정이라고요.
그렇게 지긋지긋해서 쳐다보기도 싫어졌을 때 계속하면 프로 연주자로 가는 거고, 아니면 취미로 남는 게 아닌가 해요.
프로도 그런 말을 했다니 참 다행이네요. 프로들은 매일 같은 곡을 치면서 황홀경을 느낄까 생각했는데 그네들도 나와 같다니. 요새 매너리즘에 빠지던 차였는데 위로가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