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세상을 새로 하나 만들어주고 싶었어





나에게 구식 몰핀 한 대 놔주겠어?

나에게 구식 몰핀 한 대만 놔줘

그냥 유행 지난 몰핀 한 방이면 돼

그거면 내게 충분해


우리 할아버지에게도 잘 들었던

우리 할아버지도 맞고 흡족해 하셨던

우리 할아버지에게 잘 들었던

그거면 내게도 충분해


자매여, 무슨 걱정이 그리 많아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어

자매여, 아무 걱정하지마

세상은 어차피 끝나가고 있으니

 

나에게 구식 몰핀 한 대 놔주겠어?

나에게 구식 몰핀 한 대만 놔줘

그냥 유행 지난 몰핀 한 방이면 돼

그거면 내게 충분해


빌리 버로우즈에게도 먹혔던

빌리 버로우즈도 맞고 흡족해 했던

빌리 버로우즈에게도 먹혔던

그거면 내게도 충분해


자매여, 걱정할 것 없어

아무것도 걱정하지마

자매여, 뭐가 걱정이야

세상은 어차피 끝나 가는데


나에게 구식 몰핀 한 대 놔주겠어?

나에게 구식 몰핀 한 대만 놔줘

그냥 유행 지난 몰핀 한 방이면 돼

그거면 내게 충분해


이자벨 에버하트가 맞고 흡족해 했던

이자벨 에버하트에게도 잘 들었던

이자벨 에버하트에게 그럭저럭 먹혔던

그거면 내게도 먹힐 거야


자매여, 근심할 것 없어

걱정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자매여, 걱정할 것 없어

세상의 종말이 눈 앞에 있어




//


피너츠에서 가장 주옥같은 씬들은 정신 상담소 에피에서 쏟아지곤 했죠.

우리의 우울한 친구 찰리 브라운에겐 절친이자 사설 정신 상담가 루시 반 펠트가 있었거든요.

조언을 구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매번 상처만 받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 다짐하지만 결국 되돌아가고야 마는 곳.

5센트로는 이루 다 책정되지 않는 루시의 위대함을 살짝 엿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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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 이젠 도저히 안 되겠어, 너무 외로워, 절망적이야.


루시 ; 멍청한 소리 좀 그만 해.


부끄러운 줄 알아, 찰리 브라운.


이 넓은 세상이 다 너의 것이야!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어!

세상에 할 일이, 해낼 가치가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지구에 혼자인 사람은 없어! 모두가 함께인 거야! 하나의 세대가 이룩한 세상을 다음 세대가 이어받는 거라고!


찰리 ; 네 말이 맞아, 루시! 전적으로 옳아! 네 덕에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깨달았어, 난 이 세상의 일부인 거야, 난 혼자가 아냐, 내겐 친구들이 있어!


루시 ; 있으면 이름 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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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 궁금한 게 있는데, 나에게도 새출발이 가능할까?


하늘 위 비행기를 봐.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 나도 그러고 싶어, 어디론가 훌쩍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야.


루시 ; 관둬라, 찰리 브라운.. 비행기에서 내려봤자 넌 여전히 너일 뿐이야.


찰리 ; 하지만 내가 도착한 낯선 곳의 낯선 사람들은 나를 좀 더 좋아해줄지도 모르잖아.


루시 ; 너에 대해 잘 모를 땐 그렇겠지, 찰리 브라운.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모든 게 지금과 꼭 같아질 거야.


찰리 ; 하지만 그들은 조금 더 이해심이 많을 수도 있잖아.


루시 ; 사람은 다 똑같아, 찰리 브라운.


찰리 ; 글쎄, 그래도 혹시...


루시 ; 잊어버려, 찰리 브라운.


찰리 ; 하지만..


루시 ; 그만!


찰리 ; 그래도...


루시 ; 5 센트나 놓고 가.


찰리 ; 휴..


루시 ; 환자에겐 위로만큼이나,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한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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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 넌 나약해, 우유부단하고, 멍청하고, 지루해.


그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내가 보기엔 말야, 찰리 브라운, 너의 단점들은 장점을 상회하고도 남아.


뭔가 적절한 예를 들면 좋을텐데...


생각났다! 좋아, 너에게 진정한 네 자신을 일깨울 수 있는 시각적 프레젠테이션을 제공해주겠어!


자, 이 나무 판자는 성격의 균형을 나타내는 거야.

이제 이 쪽에 너의 장점들을 상징하는 돌맹이를 하나 올렸어.


그리고 다른 쪽엔 이루 셀 수 없을만큼의 네 단점들을 상징하는 바위를 올려보자.

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봐.


(...뻥!)


루시 ; 이렇게 직관적인 방법으로 명쾌한 설명을 제공하다니, 나같은 친구를 곁에 둔 넌 참 행운아야,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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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 ...그래서 내가 아는 거라곤 내가 틀렸다는 것 뿐이야.


문제는, 내가 옳을 때가 찾아와도 난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는 거지.


그래서 내가 뭔가 옳은 일을 했을 때 곁에서 잘하고 있다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한 거야.


루시 ; 해줄게, '너 잘하고 있어.' ...5센트 내놔


...또야? 이번엔 무슨 일인데.


찰리 ; 내가 틀렸어, 전혀 도움이 안 돼.


인생이란 곁에서 잘하고 있다고 말해 줄 사람만으론 충분치 않은 것 같아.


루시 ; 이제야 정말로 뭔가 깨달았구나, 내놔, 5센트.





//



예전에 지나가듯 봤던 MBC 베스트극장 중 한 에피소드에서, 신화의 김동완으로 기억되는 배우가 이런 대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죽지마.

내가 200원 줄게 죽지마.

나중에 잘 되면, 아니 안 되더라도 여전히 살아볼만 하다고 생각되면.

그때 이걸로 다시 커피 마시자"


이렇게 회상할 수 있는 건,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바로 적어둔 대사였거든요.

저 참으로 빈곤한 제안이 마음 속에서 한동안 짤랑거렸어요, 루시 반 펠트의 5센트처럼, 200원 어치만큼.




//


루시 반 펠트가 찰리 브라운에게 제공한 5센트만큼의 공간,

그리고 베스트극장 속 남자 주인공이 상대에게 제공한 200원만큼의 공간.

저 다른 듯 닮은 에피소드들을 한 주머니 속에 넣고 가끔 굴려보는 것을 저의 언어로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늘 그렇듯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책 속에 아주 간단한 문장으로 기록해둔 누군가를 찾을 수 있죠.

이번에 그 누군가는 이탈로 칼비노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을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옥을 받아들여 더이상 그 지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거지요.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며 주의 깊게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인데,

그것은 지옥의 한가운데에서도 그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 지옥에 속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고, 구별해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 보이지 않는 도시들 中




//



puggy의 뻔한 락발라드곡 'empty streets'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I wish I could build a world for you.


이 뻔해보이는 문장이 때때로 어떤 답도 원하는 게 아닐 때, 그냥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을 때 막연히 떠오르곤 합니다.

'세상을 다 주고 싶다'가 아닌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이 표현 속에 담긴 그 슬프고 예쁜 생각이요.

이 세상은 이미 지옥이라, 당신에게 이런 세상을 주는 것으론 아무 소용 없다는, 이 얼마나 서글픈 발상인지.

이런 세상을 줘봤자 하나도 좋은 게 아니라는, 차라리 세상을 새로 하나 만들어주고 싶다는, 이 얼마나 엄청나게 다정한 마음인지.

이 지옥 속에서, 지옥에 속하지 않는 당신에게 공간을 주고 싶다는 

노래 속 화자는 결국 텅 빈 거리를 배회할 뿐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은 때로 어떤 마음을 울리는 겁니다. 통째로 세상을 하나 만들어 주겠다니, 터무니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무슨 결론이 있겠습니까, 다만

만들어 줄 수 없던 온 세상이, 지옥이 아닌 공간이

때로는 5센트에도 200원에도 피씨 화면 한 페이지에도 다 담길 수가 있다는 것, 

믿기 어렵지만 그래서 더욱 '주의 깊게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진실인 게 아닐까요.








기억하나요, 끝도 없던 밤

머리 위 달은 오직 우릴 위한 것이었죠

그 겨울, 오한과 빗줄기에 떨면서도

우린 불평하지 않았어요

텅 빈 거리가 우리 것이었으니까

그래서예요, 그래서


당신에게 세상을 하나 주고 싶었어요

차라리 세상을 하나 새로 만들어주고 싶었죠

그대가 꿈꾸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

누구나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임을 알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곳을요


저무는 하루를 붙들어

우리의 꿈 속에 가두고

결코 사라지지 못하게 만들었죠

두려운 세월도 감히 우리를 향해

마수를 뻗지 못했어요

시간은 끝없는 제자리 걸음을 할 뿐


끝이 없던 그 밤을 기억하나요

우린 인생을 집어 삼켰잖아요

세상의 모든 시계들을 훔쳐 감춘 뒤

자물쇠로 단단히 잠궈버렸죠

그렇게 텅 빈 거리에서 시간을 몰아내버렸어요

그래요, 그래서-


당신에게 세상을 하나 만들어주고 싶었던 거예요

이런 세상 말고, 당신에게 어울리는 걸로요

당신의 모든 소망들이 현실인 곳,

누가 봐도 당신을 위한 공간이란 걸 알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새로 하나 만들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old fashion morphine / jolie holland

empty streets / puggy

translated by lonegunman


    • 고마운 글입니다....고마워요.

    • 참 언제나 잘 읽고 듣습니다
    • 아.. 좋네요. 감사해요.
    • 루시가 저렇게 멋진 애였어요?전 슈로더 스토킹하는 애로 알고 있었는데.

      ㅋㅋ

      게시물이 멋지네요. ^^
      • 물론 주업은 슈로더 스토킹이 맞습니다 



        2630A93353C3D944377044 


        루시 ; 슈뢰더, 만약 내 직감에 우리가 언젠가 결혼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면 말야 


        넌 그냥 가볍게 웃어넘길 거니, 아니면 큰 소리로 끝도 없이 웃어댈 거니? 



        슈뢰더 ; 모르겠어, 당장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닌 것 같아 



        루시 ; 슈뢰더, 내 직감에 우린 언젠가 결혼하게 될 것 같아 



        슈뢰더 ;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호호호호 하하하하하하하 



        루시 ; 결론은 크고 질기게도 웃는 걸로.




    • 뭐죠? 저 200원 대사를 아는 걸 보니 저도 꽤 오래 살았나 봐요. ㅋ. 명대사죠. 무슨 드라마였는지 궁금하네요.




      좋은 글이네요.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lonegunman님 글은 언제 읽어도 따뜻하고 섬세해서 좋아요.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듀게는 아직 좋은 곳이라고 믿어봅니다. 

    • 저는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어쩌면 미워하는데, lonegunman님의 글을 읽으면서는 도저히 질투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도달할 수 없을, 전혀 다른 방식의 글쓰기이기 때문이죠. 번역도 어쩌면 문학이라는 설득을 받고, 자신의 말을 다른 이들의 말로 한껏 가리면서도 그게 가린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게 하기 위해 자신의 영역을 한껏 줄였다는 느낌이 전해지는 것은 모종의 절제와 겸손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끔 엄청나게 많은 노래를 들었을것만 같은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깨달음의 기운을 느끼곤 하는데, 오늘도 진하게 와닿네요.

    • 세상에 lonegunman님 글 처음 읽는데 너무 좋아요 고맙습니다
    • 마음이 느껴지네요.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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