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도덕의 분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에도 몇 번 이 주제로 질문글을 올리려다가 말았는데 (전 아무리 봐도 재미 없는) 대니얼 토쉬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고, 그리고 아래 골프선수 관련 글 댓글을 보고 생각나서 써 봅니다. 


전 솔직히 이 논쟁을 객관적으로 이끌어가기 힘든 위치에 있습니다. 제가 주로 취미로 보는 유튜버들은 PC와는 거리가 한 몇만 광년 떨어진 유머 코드를 가진 사람들이고, 저 자신도 가끔은 꽤 수위가 높은, 때로는 공격적인 유머를 구사하고요. 말하자면 저질인 이 농담들은 그래도 선이라는 게 있는데, 고인드립은 없고, 잘못이 없는 특정인을(특히 피해자라면) 찍어서 놀리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또 하나 가장 중요한 건 이런 더러운 농담들을 이해하고 기분 상하는 일 없이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쓴다는 거죠. 이를테면 '뚱뚱한 미국인'관련 농담은 다른 위험한 드립은 받더라도 실제로 누군가가 살이 좀 쪘으면 그 친구가 몸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걸 정말 확실히 하기 이전에는 건드리지도 않는 식이죠


"~나라도 하는데 우리도 하면 어때?" 같은 논리는 딱 질색이라 싫지만, 제가 여기 와서 사귄 친구들은 길거리에서 입에 담지도 못할 드립을 칠 지언정 적어도 제가 기억하기로는 진짜로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경멸하는 언사나 행동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제 질문은, 어떤 사람의 유머 코드로 그 사람의 질을 판단할 수 있냐는 겁니다. 전 인종차별적인 농담도 많이 하고, 흔히 알려진 잘못된 편견(국가, 주, 성별, 동성애 등)을 이용한 농담을 많이 하지만, 정말 자신있게 인종차별, 성차별이나 다른 잘못된 편견에서 보통 사람보다는 훨씬 더, pc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를 진짜 조심스럽게 가려서 하기 때문에 어떤 친구들은 제가 욕이란 걸 할 줄 아는 지도 잘 모르고, 어떤 친구들은 제가 pc라는 말만 꺼내도 피식 웃어버려요.


다시 "선진국들은 다들~" 같은 논리를 제대로 써 보자면, 미국에서 패밀리 가이, 사우스 파크, 아처 같은, 한국에서는 1화 하고 종영될 미친 만화들이 인기를 끈다고 해서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들 흑인들은 기회만 생기면 칼빵 놓고 물건 훔친다고 생각하고, 이슬람교인들은 다 테러리스트로 의심을 하고, 게이들은 남자만 보면 미친듯이 꼴려서 헉헉댄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안 그렇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도덕과 유머 사이에 선도 모자라서 아예 벽을 확 쌓고 딱 분리를 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딴길로 빠져서, 외모지상주의나 소수자 차별 관련 유머가 방송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의 편견은 있어요. 안 그런 사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인종차별, 성차별, 종교차별, 국가차별주의자에요. 하지만 다들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고 그걸 남들 앞에서 내보이는 게 불편한데, 방송에서 시원하게(?) 저질 개그로 자폭을 해 주는 맛에 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에서 그런 드립은 저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비pc 드립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일부 듀게 분들은 물론이고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도 그게 무슨 헛소리냐 하면서 만류를 하겠죠. 그럼 전 그 사람들이 있을 때는 pc의 한도 내에서만 이야기를 하고 농담을 할 겁니다. (물론 듀게는 친목질을 하지 않는 한 글들을 회원 모두가 볼 수 있게 돼 있으니 pc를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비약 조금 섞어서, pc하지 못한 농담/유머만으로 누군가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게 꼭 길 가는 사람 자동차 뺏고 사람 죽이면 점수를 받는 게임을 한다고 청소년들 폭력성이 심해진다는 사람들 논리나 별 차이가 없어 보여요.


언제나처럼 다른 의견 환영합니다.

    • 구체적인 농담 내용만 지워요.

      • 방송에선 찾아 보면 꽤 많이 합니다. 사팍 패밀리가이 등은 막장이라 쳐도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은 잘은 안 봐서 모르겠지만 pc한데 인기가 좋다는 케이스는 못 들어본 거 같아요.




        실생활에선 본문에 썼듯이 다들 사람 가려 가면서 하고요. 방송이나 실생활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이어야 한다는 것 같은 룰은 거의 없는 거 같아요. 단, 다른 집단의 소수자라도 소수자라면 조금 더 자유롭긴 한 거 같습니다.

        • 저도 스탠드업 코메디계(?)는 잘 모릅니다만 대개 자기가 소수인종인 경우 소수인종 비하 개그를 하던데요. 한번은 쇼 보다가 유대계 추정 여성이 홀로코스트 농담을 가열차게 하는데 몇 사람은 혀를 끌끌 차면서 중간에 나가더군요.




          제가 말한 건 뭐 공식 같은 게 아니라 안전하게 저질 농담을 즐기는 방식은 역시 자기가 속한 집단을 비하하는 것...

          • 자기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드립을 치는 건 아마 그게 제일 아이러니해서 반응이 좋기 때문일 겁니다. 딱히 자기가 속한 집단이 아니라고 못 까는 건 아닌 거 같아요

    • 말씀하신대로 거의 모든 종류의 유머가 '누군가는' 기분나빠할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태도의 차이가 있다고 보는데, 진짜로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그러한 차별적인 유머를 당사자들이나 불특정 다수들에게 적극적으로 전파하려고 하는 스탠스라면 더이상 유머가 아니라 혐오섞인 조롱이 되겠죠. 일베충이 퍼뜨리는 쓰레기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고요.




      그 반대로 '스플래시 효과'로 번져서 기분나쁜 사람이 생기는거야 막을 수 없겠지만은, 그 사람들이 기분나쁜일이 들지 않게 최소한의 배려(본문에 있는 대로 그런 사람이 없는 사적인 자리에서만 얘기한다든가)가 있는건 또 다르겠지요.

      • "모든 더러운 농담은 등 뒤를 쓱 살피면서 시작된다"는 농담이 생각나네요

    • 유머에 함부로 도덕의 잣대를 갖다대는 건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유머랍시고 질 나쁜 농담으로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것도 치사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보통 그런 짓을 하는 족속들은 정작 자신이 유머의 대상이 되는 건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예를 들면 우리가 모두 이름을 알지만 이름을 말해선 안되는 그 사이트라던가.

      • 뭐 걔네들이야 그냥 말종이라고 해도 말종이 진심으로 기분나빠할 족속이니까요.

    • 더티토크든 터부조크든 블랙코미디든 간에 코미디라는 것은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희화화합니다.
      그래서 소재의 대상보다는 의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도로 희화화하느냐 말이죠.


      제가 본 미국 스탠드 코미디란 터부를 긁지만, 의도가 나쁘진 않기에 비로소 웃을 수 있는 그런 케이스가 많았던 걸로 압니다.
      의도가 나쁜데 웃는 거면 다 진짜 미친 거, 아니, 징계 받거나 해당 인물이나 커뮤니티로부터 소송 걸릴 겁니다.
      그리고 그 소재에 민감하거나 싫은 사람은 또 싫어하고 비난하기 마련이고요. 리버럴리티의 양날의 검이랄까 미국에서나 통용되는 소재이니까요.
      (참고로 개인적으론 직설화법과 언변술로 시원하게 긁는다는 데서 애호를 받는 영역인데, 저는 크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김구라가 과거 위안부 발언으로 욕먹고 그 후로 그쪽 노선에 엄두를 내지 않는 것도, 그런 사회적 배경의 차이와 연관이 있겠죠.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의 코미디 복선에 있는 그 추녀 농락, 경멸의 꽁트들에선 전혀 웃을 수도 없고,
      어떤 의도로 희화화하는 지 눈에 다 보입니다. 걔네들이 일베랑 다를 게 뭔가요.

    • 미드 빅뱅이론만 해도 성차별, 인종차별 개그가 꽤 많습니다.


      가끔 좀 위험하지 않나 싶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큰 문제가 없는 게, 그런 차별이 '나쁜 것'이라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어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개그라도 누가 하느냐, 혹은 지역이나 집단이 어디냐에 따라 유머로 통할 수도 있고, 개소리로밖에 안 들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빅뱅이론의 성차별 인종차별 개그를 한국에서 그대로 쓴다? 큰일날 소리죠.  사회적 맥락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음 결국 저는 윤리를 배제한 유머 따위는 웃어넘겨줄 생각이 없다는 입장인 셈이네요.

      • 여기에 공감합니다. 이 말이 옳지 않다고 모두 공감하고 있으니까 그런 개그를 과감히 칠 수 있죠. 


        한국에서의 소위 '개그'라고 불리는 것은 그런 점을 비꼬는 게 아니죠. 오히려 편견과 뜻을 함께하면서 약자들을 공격하는 모습이 많습니다. 


        (못생긴 사람에게) 얼굴이 무기 라거나 뚱뚱한 몸을 조롱하거나 혐오하는 모습이요. 예전에 개그콘서트에서 뚱뚱한 여자와 잘생긴 남자 커플을 조롱하던 코너가 생각나네요. 참 역겨웠음

    • 웃음을 터트리는건 본능의 영역, 편견에 휘둘려선 안된단 의지는 이성의 영역, 사람마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줄타기하는거죠.
    • 유머가 무엇이길래 도덕에서 자유로워야하는가 하는 의문이 일단 듭니다.  유머냐 도덕이냐의 일도양단도 아니고요.  어느 선까지 허용되느냐는 그때 그때 달라질 거고 아차 실수했으면 욕 먹을 각오 해야죠 뭐. 


    • 발화자의 의도가 중요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발화자의 의도를 청중이 어떻게 인식하느냐 혹은 '촉'이 크리티컬합니다. 흑인들끼리 니거라고 조롱해도 아무 문제가 안되는 것은 비하의 의도가 없는 장난이란 걸 서로 알기 때문이죠. 아무리 흑인이라도 정말 흑인을 까고 있다면 내집단에서 욕을 먹을 겁니다.  한국사람이 '우리'비하적인 코미디를 해도 웃을 수 있지만 이게 정말 비하하는 내용이라면 문창극 꼴 당할 수 있는거죠. 그래서 영어표현에서는 "I mean it" 또는 "I don't mean it"이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우리말로 치자면 본의다 아니다 정도겠죠.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 중 잘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리버랄이거든요. 공화당 계열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없는 건 아닌데 희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성향 사람들은 코미디를 안좋아하고 유머감각이 없느냐, 그건 또 아니거든요. 문제는 보수적인 코미디언들은 폭망한다는 겁니다. 아니 뜨지도 못합니다. 잘 나가는 독실한 크리스찬 스탠드업 코미디언 보신 적 있나요? 반대로 무신론자 코미디언은 많지요. 이는 우연이 아니라 코미디의 속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공화당 성향의 백인코미디언이 흑인 조크를 하면 비하 시비에 시달리지만, 민주당 성향의 백인 코미디언은 흑인 조크를 웃기게 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여 줍니다. 저 사람은 흑인의 편이라는 걸 사람들이 아니까요. 빌 마허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사람도 가끔 오바해서 청중들한테 야유받고 그럽니다만.  




      참고로 민감한 rape joke에 관한 미국 npr의 견해는 이렇군요.  http://www.dvr21.com/storyla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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