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연기하는건 나쁜걸까?

예쁨이 아닌 삶이 목적어가 되면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한껏 확장되긴 합니다. 그러나 예쁨 하나만 두고 일상에서의 연기를 다루는 것은 얼마 안되는 표본으로 전체를 추측하게 되기에 범위를 일단은 넓혀봅니다.


누군가가 어떤 연기를 한다는 것을 밝히기 이전에, 연기에 대한 지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타자보다 통찰이 뛰어나야만 합니다. 연기가 작동한다면 다수는 그것을 연기가 아닌 사실로 인지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통찰의 우세를 점하여 자기 합리화를 위해 이런 논의를 내놓는지도 모릅니다. 또는 대부분은 그것이 연기임을 묵인하고 사회적 의례에 맞춰 받아주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죠. 그런 가운데서라면 진실만을 전하기 위해 연기에 대해 공론화시키는 것은 그저 눈치없는 일이 될 겁니다.


저는 사람들 가운데, 외부를 인식함에 있어 보이는 것을 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융의 분류론에 따르면 전자를 감각적이라고 하고, 후자를 직관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보이는 것만 보거나, 보이지 않는 것만 보지 않습니다. 어느 한 쪽을 익숙하게 할 뿐이지 하나만 하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죠. 이 둘의 차이로 인해, 어떤 사람이 행위를 했을 때 그 행위를 보고 어떤 이는 "보이는 것을 보"고, 다른 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봅"니다. 사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는 없습니다. 추측할 뿐이죠. 어쨌거나 추측하는 사람들은 연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행위를 행위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특정한 의도나 [뒤에 있는 무언가]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둘이 풍경 그림을 볼 때, 전자는 전체의 구도나 그림의 세세함을 많이 보겠지만, 후자는 그림에서 가려져 보이지 않는 부분과 화가의 의도를 추측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사이의 문단 하나를 추가하자면, 삶을 살아가면서 순간 순간에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연기하냐고 묻는 이들은 후자일텐데, 순간을 사는 사람들은 짧은 순간에 아주 많은 정보를 이해하고 행동을 하기에 그러한 지적이 무의미할겁니다. 그것은 연기가 아닌걸요. 결국에 연기하냐는 질문과 그 대답을 할 수 있는 두 명을 뽑아 놓으면 후자와 후자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연기에만 집중해서 그 해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시다. 아주 간단히, 일베 이용자가 일상 생활에서 자신의 일베적 가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을 연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연기인가?란 골치아픈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이러한 일관성의 파괴는 개개인의 관계에서 공정치 못하다는 비난을 받을 겁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진실된 정보를 제공할 의무는 없지만, 그것이 드러났을 경우 그 격차로 인한 피해는 연기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윤리관이죠. 우리는 연애에서 서로에게 얼마나 진실되야 하는가라고 묻기도 합니다. 이런 진실성과 그 진실에 도달할 때까지의 거리를 늘리는 일에 대해서 현대까지의 상식은 진실을 전하는게 올바르다였죠.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전부 드러내는 것은 민폐이며 숨길만한 것은 숨겨야 한다는 담론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도, 예쁨을 포함한 어떤 것의 연기함을 꺼려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라 취향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행위가 일종의 연기라고 인식이 된다면, 그것은 그 자신과 그 자신의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인식했다는 뜻일 것이기 때문이죠. 그것은 뒤짚어 말해 연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활보다 더 많은 자원을 쏟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그녀가 자원이 부족할 시점에 이르러서는 연기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며 연기를 통해 유지되던 평상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죠. 그러나, 평생을 (완벽하게) 연기하는 사람과 평생을 자연스럽게 사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구별할 겁니까?


예쁨을 연기함에 반대하는 이유 중에는 신포도 만들기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연기란 모방이며, 모방이란 다수에게 통용되는 논리적 실체죠. 우리가 무언가를 연기할 경우, 자연스러움이 있었던 부분을 대체하는 모방은 정체성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뭐, 연기를 통해서 행위와 사유 양 측이 바뀌었다면 그 바뀐 자신이 그 때의 자기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알량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변경을 질색하고 남이 그런 것을 취해 무언가를 더 얻어내는 것에 질투할 가능성이 높겠죠. 이렇게 생각하면 시간 속에서 자신을 자신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지불할 손해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쁨을 연기]하는 것으로 돌아와보면, [예쁘게 보이는 것](인식 상으로서는 예쁜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태)과 [예쁨을 연기]하는 것은 칼로 자르듯 단박에 자를 수가 없습니다. 많은 지적이 있었던 것처럼, 후자가 전자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며 애초에 후자로 전자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이러한 모호함은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이 외견과 행위의 중첩인 미이기 때문이죠. 미란 단순한 척도로 젤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군요. 혹시 [예쁨을 연기]하길 거부하는 분은 [나다움을 연기]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요.


+ 긍부정의 와중에, 긍정의 입장 중에는 한국에서 예쁨 연기가 타국에 비해 심한 지탄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군요. 예쁘거나 예쁘지 않거나 그 연기가 허용되야 한다는 것이죠. 확실히 한국에서는 자신의 외견에 맞지 않는 행동을 심하게 지적하긴 합니다. 40대의 얼굴이 살아온 과정을 나타낸다느니, 나이에 맞는 (그 사람의 나이를 모를 경우 외견이 그 사람의 전부겠죠) 행동을 하라느니 같은 거요. 남자도 애교를 떨고 싶을 때가 있지만 이런 검열 때문에 못 하기도 하겠죠.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긍정이 늘어났으면 하는데... 그런데 또 부정의 입장에서는 이게 감정 노동과 엮어서 생각할 만한 부분이 있고, 그렇다면 한국에서 예쁨 연기가 과잉이라는 주장이 될 수도 있겠어요. 적어도 [친절]한지 [친절을 연기]하는지를 일상 생활에서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까. 묶어서 양극화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억지고 둘 다 동시에 해결할 수도 있겠죠.

    • 이렇게 풀어주시니까


      철학적인 질문이 되네요


       


      삶의 지향(취향)이 결국 자기 정체성인데


      자기 존재와 지향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연기'를 하게 되는 건가요?

      • 그런데 결국 인식하는 자신도 연기하는 자신과 분리될 수 없으니, 무엇이 연기이고 무엇이 연기가 아닌지 알기 힘들죠. 자연스러움은 불편하지 않음으로써, 정체성은 사유의 결단으로서 정의되니 이 둘을 얼기설기 엮어서 추측할 뿐이구요. 저는 인격 다중을 믿는지라 총체가 자기 자신이거니 합니다. 그래도 타자의 자아 경계선은 제가 그을게 아니라서 연기하는 나는 내가 아니야, 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믿을 용의가 있어요. 그저 이건 너답지 않아, 라는 말의 변주를 안하고 사는걸 노력해야하는거죠. 저도 자주 그런 말을 합니다만...

    • 제목만 보고 생각한건데 Acting이 아니라 삶을 Delay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뻘 댓글 주절주절... 죄송...
      • 내용을 자세히 보시면, 그 연기를 쓰고 싶지 않아 (쓸 경우 영어나 한자를 붙여야 해서) 형용으로 설명한 부분이 있어요. 연기를 반복하다 보니 그 연기가 자꾸만 생각나서... 이건 한국어를 쓰는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거겠죠?.. 저도 아주 자주 삶을 연기해놓고 틈비구니에 기어들어가 거나하게 낮잠자고 싶어요.

    • 글쎄요. 무인도에 사는 로빈슨 크루소라도 자기 마음속의 또 다른 자아가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는 마당에 삶의 어느 부분은 연기고 어느 부분은 아니고를 나누어 이야기하는 것이 부조리하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예쁨연기"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다면, 젊은 여자였을 때 사근사근하고 상냥한 태도가 없다고 사회적인 압박을 받은 데에 대한 거부감에 가깝습니다. 저는 나름 성인답고 직장인답게 (그러므로 별로 안예쁘게) 연기하려고 애썼는데, 그게 여자답지 않다고 주변사람들이 공박하니 이것도 참 황당하더라고요.   

      • 글쎄요 다음에 하시는 이야기가 제 이야기와 어떻게 충돌하는지 모르겠어요. 음,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원래 나눠져 있는게 아니라 나눠서 인식하는 순간 나눠진 덩어리들로 보이는 거겠죠. 미가 철저하게 주관적 사유의 영역이라 더욱 그런 것 같구요.


        개인적인 이야기의 경우엔, 저는 개인이 타자의 연기를 인식하는 것만 이글에서 다뤘는데요, 당사자의 입장으로 들어가면 의도와 의도하지 않음으로 편하게 연기를 구분할 수 있겠죠. 사회가 예뻐져라! (명령형 불가능, 그러나 최근에는 가능함)고 할 수 없으니 예쁨을 연기해라! 고 하는 거겠구요. 예쁜 척과 다른 것은 '예쁨'이라는 명사를 얻을 수 있다는 건데, 이 예쁨에 대한 시회적 상식과 개인적 정의는 당연히 차이가 있을겁니다. ... 그런데 뭐 이런 이야기 할 필요없이 여성에게 양가적 태도를 요구하는 사회가 잘못했네-_-라고 말하면 될 거 같군요. 두 태도를 요구하는 논리를 따져서 논박과 그 논리충돌을 궁시렁거리면 화가 좀 풀릴거 같아요. 그런데 그 둘다 요구하는대로 고분히 따르라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으니 기분 나쁘긴 마찬가지군요.

    • 왠지 홀리 모터스가 생각나는 제목입니다. 사실 삶 자체가 연기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 삶을 연기에 빗대는 경우는 철학만 뒤져봐도 수두룩하게 나올꺼에요, 아마. 저는 이런 이야기를 볼 때마다 춤과 춤꾼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이영도의 글이 떠오릅니다. 홀리 모터스는 스토라 요약으로는 무슨 내용인지 추측이 불가능하군요. 포스터를 보니 더 상상불가능의 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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