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뒷북인 <밀회> 본 소감


- 드라마를 잘 안보는데, 듀게를 뜨겁게 달궜던 밀회를 어쩌다 뒤늦게 보게 돼서 두서없이 느낀점을 적어봅니다.

 

 

- 문학적인(?) 구원의 결말:

    

드라마를 보면서 연상된 몇 가지 작품들 중 대표적인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그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였습니다.

'순수성에 의한 영혼의 구원'이라 할 만한 결말은 <죄와 벌>과 같은 고전문학과 오버랩 되는 것이었는데, 그만큼 비현실적인 느낌이었고 또 그만큼 눈물나게 아름답기도 했어요.

'순수'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영원히 갈망만 해야할거 같은 것에 대한 슬픔과 동경심이랄까요.

이 결말을 위해 사용된 '파격적 멜로'의 설정은 필연적이었을 겁니다. 마흔이면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와 함께 세속의 때에 적당히 찌들었을 나이이고, 스무살이면 아직 순수하면서도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갖춰질 때니까요.

그런 두 사람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어 주는건 '사랑'일 거고요.


이런 설정적인 측면에서 연상되는 작품은 <책 읽어주는 남자>였어요. 열 다섯살의 소년과 서른 여섯 여성이 사랑하는 이야기로 출발하는 이 소설도 언뜻 초반부만 읽으면 흥미 위주의 파격적 연애소설이라 오해할 만하지요. 밀회가 초반부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이유 처럼요.

하지만 이 나이 차이나는 로맨스의 설정은 아마 필연적이었을 겁니다. 독일 나치 역사를 둘러싼 한 세대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또 엘리트 법조인과 문맹 여성 노동자라는 둘의 신분차를 넘어서는 연결고리가 있어야할 테니까요.

미래에 뭐가 되어 있을지 아직은 모르면서 이성에 대한 관심이 폭발할 나이인 열 다섯의 소년과, 여성성이 농익은 서른 여섯의 여자, 이 둘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도록 연결시켜 주는건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성장기의 첫사랑'.

소설을 읽으면서 이 도입부의 설정과, 이들을 둘러싸고 미스테리가 하나씩 밝혀지듯 드러나는 이야기 구조가 참 훌륭하다고 생각했었어요. 밀회도 비슷한 구조를 가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고요.

소설에서는 십 수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감옥에 간 여주인공이 그 안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로맨스를 끝마칩니다.

남주인공은 갈등하고 머못거렸고, 어찌보면 비극적이지만 가장 구질구질하지 않은 결말이었겠지요.

선재는 혜원에게 호기롭게 같이 한 번 살아보자고 했는데, 둘의 미래를 현실적으로 상상하는건 사실 조금 괴로운 일인 것 같습니다.

드라마는 가장 아름다운 지점에서 끝이 났고, 그래서 드라마겠지요.

 

 

- 유아인과 김희애:

 

딱 맞는 옷을 입은듯 그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들이었던 것 같아요. 김희애는 가끔 연기가 과한 듯한 느낌도 있었는데 피아노 치는 장면에서는 그것보다 더 과하게 액션하는 연주자들도 있으니까.. 라고 생각해버렸고, 적절한 선의 가식과 꾸밈이 존재하는게 오혜원이라는 캐릭터이기에 그런 부분이 김희애와 나름대로 잘 맞다고 느꼈어요.

그런 과한 느낌이 순수한 선재랑 있을 때도 가끔 드러나게 느껴져서 조금 그랬지만.. 어쨌거나 이 역할에 김희애 말고 다른 연기자는 생각하기 힘들었습니다.

유아인은 특히 피아노 치는 연기가 정말 훌륭했는데, 진짜 피아니스트 같았어요. 순수하고 덤덤한 스무살 청년 느낌도 잘 살려서 연기한 것 같고요.

유아인 상당히 동안이네 하고 옛날 사진을 찾아보니 진짜 스무살 전후 즈음이었을 때는 완전 애기 느낌인게;;

이거 나이 가늠이 안될 만큼 내가 나이를 먹은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좋았어요, 유아인.

 

 

- 음악:

 

드라마를 고급스럽게 만들어주는데 한 몫 했던 음악들, 클래식 넘버들은 사실 워낙 유명한 곡들이다 보니 그냥 나오는구나 싶었는데개인적으론 클래식 아닌 삽입곡들도 참 좋다고 느꼈어요. 이야기가 고조되는 부분에서 음악 때문에 더 느낌이 사는 것 같았는데OST를 살펴보니 클래식 삽입곡들만 수록된 것 같아서 아쉽더군요. 다른 곡들은 어디서 들을 수 있는건지 궁금했어요. 

손열음의 우려와는 달리 '음악 천재'에 대한 오그라드는 환타지나 찬사가 과하지 않았던 것도, 드라마를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이유 중 한 가지 같습니다

 

 

- 선재가 좋아하는 손열음의 카푸스틴 연주로 마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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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 죄와벌은 정말 자의가 안 느껴지고 구원 받았는지도 애매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김희애는 그보다는 훨씬 자발적이었던 것 같네요.


      다들 김희애 연기가 과하고 유아인이 좋았다고 하는데 전 정반대로 느껴서 잘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유아인의 발성(목소리?)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안 좋아해서 더 그런건지도... 

    • 저도 김희애가 오혜원에 정말 딱!!이었다고 생각해요.유아인 피아노 연기부터 흠잡을게 별로 없었지만,윗분 얘기하신것처럼 좀 불편할 때가 있어요.꾹꾹 눌러가며 말하는 걸로 들려서 제가 다 숨이 차다는.연기외적으로도 좀 느끼하고 늙은 것 같고.외모야 탱탱하죠.

      재방 했는데 다 알고 보려니까 기가 빨리는것 같아서리..못보겠더군요. 암튼 보는 동안은 행복했어요.
    • 검정/ 일반적으로 죄와 벌은 구원적 서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여겨지는걸로 아는데, 개인적인 해석이야 다양할 수 있겠네요. 


      김희애의 연기가 과하다는 느낌은 약간 연극같은 톤으로 '나 연기함!!' 이렇게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서인데, 그 자체로 김희애의 스타일이고 그런 김희애를 좋아하는 사람은 워낙 많으니까요.




      키드/ 유아인의 특유의 우물거리는 대사는 늘 별로 안좋아하는 거였는데, 이상하게 이번 드라마에서는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더군요. 다소 둥그스름해진 외모와 함께 왠지 그 나이 또래에 흔히 있는 보통의 애들 같았다고 할까, 김희애랑 케미가 폭발하고 엄청 매력적인 남주인공은 아니었지만 그 평범한 애들같은 모습이 좋았어요. 그래서 김희애의 여신스러움이 더 산 것 같기도 하고.. 가방메고 어리숙하게 길거리 왔다갔다 할땐 그냥 우리 옆집 사는애. ㅋㅋ                

    • 다 보셨군요.  처음엔 나이차 나는 두 사람의 불륜이라는 것이 화제를 뿌렸는데, 다 마치고 보니 구원에 대한 이야기였죠.   후반부 혜원의 몰락이 다가오면서 선재가 구원과 순수의 남성상이 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은 있었지만, (성만 바꿔 볼 때, 어린 여자가 구원의 여성상이 되는 설정이 진부하다 여기기 때문에..) 그도 함께 거울처럼 혜원을 투명하게 비추며 성장하고 있었기에 결말 자체는 최고였어요.  저도 이남연 음악감독의 연주곡들이 더 귀에 남았습니다.  함축적이고 모던하고 미니멀한 화면과 극 분위기에도 잘 맞고요.  음원도, 음반으로도 나오지 않아서 아주 몹시 아쉬워요.  러브테마곡 청음해서 딴 악보는 넷에 검색하면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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