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옷 왕'에게 노란 표적을 받고 카르코사에 간 이야기

[노란 옷 왕 단편선  카르코사의 망자]

 

로버트 윌리엄 체임버스(1865-1933)노란 옷 왕(1895)’은 

 H.P.러브크래프트를 비롯한 많은 공포추리소설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최근 히트드라마 트루 디텍티브에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트루 디텍티브도 보지 않았고 러브크래프트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좀 더 솔직하자면 트루 디텍티브라는 드라마가 있다는 것조차 거의 알지 못했네요. ‘거의알지 못했다는 건 제목이 뭔가 낯이 익은 정도?

러브크래프트야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것 역시 내 취향은 아니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아티초크 이벤트에 참가한 것은 공포소설을 좋아한다는 참으로 청순한 이유였을 뿐

이 책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인 정보도 없는 상태였다는 거죠. 그러다보니 문득 떠오른 생각이, 이왕 사전 정보없이 받아든 책,

아무런 선입관없이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그것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닌 거예요. 보통 책을 선택할 때는 누구에겐가 추천을 받았거나

인상적인 서평 등을 보았다든가, 그렇게 시작해서 인터넷 검색도 해 보고, 그러고 나서야 읽기시작하곤 해온 거죠.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아무 정보없이, 책 첫 페이지의 작가소개조차 일부러 읽지 않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을 보신 분이라면 제가 얼마나 어리둥절했을지 짐작하시려나요.......

 

, 저는 정말로 이 책이 몇 년도에 쓰여졌는지조차 모른 채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의 처음 몇 페이지에는 사진과 시가 있습니다. 모래시계와 불 꺼진 촛대와 화병과 해골의 사진들 위에

황량한 카르코사에 대한 시가 한 구절씩 있죠. 마지막엔 노란 옷 왕’ 12장 카실다의 노래라고 출처가 밝혀져 있고.

저는 요 때부터 벌써 알쏭달쏭했다지요. 이거이 소설의 일부냐, 아니면 노란 옷 왕이라는 유명한 희곡에서 인용한 건데 내가 모르는 거냐,

이렇게 시작한 수준이니......

첫 단편 명예회복 해결사의 도입부에서 능청스럽게 설명하는 1920년대 미국 상황에 으잉? 고개를 갸웃대다가,

시카고 대화재 이야기가 나오자 어? 이거 사실이야? 이러고 헤매다가,

죽음회관이 등장하면서야 겨우 감을 잡았습니다. 죽음회관이라니 아무래도 그건 좀 아니잖아 싶었거든요.

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서 주인공 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시작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헷갈리다가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아니 균형을 잡았다고 생각한 바로 그 상태에서 소설을 읽게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소설은, 완죤 좋았습니다!!!

다른 분들도 저처럼 명예회복 해결사에 제대로 몰입하셨나 궁금하군요.

 

낙마 사고로 머리를 다쳐 입원한 주인공은 노란 옷 왕이라는 책을 읽게 됩니다.

세계 각국에서 금지되고 압수되면서도 전염병처럼 퍼져나간 바로 그 책이지요.

책의 내용은 소름끼칠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만 할 뿐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 것도 알려 주지 않고,

정신과 의사는 더 이상 치료가 필요없다면서도 계속 진료비를 받아 챙깁니다.

중간에 나오는 갑옷 수선공의 정밀한 작업 과정과 시장이며 광장의 묘사를 보노라면

소설이 아닌 이 가상 미래 세계(1800년대 후반에서 보자면 미래 배경이죠)에 대한 미시역사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지만,

한 편으론 소설을 읽는 저의 상태처럼, 현실과 망상을 알 수 없게 알딸딸합니다.

이후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건 스포일링이 될 터이니 삼가겠습니다.

아무튼 제 경우는 이 명예회복 해결사가 엄청 좋았네요.

원래 제가 그렇게 진실과 거짓을 알 수 없는 상태를 가슴 깊숙한 곳부터 무서워하는 데다가

알딸딸한 분위기와 달리 미스테리와 음모가 얽혀 꽉 짜인 스토리에다 결말도 좋아요

두 번째의 노란 표적명예회복 해결사에 비해 단순하지만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혐오스럽고 무서운 이야기였고,

세 번째 카르코사의 망자는 체임버스가 아닌 앰브로스 귀네트 비어스(1842- 1914?)의 것으로

여섯 페이지, 짤막하지만 황량하고 또 황량한 카르코사의 묘사가 처연하고 섬뜩하더군요.

 

그래서 결론은...... 저는 토막살인, 식인, 사이코패스, 좀비, 뱀파이어, 각종 귀신 괴물보다 이런 스멀스멀 무서운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무력한 이 필멸의 존재에게 그것이 다가오면, 노란 옷 왕이 노란 표적을 보내오면,

덧없이 소멸되어 카르코사로 가야한다는 상상은, 단순히 무섭다고 하기에는 부족하군요.

p.s.)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작고 가벼운 문고본,

게다가 뒤쪽에는 영문판까지 붙어있으니 들고 다니며 전철에서 영어공부까지???

 
    • 정신과 묘사의 경우도 그 작가와 동시대에 프로이트가 활동했었고, 신경증의 일종으로 치료하던 시절이라 꽤 세련된 묘사였을 수도 있어요. 전두엽 절제술이 아마 그 이후에 나올텐데 정신병에 대한 접근도 놀랍도록 미래적이죠(다른 소설의 묘사를 비교해보긴 해야겠습니다만). 죽음회관도 전 혹시나 실제 있었다가 폐지되었나 싶었어요. 그 핍진함의 궁극적인 장면은 회관 개회식을 그리는 부분이었죠. 주요인사들이 모여 의례를 치루는 장면. 행정적인 절차를 상세하게 그리니 깜빡 속을 뻔. 아직도 궁금한게 과연 미래에는 인간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죽음이 행정부 일처리로 흡수될 것인가에요. 여러 예측 소설에서 다루긴 했는데 아직까지는 안락사 허용 정도죠.


      이광수의 무정이 1917년 소설인데 요새 읽으면 옛티가 확 나지만 이 소설은 그런걸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점에서 작가가 얼마나 깔끔하게 썼나 싶더랍니다. 그리고 첫 서술부를 밀덕이면 훨씬 섬세하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인디언 기병경찰대가 어떤 의미인지 꽤 궁금하더군요. 그리고 맥락상 나폴레옹 황제에 작가가 많은 영향을 받은듯 싶었어요.
      • 아, 맞아요! 저도 회관개관식에서 다시 어 설마 이거 진짜? 이런 기분 들었었죠 ㅎㅎ


        전 어딘가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나사의 회전과는 또 다른 게,


        이건 주인공의 정신 상태뿐 아니라 아예 소설 자체도 사실인지 가상인지 어리둥절한 느낌이라...


        하여간 전 아주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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