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이 우회적으로 대권의사를 내비쳤는데
사실 차세대 지도자가 될 '준비가 되면' 나서겠다고 말한 거지만
그거 자체가 '코끼리를 생각하지마' 화법인데 고도로 정치적이고, 세련된 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은 충청도 표심에 소홀했죠.
기본적으로 보수적 정서가 지배하는 이 지역에서, 물론 새로운 인구의 유입과 함께 대도시 중심으로 야권성향이 꽤 강하기도 하지만,
특별히 별 일이 없으면 보수정당에 표심이 쏠리는 걸 간과한 겁니다.
물론 타지역에 비해 충청지역은 기본적으로 여야 균형을 어느정도 맞춰주지만
인구통계학적으로 야권은 절대 '충청이 균형을 맞춰주는 것'에 기대는 전략으론 이길 수가 없습니다.
DJP연합 당시는 뭐 사실상 지역이 정권을 창출한다는 개념이 지금보다 더 강했던 시절이니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도이전 공약으로 충청지역 표심을 많이 확보했죠.
18대 대선에서 이명박, 정동영 둘 다 충청에 떡밥을 던진 게 없었는데 사실 정동영 후보가 워낙 약체였고
10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바람도 있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전했던 거같습니다.
근데 정작 이명박은 충청에 별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세종시도 취소하려고 했거든요.
세종시 문제가 불거지기도 전인 18대 총선을 보면 당시 전국을 휩쓸던 한나라당이 대전, 충북, 충남 지역에서 총합 단 1석을 가지는 데 그쳤어요.
그리고 세종시 원안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준 박근혜에게 대선에서 다시 보답을 합니다. (19대 총선은 여야 반반)
그럼 안희정은 과연 무슨 공약을 준비할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잘만 포장하면 안희정 자체가 떡밥이 될 수 있을 거같거든요. 이지역 정서가 충청도 의석수 논쟁부터, 최근 첫 충청 원내대표가 등장한 것까지
대놓고는 안그래도 충청출신 누군가가 등장하길 바란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근데 안희정 본인도 그것을 어느정도 인식하고 있는 모양새에요. 굳이 충청도지사 선거에서 차세대 지도자 얘기를 꺼낸 거 자체가
자신을 충청도가 내세울 수 있는 대권후보라는 인식을 지역주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거죠.
(여기에 제가 생각하는 또 하나의 변수는, 생각보다 충남 - 충북의 민심이 꽤 괴리가 있고 서로 영향을 잘 안 받는 편인데...
안희정이 과연 충남의 정치인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충청 전체를 대변하는 상징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 입니다)
어쨋든 이 작업만 수월하게 진행시키면, 충청도 민심을 장악하는 건 생각보다 쉬울 거같거든요. 게다가 10년 주기이기도 하고.
당내 기반은 잘 모르지만 일단 지역기반이 확실한 정치인은 당내기반 구축도 유리한 면이 있죠.
게다가 안희정은 친노-비노 모두와 원만한 관계이고,
최근 들어서는 충남 민심을 반영한 듯 보수적 민주당원으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래도 개혁적 성향은 남아있죠.
또 제 개인적 판단으로는 언행을 봤을 때 안철수, 문재인보다 훨씬 정치적으로 노련한 거같습니다.
결론은, 제가 주목하는 다음 대권후보 1호는 안희정이라는 것.
최악의 시나리오는 민주당 티파티가 김진표 물어뜯듯이 또 순수성과 선명성을 내세워 안희정을 고꾸라트리고,
결국 자기들 입맛에는 맞지만, 본선 경쟁력이 떨어진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행정가로서 실력이나 성실성은 있는 것 같던데 좀 더 관심이 생기네요. 야권이 충청도나 강원도 표심에 소홀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합니다. 꼭 규모가 큰 개발 공약이 아니더라도 하다 못해 선거 기간에 자주 찾아간다거나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공약은 내놓을 수 있었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