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의미 외
이 글은 개인적인 생각을 적은 것과 신변잡기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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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민함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예민함이란 게 좋은 점으로 작용하는 일이 과연 있을까요?
예술이나 창작 면에 종사하는 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예민함을 좋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마도 예민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에게서 불편함을 주로 발견하죠.
왜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보고는 책 제목이 어떻다는 둥 한 마디씩 던지는지,
왜 내 피부가 하얗다면서 내 손등을 손가락으로 스윽 훑는지,
왜 고개를 숙이고 있었더니 피곤한가보지? 라면서 딴죽을 거는지.
이런 일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로 불쾌함으로 와닿지 않는 모양이지만 저에겐 불쾌함으로 다가옵니다.
예민하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불쾌하게 와닿는 것일까요?
그럼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예민하지 않은 걸까요?
예민함이 도움이 되는 일이란 과연 존재하는 걸까요?
대체 예민함은 왜 있는 것일까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면.....
2.
여러분은 글을 씀으로써, 혹은 글을 읽음으로써 저와, 그리고 여러 글쓴이들과 소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댓글을 씀으로써 피드백을 던질 때,
글쓴이를 여러분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길 원하시나요, 아니면 글쓴이의 수준에 여러분이 맞추길 원하시나요?
사실 이런 일은 세상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겠지요. 누군가의 수준에서 말하거나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
(저는 자신의 수준에 남이 맞춰준다는 일 자체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나나요?)
가끔 게시판에서 말다툼이 일어날 때마다 저것은 대체 누구의 수준에서 싸우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대체 누구를 누구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싶은 것인가요?
3.
처음의 계속이지만, 여러분은 타인이 사소한 데까지 참견해오는 세상과 타인이 전혀 참견해오지 않는 세상 중 어디에 살고 싶으신가요.
두 세상 모두에 살아봤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타인이 전혀 참견해오지 않는 세상 쪽이 좋았네요.
그렇지만 그런 곳에 있으면 좀 쓸쓸해져요. 그렇다고 타인이 늘상 참견해오는 건 피곤하고요.
그런 참견이 전부 싫지는 않아요. 가끔은 참견이 도움이 될 때가 있기는 있어요.
그런데 참견의 절대 다수는 그냥 기력의 소모만 불러일으키는 것 같고...
4.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아무 불빛 없는 길을 헤메고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아니, 그런 것이 있다고 누군가 알려준다면 그 말을 믿을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너무나 힘들다고 느낄 때, 인생에 아무 의미도 없다고 느낄 때...
인생의 의미라도 찾지 않으면 이 무의미한 생을 견딜 수가 없다고 느끼고 마는 것입니다.
괴롭고 슬픈 와중에도 무언가 인생에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괴로울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아프고 괴롭지만, 남은 인생의 날 중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의심스럽고 어쩌면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서 또 울고 싶지만.
그래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면,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면, 그 의미도 찾을 수 있겠지요?
여러분의 인생의 의미, 찾으셨나요?
0.진지한 글에 뻘댓글일 수도 있지만 궁금한 게 있어요
글 쓰실 때마다 붙이는 말머리는 복붙인가요, 아니면 외우신 건가요?
3. 어느 쪽에 있던 반대쪽이 더 좋아 보이지 않을까요?
글 앞에 붙이는 말머리는 그때마다 쓰고 있습니다. 관찰력이 뛰어난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매번 미묘하게 내용이 달라요.
어느 쪽에 있어도...라. 저는 참견 없는 세상에 살 때 가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불안을 느끼거나 미묘한 쓸쓸함을 느낄 때 빼고는 참견의 세상을 부러워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1. 좌백이란 작가는 글에 대한 예민함과 악플에 대한 둔감함이 작가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예민한 감성에 둔감한 정신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2. -_- 그러게요.
3. 정말 필요할 때 찾아오는 사람들은 참견 안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아닐까요?
4. 전 인생의 의미 없어요.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극과 극의 감성과 정신을 갖기도 대단한 일이랄지 어려운 일일 것 같아요.
정말 필요할 때 찾아오는 건 참견 안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 정말 동의합니다. 정말 절실한 도움을 주는 사람은 분명 남의 일에 그다지 참견하지 않고 살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저도 인생의 의미를 믿지 않는 편이었는데, 요즘의 삶은 너무나도 허무하고 힘이 들어서 삶의 의미라도 없으면 버틸 수 없다는 기분이 들어요.
2. 상대의 수준이란건 가늠하기 매우 힘들죠. 엄밀하게는 불가능하구요. 외국인이 한국말을 서툴게 한다고 해서 그의 수준을 낮게 잡을 수 없듯, 말과 글이라는 표현도구의 사용이 미숙하다고 해서 남의 수준이 낮다고 단언할 수 없죠. 게다가 갈수록 권위가 해체되어 최근에는 지식의 양과 질만이 수준의 단위가 되는데 저는 그것도 틀렸다고 생각해요.
대화의 시작에서 남의 수준을 결정해본 적은 거의 없어요. 글이 내 생각을 건들이고 자극해서 말 하게 만든 부분에 대해서 말할 뿐. 그리고 대화의 시작은 남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라는 신뢰로부터 시작하고, 대화의 과정을 통해 이해와 불이해를 추리는 것 뿐이죠. 평행선을 달리지 않는한, 시작은 자기의 수준에서, 끝은 서로가 양보하고 이해하거나 처음부터 같았던 만큼 가까워진다 생각합니다.
3. 타인... 이 3자인지 2자인지 모르겠어요. 친구와 안친구(?!!)로 나뉜다면, 전 친구들한테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제 심력이 다 없어질 듯 하네요. 타자가 나에 대해 갖는 시선에 관심 기울일 만큼, 외부에 부여하는 힘이 충분칠 못해서요. 즉, 친한 사람 사이에서는 참견도 하고 그럴로 안정도 얻고 하는거죠.
4. 인생의 의미를 아나 모르나 사는데 영향이 없을 것 같아 생각 안 하고 삽니다. 다양한 종교인들을 보면 대충 유추할 수 있지 않나요.
사실 소통에서 상대와 자신의 수준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용, 무의미한 일이죠. 그런데 싸우는 글은 대체로 상대의 수준에 맞추는 것도 아닌, 자신의 수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 같더란 말입니다.
타인은 대체로 제3자죠... 저는 친구가 거의 없어서 제2자를 생각 못했군요. 사실 친한 사람이라면 사소한 참견도 관심이 되고 또 대화의 싹이 되고 할 텐데 제3자는 그렇지가 않더군요.
제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 건 그거라도 없으면 지금의 삶이 너무 괴로워서입니다. 이렇게 괴로운데 뭔가 의미라도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상해... 의 발로라고나 할까요. 사실 무의미한 짓이지만 지금 제겐 이거라도 없으면 그냥 쓰러질 것 같습니다.
1. 예민한 예술가 많이 알아요. 그림이던 음악이던 글이던게 없었으면 사는게 너무 견디기 힘들다고 다들 말하더군요. 원래 속세적인 의미의 '쓸모'와는 거리가 먼게 예술이기도 하죠.
2. 글쎄요
3. 참견은 싫어요. 관심과 참견 사이는 참 아슬아슬하죠?
4. 살아가는거죠. 평범한 99일을 특별한 하루가 견디게 해주는거 같은데 살면 살수록 그 99일의 따분하고 무의미함도 점점 더 소중하다고 느낍니다.
역시 예술 외에는 별다른 도움이 안되나보죠...?
참견은 싫죠. 그게 관심인지 참견인지 알지도 못할 종류의 참견은 더욱 싫죠... 대체로 제3자들은 그냥 툭 던지더군요. 그게 상대가 웃기 힘든 종류의 농담이라고 해도 자기는 재치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고 여기는 듯해요.
살아감에서, 따분하고 무의미함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날을 살고 싶습니다. 지금의 제 나날은 텅 비었어요...
그렇군요... 씁쓸한 사실이네요. 예민함은 어떤 자질조차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관계는 필요하지만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서 주로 참견이 들어온다는 게 문제가 아닐까 싶군요.
의미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3. 이 만화가 생각나네요.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17249
재밌게 잘 봤습니다. 이런 만화도 있었군요!
인생의 의미라 호기심에 달려들고 싶지만
할말이 아무 소용도 없다는 말일꺼란 생각입니다-현재의 시간으로
남이 관심가져 주는거 좋을 때고 있고 아닐 때도 있고 그런데
전 2/3 정도로 안가져주길 바라는 편
저도 그렇습니다. 관심이냐 참견이냐가 문제일 뿐 관심이라면 있는 편이 좋지만 대체로 참견이죠.
1. 나의 예민함이 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 위의 어느 분이 선택적인 예민함을 말씀하셨지만 글쎄 그게 가능하긴 한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민해서 손해라는 생각도 많이 들지만, 그게 이마만큼 해 올 수 있었던 동력원이지 싶어 선을 긋거나 둔감해져야 겠다는 생각은 안드네요.
2. 둘 다, 아닐까요? 수준이 그렇게 딱 맞출 수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해요. 서로 이야기하고 있으면 둘은 이미 같은 수준이겠지요. 다른 수준이 대화를 한다는게 잘 상상이 되질 않아요. 물론 한 사람은 어떤 부분에서 훌륭하고 다른 사람은 아니고 하겠지만, 서로 대화를 하고 있다면 이미 둘은 최소한의 소통의 배경을 공유하게 되는 거니까요. 아니면 서로 대화하고 있지 않은 거겠지요. 따지거나, 가르치거나, 지적하거나, 등.
3. 역시 중용이자 적당함이 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4. 즐겨듣는 팟캐스트인 '과학이 빛나는 밤에'의 거의 변하지 않던 마무리 멘트. "듣고 세상이 조금 달라보이시지 않습니까." 우연의 산물이던 - 그 우연의 확률이 무지 낮지만 - 또는 필연이던 - 정해져 있었다면 정해져 있었음을 떠올리며 - 오늘도 살아내려 해요.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장 차이이리라고 굳게 다짐하면서.
때로는 둔감함이 축복이라고 여길 때도 있습니다. 난로와주전자 님께는 예민함이 동력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다른 입장 다른 수준에 서서 서로 다른 평행선의 이야기만 줄창 하고 있는 경우가 왕왕 발견되더란 얘기였습니다.
역시 적당한 편이 좋겠지요.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슬프지만요.
오늘도 살아가시면서 힘내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그게 쓸모있다고 생각될 때가 오길 바랍니다만... 과연 그런 때가 오기는 할 것인가 하는 회의감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너무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면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버리는거 같은 한계 상황이 오더군요. 어떤분야든 공부를 꾸준히 계속하고 어떤식으로든 세상과 부딪혀서 경험을 쌓고 하다보면 생각의 외연이 차츰차츰 넓어지게 되고 그럼 어느 순간 의미를 발견할 수 있거나 결론을 낼 수 있는 그릇이 저도 될 수 있을것 같아요. 그 의미라는게 크게 기대는 안됩니다만... 존경할만한 주변 사람들을 보면 젊은 시절에 이 고민을 강하고 짧게 하고 그냥 지나가요. 결론도 안나고( 현재는) 답도 없는 질문이니까, 일단 보류해 놓는거죠. 그리고 "어떻게" 살것인가에 더욱 집중합니다. 에아렌딜님도 에아렌딜님이 계신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시다 보면 답을 찾으시거나 질문자체가 그다지 의미없어지는 날이 올거예요. 저는 그렇더라구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고, 인생의 의미 따위는 사실 사소한 문제겠지요. 제가 하는 이 고민이 허무한 것임을 저도 알고는 있지만... 이 우행을 그만둘 수가 없군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그냥 고민 속에 빠져 있습니다.
예민하면서도 정작 남의 기분에 둔감한 저 같은 인간은 있는 법이죠. 혹은 무심결에 자기 기분만 내세워서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부끄럽고 반성하고는 있지만 지나간 잘못이 사라지지는 않겠지요.
쓸데없는 참견을 줄이면 세상이 훨씬 유용해질 것 같은데 말입니다.
행복해보이는 타인을 보며 인생의 의미를 남들은 찾은 걸까, 하고 늘 생각합니다. 다들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다고 대답하겠지요...?
대화에서 상대방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은 분위기나 기분이에요. 어떤 글이나 댓글에서 제가 느낀 표정대로, 제가 그 기분일 때 쓰는 말이 댓글로 나오게 돼요. 이건 좀 더 쾌활한 분위기냐 수줍거나 침착한 분위기냐일 때의 얘기이고, 험악한(?) 분위기나 대립하는 분위기 속의 대화에서 어떤 어휘와 말투를 선택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끌어가는가에서 드러나는 건 절대로 제 인격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글로 옮기는 수고를 하는 동안 충분히 되돌릴 기회가 있기에 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한순간에 저를 끌어내릴 수는 없어요. 제 형편없는 모습을 드러냈다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거죠. 때로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했을 뿐.
그렇죠. 저는 형편없는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도 커집니다. 난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