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으라, 누구든 살아있으라*

  감상에 젖지 않고 장황하지 않게 간결한 글을 쓸 재주가 없어서 그간 많이 참고 있었습니다.


  듀게에 접속 한 번도 하지 않고 지난 연휴를 보냈다는 건 제겐 나름 천천히 평온하게, 밀린 잠과 휴식으로 방전된 체력을 보충하는 날들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영화를 보고 조카들을 데리고 경복궁 나들이에 간 뒤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이고 집으로 데려와선 고양이를 처음 소개시켜 주고, 뽀로로를 보는 아이들을 놔두고 자매들과는 시원하게 맥주잔을 기울였으며, 연휴 마지막날엔 인왕산에 오르고 내려와 서촌에서 칼국수와 막걸리를 먹으며 마음 속으론 내내 이런저런 먹고사는 일로 연휴 마지막까지 미뤄졌던 시청 앞 분향소를 나서야 겠다고 생각하면서요. 요즘 같아선 어디 맨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싶어서 낮술이라도 마시고 간들 이상하지 않으리요만, 집에 와 깨끗이 샤워하고 단정한 조문복장으로 갈아입고 마을버스를 타고 그 곳에 갔어요.


  행렬. 어주 어렸던 고등학교 때 거의 빵점에 가까운 성적이었던 수학시간마다 들었던 이 단어가 곧장 떠오를 만큼 사람들은 끊임없이 오더군요. 바람은 차갑고 햇볕은 따가운 오후 3시의 시청광장에서 열을 지어 30분 넘게 기다렸지만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습니다. 조문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따금 웃음소리도 들리고 제 앞에 선 여고생들은 꺄르르 웃으며, 오늘 미용실을 가서 앞머리를 자를까 말까, 나 요즘 살이 너무 쪘어 등등의 그 또래간에나 할 법한 잡담들이 오갔지만 엄숙한 분위기에 왠 방자함이냐 라는 꼰대기질보다는... 그냥 다 예뻐 보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른들한테 요즘 애들 진짜 문제 많아, 잔소리 들어가면서도 이렇게 발랄하게 지지배배 까불고 놀았을 아이들이 차가운 물 속에서 죽어가다니요.   


  사고 발생 일주일 넘어 열흘 지나면서는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한다는 문구마저 겸연쩍어 곳곳의 노란 리본을 보지도 않으려 했던 저는 혹여 그곳에 희생자들의 영정이 있으면 도무지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너무 많은 조문객들이 몰려 인원을 정해 몇 줄의 행렬이 영정없는 국화단 앞에 헌화하고 인사합니다. 그 틈에 끼어 머리숙이고  노란 리본에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묶어두는 것으로 나는 할 일을 다했는가요.


  어버이날이었던 어제 저녁, 예약된 레스토랑에서 메뉴 중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었던 이탈리아 음식과 와인을 마시고 선물과 꽃과 금일봉을 전달하며, 너무 과용한 것 아니냐는 집안 최고 어른의 만족스러운 인사에 저는, 사람 사는 게 다 이렇지 않느냐 이런 날은 또 이렇게 보내는 게 서운치 않다고 당신이 즐거우시면 됐다고 화기애애하게 마무리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몇 겹으로 둘러싸인 경찰차와 군인들 그에 비해 너무나 적은 인원의 사람들이 대치하고 있는 국면을 목도했습니다. 제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그것이 어떤 상황인 줄 전혀 모르고 통행이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로 호위하며 길을 내던 제게 어른이 말씀하십니다.


  너도 저런 사람들의 시위에 동감하고 같이 참여하고 싶은 거 아니니?


  아니요. 저는 흔히 말하는 종북좌파도 아니고 급진세력도 아닙니다. 다만 어떤 사회적인 문제가 제 개인에게 좋은가 나쁜가가 아닌 정의로운가 아닌가 또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하는 본능적인 촉이 올 때만 동감하고 행동할 따름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은 안했지만, 그냥 다 미안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또 이렇게 보내는 게 사람사는 맛 아니냐며 윤택한 소리를 지껄이던 제가, 살아서 누리는 이 모든 생생함이 그 분들께는 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해서 어떻게 해줄 것도 없는 이 힘없음도 미안합니다. 미안함을 조장하는 모든 미안한 요소들마저 마치 제 개인의 잘못인 양 미안합니다. 그렇게까지 오버하면서 자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제가 사실은 힘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미안합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한동안 침묵하던 어른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도 이제 좀 추스르고 상황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니?
  경제도 너무 안 돌아가고 모든 게 너무 침체되어 있어서 이러다가 정말  더 큰 일 날 것 같다.


  저는 이 어른을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고 언급하신 진의를 파악하고는 있지만... 끝내 이 말씀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보다 다 큰 일이 나도 저는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큰 일이 나서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오기를 바라고 있는지도요. 제 인생은 여전히 한심한 것 투성이고 망할 놈의 돈 문제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확신된 것이 없지만, 지금은 그냥 슬퍼하고 무기력하게 이 상황을 직시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마지막 권리이고 자유니까요. 어차피 시간이  더 지나 무뎌진다고 해도 4월 16일 이후의 시간들을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끝으로 이름 있는 또는 이름 없는 누군가의 죽음들의 기사에 종종  몇 줄 인용되어 식상할 수도, 어쩌면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마음 속으로 오래 아끼던 시로 글을 마칩니다.


  비가2 - 붉은 달* 
 
                                         기형도

   
               1
 
그대, 아직 내게 
무슨 헤어질 여력이 남아 있어 붙들겠는가. 
그대여, X자로 단단히 구두끈을 조이는 양복 
소매끈에서 무수한 달의 지느러미가 떨어진다. 
떠날 사람은 떠난 사람. 그대는 천국으로 떠난다고 
장기 두는 식으로 용감히 떠난다고 
짧게 말하였다. 하늘나라의 달. 
 
             2
 
너는 이내 돌아서고 나는 미리 준비해둔 깔깔한 슬픔을 껴입고 
돌아왔다. 우리 사이 협곡에 꽂힌 수천의 기억의 돛대, 어느 하나에도 
걸리지 못하고 사상은 남루한 옷으로 지천을 떠돌고 있다. 아아 난간마다 안개 
휘파람의 섬세한 혀만 가볍게 말리우는 거리는 
너무도 쉽게 어두워진다. 나의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속에서 
폭풍주의보는 삐라처럼 날리고 어디선가 툭툭 매듭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내가 떠나기 전에 이미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 
너는 왜 천국이라고 말하였는지. 네가 떠나는 내부의 유배지는 
언제나 푸르고 깊었다. 불더미 속에서 무겁게 터지는 공명의 방 
그리하여 도시, 불빛의 사이렌에 썰물처럼 골목을 우회하면 
고무줄처럼 먼저 튕겨나와 도망치는 그림자를 보면서도 나는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떨리는 것은 잠과 타종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내 유약한 의식이다. 
책갈피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우리들 창백한 유년, 식물채집의 꿈이다. 
여름은 누구에게나 무더웠다. 
 
                  3
 
잘 가거라, 언제나 마른 손으로 악수를 청하던 그대여 
밤 세워 호루라기 부는 세상 어느 위치에선가 용감한 꿈 꾸며 
살아있을 그대. 
잘가거라 약기운으로 붉게 얇은 등을 축축이 적시던 헝겊같은 
달빛이여. 초침 부러진 어느 젊은 여름밤이여. 
가끔은 시간을 앞질러 골목을 비어져나오면 아, 
온통 체온계를 입에 물고 가는 숱한 사람들 어디로 가죠? (꿈을 생포하러) 
예? 누가요 (꿈 따위는 없어) 모두 어디로, 천국으로 
세상은 온통 크레졸 냄새로 자리잡는다. 누가 떠나든 죽든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있으라, 누구든 살아있으라. 
턱턱, 짧은 숨쉬며 내부의 아득한 시간의 숨 신뢰하면서 
천국을 믿으면서 혹은 의심하면서 도시, 그 변증의 여름을 벗어나면서.  
      
*기형도 시집-'입 속의 검은 잎' 수록.
 

    • 방금 어떤 분께서 불편하다는 댓글을 달아주셨길래 제가 쓴 글이 어떤 불편함을 초래하였는가 싶어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답글달려는 사이 지우셨네요. 네, 저의 무력한 장광설이 안온함에 바탕을 둔 것처럼 보일지라도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어떤 분들껜 불편한 감정을 끼쳤다 해도 어쩔 수 없겠지요. 제가 생업과 일상을 다 제쳐두고 현장으로 뛰어갈 용기는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하고 싶었다는, 그게 조문이든 뭐든. 다만 그것이 제 맘 편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날선 비난이야말로 무력하고 무의미한 듯 해서 지웠습니다. 

        • 다시 댓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에 불편하다는 말씀을 하셔서, 저는 솔직하고 조심스럽게 쓴 글이 어떤 종류의 불편함을 초래했는가 생각해보던 중이었습니다. 거기서 어떤 맥을 짚었다 해도, 지금은 그냥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편할 수 없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날 시청광장에서 조문객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저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도 행동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 아닐까, 그래도 이렇게나마 이 슬픔이 공유되고 있다는 현실에 아주 조금은 안도했던가 봅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마음이 너무 괴롭고 현실은 시궁창이고 다 힘드네요.
      • 썩 좋은 글은 아닐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뭔가 생각을 정리하려고 해도 참 안 되네요...

    • 눈물이 납니다.


      저는 연휴 첫날에 시청 앞 분향소를 갔더랬죠. 놀이공원의 놀이기구 앞에 선 줄보다도 훨씬 길게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도 만약 놀이공원이었다면 투덜투덜거리며 기다렸거나 혹은 기다리지 못하고 가버렸을 사람들이) 도대체 누가 이렇게까지 이들을 슬프게 만들었나. 누가 이들을 이렇게까지 분노하게 만들었나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잠깐의 시간을 내어 꽃 한 송이 바칠 수밖에 없는 제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더군요.

      • 진도 체육관에 남은 가족들도 많이 줄어들었고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분향소도 곧 철거될 거 생각하면 이대로 또 흘러가 버릴 것이 참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우리동네 세탁소 사장님은 저한테 먹고 사느라 그런 데도 못 갔다고 한탄하시던데, 조문도 못 가고 마음으로 위로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 그깟 경제가 뭐...이미 큰 일은 났는데 무슨 더 큰 일이 난다는거지...이 울화는 평생 안고가야지요.
      • 무슨 일이 터져도 경제논리 앞에선 무의미한 것이 한국의 현주소인가 봅니다 국민이 있어야 경제도 있는 건데요
    • 진심이 와닿네요...뭉클해졌어요.
      • 대안이 없는 넋두리나마 진심을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 대부분의 우리들이 할수있는건 대략 이정도 아닐까요. 이나마도 행동하지 못하는, 혹은 같은 마음이지 않은 사람또한 다수 있을겁니다. 일이 터질때마다 분노를 토하다가도 그저 말로만 분노할뿐 똑같은 일상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점점 목소리가 작아질 뿐이지요ㅡ ㅡ;;

      • 유별난 사람보듯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분향소에 다녀왔다는 말도 쉽지 않아요 당장 저부터도 제 일상이 우선인 사람이라 사회문제가 더 둔감한(척) 이기적인 소시민이기도 하고요 쉽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이번 일은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 대부분 모두가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기에 내 손톱밑의 가시가 제일 아프다고 하겠지요 그게 인지상정입니다 다만 그 사소한 분노를 통찰하고 인식하는 힘을 잃지않는다면 언젠가 큰일에 제대로 분노할 수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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