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함과 두려움과 위험함, 그리고 내준과 외준.

내준과 외준은 제 친구가 만든 번역어입니다. 흔히 내향Introversion과 외향Extraversion으로 번역되는 단어죠. 저는 이 번역이 어떤 사고과정을 통해서 결정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융의 심리학을 이해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겁니다. 다르게 말한다면, 융의 심리학을 오독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될겁니다. 제가 현재 머리 속에서 구축하고 있는 성격학의 토대와 그 칸들은 실제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들과는 천만광년 정도 차이가 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경고 문구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도록 하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후, 머리 속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한 번 살펴보세요. 그리고 분필을 하나 들어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테두리를 그어보는 겁니다. 그 원의 안 쪽이 자기 자신이고, 바깥 쪽은 자기 자신이 아닌 것들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외준과 내준은, 무엇을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외준은 바깥의 것을, 내준은 안의 것을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야기처럼 들리는군요. 잠깐, 이 대목에서 약간 중요한 부분은 자아의 테두리를 긋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부분 정도입니다.


모든 사람은 외준과 내준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쪽을 더 쓰고, 어느 쪽을 덜 쓰느냐 식인 비율의 차이일 뿐이지 아예 한 쪽만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마치 내준적인 사람들이 독보적이고, 외준적인 사람들을 바보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약간 다르게 써보자면, 자신의 내적 규칙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멋있게 보이고, 타자들의 이야기들에 맞춰서 규격을 결정하고 그 정규적인 선을 따라 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순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이런 사고의 극단에는 정치적인 선택들도 있는데, 자기 주관을 가지고 어떠한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은 올바르고, 타자들의 감정을 총합하여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잘못되고 비난 받아야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양 쪽다 개인의 성격이자 특성이고 그것은 각각이 가지고 있는 도구들을 이용하여 선택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어쩌면 이 반대 방향에서 타자의 생각에 여유있게 자기를 찌그러트려서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들을 비난하는 보수적인 시각이 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말하자면, 저는 박근혜를 불쌍해서 뽑았다는 사람들이 있다손 친다면, 그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사고 논리와는 다른, 감정 논리를 통해 정교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파악하여 내려진 결론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논리를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거기에 적합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게 제 관점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사람 성격의 한 형태일 뿐입니다. 덧붙혀서, 이러한 감정 논리를 통한 결정이, 꼭 박근혜를 투표한 사람에게만 적용되지 않고, 일정 부분 문재인을 지지한 사람에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정치적 구도 부분은 부당하게 비판받는 논리적 결정에 대한 한 예시로써, 외준적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의 경우, 내준이 외준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고, 그것은 내가 가진 준칙들이 타인들에게는 그다지 공유되지 않는 것임을 뜻합니다. 그것은 타자들에게 제가 생각하는 일정한 논리들이나 생각들을 강요하기보다는, 그것이 기묘하고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며 설명하는 식으로 접근해야한다는 타협이 따라 붙습니다. 그런 가정 가운데 삶을 살게 되었을 경우, 다른 성격 때문에 일어날 많은 갈등을 피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직관적 내준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그 다음으로 감정적 외준을 사용합니다.


저는 최대한 무엇에 대한 감정을 넷상에서 나타내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쾌함], [두려움], [위험함] 등의 단어로 자주 표현됩니다. 무엇이 [불쾌]하다거나, 누군가가 어떻게 될까봐 [두렵다]거나, 그러한 발언은 꽤나 [위험하다]는 식으로 이야기 되죠. 이런 이야기들은 어떤 논리적인 기반에 근거하여 나오는 말들이 아닐 가능성이 (즉, 순수한 감정의 표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것을 함께 이해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논리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아닌, 논리초월적인 감정으로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의 경우, 공감하는 사람과 공감하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는 적절한 논리적 이정표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을 규명하거나, 서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많은 감정적 소모가 필요한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감정을 발산하는 것이 극도로 절제되는 이유는, 그리고 넷 상에서는 그다지 절제되지 않는 이유는 이런 문제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감정을 논리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을 모릅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불쾌함이 없는 진공에서 극락왕생하소서"라는 트위터의 비꼼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조금 돌아가서, 저는 거의 모든 것을 제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선택하고 인정합니다. 제 내준은 상당히 강력해서 그 자기장 안에서 자급자족하지 못하는게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지금 기쁜지, 슬픈지, 좋은지, 불쾌한지를 알아내기란 많이 힘들고, 그렇기에 감정 수집을 위해 외부를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와의 대화 속에서, 어떤 이들의 댓글 내에서 감정이 있고 저는 그 감정만을 (그러니까 사고 부분을 제외한) 수집하여 어떠한 문제에 대한 감정을 재구성해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따릅니다. 그것이 제 외준적 감정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시답잖은 걸 다룬다 하더라도 거기서 연무처럼 뿜어내는 감정의 카테고리가 어떤 한 방향으로 결을 이루는게 저에겐 중요합니다.


다시, 현대 사회에서 감정을 발산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그 발산에 대해서는 어떠한 메뉴얼도 좋은 선례도 없고 누구도 그 끝맺음을 어떤 식으로 할지도 잘 모릅니다. 그것은 적당한 자리가 있으면 갑작스레 투기되는 거대한 오물저장고 같은 형태로 현대를 버텨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개인주의가 우리에게, 많은 자유와 개인적 밀실을 마련해주면서, 어떤 것이 좋다거나 싫다라고 말하는 방종을 앗아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기에 잘게 쪼개지고 좋거나 싫다고 말해도 그렇게 큰 문제거리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만 감정 과소비를 하고, 내집단 내에서 안전하게 일방적인 혐오의 감정 소비가 가능한 것들에 대해서도 사치를 부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해결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 이 글이 어떤 글이고 무슨 논리인지 이해할 사람이 그리 많으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쓰다보면 이해하도록 쓸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내준/외준이 한자어인가요? 궁금해지네요.

    • ANF 1892_ 네. 아마 內準, 外準일 겁니다. 무엇에 준하다, 의 준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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