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링크로스 84번지를 읽고 -부제: 아버지의 펜팔친구

며칠 전 듀게에서 올린 글을 보고 바로 구매해서 하루만에 다 읽었네요.

책에 관련된 책은, 그 마음들이 비슷해서인지 공감가는 구절들도 많았구요.

 

책을 읽다가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은 이들이 몇몇 떠올랐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제 아버지였어요.

아버지에게는 50년도 더 된 펜팔친구가 있거든요.

 

전후세대였던 부모님들이 대개 그렇듯

개인만의 성공신화들과 이야기들을 갖고 있으시죠.

 

중학교 시절 또래 미국여자 친구-루이스와 펜팔을 시작한 아버지는

그 시절에는 귀할 수 밖에 없었던 손목시계를 선물받았고

전교생이 몰려와 그 시계를 구경하기도 했답니다.

 

아버지가 사회에 나와서 경제력을 갖추기 시작할 무렵이었던지

여자 한복을 사서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 교류를 하셨어요.

 

88서울 올림픽 즈음이었던가,

미국 출장을 가셨던 아버지는 일정을 겨우 조율해

호텔 로비에서 30분 정도 루이스와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답니다.

 

채링크로스 84번지에서 편지의 주인공들이 서로 만날 수 없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죠.

 

책 속에서 배급을 받던 영국 상황을 고려해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에

먹을 것들을 보내는 주인공의 따뜻한 배려를 보니,

제가 어린 시절에도 미국의 진한 초콜릿을 받았던 기억과

아직도 가지고 있는 바비 인형 세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마 국민학교 2학년 쯤이었던가,

커다란 소포에서 나온 것은 제가 가지고 있던 소라나 미미, 미리 인형과는 사뭇 다른

가무잡잡한 피부의 글래머러스한 체형을 가진 금발의 바비였어요.

남자친구 토미? 도 있었는데 그건 누군가에게 주어버렸어요.

전 한국 마론인형들이 있는 옷을 입힐 수 없는 바비에게 이런 저런 평상복들을 만들어 입히기도 했지요.

 

제가 대학생이 되어 미국에서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에

아버지의 권유로 동부에서 서부로 날아가 일주일 간 루이스 가족과 머물며 시간을 보내고 오기도 했어요.

단지 한국에서 온, 펜팔 친구의 딸을 위해 가족들이 시간을 내어 저와 함께 디즈니랜드에 가서

이틀간 머물며 개장시간에 들어가 폐장시간에 나오는 굉장한! 일정을 보내기도 했구요.

(지금 생각해보니 굉장하지 뭐에요! 그렇게 시간내기가 얼마나 힘든일인가요!!

당장 루이스에게 이 책을 보내야겠어요)

 

티팟을 모으고 인형의 집을 모으는 취미를 가진 루이스의 집에는

창고 하나가 인형의 집으로 가득했어요. 그야말로 별천지를 경험하는 기분이었어요.

어렸을 때 인형의 집에 사는 인형들과 모험을 떠나는 남매의 이야기가 나오는 시리즈가 있었는데

제목은 기억이 안나네요. 천사들의 합창처럼 매일 30분정도씩 방영하던 것이었는데...

 

아버지에게 받은 편지를 모두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에게 선물받은 한복도 꺼내서 보여주더군요.

제가 모르는 아버지의 섬세한 모습도 보여서 신기하기도 했구요.

 

한달음에 읽어버렸지만,

다시 한 번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얼른 아버지에게도 이 책을 드리고 싶구요.

 

손으로 쓴 편지가 점점 사라져가고 이메일 교환도 많지 않은 요즘에

멀리 있는 친구에게 손편지를 보내고픈 욕구를 마구마구 일으켜 준 책이었어요.

 

 

 

 

    • 이런 일이 실제로 있군요.굉장한 이야기 같은데 가까이 있는 이야기라니 좀 신기하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 그때는 어려서 그런가부다 했는데 새삼 대단하다 싶더라구요~ ^^
    • 우와. 아버님께서 지금도 편지를 쓰신다는 말씀인가요. 멋진 이야기입니다.

      • 네 이젠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손자손녀 사진을 교환하시고 크리스마스에만 손편지를 이용하시지만요~^^
    • 50년도 더 오랜 펜팔이라니 정말 멋져요! 아버지도 멋지시고 펜팔 친구분도 멋지시고 가족분들도 멋지시네요~
      • 네 대단한 환대였는데 그걸 이 책을 읽으니 진심으로 더 감사해졌어요~ 그 마음이 느껴져서요
        • 그렇게 반겨 주고 반가워하는 인연을 만나는 건 진짜 큰 복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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