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공천제 폐지와 정당 무공천

민주당은 기초공천제 폐지가 공약이었지 정당 무공천이 공약이었던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무공천은 전패라며 되돌리자고 하는 몇몇 새정연 의원들한테 니들도 약속해놓고 이제와서 안 한다고 하는 거냐라는 비난을 하는데, 둘 사이의 차이를 모르는 건지, 애써 무시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이 상태로 무공천 고고씽이 확정되면 3-4천명까지로 추산하는 새정연 기초선거 출마자는 모두 탈당해야 해요. 정당의 풀뿌리 기층조직이 모두 무너집니다. 기초선거 출마자들은 적극적으로 정당의 공약과 정책을 알리고, 자신의 당선과 소속 정당의 승리를 함께 추구합니다. 그걸 수행하는 사람들이 모두 탈당하는 건 정당의 존립을 약하게 하는 일이 되죠. 기초공천제가 법적으로 손질될 때 가장 핵심적으로 다듬어야 하는 조항이 무소속 출마자의 무당적 해소인 거구요. 기초선거 출마자는 정당의 공천 단계를 안 거치는 대신 정당소속일 수 있어야 하는 거죠. 트위터에서 안철수 공동대표가 무소속 출마자는 반드시 탈당해야 한다는 걸 얼마 전에야 인지한 것 같다는 루머를 봤는데, 그냥 루머이길 바랄 뿐입니다.... 몇몇 언론인이나 소위 정치 파워블로거들도 그걸 몰랐던지 공천만 안 하면 되는 걸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대응했던 걸 기억하고 있어요. 

기초공천제가 법적으로 폐지되는 게 아니라 그냥 새정연이 무공천만 하게 되면 기초의회의 비례대표와 지역대표의 공천 형평성 문제도 발생합니다. 비례대표라는 건 정당의 공천을 전제로 하는 건데, 같은 기초의회에 누구는 공천받고 누구는 공천 못 받나요? 공천제 폐지와 정당 무공천은 이런 점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저는 기초공천제 폐지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더 나가서 미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대학생 오티에서 사고가 나면 대학생 오티를 없애고, 성추행 사건이 벌어지자 여성 인턴이 문제라며 여성 인턴을 안 뽑는 것과 마찬가지의 대응이에요. 기초선거 후보자들이 공천권을 가진 국회의원에게 줄서기를 하느라 정치가 후퇴된다고요? 물론 그런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기초선거가 있을 때마다 아니, 모든 선거 때마다 룰이 바뀌니 당의 실력자에게 잘 보여야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지 기초공천제 자체의 문제는 아니죠. 줄서기하고 돈공천이 문제라면 선거 출마자들이 다음 선거를 준비할 수 있는 고정된 룰을 만들고, 돈공천을 없앨 강력한 처벌과 당 지도부의 의지를 보여주면 돼요. 하지만 선거 때마다 룰은 바뀌고, 당의 유력자들은 여전히 유력자죠. 돈 받아먹고 짤린 서청원이 컴백한 거 보세요.


기초선거는 정당의 젊은 정치인들을 국민 앞에 선봬는 자리고, 그래야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젊지 않더라도, 자신의 사회 경험을 공공의 영역에서 발휘할 수 있는 신인 정치인을 발굴하는 기회가 되어야 하구요. 그리고 공천제가 유지 되어야 아직도 형편없는 수준인 여성과 장애인, 소수자들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게 됩니다. 지방자치 초창기에 기초선거는 공천이 없었어요. 그 땐 소위 지역 토호라 불리는 동네 유지들이 지방의회를 장악했었죠. 그 폐단 때문에, 그리고 정당정치의 기본이기 때문에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이 도입된 겁니다. 저는 기존 정당의 공천 못지 않게 지방선거에만 후보를 내는 작은 정당들도 설립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래야 전국에 지역위원회 만든다고 돈 쏟아붓는 것도 줄어들 거라고 생각해서 지방선거, 기초선거의 공천제 폐지가 오히려 정치의 후퇴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대로 새정연의 무공천이 확정되면 파란 옷 입은 후보들이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여남은 명까지도 출마할 겁니다. 반면에 새누리의 빨간색은 한 명이겠죠. 이게 약속을 지켰다로 이어지기보다는 일반 국민들한테 저거 하나 제대로 정리 못하는 무능력으로 받아들여질 거라는데 지금 먹는 포숑 초콜릿을 겁니다. 안철수가 청와대를 찾아가 면담신청서를 또박또박 작성하기보다 차라리 삭발이라도 하고, 새누리는 약속대로 기초공천제를 법적으로 폐지하라고 광화문 이순신과 세종대왕 사이에서 돗자리라도 폈다면 소위 '새정치'를 하겠다는 열정만큼은 인정하겠어요. 새정치는 새정연만 합니까? 

    • 법적인 선거제도의 개선 문제인데 일개 정당의 당약으로 만든 것 자체가 너무 멍청해서 이걸 고집부리는 안철수가 너무 갑갑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 포숑 조콜릿 먹구싶어용.


      기초공천 폐지 쪽이 민주당 당원들의 과반 여론이었다고 하는데, 자기 당 대표를 김한길로 뽑아놓은 것 만큼이나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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