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 교회 내에서 자유로운 의견 제시가 가능하다면
한국 개신교 교회에서 꽤 오랫동안 있었었는데
한국 개신교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수 있을지 가끔 생각해봅니다.
교회 다니면서 가장 이해가 안갔던 부분은
왜 돈과 시간, 노동력을 교회에 제공하면서, 목사의 설교,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지
목사의 말이 이해가 안가거나, 틀리거나 다르다고 생각하면 말할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의 교회는 단 한 건 밖에 들은 적이 없습니다.(물론 더 있겠지만)
결국 참아야 된다는거죠. 옳지 않은걸 봐도 참아야 하는 게 교회생활입니다.
불의를 보고 참는 게 종교적인 행동은 아닐 겁니다.
보통 교회에서 의문을 갖고 말하는 사람을 시험 들었다고 합니다.
한국 개신교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구별되는 점도 없이 사기업처럼 타교회와 경쟁하는 (문어발식) 경영모델에 있겠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가르침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가르침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돈 내고 교회 갔는데, 한마디 말은 할 수 있어야겠죠.
북한이랑 별다를바 없어요. 북한 사람이 남한 오면 북한과 가장 비슷한걸 한국 개신교로 꼽을겁니다.
의문을 자유롭게 두면 감당 못하니까 그런거라고 생각해요. 독재국가의 특성과도 비슷하죠.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환경이긴 하죠. 외부에서 그런 사람이 오면 반기지도 않구요. 문제의식을 느끼면 말없이 떠나거나 합리화하거나 현실적인 이유로 다니게되겠죠.
해석에 대한 차이를 자유롭게 말할수가 없는거죠. 목사 설교에 대해서 틀리다고 말할 수 있는 교회라면 꽤 건전한 교회라고 봅니다.
고루하죠. 전혀 아멘하고 싶지 않은데 아멘하라고 할때 마조히스트가 되가는걸 느낍니다. 설교 후에 설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든다거나 하면 될것 같아요.
글쎄요. 개신교 교회도 결국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서. 발언권 자체가 원전 봉쇄되어 있지는 않아요. 규정상으로는. 근데 일개 신도가 뭐라고 말 해봤자 별로 영향력이 없죠. 교회 내의 발언권이라는 것도 실질적으로는 일정 수준의 무리를 이룬 후에야 가능한 거고. 근데 성경 말씀을 읽다가, 설교를 듣다가, 혹은 교회 밖의 교회의 행태를 보고 곤란한 의문점이 생겨도 이에 대한 의문을 표현하는 건 개인의 발언 차원에서 그치고. 결국 집단에 묻히고 말아요.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랑 똑같은 것 같아요. 저는 그래도 청년 시절에 다녔던 터라(말하자면 구성원으로서 별로 잃을 게 없어서) 담임 목사한테 대놓고 따지기도 하고, 청년부 목사한테 의문을 표하기도 하고, 교회 모임 내에서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순간적으로는 아 그렇네 하고 공감하던 사람들이 결국은 달라지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만 두고 나왔죠.
그렇게 교회가 썩어가는거죠. 자정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봉쇄까진 아닐지몰라도 권위가 심하구요. 돈을 내는 쪽이 아니라 돈을 받는 쪽이 권위가 있다는건 이상한 일이죠.
권위는 꼭 돈을 받는 쪽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전 장로교 교단이라 그런 특성이 더 강할 수도 있는데, 개인이 개척한 큰 교회가 아니면 목사보다 입김 더 센 게 오래 다닌 장로 권사 집안과 집단의 세력이죠. 그냥 한국 사회 특유의 어디서 어른한테! 이런 느낌에 더 가까워요.
더 많이 내고 나이든 쪽에 있는거군요. 어느쪽이든 교회라고 할수는 없는 모습이죠. 원하지 않아서 끌려나온 일반 평신도는 돈내고 시간쓰고 봉사하고, 변태처럼 시간을 쓰죠.
독재와는 약간 다르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경우가 훨씬 많거든요.
잘은 몰라도 박정희 시절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람 꽤 많았을것 같아요. 그러니까 노인층에서 박근혜 지지율이 높은거죠.
딴지는 전혀 아니구요. 통일되면 아마 기독교 신자가 폭증할 것 같아요. 비슷한 시스템에 안락함을 얻을테니 ㅎㅎ
독재와 조금 다르다고 한 이유는 마음에 안드는 사람은 떠나버리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점점 줄고 있죠.
열광적인 팬덤과 비슷한거 같아요.
이건 좀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
오래 전에, 한 십여 년 전에 부모님이 다니시던 교회와 척을 진 뒤 혼자 나와 살 적에 동네에 있던 어느 교회에 홀로 갔어요. 예배를 드리고 걸어나오는데 처음 오셨냐고 묻더군요. 그렇다고 했더니 새신자 카드 이런 걸 쓰라고 하길래 썼죠. 거기에 전도자 이름을 쓰는 칸이 있어요. 저는 제 발로 알아서 갔기 때문에 당연히 빈 칸으로 냈어요. 그랬더니 매우 집요하게 묻더라고요. 왜,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아무 생각없이 집에서 가까워서 왔다, 고 했더니 안 믿는 눈치더군요. 그 뒤로 아침저녁 전화를 해대며 이모임저모임에 나오라는 집중고문이 계속되었고 주일 예배를 제외한 어느 모임에도 나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 주일 예배 때마다 다들 피하는 눈치더라고요. 굉장히 큰 교회여서 조용히 혼자 다니기에 좋을 것 같다는 건 제 오산이었던 거예요. 나중에 어머니께 그 이야기를 드리니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교회에 오면 싫어한다"고 하시더군요. 이름, 주소, 연락처, 직업을 다 적어 냈는데도 누군지 모르는 건 말이 안되잖아요, 하고 여쭈었더니 그래도 보증인 (전도자) 없이 덜컥 오는 사람은, 게다가 아무 모임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싫어한다고 하네요. 그 때 알았어요. 교회는 익명인을, 드러나지 않는 사람을 싫어한다; 무엇이 될 수도, 무엇이 될 지도 모르는 사람을 싫어한다;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 뒤로 교회에 잘 가지 않게 되었어요. 모태신앙임에도 제게 맞는 교회를 당대에 찾는 게 힘들더군요. 나중에 민중신학-해방신학에 근거한 교회를 찾아 다시 방문했지만 역시나 정상가족이데올로기에 휘둘리는지라 그 뒤로 교회엔 가지 않았어요.
전 교회에서 떠난지 오래됐는데 심심하고 외로워서 한번 나가본적이 있습니다. 청년부 예배에 나갔는데 새신자라서 전화번호를 적고 집에 왔는데 다음주에 연락이 안오더라구요. 교회가 대충 어떻게 새신자를 대하는지 알기 때문에 저를 전혀 반기지 않는다는걸 알았죠. 이건 외부인이 왔을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는 반대되는 경험이겠네요.
어머니도 교회에 가고 싶어서 이곳저곳 찾아간적이 있는데 그냥 혼자 아무 연고없이 찾아간 사람은 반기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교회에 불만없이 섞이고 순종할 사람을 원하는데, 전도자 없이 오는 사람은 불안하겠죠. 주일 예배만 나오려는 싫어하는 것도 그렇네요. 어머니가 주일예배에 봉사에 수요예배 금요철야, 새벽기도 전부 가셨었는데 교회는 그런 사람을 반깁니다.
결국 자유로운 의견 제시랑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교회의 가르침, 방향에 대해서 예스(아멘)이라고 할 사람만 찾는거죠. 정의롭고 올바른 것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종교가 동의기계만을 원하는건 문제가 있습니다.
현대의 교회는 이단에 대한 신경증을 가지게 되서 그럴꺼에요. 거의 냉전시대 스파이 뺨치는 불화를 요원처럼 침투해서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넌더리가 나 있는 상태니까요. 조용히 신앙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든게 정상가족주의일지도 모르지만 집요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게다가 오래 교회 생활한 사람들은 한두번은 겪은) 이단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종교내 변절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흔을 남기거든요. 어찌되었든 이래저래 안타깝군요. 이런 변명을 떠나서도 슬로우 스타터에게 자비없음은 현 개신교의 공통점이기도 하군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지내던 중 오래전부터 알고 지인에게 고민을 얘기했더니 '내가 복음이다"라는 팟캐스트를 추천해주더라구요. 저도 이제 1화까지 들어서 추천을 해줘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현재까지로는 매우 만족스럽네요. 교회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얘기지만 교인이라면 뱉고 싶었던 얘기들을 들을 수 있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