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푸드 박스'의 위대함

우연히 '좋은 음식 박스'라는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2주에 한번씩 야채, 과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조합같은 거더라고요. 


저희 주에만 250개의 픽업 포인트가 있어서 

정해진 요일에 집 근처 픽업 포인트에 가방 매고 가서 음식을 받아오는 구조였어요. 

여튼 이번 주 처음으로 픽업 데이에 가서 박스를 받아왔는데.. 


감자 3개, 무우 2개, 파 2단, 로메인 1뿌리, 아스파라거스 1단, 당근 4개 

오렌지 3개, 바나나 1송이, 배 4개, 토마토 4개.. 가  

--> 단돈 10불 이라니! 이 정도면 아이랑 둘이 2주간 충분히 먹겠어요.   


게다가 다들 싱싱하고 이쁘게 생겼고 중요한 건 90%가 지역 농산물이예요. 

마트에 가도 죄다 미국산, 멕시코산, 심지어 여기서도 중국산.. 

이 정도를 사려면 최소한 20불 이상 줘야하는데  

싸도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미안할 지경이었어요.. 


캐나다가 워낙 춥고 땅이 척박해서 농사를 못 지으니 

걍 미국산 멕시코산 수입해 먹는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서도 


그래도 지역 농부들이 있기는 있고 

지역 생산자 조합과 연대를 해서 장기 계약을 맺고 저렴하게 음식을 공급하는 모양이에요. 

캐나다가 협동조합 선진국이라더니 이런건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도 협동조합이 꽤 생기고 있는 모양인데 이렇게 소소하게 시민들이 조합의 혜택을 누려봐야 

다른 조합에도 가입하고 또 만들기도 하고 할텐데 말이죠. 


참, 전에 제가 사스카츄완이라는 지역에서 온 친구랑 얘기를 나눴는데 

사스카츄완이 협동조합(co-op)이 유명해서 "거긴 코업이 잘 돼 있다며?" 물은 적이 있었어요.. 

제가 있는 주에서도 주택조합이라는 게 있어서 거기 가입하면 저렴하게 렌트할 수 있어 좋은데 

전 영주권자가 아니라서 가입 자격이 안된다고 툴툴했더니  

그 친구 하는 말, "그럼 니가 비 영주권자들의 코업을 하나 만들어" 

헉. 놀랐죠. "그렇구나. 생각도 못했네. 좋은 아이디어야" 


하여간 이 푸드 박스는 딱 하나, 구성 품목을 고를 수 없고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는게 단점인데.. 

그래도 보편적인 아이템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행히 제가 장보던 물품들이랑 별로 차이가 없었어요. 

가끔 새로운 게 나오면 뭐 이건 뭔가 하고 공부삼아 먹어보면 될 것 같고요..

워낙 그냥 장 볼 때도 세일 품목만 사는지라 주는대로 먹는데 좀 익숙해졌달까요  


게다가 우리 동네 픽업 포인트는 작은 단체의 사무실인데

거기서 동네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고 

주말에는 가족들을 위한 액티비티도 열고 있었어요. 

스탭이 막 주말에 놀러 오라고.. 하는데 역시 불어로 진행되는지라 망설이는 소심한 저..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자 가족들, 동거인들 같이 장바구니 하나씩 매고 

픽업 포인트에 모여서 야채 과일도 담아 가고, 오래 만나온 스탭들이랑 소소히 수다도 떨고 하는게 

이곳은 대도시여도 지역 커뮤니티가 살아있구나 싶어서 꽤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2주에 이 정도의 야채 과일을 받고보니 별로 장 볼 것도 없어서

식비도 상당히 절약될 듯 해요. 


한국에도 이런게 있으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해 봤는데. 

일단 매주 목요일 4-7시 사이에 픽업하세요, 하면 야근이라 못 가요 배달해 주세요.. 가 되겠고 

그럼 당연히 비용 올라가면서 비싸지겠고.. 그럼 별 메리트가 없어지겠고.. 

역시 야근이라 외식해서 다 못 먹어요.. 가 되겠고.. 힘들지 않을까.. 휴우. 


구성이 궁금하신 분을 위해 링크를.. 

http://bonneboitebonnebouffe.org/en/boxes/


      • Bonjour! Comment allez-vous? :) 

    • 한국도 꾸러미들이 여러 종류 있죠.
      • 차이라떼님이 말한 것 같은 꾸러미도 있나요. 직장동료가 무슨 꾸러미를 받는 건 봤는데 티백 쿠키 머그컵 향초 뭐 그런 거라서 실생활에 유용해 보이진 않았어서요.

        위와 같은 꾸러미라면 좋을 거 같은데요.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092121525&code=920401


          지리산 꾸러미, 언니네 텃밭, 산들.. 제철 생산된 농산물로 그때그때 구성해 집까지 택배로 부쳐주죠.



          • 오, 언니네텃밭이 꾸러미 였네요. 지하철 광고판에서 보고 이름이 예뻐서 알아봐야지 했었는데. 


            한국에도 꾸러미가 많았는데 제가 무식했네요 ㅎ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요새 북미에선 로컬 친환경 푸드 운동이 점점 확대되는 것 같군요. 파머즈 마켓도 확대되는 추세고 제철 과일 채소를 회원 등급에 맞춰 매주 배달하는 지역 농민들의 조합이 여러 지역에서 상당히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들었어요.
      • 그렇군요.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가족 수가 적은지라 마트에서 장보기가 꺼려지는게 대부분 대량 포장인데 무거워서 사기도 힘들고 사놔도 워낙 먹는 양이 적으니 몇 주 지나면 상하고 시들해진 야채 과일을 먹어야 되고.. 이런게 싫어서 품목별로 적은양을 세트로 팔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그런데 딱 제가 원하던 구성인데다 품질도 좋고 가격도 너무 싸니까 행복해요. 일단 이런 식으로 판매해서 줄일 수 있는 유통 마진과 중간 포장 비용도 좋고, 줄어드는 포장재만 따져봐도 환경을 어마어마하게 덜 더럽힐 것 같아요.. 

    • 열심히 사시면서도 삶의 조그만 반짝거림들을 놓치지않으시는것 같아서 참 좋아요. 그건 그렇고, 글쓰시는 일하시나봐요. 님처럼 매끄럽고 잘읽히는 글을 쓰기가 사실 쉽지않죠. 전 외국에서 반평생을 넘게 살다보니 글쓰기가 점점 힘드네요.

      • 앗, 혹시 제멋대로 함선이신가요? ㅎ '삶의 조그만 반짝거림을 놓치지 않으려' -> 정확하세요. 그것들을 잡으려 살고, 그게 행복이라고 믿고, 그래서 심지어 지금도 행복하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해요. 저도 고작 6개월 나와있는데도 한글을 접하는 양이 적다보니 (오직 듀게 뿐?) 확실히 글쓰기가 예전보다 뻑뻑해지는 것을 느껴요. (그래서 일부러 더 글을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러나 벌써 홈시크가 시작되려 하는데 반평생 나와 사셨다니 존경합니다.. 글쓰기로 조금은 먹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러하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이지만 뭐 앞일은 알 수 없으니.. 

    • 선진국들은 점점 더 선진세상이 되는 군요.

      • 개도국->선진국 문턱에 있던 사우쓰 코리아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ㅜ 

    • 물론 한국에도 있지만 가격대비 성능비는 차이라떼님이 사시는 곳(캐나다라고 하셨나요?)을 따라갈 수 없겠는데요?



      저도 몇번을 꾸러미를 구매할까 망설이다 포기했었거든요.

      • 가격은 '비영리' 단체의 '대량' 구매가 핵심이겠죠? 굿 푸도 박스도 불과 십몇년 사이에 250 픽업 포인트, 몇만 박스 판매의 규모로 성장했으니, 언니네 텃밭이라고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니면 차라리 한살림에서 푸드 박스를 운영하면 가능성이 있을지도요?

    • 저도 언니네 꾸러미를 보름에 한번 받는데 알차고 좋습니다. 주로 우리 먹거리라 식단에 건강한 한식 비중이 늘어나는 것도 재미고 받은 걸 무사히 잘 먹어치울 때의 뿌듯함도 아주 좋아요. 다만 가끔 만든 밑반찬 같은 걸 보내주는데 그건 입맛에 안 맞을 때도 있어요. 김치도 젓갈 없이 깔끔하고 슴슴한 타입이라 젓갈 세가지는 넣는 저희집 입맛이랑은 좀 다르고
      • '무사히 잘 먹어치울 때의 뿌듯함' -> 저도 이게 제일 걱정이에요. 제 때 잘 먹어줘야 할텐데.. 그래서 냉장고 정리도 새로 했다죠. 한식이 정말 제일 건강한 것 같아요. 여기 아이들 학교 급식이 없어서 아침엔 씨리얼, 점심엔 샌드위치 먹는데.. 한국 학교의 (우리가 싸운) 무상급식이 정말, 무지하게 그립고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 그래도 애들은 잘 크지만요) 식당 가봐도 영양식이라고 핫도그, 마카로니치즈에 주스, 머핀 이런 것 내놓을 때 할 말을 잃어요.. 제철 채소로 끓인 국, 김치, 나물, 생선구이로 꾸민 한국식 식단이 얼마나 건강하고 맛있는지.. 특히 나물이랑 젓갈이 너무 먹고 싶어서 ㅜㅠ (슴슴한 그 젓갈 제가 먹고 싶네요 ㅎ ) 

      • 이뻐요 이뻐요! 마음에 꼭 들어요 :) 사진도 올리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라서.. 

    • 아주 좋은데요! (소나타는바흐입니다)

      • 닉 바꾸셨네요. 새 닉도 멋져요. 바흐님 덕분에 바흐의 소나타를 찾아 들어보았는데 역시.. 너무 좋았습니다 :)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7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1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9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8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7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3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