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불안불안했는데 재밌게 보고 왔습니다(스포 주의)

처음에 극장에서 노아 홍보 전단을 보고는 눈을 의심했어요. 응? 노아? 노아의 방주 그 노아? 이러면서요.

그러고 며칠 후에 현지에서 기독교인들 대상으로 시사회를 했는데 반응이 안 좋았다길래 살짝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대런 아르노프스키의 천년을 흐르는 사랑이 제 생애 거의 최고의 망작이었기에 막상 보려니 또 불안했고요.

제니퍼 코넬리랑 엠마 왓슨 얼굴만 봐도 본전은 하겠지- 하다가 아 맞다 내가 휴 잭맨 얼굴 보러 갔다가 망했지 이랬다가

여튼 꽤 망설이던 차에 얼떨결에 약속을 잡고 결국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이거 꽤 재밌는 데다 의외로 상당 부분 제 취향이기까지 한 겁니다.

일단 전 동물을 무척 좋아해서 어렸을 때 디즈니 만화를 볼 때도 동물이 주인공이면 재밌는 만화(라이온 킹, 101마리 강아지 등),

인간이 주인공이면 별로인 영화(피터팬, 백설공주 등) 이렇게 구분했는데 그 버릇이 아직 남아있더군요.

새들이 방주로 날아오는 장면을 보는 순간 실소가 나옴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호감을 느껴버렸습니다.

동물들 재우는 장면에선 소리내서 웃어버리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린 거죠.


그리고 동물 사랑의 연장선인지 저기 어디 뇌구석에선 노아의 인류 멸종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있는 겁니다.

노아를 광신도로 묘사한단 평에 잉 난 광신도 주인공 꼴보기 싫은데... 이랬는데 영화를 보니 제일 마음이 가는 인물이 노아였습니다.

사실 평소에 '이 지구를 위해서 모든 인간이 죽어야 한다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 따위의 또라이 같은 상상도 곧잘 하고

인간이라는 종이 이렇게 엄청난 죄를 지으면서 굳이 존재해야 하나 이런 식의 인간혐오도 심한 편이거든요.

(중학생 때부터 애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당시 이유가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으니까-였습니다)

그렇다고 막상 저한테 인류 멸종 버튼이 주어진다 해도 그걸 누를 정도로 모질지는 못할 거고요.


그래서 본바탕은 그게 사람이든 짐승이든 남의 목숨을 소중히 생각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인류 멸종 프로젝트를 위해 방주 밖의 아우성에 귀 닫을 수밖에 없는 노아의 참담한 심정도, 

무방비 상태의 갓난 혈육에게 칼을 대지만 차마 찌르지는 못하는 내면의 갈등도,

결국엔 자신의 선택이 무의미한 죽음만을 불러왔을 뿐이란 자괴감에 알콜 중독자가 돼버린 말년(?)의 노아에게도

황당할 정도로 감정이입을 하다 왔습니다. 그러면서 아 내가 어지간히 미쳤구나 싶기도 했고요.


대체로 마음에 드는 영화였는데 씨지는 허접했습니다.

동물들이 제가 십년도 더 전에 하고 놀던 게임 주타이쿤의 그래픽을 연상시킬 정도였어요.




    • 헐리우드의 미친 씨지가 설마요....



      침엽수님도 참 독특하신 분 같네요. 저도 뭐 중딩 때부터 좀 위악적이긴 했는데.. 지금은 좀 부끄럽기도 하고...



      글 잘 읽었어요. 영화에 대한 호기심은 좀 생겼네요. 전혀 없었거덩요~

      • 씨지는 정말 군데군데 거슬렸어요... 화면과 인물이 떠 보이는 대목도 있었고.;

      • 제가 초등학교 6학년쯤에 매트릭스를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일 와닿았던 부분이 모피어스 잡아다놓고 하는 스미스 요원의 일장연설(인간은 바이러스야, 다른 생물들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데 인간은 초토화? 시키고 어쩌고 저쩌고)이었으니 말 다했죠 뭐.

        지금도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게 다행이에요. 아니면 영겁의 세월 동안 지옥불에 타는 게 겁나서 죽지도 못할 듯요.

    • 저는 씨지는 안 거슬렸는데, 방주안에서 복수를 계획하는 레이 윈스톤의 수개월이 궁금하더군요.




      함의 심경변화도 너무 설렁설렁.... 감독판이 나오면 좋겠죠.

      • 전 보면서 함이 저렇게 내놓은 자식이었나 몇달 동안 애가 방주에서 뭐하고 돌아다니는지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니ㅠ 했어요.
    • 저랑 비슷한 느낌으로 영화를 보셨군요. 



      노아를 정신나간 사람으로 많이들 보는데 그건 인간중심적 사고의 반영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반응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구에는 인간만 사는게 아니죠. 지구생태계라는 관점에서 보면 노아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관련글을 다른 사이트에 올려놓았는데 참고하세요. 


       http://dvdprime.donga.com/bbs/view.asp?major=MD&minor=D1&master_id=22&bbsfword_id=&master_sel=&fword_sel=&SortMethod=&SearchCondition=&SearchConditionTxt=&bbslist_id=2439885&page=2

      •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개는 개처럼 생각하고 인간은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정상이고 노아가 미친놈 소리 듣는 게 마땅하다고 봐요. 노아한테 감정이입하는 제가 좀 뒤틀렸다고 느끼고요. 링크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훨씬 더 풍요롭게 영화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 저도 비슷하게 노아에게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서; 레이 윈스턴의 끈질긴 생존욕구도 이해는 갔는데 몸보신 하느라 잡아먹은 동물들은 씨가 마르게 되었는지 걱정 되었어요.

      • 저도요. 함이 고기 받을 땐 먹지마 이 놈아!ㅠㅠㅠ 이런 심정이었고, 노아의 가부장적이고 독단적인 면도 거부감이 들었지만 인간이 최고임 하는 레이 윈스턴의 오만함이 훨씬 더 싫어서 둘이 싸울 땐 진심으로 노아를 응원하기까지 했습니다.;;

    • 산딸기! 산딸기의 행방을 마무리해준 덕에 안도하고 영화를 끝까지 보았습니다.
      • 근데 그 산딸기가 제가 생각한 산딸기(알알이 분해가 되고 표면에 씨가 있는 거요)랑 달리 동그랗고 매끈한 열매라서 좀 당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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