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레슨 중에 들은 말, 그리고 싱가폴
어릴 때 쳐보고, 진짜 오랜만에 피아노 레슨을 받을 결심을 했습니다. 레슨비가 비싸더라구요. 솔직히 상황 봐서 깎아들래야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첫 레슨받고 오히려 선생님이 더 청구하지 않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름 1주일동안 토요일 하루 빼고 1시간씩 연습했는데, 어제는 너무 창피한 나머지 무감각해지더라구요. 어릴 때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나쁜 습관들이 당연히 그대로 있는데, 꼼꼼하신 분이라 그런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짚고 넘어가시더군요. 그래도 원래 치고 싶었던 베토벤 소나타 대신 모짜르트를 쳐 보자고 하니 할 수 없단 마음이 들면서도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진짜 치고 싶었던 건 월광이었는데, 그걸 말했으면 더 창피했을 거야 하고 생각하며 말이죠.
근데, 소나타를 연습해 온 부분까지 긴장하며 쳤더니 돌연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클래식 좋아하세요?"
"(?)예"
"그 중에서 피아노 음악 좋아하시나봐요?"
"(?) 예....왜요?"
"아, 치는 걸 들었더니 아주 정직하고 반듯하신 분인 것 같아요."
"???"
지금까지 궁금해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저런 것까지 알 수 있는 걸까요? 참고로 소나타를 치기 전에 이미 하농과 모짜르트 변주곡으로 엄청 지적을 받은 끝이라 안 좋은 의미인지, 좋은 의미인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러더니
"드라마 '밀회' 아세요?"
"예? 알긴 아는데..."
"그거 좀 보세요."
"예?"
"피아노 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드라마를 다 못 보시겠거든 피아노 치는 장면만 끊어 보세요."
"제가 드라마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밀회에 음악적으로 자극을 줄 만한 피아노 연주가 들어있나요? 어제 레슨은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저 두 대화는 도대체가 미스테리입니다. 아직 드라마를 보진 않았어요.
참고로 전공자에게 레슨을 받으니 다르긴 다르더군요. 어릴 땐 책 여러 권을 가지고 진도 나가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이렇게 꼼꼼하게 레슨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임신 중에 잠시 슈베르트 즉흥곡 등을 배웠을 때도 어차피 오래 하지 않을 게 뻔하니 이렇게까지 세세한 레슨은 당연히 없었어요.
이야기가 튈 지는 몰라도 전공자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은 후 영어도 전공자에게 배워야겠다 싶더군요.
홍콩에서 싱가폴로 1월부터 이주해 왔는데요, 조기 유학 장소로까지 거론되는 곳 치고는 생각보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게 많더라구요. 로컬은 너무 경쟁이 심하고, 국제 학교는 이름난 명문 3군데 정도를 제외하곤 자유로움 그 자체입니다. 7학년인 아들 영어 과외 선생을 구하려고 업체에 문의했더니 독일인을 소개해 줬어요. 독일인한테 영어라... 너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더라구요. 게다가 그냥 독일인이 아니라, 전직 스킨 스쿠버 강사, 돌고래 조련사, 파트 타임 배우, 도로 수리공...그런데 테솔 자격증이 있어요. 소개한 시간까지 쳐서 2번 만나봤는데, 아들이야 당연히 선생님이 느슨하게 나오니 좋아하지만, '선생님'을 찾는 저로서는 아무래도 안 되겠단 생각밖엔 안 들더라구요. 그래서 영어권 사람으로 자격증 있는 선생, 그것도 글쓰기를 가르쳐 줄 선생을 보내 달라 했더니 업체가 연락이 없어요. 이해가 안 되요. 다들 싱가폴이 홍콩보다 교육 수준이 높다 하는데, 홍콩에선 당연하게 영어권 사람한테 교육을 받았거든요. 이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어요.
공부 환경 빼고도 싱가폴은 여러모로 기대와는 다르더군요. 생각보다 질서 의식도 약하고, 쓰레기도 많이 버리고, 그리고 물가도 엄청나게 비쌉니다. 홍콩 살다 온 저로서는 눈물만 날 뿐이고... 하지만 물건 종류도 많고, 여러모로 우리 나라랑 많이 비슷해요. 1년 내내 덥고 주변에 영어랑 중국어가 들린다는 게 틀릴까요? 이주한 후 2달 넘게 계속 가뭄에다 일들도 생각보다 안 풀려 좀 힘들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지난 주 일요일부터 비가 쏟아지네요. 기뻐요. 대신 엄청나게 습해졌어요. 끈저억 끈저억 합니다. 밤에 문 열면 날벌레들이 우수수 들어오구요. 가뭄 때는 바람이 많이 불어 하루에 두 번씩 바닥을 닦아야 했고, 밤에는 인도네시아인지, 말레이시아인지에서부터 날아오는 탄 냄새로 고생했는데 비 오고 난 후 그건 없지만 엄청난 습기가...
아직까진 여행하기 더 좋은 도시인 것 같아요. 저 같은 국수 매니아에겐 홍콩 국수들이 더욱 그립기도 하구요.
오늘은 제 생일이에요. 이 글을 쓰면 피아노를 연습하고, 빵 사냥을 하러 시내에 나갈 생각입니다. 이미 맛있는 케이크 집과 빵집을 봐 뒀거든요. 기뻐요. 나간 김에 아이쇼핑도 잔뜩 하고 오려구요.
다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싱가폴 이야기 가끔 전해드릴게요.
확실히 진짜 전문가한테 배우는 건 다르죠. 가르치는 방법이나 어떤 자세부터 전부 다.기타를 배웠는데 동네 학원에서 배우다가 홍대쪽에서 다시 배워봤는데 접근방법부터가 달랐어요. 피아노 독학중인데 돈만 있다면야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요. 그리고 피아노 소리를 듣고 정직한 사람이란 소리를 들었따는 건 정박으로 딱딱 맞춰서 치셔서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네요 :> +생일 축하드려요. 맛난 케이크 드세요.
그런데 그냥 호기심인데 피아노 칠때 나쁜 습관들이 뭔가요? 어깨에 힘들어가는 것?
손등 내려가는 거, 다리 접는(?) 거 등이 생각나네요
저도 싱가폴 거주중이에요! 반갑네요 ㅎㅎ 영어권 과외 선생님 소개시켜드릴까요? 학교다니기전에 저도 여기서 영어 공부를 반년간 했었거든요~ 참 그리고 생일축하드려요! 저도 빵 케이크 참 좋아하는데요. the fabulous baker boy 의 벨벳 케익을 먹으려 가보려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생일 축하해요~
저 옛날에 레슨 받을 때 선생님이 베토벤 스타카토에 대해 알려주셨죠.
그 때 이후로 피아노가 단순히 피아노가 아닌 피아노와 포르테를 가진 악기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전 요새 기타를 배우고 싶네요.
여행 갔을 때에는 홍콩보다 싱가폴이 물가 같은 게 더 싼 느낌이었는데 사는 입장에서는 또 다른가봐요.
모쪼록 금세 적응하셔서 싱가폴에서도 멋진 부분들 찾아내시고 싱가폴 이야기 자주 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연습 교재 해당 악보대로의 연주를 머리 속에서 인지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걸 들었을 때 몇 가지 방법으로 추측을 해볼 수 있죠.
템포라던가, 표현이라던가, 혹은 미스 터치가 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등등으로요.
물론 그냥 짐작일 뿐입니다. 성격과는 다를 가능성도 크죠.ㅎㅎ
음악에 문외한이어서 악기를 잘다루는 분들을 보면 대단해보여요.. 멋있기도 하고요..
생일 축하드려요~~~ 즐거운 빵사냥과 파티 하시길..
생일 축하드려요 ^ㅡ^
저 요즘 슈베르트 즉흥곡 연습중인데... 유툽에서 짐머만 연주를 감상하고 나서 연습하면 과연 이게 같은 곡인가 싶더라고요 -_-
저도 전공자분께 개인레슨 받고 싶어요. 현실은 동네학원 레슨이지만. 그래도 원장님이 넘 친절하게 봐주셔서 좋더라구요.
저도 싱가폴 근황 듣고 싶어요. 자주 글 부탁드리요 ^ㅡ^
생일 축하드립니다.
그나저마... 뭔가 제 꿈속의 인생이신듯... 부럽습니다. 따뜻한 열대 지방의 도시, 하루 한 시간씩 취미생활을 전문가를 고용해 할 수 있는 여유, 아이는 벌써 7학년, 게다가 아이의 교육도 뭔가 좀 넉넉하신 분위기. 아아아... 저는 워낙 추위를 많이 타서 그나마 열대에서 살기만 해도 일단 한결 좋을 것 같은데. 부럽습니다!
으아, 갑작스런 폭우에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들어왔더니 답글이 많네요! 와, 신난다.^^
생일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큼지막한 조각 케이크 여러 개 사 들고 와서 벌써 하나 해치웠네요. 가격은 사악하지만, 이런 날은 호기 한 번 부려봅니다.
- 열대 지방의 생활에 너무 환상 가지지 않으셔도 되요. 홍콩에서는 엄지 손가락만큼 크고 느릿느릿한 대왕 바퀴벌레랑 너무 잽싼 실버 피쉬 벌레랑 싸웠더니 여기선 매일 도마뱀이랑 전쟁입니다. 밤에 부엌에 갑자기 불 켜면 가스렌지 위나 식기통 뒤에서 얼음이 되어 있는 도마뱀이랑 눈싸움을 하고...급한대로 파리약이라도 뿌리면 저한테 점프를 하지 않나... 에휴~ 심장이 10번은 떨어졌던 것 같아요. 끈질긴 개미는 어떻구요. 또 곰팡이 때문에 언제나 걱정해야 하구요. 선선한 날씨가 그리워요. 그리고 애가 7학년이라 저도 사춘기 아이를 둔 엄마의 고충을 알아가고 있어요. 하루 한 시간 제 취미 생활은...실행하기까지 15년 걸렸죠. 결혼하고 처음이에요. 이번에도 큰 결심하구...모든 주부가 그렇듯, 가족한테는 큰 돈을 써도 자기에게는 천원 한 장도 10번 넘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 영어 선생님 추천해 주시겠어요? 이젠 아예 싱가폴에 있는 원어민들의 수준조차 의심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ㅎㅎ 오늘 마멀레이드 팬트리에서 케이크를 샀는데, 두툼하고 진하네요. 맛있어요.
- 홍콩이 집값이 비싸긴 하지만, 면세국이라 생활 물품들은 싱가폴보다 싼 것 같아요. 하지만 싱가폴이 깨끗하고, 공기도 좋고 여기저기 반짝거리는 물건도 많아서 여행할 때 구경하는 재미는 더 있는 것 같아요.
- 홍콩에 대해서 국수라면 아직도 얼마든지 안내해 드릴 수 있어요. 싱가폴은 아직 락사 말곤 딱히 잘 아는 게 없네요. 아, 얼마 전에 갔었던 집 앞 베트남 음식점은 좋더라구요. 메뉴가 한국하고도, 홍콩하고도 다른 것이 비싼 가격이라도 용서가 되더라구요. 싱가폴에서는 한국 이미지가 좋은 것 같아요. 한국 음식점도 많고, 한국 음식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어요. 시장에서 생선 살 때도 아저씨가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해 주기도 하구요.
다들 감사드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