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라는 강박
이 시간에 온갖 잡동사니를 끌어 내려서 정리중입니다.
후라이팬, 냄비도 하나씩 버리고 옷도 버릴 것, 필요한 곳에 보낼 것 나눠서 보니 안 입는 옷이 3박스예요.
먹지도 않는 식료품들을 사다놓기만 하는 것 같아서 부엌과 냉장고만 싹 비우려고 했는데 하다보니 이렇게 됐어요.
어렸을 땐 워낙 천하태평이라 그런지 물건이 쌓이면 그냥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젠 무섭네요.
유학 생활도 오래했고 이동이 잦은 일을 하다보니 이사가 익숙해졌어요. 이걸 다 지고 다른 곳으로 가는 일이 구체적으로 떠올라요.
혼자 옮길 수 있을 만큼의 짐을 남겨두는 게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는데... 전보다 많이 가져도 되니까 골치 아파요.
왜 이렇게 뭔가 사지 못해서 안달이 난 걸까, 거의 똑같은 디자인의 블레이저를 브랜드만 바꿔서 사들이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다른 여자들도 그렇겠거니 합리화 해봅니다.
이 짓을 다음주 주말에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드네요.
짐이 정말 무서워요. 집 안에서 자리 차지하고 있고 이사할 때도 힘들고
누가 무슨 선물을 준다고 해도 벌벌 떱니다. 집에 들어오면 자리를 정해줘야 하는데 싶어서.
저랑 똑같으세요. 미치겠어요.
옷욕심이 많은 편이라 옷장이 미어지는데 몇 년전부터 정리 들어갔어요. 짐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따로 있긴 했지만 옷은 옷 자체에 대한 집착이 좀 준 것 같습니다. 유행의 한 바퀴를 보고 나니까 덧없는 기분이 들어서요. 몇 년 전까지는 거저 줘도 안 입었을 옷을 예쁘다고 감탄하면서 사는 일이 반복되고 있죠.
원래 예정에 없던 물건 들어오는 건 화장품샘플도 사절입니다.
추억이 담긴 물건, 아직까지는 의미를 가지고 가끔 챙겨보는 물건들을 어느 시점에서 정리할지 그게 고민이긴 합니다. 어릴적 단짝친구가 준 인형은 지금도 가끔 보고 그때를 떠올리는데 내가 죽는 순간 그건 그냥 낡고 더러운 인형이 되겠죠. 아마 내가 노환으로 죽는다면 형제들 중 살아있는 이가 별로 없을 거고, 있어도 너무 늙어 있을 테니 조카들이 뒤처리를 할 텐데 짐을 줄여줘야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