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고양이들, 파리에서의 영화, 한국으로의 귀환


0. 여행을 한 16, 17일 정도 다녀왔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오고나니 아직 적응이 안 되네요. 아주 다양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모조리 적을 수만은 없는 일들도 많네요.


1. 터키


  우선적으로 터키를 갔었습니다. 터키에 갔다고 하니 영화친구가 톱카프 궁전의 다이아몬드를 보았느냐고 했어요.  네, 보았습니다. 이스탄불의 중심가는 저에게 을지로 3가, 종로 2가 지역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와 간간히 내리는 비 안에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길거리를 걸은 기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무언가가 달랐어요.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지만, 확실히 사는 지역과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큰 차이기도 했어요. 여행을 다니면서 유목 민족 특유의 외지인을 환대하는 습성 탓인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터키 사람들의 다른 인종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에서 비롯된 말 거는 풍습은 대한민국의 나이 드신 분들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또한 활발한 상인 정신으로 한국인만 보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를 외치는 그들의 열띤 정신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론 무지 흥미로웠어요. 아는 애가 터키 갔다가 청혼 받았다는데, 그런 일이 벌어질 게 가능할 것만도 같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볼 것이 아주 많은 곳이기도 했어요. 하기아 소피아의 장엄함이나 코라 교회, 톱카프 궁전, 그리고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는 볼 것들이 가득 넘치더군요. 유물이 어찌나 많은지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고고학 박물관 정원에 널려 있는 것들도 보고 왔습니다. 비단 이스탄불만이 아니라 이즈미르, 에페수스에서도 기독교와 이슬람교과 엉키고 섞여 그 잔해를 드러내는 터키의 문화적 장면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 볼 만한 것들이 상당히 많은 나라였어요. 한국에도 물론 볼 것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터키는 제가 다녀본 나라들 중에서도 어떤 독특함이라는 면에서는 뛰어나다고 느꼈습니다. 교묘하게 섞인 장면 장면들이 음식에서도 드러났어요. 달지만 우리의 한과를 닮은 과자들과 인도 음식 같지만 동시에 서양식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한 고기요리 등, 가끔 중국 음식과 비슷하다고 여긴 음식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솔직하게 인상적인 것은 고양이들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터키의 고양이들은 대한민국의 고양이들과는 종자가 다르다고 여겨질 정도로  사람에게 살가워요. 저는 개보다도 고양이가 이렇게 길거리에 평온하게 있는 장면을 본 것은 이 나라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고양이 천국이에요. 유적에 들어와도 내쫓지 않더군요. 하기아 소피아 안을 배회하던 검은 고양이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에페수스의 유적에서도 고양이들이 널려 있더군요. 거기 고양이가 적어도 몇십 마리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서는 고양이 집으로 보이던 것도 있었어요. 지나가는 터키 사람이 고양이 먹이를 챙겨주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고양이들 중 어느 한 마리도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더군요. 대한민국에 돌아오고 나서 확인한 고양이들은 인간을 보면 일단 도망치는 존재들인데 말이지요. 고양이를 예뻐하는 문화권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들짐승들에게 관대한 그들의 문화가 개인적으로는 부러웠습니다. 또한 든 생각이, 대한민국에서 고양이들은 사람 보면 도망치는 게 옳은 일이 맞을 거에요. 괴롭히고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말이지요. 

  터키 안을 많이 돌아다니고 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는 이스탄불의 분위기가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바다 위에 펼쳐진 끝도 없이 수많은 배들의 운행도 제겐 비행기를 타며 본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처럼 신비한 광경이었습니다. 이즈미르의 외딴 시골에서 본, 사진으로 잡아낼 수 없었던 까만 밤하늘의 수억 개의 별들처럼 말이죠. 여러 인상적인 장면들이 지금도 눈 앞에 선하네요. 서로 몸을 치고 지나갈 때마다 살짝 어깨를 짚으며 양해를 구하는 그들의 모습, 식당에서 앉아 있었던 강한 카리스마의 터키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한 아랍인, 고양이 머리를 만져보는 저를 쳐다보며 씩 웃어주던 청년까지. 언젠가는 다시 한 번 그곳에 갈 수 있겠지요?



2. 파리



  파리에 가서는 밤마다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아주 느린 인터넷 속도 때문에 복장이 터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프랑스 영화들 위주로 볼 것은 다 봤네요. 아, 중간에 본 보랏은 빼고 말이죠. 도시 이야기부터 하자면, 파리 역시 굉장한 도시였습니다. 예상한 것처럼 더러운 지하철과 길거리에 넘쳐나는 개똥, 너무나도 그리웠던 한국 음식 빼고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고층 건물이 없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느낄 수 있었던 매우 높은 건물들, 그리고 수많은 간판들 (...파리에서는 성형외과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과는 다른 어떤 인간미가 있었습니다. 일요일 날 파리라는 도시의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 카페에서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떠는 것이 보기 좋아 보였어요. 프랑스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말이 많은지, 제가 밥을 먹을 때마다 본 여러 청년 일행들은 정말 일 초라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말을 이어나가더군요. 불어를 알지 못해서 대체 무슨 말을 저렇게 꼬깃꼬깃 접어대는지 궁금해 죽을 정도였습니다. 불어를 꼭 공부해서 다시 프랑스를 찾아야겠어요.

  파리를 거의 9박 10일로 있었는데도 다 보지도 못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몽생미셸이나 파리 근교인 베르사유도 가려고 했었는데 죄다 실패했습니다. 오랑주리나 오르셰 미술관도 심지어 가지도 못했어요. 루브르 박물관은 네 시간 돌았습니다. 대형 미술관, 박물관을 마지막 이삼일날로 잡았더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에요. 그렇지만 그 외에 파리 명소들은 거의 둘러본 것 같기도 합니다. 의외로 저는 노트르담이 인상적이진 않았어요. 무엇이 인상적이었냐 하면 ... 여러 가지가 있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라탱 지구 전반이 다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셸 푸코가 일하거나 공부한 학교들도 쭉 돌아보았어요. 그쪽 지역이 학생들이 많아 그런지 무언가 활기가 더 차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시테 섬과 생 루이 섬이었나요, 그곳의 분위기도 상당히 근사했고요. 제가 몽마르트르 지역 근처에 호텔을 잡았었는데, 그 싸구려 호텔에서 북한 사람이 이곳에 머물고 있는데 남한 사람들과 말을 걸고 싶어한다. 연결해 줄까?! 라고 장난을 치는 관리인도 만났습니다. 알고 봤더니 장난이었어요. 분단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던지, 왜 북한에 남한 사람이 가지 못하는지를 물어서 짧은 영어로 political situation이라고 이야기하니 납득을 못하는 얼굴이었습니다. 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서 제 생각을 말해주었습니다.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또 그러고보니 호텔 근처의 빵집 아주머니가 제가 자주 찾아오는 걸 보고 좋아했는데, 지금도 맛잇는 오페라 케이크를 파시겠군요. 

  몽마르트르 지역의 에로티즘 박물관이 그러고보니 상당히 인상적이었네요. 깔깔거리며 죄다 쳐다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생판 모르는 남들과 옛날 초기 포르노를 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네요. 라 뒤레나 피에르 에르메 같이 알려진 양과자점들을 순회하며 맛있는 달코미들을 집어먹은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라탱 지구에 있었던 생 에티엔 뒤 몽 교회에서 들었던 오르간 연주도 환상적이었어요. 너무 웅장하고 아름다워서 잠시 몇 분 동안 앉아 감상까지 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정식 연주라기보다는 정식 연주를 위한 연습 연주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카타콤베에서 수많은 해골뼈들 사이에서 숨죽이고 있었던 것도 기억나네요. 

  무척이나 낭만적인 상황에서의, 낭만적인 시간들이 파리에서 보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아멜리에나, 마티유 카소비츠의 증오, 보랏도 얼결에,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도 보았네요. 오는 길에는 라비앙로즈도 보았어요. 아멜리에나 라비앙로즈의 경우 이전에 다 몇 번 봤던 영화였습니다. 다시 봐도 수작들이에요. 증오는 개인적으로 좀 놀랐었습니다. 뱅상 카셀의 무척이나 어린 시절 얼굴도 그렇고, 마지막 결말도 그렇고, 짠하게 슬프면서 묘하게 사실적인 영상이었습니다. 갈 곳 없는 어설픈 증오들이 돌고 도는 그 순환을 잘 그려낸 영화였어요. 아쉬운 게 마티유 카소비츠가 그 뒤로 인상적인 영화가 뭐 있었는지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네요. 얼결에 본 보랏은 파일 이상으로 앞의 20분을 놓쳤지만 둘 다 홀딱 벗고 성적인 체위와 비슷한 자세로 서로에게 사이 좋게 엿을 멕이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흑인 청년들한테 보랏이 마이클 잭슨 닮았다고 하니까 다들 은근히 부끄러워 하며 좋아하는 장면도 재미있었어요. 장 피에르 주네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는 전반부는 참 좋았는데 개인적으로는 후반부가 별로였습니다. 론 펄먼과 어린 여자아이가 약간 레옹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성적이라는 느낌도 묘하게 들었고요. 제가 보는 시각에 그냥 좀 문제 있는 걸 수도 있으려나요. 불어만 되었으면 영화도 보았을 텐데 말이지요. 

  아 맙소사, 깜빡하고 급하게 수정해서 글을 덧넣을 게 있군요. 몽파르나스 묘지의 마르그리트 뒤라스 묘에서 아주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한 청년이 그녀의 묘에 있는 잔가지들을 정성스럽게 정리하고 있더군요. 그녀에 대한 존경심과 존중감이 그 청년의 몸 행동 하나하나에서 스며나왔습니다. 멀찍이서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네요. 감히 찍을 수도 없는 그런 장면이었습니다. 

 


3. 한국, 서울


  어쨌든 묘하게 한국에 다시 왔습니다. 서울에 와서 긴 고층 빌딩들과 파리의 좁은 인도와는 다른 넓은 인도를 종횡무진하며 마카롱 괴물이 되어 친구와 친지들에게 마카롱 선물을 뿌려댔습니다. 이젠 거진 다 털었네요. 파리의 지하철보다는 백 배 좋은 서울의 지하철을 탔지만 무언가 적응되지 않는 느낌에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과외를 하고 나오니 그제야 내가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지금 보시다시피 시차적응이 안 되어서 이 시간에 이 글을 썼습니다. 사실, 시차적응이랑 상관없이 저는 올빼미 족이긴 했어요. 세상은 넓고 저 자신은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무언가 진짜 대단했던 것들이 작아보이고 그래요. 여행의 효과려나요. 하지만 이것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임시적인 증상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저는 불안불안하고 위태로운 마음이 드네요. 외지에서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막상 고향에서는 타지가 그립네요.

  집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고양이는 타자를 치는 제 팔 안 사이에 꼭 들어와 있습니다. 뽀뽀해주려고 하니 딱 피하네요. 절묘한 것 같으니.

    • 말을 꼬깃꼬깃 접는다는 표현 재미있네요. 여행 다녀온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 종자가 다르다기보다 고양이도 사회화가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 아, 저도 터키에 가고 싶어지네요!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들과 고양이들이라니^^

    • 저도 여권에 마구 쾅쾅쾅쾅 하고싶지만...

      귀국을 환영해요~
    •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고양이를 그렇게 좋아했대요. 그리고 그 동네 미신이 고양이가 불운을 내쫓는다나? 좋은 소식 물고 온다는 까치 전설과 비슷한 맥락이라 더욱 좋아하는 듯 해요. 



    • 이 글 속에 나오는 터키가 참 매력적이네요. 평소엔 파리가 더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 터키가서 바클라바 먹어보고 싶어요. 누네띠네 같을까요?

    • 여름휴가용 터키행 비행기를 끊었기 때문에 이 글이 더 기분좋게 읽히네요. 나 고양이 짱 좋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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