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게가 없는 동안



저는


케빈 데빈의 노랫말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슬픔에 잠겨 잔디밭에 앉은 네 머리 위로
하늘은 물빛 핏물에 젖어가고 있었어

너의 슬픔이 너무나 명료하고 확고했기에

난 곁에 앉아 슬픔을 나눌 뿐이었어

넌 눈이 부신 듯 팔을 들어올렸고
난 슬그머니 자릴 옮겨 햇빛을 가렸어
넌 두 다리를 끌어당기며 헛기침을 했고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기다렸지만
어떤 말도 혀끝을 넘어오지 못하고
너의 가슴 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을 뿐이었어
그렇게 우린 미동도 없는 침묵 속에 앉아
우리가 저지른 일들을 되뇌었어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우리가 망쳐버린 사람들을...
너의 얼굴 위로 스쳐지나는 세월들을 바라보며
난 폐 속에 분노가 차오르는 걸 느꼈어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따끔거렸어
척추를 타고 고통이 몰려왔어
마치 수십억의 벌떼를 삼킨 듯이
못으로 칠판을 긁어대는 듯이
그때 너의 손가락이 가만히 내 손끝에 닿았어
숨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어
난 너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그 흔들리는 눈동자에 눈을 맞췄어
난 너의 입술을 핥고 너의 목덜미를 물었어
나무들이 깊숙이 뿌리를 떨었어
나의 성난 두 팔은 점차 잦아들었고
나의 입은 솜털처럼 너로 젖었어
그렇게 잔디 속에 빛나는 두 몸 위로
해와 달이 서로 자리를 바꾸고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서로 자리를 바꾸는 동안
우린 오직
현재 시제 속에 머물러 있었어






리앤 라 하바스의 비음 섞인 바이브레이션이 감미롭다 생각했으며




때로는

그대는 조그

난 그대의 베티 블루

우린 몸을 맞대고 노래를 부르죠

마치 '벨빌 랑데부' 속 여인들처럼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가 프레임을 정지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건 실버 스크린 속 이야기가 아니죠

여기엔 일시 정지도, 되감기도 없어요


그러니 우리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한 번 보자고요

닫힌 커튼 앞에 엉덩이를 맞대고

이제 우리라는 영화를 지켜보는 거예요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면 정해진 자리에서

당신은 남자 주인공이, 난 여자 주인공이 되죠

이제부터 우리라는 영화가 시작되는 거예요


우린 홀로 브루클린 브릿지에 서있는 소녀의 씬에 와있어요

그녀는 틀림없이 집으로 향하고 있고

발걸음엔 다시 생기가 도는 참이죠

도시의 불빛은 오직 그녀만을 비추고

그녀의 눈동자는, 심장은 정체모를 갈증으로 채워져요

그녀는 돌아볼까 하다가, 

돌아서려다가,

돌아서지 않습니다


이건 일시 정지도, 되감기도 없는 이야기

일시 정지도

되감기도 할 수 없어요


그저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지켜볼 수 밖에 없죠

닫힌 커튼 앞에 나란히 앉은

우리 자신의 영화가 시작되는 거예요


카메라가 돌면 우린 정해진 역할에 따라

한 남자의, 한 여자의 인생을 시연하죠

우릴 봐요, 이건 우리라는 영화예요





겨울 노래로는 거대한 분홍색 담요를 많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모든 사람과

당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커다란 분홍색 담요에 한꺼번에 싸서

그 위에 '사랑한다'고 적어놓읍시다.


당신을 아끼는 모든 사람과

당신이 아끼는 사람들 모두를

거대한 핑크색 담요로 둘둘 말아서

어딜 가든 이고 다닙시다.


내 비록 아는 건 많지 않지만

당신이 그들을 놓쳐선 안 된다는 건 알아요.

그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당신 곁에 있으면 내 위로도 해가 뜨는데요.


당신이 친구라 여기는 모든 사람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를

거대한 분홍색 담요에 꽁꽁 싸서

'사랑한다'고 크게 써붙입시다.






듀게가 열린지 오래지만

늦은밤, 늦은 인사를 보냅니다.

안녕들 하셨습니까.

오랫만에, 그냥 같이 듣자는 포스팅입니다.




billion bees / kevin devine

au cinema / lianne la havas

big pink blanket / hundred little reasons

translated by lonegunman

    • 낭만적이네요. 듀게가 열려서 좋아요~

    • 음악 잘 들었습니다. 가사, 번역도 좋네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음악 감사합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볼륨을 낮게 틀어놓으니 참 좋네요.

    • 론건맨님이 어떤 노래 듣고계실지 궁금했어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4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6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1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1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7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0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3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8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7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3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