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없으면 사고할 수 없을까요?

인간의 사고나 인공지능 같은 걸 다룬 글을 읽을 때,

언어가 없으면 인간은 사고할 수 없다는 걸 당연한 전제로 깔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언어가 인간 사고에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는 것은 물론 사실일 거고, 

복잡한 계산을 암산으로만 하기 벅차듯이, 언어가 계산기와 같은 편의도구 역할을 해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게 인간이 언어가 없으면 사고할 수 없다고 보는 걸 증명하는 건가요?


일단 언어와 사고에 대해서 언어는 광의로, 사고는 협의로 정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언어 : 일상언어 뿐만 아니라 수화든 뭐든 인간이 의미를 기호안에 집어 넣어 다른 인간과 소통할 수 있게 만든 모든 것.


사고 : 일단 '배고프다', '춥다', 이런 기초적인 감정은 사고로 안 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배고픔을 해결하려면 저 냉장고를 열면 되겠구나', '추운 걸 해결하기 위해 불을 켜야겠다' 이런 것 까지도 사고로 포함하지 않는다고 합시다. 왜 이런고 하니 무리에서 떨어진 침팬지도 그 정도 활용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되세요. 동물은 사고할 수 없고 인간은 사고 가능하다 할 때 그 사고는 이것보다 더 복잡한 두뇌작용일 거에요. 


이를테면,

1. "나는 왜 사는걸까?"

    특정 문제해결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런 생각을 언어 없이 할 수 있을까요? 날 때부터 혼자사는 인간도 퍼뜩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2.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생각이 있다면, 이건 무엇일까요. 언어 없이 사고할 수 있다는 증거일까요, 언어의 도움으로 생겨난 무언가이며 아직 적당한 단어로 표현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는 온전한 사고가 아닌 걸까요?


글이 길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 다룬 책이나 글 같은 거 아시면 가르쳐주세요. 옛날에 교과서에서 본 것도 같고...

    • 진화심리학에서는 언어가 부산물인지 아닌지 논란이 많고요.
      비트겐슈타인, 소쉬르 정도가 생각이 나네요. 좋은 책은 아랫분이 추천해주실 거에요.
    • 헬마스터/이 글 올린 게 어제 '하우 투 리드 비트겐슈타인' 읽다가 인데요, 비트겐슈타인도 은연중에 인간의 사고는 언어에 기반한다는 걸 그냥 전제로 까는 모양이더라고요. 그 부분을 더 파고드는 사람은 없을까 해서요.
    • 구조주의가 설 자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습니다만,
      소쉬르나 프라하학파 혹은 롤랑 바르트라면 '그렇다'라고 대답했을겁니다.
    • 닥터슬럼프/ "왜 그렇다" 라는 거에 대해서 다룬, 좀 대중 대상으로 쓴 글이나 책 혹시 없을까요. 왜 그렇다는 거에요?
    • 사고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교육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여기서 사고는 고등사고를 말하는 것이겠죠.
      언어 없이 어떻게 교육을 받고, 교육 없이 1차적 감각을 넘어선 사고가 가능할지 전 잘 이해가 안되네요.
      다른 분 답변이 기대되는군요.
    • 심리언어학 교과서에 의하면 언어가 사고의 근간이라는 가설은 이중언어 사용자가 정신분열증상을 보이지 않는 현상에 의해 부정되는데 아무튼 언어와 사고는 독립적으로 보는게 현 시점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 http://nullmodel.egloos.com/1918451

      언어가 없어도 사고는 가능합니다. 사고도 제대로 못하는 동물이 언어는 어떻게 발명해 낼 수 있을까요. 글과 수화를 배우지 못한 농아도 일반인과 같은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위에 링크처럼 서로 도움을 주는 정도까지가 최대한의 긍정적인 연구죠.

      스티븐 핑커의 언어본능을 한 번 보세요.
    • 국내에서 소쉬르에 관한 대중서를 얻기가 어렵긴한데, 그의 연구의 기본이라할 수 있는 '일반언어학 강의'에도 단초는 충분히 담겨 있어요.
      소쉬르는, 자신이 '마음속에 있는 어떤 생각'을 말을 통해서 한다라는 통념을 뒤집어, '마음속에 있는 어떤 생각'이라는 것이 사실 언어에 의해 '표현'됨 과 동시에 생긴 것이라 주장합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말을 하고 난 뒤에 자기가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소쉬르의 이 생각이 구조주의를 관통하여 라캉에 이르러서는 '내가 말하고 있을 때 내 속에서 말하는것'은 실은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말'이다 라고 까지 주장하게 됩니다.

      물론 전부 구조주의 체계 내에서의 해석으로, 따라서 80년대 이후 점점 그 효용이 사라지고 있어요.
      제 생각도 물론 저들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구요.
    • 어떤 티비에서 왠 여자 노숙자를 촬영했는데, 영어로만 말하더군요. (한국 한복판 서울이고 한국인이었음)
      알고보니 유학가서 영어를 배우고 온 한국여성분이었는데, 한국어로 말하니 정리가 안되서 영어로 하니까 논리가 명확하게 선다고 하더군요.
      언어가 없어도 사고는 가능하지만, 언어가 사고에 영향은 주는것 같아요. 그럼 여기서 궁금한게 과연 한국어보다 영어를 쓰면 정말 논리적이고 명확한 사고를 하게 되는가 입니다.
      책들을 보면 영어권 책들이 한국어보다 더 논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우연일까요?
    • 그 답은 이미 뇌과학자들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언어를 일단 음운론, 의미론, 구문론으로 나누어본다면
      침팬지도 음운론과 의미론 까지는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과의 차이점은 구문론 뿐인데, 그 구문론의 영역이 추상적 사고의 핵심 입니다.
      인간 및 동물은 외부 세계에 대한 자극을 선별하여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내부 모형을 건설합니다.
      사고는 내부 모형을 가지고 하는 것이구요.
      그런데 언어영역의 진화와 함께 내부 모형의 상위 범주화가 가능하게 되어서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언어를 모르면 추상적인 사고는 할 수 없습니다.
      수화를 배우지 못한 농아들도 자기들끼리 의사전달 하면서 사회상을 배워나가기 때문에 그것 또한 언어라고 말 하더군요.
      그런데 시각과 청각에 둘다 문제가 있음에도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하면
      추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올리버 색스의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네요.
    • 닥터슬럼프/ 아, 그러고보니 그런 식의 설명을 읽어본 것 같네요. 어디였더라...;

      와구미 님 링크한 글과 윤보현님 글이 정면으로 다른 견해네요. 오호...
    • 윤보현/ 사회상을 배워나가는 것과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별개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인간은 집단환경에서 진화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타인)과 상호작용하며 성장하는게 사고를 키우는 것에 틀림없이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 자체가 언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언어라고 한다면 호레이쇼님이 말하는 언어의 개념과는 다른 것이 되겠죠.
    • 와구미/ 제가 윤보현님은 아니지만, 윤보현 님 말씀은 아주 기초적인 인간의 관념들이 하나의 기호로 패키징 하고, 그걸 바탕으로 조금 더 복잡한 게 쌓이면 더 복잡한 사고가 가능하고, 더 복잡한 사고가 더 복잡한 언어를 낳고, 더 복잡한 언어는 더 복잡한 사고를 낳고 요런 거 아닐까요. 흠.. 만약 한 인간이 무한히 살고 의지가 있다면 결국에 혼자서도 언어 없이 저런 과정을 해낼 수 있지만 언어라는 건 개별 인간을 초월하는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그 자체로 생각 꾸러미다, 그래서 유한한 인간이 구문론 적인 생각을 하려면 이미 만들어진 언어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이런 뜻이 아닐까요.
    • 와구미 / 제가 읽은 것에서는 수화 체계도 언어라고 보더라구요.
      아직까지 여러 의견들이 많은 곳이니까요.
    • 장애인단체에서 몇년 있으면서 본 개인적인 느낌은,
      구어가 없으면 사고(철학적사고)가 (비교적) 어렵다는 것입니다.
    • 호레이쇼/ 그렇게 되면 최초의 언어(기호)는 어떻게 생겨났나라는 질문이 요구됩니다. 관념을 기호로 바꾸는 과정 자체가 벌써 고차원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을 제외한 동물은 사고를 못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원글에서 사고의 정의를 임의로 내리신 감이 좀 있어요.

      윤보현/ 당연히 수화도 언어죠. 그런데 체계적인 수화를 배우지 못한 농아들끼리의 손짓발짓도 언어라고 할 때 처음 그것을 만들어낸 농아는 무엇을 갖고 그것을 고안해냈을까요.
    • 와구미/ 제가 사고의 정의를 엄밀하게 내리지 못한 게 맞네요. 소개해 주신 글을 봐도 사고란 게 뭔지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정의가 달라 생긴 혼란도 있는 것 같고요. "추상적 사고" 정도로 해야할까요?
      인간이 어떻게 언어를 만들었느냐, 이건 최초의 언어는 지금의 언어보다는 훨씬 단순한 원시적 언어였을 거고, 원시적 언어로는 원시적 사고밖에 하지 못한 게 아닐까요? 인간은 죽어도 언어는 죽지 않고 점점 발달하여 시간이 흐른 뒤 언어 그 자체를 익히는 걸로 추상적 사고를 익힐 수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언어가 생각의 기반이 된다는 사람들은 주장하는 게 아닐까요.
    • 주제와는 약간 어긋나는 얘기지만 요즘 읽는 책에 재밌는 구절이 있어서 옮겨봅니다.

      아무리 그림과 영상들의 '이미지 문화'가 발달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활자는 나와 타인, 나와 사회, 나와 세걔를 연결하는 가장 광범위한 길이고 창이다. 그래서 작가는 "글은 우리 혈관 속에서 피처럼 흐른다. 그것은 모든 말 속에 파고든다. 지시와 묵종의 관계에서와 달리, 대화에서 인쇄된 글에 대한 언급이 없거나 읽을거리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진정한 대화는 불가능하다"(95쪽)고 말한다. 문맹은 대화로 통하는 길과 창을 막는다. 그것이 막히면 나와 사회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관찰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양심이 마비된 도덕적 문맹이 되고 만다.
      - 루스 렌들이 지은 <유니스의 비밀>에 대한 장정일의 독후감 중에서.
    • 러시/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 공통의 텍스트와 컨텍스트가 필요하다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참치캔/ 그런데 막상 비트겐슈타인을 읽어보면 예술적 사고라는 게 진짜 언어 외적인 거라 하더라도 언어의 사다리가 이루어 놓은 높이에서 그렇게 많이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 사과식초 / 언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논리적인 글쓰기/말하기'에 관한 한 한국어의 전통이 영어보다 짧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 안에서 논리적인 문장과 글을 위한 틀이 독자적으로 형성될 시간도 별로 없었고, 또 이유도 별로 없었죠. 특히 학술적인 글을 읽고 쓰는 데는 한국어 능력의 중요성이 그다지 대단치 않으니까요.
    • 언어와 사고의 관계는 아직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댓글들을 보니 현대는 어느정도 주요 경향이 생긴 것 같네요..
      와구미님이 링크하신 블로그 글 흥미롭게 봤어요. 나중에 좀더 자세히 봐야할 것 같아요. 일부분에는 동의할 수 있고 어떤 부분에는 의문도 생기고 반론의 여지가 있는 것 같긴한데 어차피 블로그에 짤막하게 설명하는 글이니만큼 다 표현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테니깐요..

      참치캔/ 덧글 새로 다신거 보고 수정..
    • 흠...
      죄송합니다만..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요?
      "손이 없으면 사고할 수 없을까요?"
      또는,
      "눈이나 귀가 없으면 사고할 수 있을까요?"

      등가인 질문같은데요..
      사고에 관해 생각하기 편해질듯...
    • 저는 본문이 맞다고 생각하는쪽인데 언어의 개념을 어떻게 잡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심지어 인간은 언어를 닮으려고 하죠. 언어라는게 인간에 의해 파생되었다기 보단 인간은 언제나 언어의 틀에 맞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것 같아요. 대학교때 바르트의 책을 읽었는데 최근에서야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되더군요.
    • 석가헌/ 흐미, 이미 이 문제에 어떤 결론까지 내셨기때문에 저게 등가로 이해가 되실텐데, 저는 그렇지 못해서 잘 안되네요.
    • 석가헌/ 그보다는 "수학이 없으면 과학을 할 수 없을까요?"가 더 비슷한 질문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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