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 방문 잡담

어느 날, 아마 일 년은 더 전인 것 같은 어느 아침에 거울을 보는데 볼에 뭔가 하얀 점 같은 것이 올라와 있어요. 제 피부가 젊은 날에 여드름 청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던지 말던지 놔뒀습니다. 한두 달 후에는 이게 좁쌀..그 보다는 작은가? 여튼 조금 커지면서 돌출되어 있었고 또 한두 달 후에는 반대 쪽에도 거리를 두고 두 개가 생겼어요. 유분기 있는 크림 때문인가 해서 피해서 발라 봐도 없어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았고 최근에는 이마에까지 몇 개 올라왔어요.

아픈 것도 아니고 화농성 여드름처럼 빨간 색도 아니고 피부와 같은 색이라 크게 표시가 나지도 않으니 피부과까지 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연기자들의 얼굴에 저와 비슷한 게 보이면 저런 배우도 그냥 두는데, 라며 흐뭇해?했고요.

그런데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물어 보네요. 왜 그냥 두냐고. 피부과 가보라고. 음...표시가 많이 나나...?

검색으로는 어떤 종류인지 잘 알 수가 없었고 분명한 것은 저절로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자꾸 더 생길 걱정도 있어서, 일단은 물어 보고 상황을 장악해야 겠다 싶었습니다. 그러고도 몇 주 그냥 시간을 보냈지만요.

오늘 미루고미루고미루다가 피부과를 갔습니다.


의사 - 그거 '이겁니다' (수십 개의 얼굴 일부가 뜬 컴 화면을 내쪽으로 보여 주며) 레이저로 없애면 됩니다.

나 - 아픈가요

의사 - 점 빼는 것과 같아요. 지지면 됩니다.

나 - 점 안 빼 봤는데요, 지진다면 아프겠네요.

의사 - 아무래도 살이 타니까..모공 안까지 잘 파내지 않으면 또 생기거든요. 

나 - 이게 왜 생겼을까요?

의사 - 그냥 생깁니다. 저절로 없어지지도 않고요. 

나 - 네...하고 나면 회복에 얼마나 걸리나요.

의사 - 2주 정도 걸리죠.

나 - 아 그런가요, 다음 주말에 결혼식 가야 하거든요.

의사 - 그러면 그 후에 다시 오세요.

나 - 네. 2주 지나면 표시가 안 나나요?

의사 - 아니요, 표시는 사람에 따라 몇 달 갈 수도 있어요. 

나 - 네... 지진다면 화상과 비슷하니까... 알았습니다.


진료실 밖으로 나오자 간호사가 예약할 거냐고 묻는데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피부과는 주부 습진이 안 나아서 치료 위주의 병원을 간 적은 있는데, 오늘 간 곳은 미용 위주의 병원이었습니다. 접수, 대기 공간이 호텔 로비 같이 생겼더군요.    

오늘 날씨가 여름이네요. 긴 팔 자켓을 입고 있던 저는 데워진 뜨뜻한 차 안에서 땀을 흘리며 얼른 집으로 왔습니다. 

점점 더워질 일만 남았는데...2주 이상 세수도 제대로 못할 텐데...저는 마음 속으로 다가올 선선한 초겨울을 기약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음 주말의 결혼식 그 후에 해당된다고. 

미룬다는 것. 늘 느끼지만 이것은 참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만족감입니다. 함부로 해치우려다가 잘못된다면? 불확실한 일처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잠시나마 안도감 속에 머물 수 있습니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달리 레이저 시술의 아픔과 불편 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리라 믿어요.


 





    • 당장 내 몸을 해롭게 하는 병균 같은 게 아닌 이상 급하게 처리하실 필요가 없죠. 결혼식도 있고 이건 좋은 미루기(?)네요. ㅎㅎ




      저는 아직 레이저 시술 같은 걸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뭐 병원에서 기술적으로 잘하겠지만 피부를 지져서 화상 비슷한 걸 입는다고 상상하니 겁부터 나는 건 사실입니다.

      • 저도 그런 마음입니다. 건너서 듣기에 점만 생겨도 가볍게 다녀온다는데 저에게 피부과는 겁나는 곳이에요... 

    • 저는 동네에 친한 피부과 '전문의' 선생님께서 계셔서 먼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는 그저 몇개 였는데 살 타는 냄새가 좀 웃겨요 :)


      동생이 의사인데 병원을 옮기면서 점을 서른개 정도 제거했다 그래요. thoma님 염려마셔요.

      • 피부과 의사랑 친하시다니 부럽네요.ㅎ 마음의 장벽을 넘는데 도움이 되고 실용적으로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냄새만 나고 아프진 않으셨나봐요.


        요즘은 전공 불문하고 동네 병원에서도 간단한 시술은 하는 거 같아요. 미루니 좋네요.ㅎ 감사합니다. 

    • 전 좀 다른 이유로 작년에 정기적으로 피부과를 열심히 다녔었는데요. 근 1년을 다녔는데 별다른 변화도 안 느껴지고 의사도 너무 무성의해 보여서 결국 그만 뒀습니다만. 그만 두고 나니 아... 다니던 때보다 좀 안 좋아졌나? 싶어서 요즘 또 고민 중이네요. 하지만 당분간은 안 갈 것 같아요. 그냥 썬크림이나 열심히 바르며 큰 트러블 안 생기기만 비는 걸로... ㅋㅋ

      • 치과나 피부과는 정말 선뜻 가기가 힘들어요. 병원을 다녀도 잘 되었는지 시간이 지나가 봐야 알고 운에 좌우되는 게 큰 거 같습니다. 다른 중병도 마찬가지겠고 특히 지방민들은 그렇지만 치과 피부과는 시간 조금 지나면 제일 효과를 확인하기 쉬운 눈에 띄는 분야이기도 하고, 또 보험이 안 되는 게 많아서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도 있을 듯해요. 


        피부과 다니셨군요. 햇빛과 관련이 있나 봅니다. 자외선이 강해지는 계절인데 조심하시고 트러블 잠잠해지시길..    

    • 의사는 별거 아닌듯 얘기하지만 지지는거면 살 타는 냄새도 날거고 소리도 들릴거고…내 눈에는 안 보이고 등등…이런 상상이 더 무섭습니다…

      그래도 심각한 건 아니라니 다행이고요, 알아서 스스로 없어져 준다면 더더욱 다행이겠습니다.
      • 의사들은 밥 먹고 늘 하는 일이니...ㅎ 맞아요. 언제나 상상 때문에 골치예요. 특히 처음 해 보는 일은.


        자고 났더니 없어졌네, 이랬으면 좋겠네요. 저는 나이들면 이런 거도 생기고 그럴 걸? 하는데 제 엄마가 더 싫어하네요.ㅎ 

    • 저는 제모 수술을 빡세게 하러 다녀서 그런지 저 살타는 냄새가 뭔지 알겠네요 ㅎㅎ 팟팟팟팟 하는 빠른 박자로 레이저를 같은 부위에 계속 쏘면 진짜 살이 타는 게 좀 느껴집니다 사실 결혼식 같은 행사가 있다면 굳이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 제가 협소한 인생이기도 하지만, 제모 수술이라니...Sonny 님의 경험이 다양해서 놀랄 때가 있네요. 요즘은 어쩌면 대세인데 저 혼자 놀라고 앉았을지도 모르지만요.ㅎㅎ 이렇게 배우는 거죠 뭐. 

        • 저는 수염이 많아서 짱구아빠 신형만처럼 되버리곤 했는데요 그 푸르딩딩함이 너무 싫어서 아예 제모 갈겨버렸어요ㅎ제 인생 제일 잘한짓이라고 생각합니다
    • 얼굴 피부는 참 희한해요. 그 조그만 영역 안에서 날씨가 매일매일 달라진단 말이죠. 

      • 외부로 제일 많이 노출하는 부분이라 그런 것이겠죠. 태양, 먼지, 다른 사람 시선... 

    • 병원까지 발걸음 하셔서 언제든 없앨 수 있다는 걸 아셨으니 맘 편하게 선선해질 때까지 기다리셔도 좋죠. 바람이 있는 곳에서도 해가 뜨겁더라고요, 벌써부터. 밖에 세워둔 차는 금방 뜨거워질 정도로요. 이때다 싶을 때 다시 가시는 걸로!
      • 그러합니다. 이번 병원 행의 목적은 사실 확인차였던 것이었어요. 가면서도 제가 바로 시술에 들어갈 거라는 확신은 없었거든요. 여름 지날 때까지 더 생기지는 않기를 바라며 때를 기다리겠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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