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바낭]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이처럼 사소한 것들' 잡담입니다
- 2024년작입니다. 런닝 타임은 1시간 38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
(윌 헌팅 놈들(?)이 제작한 영화였군요. 짤 올리면서 알았습니다. ㅋㅋ)
- 때는 1985년, 아일랜드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빌 펄롱은 자그마한 석탄 사업을 하는 사람이구요. 사랑하는 아내와 다섯 딸들과 함께 무난하게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막 넉넉하진 않아도 살짝 무리하면 아주 조금의 사치 정도는 누릴 수 있고. 아이들은 모두 착하게 예쁘게 잘 자라고 있고. 자신의 나름 파란만장했던 성장 과정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 그렇긴 한데요.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 온 어느 날, 평소처럼 성실하게 석탄 배달을 갔던 동네 수녀원에서 목격한 조금 수상한 풍경 하나가 우리의 펄롱씨를 고뇌하게 합니다. 그 고뇌를 한 시간 반 동안 보여주는 영화에요.
![]()
(솔직히 파릇파릇 킬리언 머피를 처음 봤을 땐 이렇게 좋은 배우로 나이 먹을 거란 생각은 안 했죠. 그냥 변태 섹시남으로 잘 나갈 줄 알았...)
- 제가 좀처럼 고르지 않는 장르의 영화입니다만. 직장 동료님의 극찬을 듣고 궁금하던 차에 티빙에 올라와 있길래 썸네일을 보는 순간 무지성으로 재생 버튼을 눌러 버렸습니다. 오늘은 뭐 볼지 고민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어! 라고 결심하는 순간 눈에 들어와 버려서... ㅋㅋㅋ 결과적으론 잘 봤으니 좋은 일이었던 걸로.
덤으로, 다시 한 번 '이걸 스포일러라고 봐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만. 언제나처럼 예고편을 확인해 본 후 '아. 이 정도면 뭐.' 라고 판단한 수준까지는 넣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보고픈 분들은 아래 문단부턴 읽지 말아 주시구요. 진중하고 묵직하게 인간적,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보시길 추천해드립니다.
![]()
(나라면 얘를 도와줄 수 있을까 없을까. 를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그 고민을 진짜 진지하게 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
- 네, 그러니까 그 유명한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을 소재로 하는 이야깁니다. 빌이 목격한 장면은 임신한 어린 소녀가 가족들에게 버림 받아 이 수녀원에 버려지는 모습, 그리고 수녀원의 어린 소녀들이 학대, 착취를 당하는 모습들이었구요. 자신도 사연 있는 어린 시절을 통과해서 살아 남은 자이면서 동시에 몹시도 선량한 마음을 가진 빌은 당연히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이 마을의 거의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는 수녀원 사람들에게 맞선다는 건 사실상의 사회적 파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격한 번뇌에 사로잡히게 되죠.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그 번뇌도 강해지고, 그런 빌의 변화를 눈치 챈 주변 사람들이 던져주는 경고들은 빌의 선택을 점점 더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런 전개를 정말 별다른 큰 사건 없이 조용하게, 차분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마지막을 향해 갈 수록 참 갑갑해져요. ㅋㅋㅋ 보기에 막 재미 있는 영화는 아닐 뿐더러 그다지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도 아닙니다. 그렇구요.
![]()
(많이 안 나오지만 상 받을만한 임팩트는 확실히 보여주신 에밀리 왓슨님. 아주 현실적이라는 느낌과 포스 쩐다는 느낌이 동시에 전해지는 연기였어요.)
- 이런 번뇌와 동시에 빌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슬픈 가족사, 성장 과정이 교차로 보여집니다. 근데 의외인 것이... 이게 분명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복 받고 행복했던 과정이기도 해요. 그래서 좀 의외였죠. 당연히 빌도 수녀원에 끌려온 소녀들처럼 격하게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인 세월 속에 상처 받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게 절묘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빌이 인생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호의에 의한 거였고, 결국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거죠. 적어도 빌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 듯 하구요. 그래서 이렇게 극단적인 불행은 피해갔을 정도로만 운 좋은 보통 사람이 자신의 삶을 위기로 몰아갈 것이 분명한, 하지만 윤리적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겪을 법한 심적 고통이 실감나게 전달이 됩니다. 그래서 영화의 엔딩을 아주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 보게 되구요. 그리고 그 복잡한 심정만큼의 감동을 받게 되는 거죠.
![]()
(솔직히 와이프 하는 말이 다 맞습니다. 또 완전소중 자기 자식들까지 고난과 역경으로 몰아 넣게 될 텐데 저 같으면... 에...;;)
- 어떤 작품들에선 그냥 멋지게, 폼나게만 그려질 법한 당연한 도덕적 선택이란 게 현실 세계에선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인가... 를 아주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리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구요. 그런 리얼함을 통해 크게 드라마틱하지 않은 스토리에 큰 감동을 부여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참으로 느릿하고 진중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그런만큼 주인공의 내면을 섬세하게 펼쳐 보여주고요. 그런 각본을 킬리언 머피의 훌륭한 연기가 든든하게 받쳐줍니다. 그래서 엄청난 고통과 수난만이 끝 없이 이어질 게 뻔한 결말을 보고서 한참 고민하다가도 결국 '해피 엔딩이 맞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만드는. 뭐 그런 영화였어요. 잘 봤습니다... 만. 다시 강조하지만 드라마틱하고 막 그런 이야긴 기대하시면 안 되구요. ㅋㅋ 되게 묵직한 이야기지만 배경도 크리스마스이고 결말도 그러(?)하니 성탄절 시즌 영화라고 생각하고 봐도 좋았겠다 싶었네요. 그러합니다.
+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 '막달레나 수녀원'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봤는데... 어익후. 제대로 된 사과도 없고 제대로 된 피해 보상도 거부하면서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었군요. 그래서 이 시절에 다시 한 번 이런 소설이, 이런 영화가 나왔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정말 인류애 뚝 떨어지게 만드는 인간들이고 그러한 세상이네요...
++ 포스터에도 대놓고 적혀 있듯이 원작 소설이 있구요. 대충 찾아 보니 원작은 주인공의 심리, 생각들을 직접적으로 제시해주는 게 많더라구요. 영화에서 빌은 말수도 적고 나레이션도 없어서 그런 부분은 관객들이 알아서 상상하도록 처리하고 있습니다.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빌의 과거는 대략 이러합니다. 엄마가 어린 나이에 미혼으로 아빠도 모를 아기를 임신했고 그게 빌이에요. 그 시절에 미혼모라니 당연히 파란만장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당시에도 막달레나 수녀원은 존재했기에 엄마는 거기 갇혀서 착취 당하며 빌을 낳고 그렇게 낳은 빌을 수녀원에 빼앗겨 다른 곳으로 입양을 빙자한 판매를 당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엄마가 일하고 있던 부잣집 마님께서 기꺼이 그런 엄마를 거둬주셨고, 빌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정성들여 키워줬습니다. 그러니 남들 보기엔 참으로 운 좋게 부잣집에서 편하게 자라는 아이로 보여서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구요. 그러다 엄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기까지 했지만 역시나 마님과 삼촌은 빌을 끝까지 책임져줬습니다. 그래서 무사히 좋은 사람으로 잘 자라나는 데 성공했구요.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호의 속에서 행복을 찾았던 과거가 있었기에 막달레나 수녀원의 아이들은 빌에게 엄청나게 무거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특히나 임신한 채로 가족들에 의해 수녀원에 버려진, 엄마랑 이름도 같은 소녀를 발견했는데 얘가 대놓고 학대까지 당하고 있으니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갸들을 도와야 할 아무 의무도 없어. 우리 애들이나 잘 챙기자' 며 관심 끊기를 종용하는 아내. 빌을 진심으로 생각해서 괜히 불구덩이 인생으로 걸어들어가지 말라는 동네 지인들. 이대로 본인이 망해 버리면 인생 대차게 꼬일 사랑하는 자식들. 그리고 무시무시한 카리스마 빌런 수녀원장... 등등 때문에 빌은 좀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계속해서 고통 받아요. 그래서 결국 다 포기하고 가족들과의 소소한 행복을 선택하고선 이발소에 가서 자리에 앉는 찰나...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을 정말 따뜻하게 돌봐줬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그 행복한 기억들을 돌이키며 눈물을 흘린 빌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수녀원으로 가고, 그 혹한에 석탄 창고에 갇혀 떨고 있던 소녀에게 자신의 외투를 입히고, 집으로 데려옵니다. 오는 도중에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빌은 확신에 차 있고, 뭣보다 행복합니다. 그렇게 집에 데려온 소녀의 손을 잡고 이끌어 딸들이 놀고 있는 거실로 데려가는 빌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엔딩입니다.
+ 다 보고 나서 원작 소설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니 마지막 빌의 심정을 잘 표현해준 문장이 하나 있길래 인용해 봅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났다."
저는 책만 읽었는데 안 그래도 비교해 보고 싶어서 영화를 볼까하고 있었는데 후기를 올리셨네요. 책도 괜찮았지만 영화도 좋을 것 같다는 짐작을 했어요. 게다가 주인공이 킬리언 머피!
본문은 영화 보고 읽으려고 마지막에 추가하신 부분만 읽었는데 책도 영화와 느낌이 비슷합니다. 주인공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생각을 직접 표현하기 보다 회상과 주인공 시선에 들어오는 일상의 계기들이 행동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화로 잘 살릴 수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마 표현 도구상 소설이 조금 더 직접적이긴 하겠지만요.
저는 정확하게 반대로 영화를 보고 나니 이것도 좋은데 소설도 다른 방향으로 좋을 것 같아 관심이 생겼습니다. ㅋㅋ
아 그렇군요. 전 제가 스포일러 파트 말미에 인용한 저 부분 때문에 소설은 좀 더 친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봐요. 하하. 영화에선 저런 상냥한 설명이 아예 없어서 마지막 행동에 임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그냥 상상해야 했거든요.
이해하실 것 같다니 감사합니다! ㅋㅋ 내친 김에 OTT를 두 개 이상 굴려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훨씬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되실 겁니... (쿨럭;)
킬리언 머피를 '피키 블라인더스' 보면서 원 없이 감상했었습니다. 이상한 깊이가 느껴지는 배우죠... 연기를 떠나, 서양 배우의 분위기는 눈 색깔이 많이 좌우 하는 것 같습니다. 개들도 시베리안 허스키, 보더 콜리 눈 보면, 개가 말 걸어 올 것 같잖아요^^
'피키 블라인더스'는 한 시즌만 보고 말았는데 제겐 참 희한한 경험이었습니다. 드라마는 그냥 때깔 좋은 영국판 '야인시대' 같은데 킬리언 머피 때문에 마치 진지한 무언가로 보이더란 말이죠. ㅋㅋㅋ 맞아요 눈색깔, 눈빛이 참 강렬하죠. 배우로서 아주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훈훈함과 달콤함이 가득한 일반적인 가족용 크리스마스 영화들도 좋지만 이런 진정한 깊은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도 간간히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재와 과거 회상씬들이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좋더군요. 엔딩씬 마지막의 그 느낌도 너무 여운이 강했습니다. 앞으로 크리스마스마다 생각나는 작품들 중 하나가 될 것 같아요.
킬리언 머피는 2000년대 '28일 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플루토에서 아침을' 등에서 연기를 참 좋아했던 배우인데 당시 한창 주목받고 국내에도 유명했었지만 뭔가 전형적인 할리우드 리딩맨스러운? 그런 외모가 아니라서 연기력과 별개로 스타급 주연으로 자리잡긴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꾸준히 잘 활동하면서 오랜 협업자였던 놀란 '오펜하이머'로 오스카 남주까지 받고 하는 걸 보니 괜히 뿌듯하네요. 에밀리 왓슨님도 막판의 짧지만 위엄쩌는 연기 대단했구요.
그 '막달레나 수녀원'은 저도 예전에 찾아보고 심하게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종교라는 이름, 핑계로 잔인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근데 그 따뜻함이 너무 써요. ㅋㅋㅋㅋㅋ 따뜻하고 여운 남고 다 좋은데 너무 쓴 맛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영화가 된 거겠지만요.
'오펜하이머'는 안 보고 하는 얘기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놀란 영화 속 킬리언 머피의 가장 어울리고 좋았던 캐릭터는 스케어크로우였습니다... ㅋㅋㅋㅋ 카리스마 있는 척 할 때도, 나중에 허당 개그 캐릭터처럼 나올 때도 둘 다 어울리고 좋았어요. 하하. 에밀리 왓슨이야 뭐 워낙 더 칭찬할 것도 없는 배우지만 정말 역할 소화를 너무 잘 해줬죠. 많이 안 나오고 현실적인데 강렬해야해! 라는 그딴 걸 어떻게 하라구요 미션을 이렇게 잘 수행하셨으니 상 받는 게 당연. 그랬구요.
참 황당하죠. 종교도 그렇고 사람들의 지성이나 도덕성이니 이런 게 얼마나 허상 같은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사실상 현재 진행형이나 마찬가지라 더 깝깝하구요.
[4월 이야기] 이후 영화 재미있어지는데 벌써 끝이야? 이런 경우 오랜만이어요>_< 다시 보려고했는데 마음이 불편할거 같아서 안봤어요.
저는 수녀원 측 협박의 한단계로 거래처 옮기겠다는게 제일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하다 못해 지금의 엔딩에서 한 10초라도 더 추가해서 훈훈한 분위기 더해 줬으면 당연히 예상될 이후의 현실을 생각하더라도 일단은 만족스러웠을 텐데요. 진짜 거기에서 뚝 끊어 버리니 감독님 야박하시단 생각까지... ㅋㅋ
맞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영화 보면서 주인공 이렇게 진심으로 걱정하기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하하.
아 영화 제작에 그런 비하인드가 또 있었군요. 하긴 킬리언 머피가 아일랜드 사람이니 자기 나라의 이런 비극적인 사건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겠어요.
이 분은 작은 규모의 진지한 영화들 같은 데도 곧잘 나오면서 헐리웃 블럭버스터도 나오고, 또 종종 튀는 컨셉의 인디 장르물들도 나오고... 참 취향도 다양하시다 싶은데 그렇게 하고픈 거 다양하게 하고 사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다만 전 킬리언 머피의 비주얼도 능력도 없으니 애초에 부러울 일도 없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