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바낭] 90살짜리 스릴러. '사보타주' 짧은 잡담입니다

 - 1936년작이니 옛날 한국식 나이로 정말 딱 90살이죠. 런닝 타임은 1시간 16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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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좀 이상하죠? 이게 미국 개봉 시 붙였던 제목이라네요. 영화 내용과 별로 안 어울리는데...)



 - 그 시절 런던입니다.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려는 테러리스트들이 암약하고 있고 곧바로 한 구역에 정전 사태가 빚어지네요. 그리고 그 여파로 극장 한 곳이 한 회차 상영을 못하게 되어 환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난리를 치고, 극장 주인의 아내가 진땀을 빼는 동안 극장 바로 옆 채소 가게에서 일하는 건장하고 잘 생긴 남자가 유려한 말빨로 사람들을 달래는데요. 방금 전까지 자리에 없었던 듯 한데 갑자기 나타난 남편이 '아 환불 해 줘.' 라고 시크하게 반응하니 안주인님께선 채소 가게 총각에게 면박을 주고 환불을 해 줘요.

 그리고 여기까지 보면 관객들은 알아야 할 정보는 모두 알게 됩니다. 극장 주인이 테러범이에요. 아내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구요. 옆집 채소 가게의 불필요하게 건장하고 잘 생긴 남자는 당연히 경찰이겠죠. 참고로 영화의 원작이라는 소설 제목이 The Secret Agent 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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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일 것처럼 생긴 못 믿을 놈과 악당일 것처럼 생긴 못 믿을 놈 사이에서 고통 받는 여자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 무려 조셉 콘래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큰 틀만 가져와서 아주 단순화 시켜 놓은 이야기라서 큰 의미는 없습니다. 일단 런닝 타임만 봐도. ㅋㅋㅋ

 보는 내내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 생각이 났어요. 듀나님께서 에피소드 하나하나 (전부는 아니었던 듯?) 리뷰하셨던 시리즈였고 저도 그거 읽다가 결국 디비디 박스 세트를 구입했던 추억... 이 벌써 20년 전입니다!!! (자꾸 세월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ㅋㅋㅋ)

 그러니까 일단 짧잖아요?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에서 길이가 좀 되는 에피소드들은 한 시간 가량 되었으니 이 영화와 거의 차이가 없다시피 하구요. 티비용 앤솔로지 시리즈였던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처럼 이 영화도 참 소박하고 심플한 이야깁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후대에 '히치콕 스타일'이라 불리게 된 요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마지막엔 소소하게 재미난 반전 같은 것도 들어 있고 그래요. 정말 그 시리즈 에피소드 하나인 척하고 슬쩍 끼워 넣어도 위화감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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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가 참 익숙하다 싶어서 웃었던 장면. 사실은 긴장감 조성 중입니다만 그게 너무 익숙하다 보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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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히치콕 본인이 자신의 '서스펜스'에 대해 설명하던 이야기가 거의 그대로 구현되어 있던 장면이라 또 웃었습니다.)



 - 리는 없습니다. 거의 30년의 세월이 있으니까요. ㅋㅋ 근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가치랄까, 재미 포인트랄까... 이런 게 선명하게 새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히치콕은 그 시절에 이미 거의 완성형 감독이었다는 거죠. 영화 내내 이어지는 히치콕스러운 캐릭터 설정, 히치콕스런 미행 장면, 히치콕스런 서스펜스 연출 등등을 구경하면서 와! 이 사람은 정말 진짜 레알로 천재였구나!! 라는 식으로 감탄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물론 이야기도 괜찮아요. 앞서 말했듯이 소박하기 짝이 없는 이야깁니다만 유명한 원작 버프에다가 이런 '천재 감독'의 영화답게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안 촌스러운 연출이 함께하니 든든하구요. 또 마지막에 벌어지는 정말 소소한 반전도 과하거나 소소한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슥 들어가 있어서 더 인상적인 느낌을 줘요. 여러모로 잘 만든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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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 시절 영화 촬영 장면 기록까지 남아 있는 걸 보면 참 부럽기도 하구요.)



 - 물론 90년의 세월을 물로 보면 안 되겠죠. 클라이막스 즈음에 가면 [요즘 기준으로 볼 때] 전개에 무리수도 좀 들어가고. 여성 캐릭터의 납득 안 가게 널뛰기 하는 감정선 때문에 좀 난감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뭐 그 정돈 당연한 걸로 넘어가야죠. 1980년대 대중 영화들 이야기만 봐도 요즘 기준으로 보면 어색한 것 투성이인데 이건 90살이라구요. ㅋㅋㅋ 그리고 제가 비교적 근래에 본 요 시절 영화인 하워드 혹스 버전 '스카페이스'를 떠올리며 생각해 보면 정말 이 영화의 연출은 낡은 느낌 없이 깔끔하고 매끈합니다. 그 시절에, 그것도 헐리웃도 아닌 영국에서 어떻게 이렇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암튼 그렇게 '소박한 옛날 스릴러 단막극 하나 본다' 라는 느낌으로, 영화 전반에 넘쳐 흐르는 히치콕 감독 스타일을 즐기면서 볼 수 있는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뭐 막 같은 사람이 내놓았던 걸작들이랑 비교하지만 않는다면요. ㅋㅋ 잘 봤습니다.




 + 여주인공 맡은 배우님이 너무 예쁘셔서 영화 다 본 후에 출연작을 검색해 봤더니 글쎄 제가 아는 분이었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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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아만다 사이프리드 닮으셨나!? 하면서 보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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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니 이 분이셨다니. ㅋㅋㅋㅋㅋㅋㅋ)


 하하. 뭐 52년 후에 찍은 영화이니 못 알아보는 건 당연하겠구요. 덧붙여서 이 분 인생의 마지막 영화는 '화성침공'이었답니다. 물론 팀 버튼 영화요.



 ++ 덤으로 남편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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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짝 코브라 카이 창시자님 느낌이었달까... ㅋㅋ 사실은 이 사진만 좀 그래 보이고 별로 안 닮으셨습니다. 



 +++ 영화 속 영화이자 클라이막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재로 '살인자 바돌로매' 라는 작품이 등장하는데, 역시 궁금해져서 찾아봤지만 그냥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작품이라고. 



 ++++ 주인공들이 '심슨 식당'이라는 고오급 레스토랑에 가서 거대한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왠지 아 저거 실제 식당 이름 그대로 썼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어 검색해 보니 대략 맞는 듯 싶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영업 중이며 역사가 조만간 200년을 찍게 된다네요. '로스트 비프'로 유명하다길래 영화를 돌려서 다시 보니 자막은 '스테이크'라고 나오지만 '로스트 비프'라고 말하는 게 맞네요. ㅋㅋ 좀 무섭습니...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언더커버 경찰 스펜서와 스코틀랜드 야드는 이미 극장 주인 벌록씨가 테러범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접근한 목적은 확실한 증거를 잡아서 체포하려는 것이었고, 스펜서가 벌록 여사님(이름이 안 나옵니다! ㅋㅋ)에게 접근해서 친근하게 굴던 건 혹시 아내도 공범이 아닐지 확인하기 위한 거였어요. 하지만 그냥 일만 깔끔하게 처리하기엔 여사님이 너무 아리따우셔서 그만 우리 스펜서씨는 늘 은근슬쩍 편파적인 태도를 보이고 그러는데요. 이럴 때는 살짝 코믹한 로맨스물 느낌도 나고 그럽니다.


 암튼 무려 '테러리스트' 벌록씨는 사실 그렇게까지 사악한 인물은 아니에요. 걍 돈 받고 런던 시민들에게 소소한 민폐를 끼치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도입부의 정전 사건을 언론에서 비웃듯이 하찮게 다뤄 버리니 몹시 열받은 배후의 무정부주의자 빌런들이 '이번엔 역 하나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자고!' 라는 무리수를 기획하게 되고. 벌록씨는 자긴 그런 사람 아니라며 거부해 보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근처에서 애완동물 가게를 하는 다른 멤버에게서 카나리아 새장 속에 첨부된 폭발물을 접수해요. 터질 시각까지 이미 꼼꼼하게 세팅이 되어 있으니 터져야할 곳에다 두고 오면 될 일인데, 문제는 경찰이 대규모로 달라 붙어 벌록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감시하고 있었고. 그걸 또 우리 어리버리 스펜서님이 아주 어설프기 그지 없는 엿듣기를 시전하다가 현장에서 들켜 버리네요. 하지만 빌런이라 해도 옛날 영화 빌런들은 다들 그렇게 흉악한 사람들은 아니었는지(?) 엣헴. 하고 적당히 시치미를 뗀 후 스펜서를 보내주네요. 당황했습니다. ㅋㅋ


 그래서 거행 당일 날 벌록씨는 스펜서의 방문을 받습니다. 이미 정체를 들켰으니 당당하게 들어와서 폭탄 내놓으라는데 꼼꼼한 벌록씨는 이미 그 폭탄을 '살인자 바돌로메'라는 영화 필름통에 넣어서 아내의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철부지 남동생을 통해 심부름 시킨 상태였죠. 그래서 딱딱 잡아 떼니 별 수확이 없는 가운데... 이 철부지 놈이 이거 구경하고 저거 구경하고 하면서 시간을 질질 끄는 바람에 목적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트램에 탑승한 채로 다른 시민들과 함께 폭사해 버립니다. 그리고 현장에 출동한 스펜서는 불타서 날아간 필름통 뚜껑을 발견하고는 이것도 벌록 짓이라는 것. 그리고 사모님 남동생이 이걸 나르다 죽어 버렸다는 걸 눈치 챕니다.


 그때 신문 호외를 보고 똑같은 사실을 눈치 챈 사모님께선 딱 딱 잡아 떼는, 그러면서 자기 동생 죽은 게 딱히 큰 일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면서 '우리도 언젠가 아이를 만들면 말이지' 같은 무신경한 소리를 하는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고. 차려주던 밥상에 있던 나이프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데요. 은근 눈치가 좋았던 남편이 슬며시 다가오며 긴장 분위길 조성하고. 그래서 실은 방금 전에 죽이는 건 포기했던 아내가 들고 있는 나이프를 빼앗으려다가 지 풀에 가슴팍에 칼을 꽂고 죽어 버려요. 잠시 후 이 곳에 스펜서가 도착하고, 상황을 본 스펜서는 경악하며 여사님을 데리고 나가 난데 없는 사랑 고백을 하고. 경찰서에 자수하라고 그랬다가 같이 기차를 타고 도망가자 그랬다가 오락가락하다가 결국엔 둘이 함께 극장으로 돌아가는데...


 그 시점에 극장에는 폭탄을 제공했던 애완동물 가게 아저씨가 혹시 증거품이 될지도 모를 자기 새장을 가지러 왔다가 이미 출동한 경찰들에게 포위 당해서 절망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완전 경찰들로 북적거리는 가운데 사모님은 자꾸만 다른 형사들에게 자기가 남편 죽였다는 얘길 꺼내려 하고, 그걸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스펜서가 말리고. 이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남편을 잡을 순 없을 거에요! 왜냐면 남편은 죽었으니까요!!!" 라고 외치는 순간 새장 아저씨가 가져왔던 폭탄이 뻥 터지고. 시신이 산산조각난 1936년의 사건인 관계로 사모님의 살인 혐의는 증명할 길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해피엔딩인데... 그 와중에 방금 그 자백(?)을 들었던 경찰 혼자서 의아해하며 해피(?) 엔딩입니다. 이상하단 말이지, 초능력이라도 있었나? 분명히 폭탄이 터지기 직전에 '죽었다'고 했단 말야... ㅋㅋㅋㅋ

    • 히치콕 초기 영화 중에서 못 본 것이 있어서 이 영화를 봤나 안봤나 헛갈렸는데요. 제가
      본 것은 《사보타주(Sabotage)(1936)가 아니라
      《파괴 공작원(Saboteur)(1942)인 것 같아요. 원제가 헛갈리게 생겼죠.

      • 하나는 그냥 사보타주이고 다른 하나는 사보타주 하는 사람... 헷갈릴만도 합니다. 사실 저도 이 댓글 보고 '아 그거 제목이 그거였지!' 하고 있어요. ㅋㅋ

    • 한두 해 전에 왓챠에서 봤는데 스포일러를 읽으니 왜 새로운지 모르겠네요. 기억 유지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듯합니다.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근데 다 보고 나서 저 테러리스트들의 정체는 역사적으로 뭘까, 무정부주의자들이 그냥 완전 비호감 범죄자로 그려져 있구나란 생각도 했었네요.


      저는 왓챠에 올라온 고전 영화들 중에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를 이틀 전에 봤는데 요건 좀 허술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었습니다. 


      왓챠에 오즈 야스히로 영화도 몇 편 올라왓던데요, 좋은 현상이네요. 디브이디 있어도 이젠 틀 일이 없고 ott에 있으니 편하네요. 

      • 저의 경우엔 어지간히 강조해주지 않으면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의 이름을 엔드 크레딧 구경 후 몇 시간 안에 거의 까먹어버리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일부러 뭘 좀 외우는 연습이라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네요. 치매 예방도 할 겸... ㅋㅋㅋ




        맞아요 그렇긴 한데 아마 원작에서도 그 무정부주의자들이 많이 부정적으로 그려진 걸로 알고 있어요. 히치콕이야 그냥 이야기 설정이 중요했을 테니 깊이 생각 안 하고 그렇게 쓴 것 같구요.




        저도 집에 디비디가 있는 영화를 그냥 OTT로 보는 일이 많습니다. 요즘 나오는 4K 블루레이라도 된다면 모를까, OTT가 화질이 오히려 나은 경우가 많기도 하고 편의성도 그렇고... 이것이 시대의 흐름인가! 싶습니다. 하하;

    • 지금 봐도 놀라운데, 실제 만들어졌을 때 본 사람들은 얼마나 놀라면서 봤을까 생각하게 되요.

      요즘 시리즈를 한 4개 돌려보고 있어서; 영화도 좀 보고 싶은데 영 시간이 안납니다ㅜ
      • 맞아요. 보면서 '아 이때 스릴러에 필요한 문법은 이미 히치콕이 다 완성해 놨구나' 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습니다. 거의 똑같은 연출로 요즘 갬성 조금만 첨가하면 요즘 영화라고 생각하며 봐도 부족할 게 거의 없더라구요.




        전 반대로 영화들 보느라 시리즈를 잘 못 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코브라 카이' 마지막 시즌이 너무 진도가 안 나가서 포기하고 그냥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 시즌이라 보긴 봐야겠는데 너무 버겁네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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