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보신 분들. 답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스포있습니다)


이창동 감독님의 '시'..아직 상영하는 극장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다시 보기가 쉽질 않네요.

두번을 봤지만, 한번 더 보고 싶은데 말이에요.  다름이 아니라, 아직도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 때문에 물음을 던져볼까 합니다.


극중, 미자가 소녀가 빠져 죽은 강가로 가서 시를 쓰려다가 비만 쫄딱 맞고난 뒤, 중풍 걸린 노인에게 가서 아무 말없이 몸을 섞지 않습니까.

저는 그 장면이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대체 어째서 저런 짓을 하는지...하고 말이지요. 제 옆옆옆에 혼자 보러 온 여성분은 그 장면에서 연신 눈물을 훔치더라구요.

크레딧 올라갈때까지 남은 관객은 저랑 그 여성분 뿐이라, 대체 그 장면에서 왜 우셨는지...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런 용기는 제게 없기에..허허

그래서 이렇게 듀게분들에게 물어보고자 합니다.



(여담이지만, 전작 중 하나인 '오아시스'에서 설경구가 문소리를 겁탈하려는 장면으로 논란이 많았는데,또 이런 예민한 장면을 영화에 포함시켜서 조금 놀랬습니다.

뭐,'오아시스'의 그 장면과 '시'의 이 장면은 전혀 다른 부분이긴 하지만요)


여튼 학과 동기들에게 물어봤는데, 역시 여러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자가 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죽은 소녀의 심정을 이해해야 하니까'라는 말도 있었구요.

'고통을 맛 본 미자가, 죽기 전 남자구실 한번 해보고싶다는 노인의 소원을 들어주는..일종의 구원 차원인. 뭐 '박쥐'에서 송강호가 성기를 노출 했듯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너무 모호해서 다시 한번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그 장면을

'자기 손자가 저지른 죄를, 소녀를 대신하여 의식을 치루는...그러니까 죄값을 값는'장면으로 받아드렸는데, 너무 위험한 발상이자 말도 안되는 접근법이라 생각하여 

미친놈 소리들을까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ㅎㅎ;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 생각을 안해봤다가 이 글을 보고 문득 든 생각인데 강가에 가서 여학생의 처지를 느끼게 되고 난 후(빗방울이 메모장에 눈물처럼 내리죠), 성폭행을 당했던 여학생과 자기를 동일시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 정말로 현실적으로, 500만원을 마련할 곳이 아무 데도 없던 차에 잘 사는 강회장(맞나요?)의 요구를 들어주면 돈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거겠죠. 여성, 속죄, 치유, 구원.. 이런 말들은... 영화 평론에서 익숙히 본 말들이지만.. 글쎄요... 잘못한 것은 지 손자놈인데 미자가 왜 갑자기 속죄를 해야 하나요? 그것도 아무 상관도 없는 강노인한테? 저는 그냥 5백만원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 극장 여인 혹시 저 아니었는지;; 여학생 자살 이유 나오면서부터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끝까지 계속 눈물을 훔쳤거덩요;; 이창동 이 인간아 왜케 맨날 여자들 못살게구냐 이럼서..


      암튼 그 장면은 그냥 저도 단순히 봐서는 돈 뜯어낼려 그런거로 봤고..몬가 자포자기 심정도 느껴지고 같은 여자로서 전 전혀 충격적이진 않았는데. 그냥 자연스럽달까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충분히 공감도 가고요.


      결과적으론 거기다 여러 이유 갖다 붙여 생각해도 상관없져 뭐. ⓑ
    • 오히려 충격적이었던 이유라면 육십대 윤정희의 피부가 너무 뽀얗고 보드라워 보여서.
    • 저도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구요. 마침 묘하게 여학생의 처지와 오버랩되어 미자의 시 창작에도 분명 영향을 줬을 것 같더군요.
    • nightlife님/ 전 개봉일 날, 홍대 롯데시네마에서 제일 마지막 타임에 봤었죠. 정말 그 여성분이라면 이 무슨 우연이!

      //전 영화 진행상 500만원 때문이라고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는데, 조금 충격적입니다.
    • 단순히 돈 때문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나요. 원글 쓰신 것처럼 비 쫄딱맞은 다음에 바로 그 시퀀스가 등장하는 이유 정도는 있어야죠. 저도 원치않는 관계를 갖는 기분이 어떤건지 조금이나마 느껴보려고 했던 의도가 어느 정도는 있지 않나 생각해요. 미자가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세우고 돈 뜯어낼 정도로 머리회전이 빠른 캐릭터는 아니지 않습니까?
    • 외로움과 연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같이 자기 싫은 대상이랑 억지로 섹스한다"는 생각은 안들었어요.
      오히려 미자가 노인을 좌지우지한다는 느낌이 더 컸죠.
    • 돈 때문인건 아닌것 같아요. 돈을 구하는 방법이 소극적이다가 (빌려달라든지 ,딸한텐 말도 안한다든지..) 적극적이게 된 계기는 여학생의 엄마와 다시 만난 이후로부터였으니까요. 궁지에 몰리다가 필사적으로 생각난 사람이 강회장이었다고 봐요.

      저도 두 번을 봤는데 , 강에 내려가서 비에 흠뻑 젖는 장면과, 미자가 밤중에 손자에게 '왜 그랬어'라고 울부짖으며 이불을 잡아끌어도 손자의 힘에 안되는 장면이 겹쳐지면서, 그냥 어떤 울분의 해소...성적으로 힘으로 우위에 있던 '남자'라는 존재를 내려다보는 상황을 일부러 만든게 아닐까...미자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을 짜는 건 아니고,그런 감정의 해소가 아니었을까...그렇게 이해했어요.
    • 저도 시퀀스 순서상 돈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돈을 목적으로 섹스를 하고서 돈을 요구했다기보다, 돈이 급해졌는데 마침 섹스했던게 떠올랐던거라 생각했어요. 관계를 가지기 위해 노인을 찾고 관계를 가지는 동안은 돈을 목적으로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어요. 원치않는 관계를 체험해본다는 것보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여자'로 보였거든요.
    • 이창동 감독님이 쓰신 시나리오 맞죠? 굉장히 직관적으로..무의식적인 행동은 설명하지 않고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런 식으로 쓰시는 느낌. 그냥 저라도 그 상황의 그 상태였으면 미자처럼 했을 것 같아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의 일부로요. 죄책감일 수도 있고 자신도 같이 타락한다는 의미도 있고.. 그 와중에도 돈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 더 끔찍하지만..돈도 분명히 염두에 두었겠죠. 의식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을거에요. 이게 돈줄이 된다는건. 그리고 돈을 위해 그런 상황을 겪어야 했다는 것 자체가 더 징벌스러운거죠. 미자한테는.
    • 저도 돈보다는 죄의식에 발로라고 생각했어요. 손주에 죄라도 가족의 입장에서 대신 짊어지고 싶은 심리가 있죠. 이건 경험상 장담할 수 있는 감정입니다. 또 그게 죽은 여학생의 처지를 느끼고 공감해 줄 수 있다는 의견도 공감하고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죽은 여학생의 입장이 되어 손주의 죄(노인의 성욕)를 감싸주고 싶었고 그래서 행했지만. 죽은 여학생의 어머니에게서 오는 죄책감은 또다른 문제였을테죠. 그래서 노인에게는 대가 500만원을, 손주에게는 형사처벌을 받게 한 것 같습니다.
    • 참... 위에 왜 미자가 손자의 죄를 책임져야 하냐고 하신 분이 계신 것 같았는데;;;;
      씨네21 인터뷰에서 이창동은 "그건 부모의 책임"이라고 잘라서 말합니다. 뭐, 그랬다고요.
    • 자기 모르게 일어난 가족의 사소한 잘못에 부끄러움을 느낀 나머지 봉하마을에 자신을 가두고도 견디지 못해 속죄하며 죽은 노무현처럼,
      자기 모르게 강간에 가담한 손자를 대신해 속죄하기 위해 노인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는 방식으로 자신을 징벌하고도 끝내 견디지 못해 소녀의 행적을 따라 투신한 것…이라고 너무 도식적이고도 인위적인 해석을 하면 참여정부 장관 경력의 이창동 감독께서 원치 않으실 테고

      죄책감과 속죄 정도가 문학인 출신 감독의 의도였겠죠. 문학 쪽에선 비교적 흔한 은유니까요.
    • 미자가 자식의 과오에 대한 속죄양으로 목숨을 버렸다, 랄까 이런 식으로 영화에서 직접적 묘사가 되었다면 이 영화는 시가 아니라 소설이나 뭐 그런게 되었겠져.. 원래 시라는것이 직접 제시하지 않는게 제맛이라잖아여.. (응?)
    • 저는 그전에 병원에서 치매라는 진단을 받은 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죽음만 남아 있는 노인을 전적으로 이해하게 된 게 아닐까... 돈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저도 환빛님과 의견이 비슷합니다. 알츠하이머 초기증상이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손자의 비행과는 또다른 내적 충격을 경험하면서 노인에게 남은 한가지 욕망(어쩌면 살고자 하는 간절한 에너지의 표출일지도)을 그 전보다 담담히 받아들이인 게 아닌가 싶어요. 나이는 들었지만 죽음이나 심각한 질병과는 거리가 먼 줄로만 알았던 자신에게도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을 테고, 이번에는 그 전과 달리 자신이 상황을 주도한 까닭에 거부감을 애써 줄일 수 있었던 것 같구요. 그 노인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아낼 생각을 한 건 다른 사람에게 빌릴 길이 완전 막힌 걸 확인한 이후였지 처음부터 의도하진 않았을 거라 봐요.

      함께 본 동료는 "왜 저런 굴욕적인 행위까지 하면서 댓가로 받은 500만원을 합의하라고 학부모들에게 주었으면서도 손자를 신고한 거야? 그러려면 500만원 받을 필요도 없었는데" 그러더군요.
      저는 그렇게 한 게 미자 나름의 속죄의례라고 봤어요. "500만원을 주었으니 일단 손자를 살리는데 최선은 다했다. 그 노인은 어디서도 충족하기 힘든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켰으니 그 댓가를 치렀다. 하지만 손자는 손자대로 자기의 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무의식적 판단' 아니었을까요. 미자가 자신의 이런 결단을 똑 부러지는 언어를 사용해서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니까... 사실 '시'를 쓰는 것도 상당히 무의식적인 동기가 많이 작용하는 거라고 보는 입장이라서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 음...미자의 성행위의 진의(?)는 제쳐두고라도 끝부분에 손자가 경찰로 보이는 사내들과 가버린 장면에서, "결국은 합의가 되지 않았다"라는 느낌을 받았지 미자가 신고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새롭네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72 시간을 달리는 듀게 3 4,830 06-05
171 1408, 이코노미 인사이트의 '스티브 잡스' 특집.. 8 5,373 06-05
170 두근두근 첫글!+막돼먹은 영애씨 시즌7 14 4,508 06-05
169 Glee- Bad Romance 1 4,720 06-05
168 몰랐는데 럼블피쉬가 해체했군요. 2 10,827 06-05
167 말의 권력, 지적의 권력. 13 5,423 06-05
166 [댓글놀이] 새 게시판에서 하는 옛날 댓글놀이 45 4,901 06-05
165 듀나님을 팔로하기 위해 트위터 가입 3 5,505 06-05
열람 '시'보신 분들. 답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스포있습니다) 20 4,511 06-05
163 허언증이란게 9 8,582 06-05
162 아이언맨2 봤습니다. 3 4,117 06-05
161 동대문.. 2 4,141 06-05
160 나름 성공한 선거 후기 ^^ 9 4,387 06-04
159 부엌옆 아기 고양이 사진들 4 6,192 06-04
158 혹시 이 영화 뭔지 아시는 분. KFC비스켓 굽기 10 4,974 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