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츄리온 - 제국의 사냥개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본 네티즌 평 중에 "영국이 이런 소재 영화를 만든다면 부디카 얘길 해야 하거늘, 왜 로마군이 주인공이냐..."며 일갈하던 게 생각납니다. 저도 그 얘길 듣고 고개를 끄덕였죠. 근데 막상 이 <센츄리온>을 보니까...

 

  부디카 얘기보다 더 깊고 불편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디카는 로마의 지배에 용감하게 저항한 투사이니 이 사람 얘기를 하면 단순하게 침략과 정복과 그에 맞서는 용감한 저항자들 얘기를 비정하게 보여주기만 하면 되겠죠...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바로 로마군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건 용맹한 로마 전사들의 브리튼섬 정복기? 하지만 그러기에는 오프닝 멘트부터... “이 저주받은 섬...의미없는 전쟁...”막 베트남에서 힘겨운 전투라도 치른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탄식을 들으면서 이 영화가 단순한 로마군의 무용담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끔찍한 고어의 연속인 전투 장면을 보는게 좀 힘들긴 했지만, 픽트족들이 침략군에게 맺힌 한이 얼마나 큰가 새삼 곱씹는 계기도 됐죠. 학살과 강간...제국의 정복이 있다면 언제나 따라다니는 비극의 사연들.

 

  혀잘린 픽트족 전사 에테인. 그리고 그녀에게 쫒기는 7명의 로마군 생존자들. 근데 이 7명의 전사들 경력이 좀 수상하더군요. 추격자들에게 쫒기다가 간신히 동굴에 숨어 서로에 대한 인사를 하면서 이들의 가슴 아픈 과거들이 드러났습니다. 주인공 백인대장(센츄리온) 퀸투스는 아버지가 검투사 출신의 해방노예이고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병사, 아랍 출신의 취사병, 그리스 출신의 병사까지. 7명 중 절반 이상이 로마인이 아닌 외부인들이었죠. (퀸투스의 아버지는 분명 전쟁포로일테고 어디서 잡혀왔을까? 게르만? 갈리아? 아님 여기 브리튼섬?)

 

 여기서부터 슬슬 제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자들은 대체 뭐지? 왜 이들이 로마군에 충성을 바치는가? 혹독한 포로생활과 노예생활을 끝내고 얻은 로마 시민권이 너무 소중해서? 아님 그냥 군인이라는 직업에 바치는 성실함? 아니면 퀸투스처럼 나는 진짜 위대한 제국 로마인이 되었다는 정체성 때문에?

 

  “<라스트 모히칸>(1992) <아포칼립토>(2006)를 잇는 정복과 침략을 다룬 액션 스릴러.”

 <센츄리온>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닐 마셜 감독은 이렇게 작품의도를 설명했습니다.  (지용진 기자 ] | 무비위크 | 2010.08.09

제국의 희생자들이 오히려 제국에게 더 열심히 충성하고 그들의 주구가 되어 저 험한 전장에서 저렇게 비참하게 죽어가야 한다니 어찌 이런 아이러니가...

 

1.

아무튼, 어찌됐든 이 영화 강추입니다. 시간 되시면 한번 보시길!. 물론 <300>을 기대하시면 안되구요...-_-;; (근데 주인공 퀸투스역의 마이클 파스밴더는 <300>에 출연한 적이 있더군요.)

 

2.

그런데 정말 9군단은 어찌된 걸까요? 검색해보니 모조리 실종...이라는데 역시 전멸했나 본데 어쩌다 생존자가 한 명도 없을까 싶네요. 정말 이 영화에서 묘사된 대로 된건지..

    • 근데 하드리아누스 대제 시절이라면 그 사람들도 다들 자기네들을 로마인이려니,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글레디에이터의 막시무스도 사실은 스페인인이 아니었나요. 제 기억엔 그랬던 거 같은데.
    • 저도 그렇게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된 마당에 로마인이라는 정체성이 없다면...뭐 달리 살 방법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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