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2회차 보고 왔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평론가들의 평점과 제 개인적인 평가를 비교할 때가 많습니다. 평론가들이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평은 참조할만한 것이니까요. 제가 재미있게 봤는데 평론가들이 점수를 짜게 주는 건 그냥 혼자 서운해하고 말면 되는 일입니다. 제가 별로 재미가 없었는데 평론가들이 점수를 높게 주면 그 때부터는 무엇을 놓쳤는지 좀 고민하게 되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면 적당히 타협을 합니다. 대다수 평론가가 호평 일색인데 제가 그 정도 감동을 못느낀다면 그 간극에서 저는 작은 절망과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특히나 대단한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같은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평론가와 제 평가 사이의 간극을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아마 [배트맨 대 슈퍼맨]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느꼈는데 의외로 별 두개반에서 세개를 준 평론가들이 많더군요. 시간을 흐르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가 [배트맨 대 슈퍼맨]에 실망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배트맨과 슈퍼맨이 친우가 되는 감정적 비약이었습니다. 이른바 '느금마사'라고 불리는, 연인과 엄마가 동명이인이라는 설정 하나만으로 서로 죽일듯이 싸우던 초인들이 경계의 벽을 허문다는 건 당시의 저에겐 전혀 납득되지 않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 영화만의ㅣ 암울하고 불길한 그 분위기는 히어로 영화 장르에서는 꽤나 인상깊은 것이라는 걸 새로 느꼈습니다. 김혜리 기자가 지적한 장면들, 슈퍼맨이 하늘에서 땅 위의 사람들을 우울하게 쳐다보는 장면 같은 것들은 평론가들의 별점을 수긍하게 되는 증거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션 임파서블]시리즈는 제가 과연 가슴을 열고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제대로 봤는지를 되묻게 됩니다. 특히나 7편이었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은 이상하게도 두번째 볼 때 더 재미있고 그 스턴트도 살떨리게 다가오는 묘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영화 감상은 최초의 감상만이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어떤 평론가님도 그게 맞다고 직접 답변을 했었던...) 다만 어떤 영화를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장르를 장르로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모든 영화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가상의 잣대 같은 걸 저도 모르게 만들어놓고 끼워맞추는 건 아닌가 하는 질문들이 제 안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영화 [샤잠]이 온당한 평가를 못받았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그건 이 영화를 아마 아이언맨을 위시한 마블 히어로들의 성인적 욕망을 이 영화에 투영했기 때문에 생긴 감상의 실패 같은 것이라 추정합니다. 그처럼 제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볼 때 정확한 기대를 하고 있는지, 혹은 어떤 편견에 사로잡힌 건 아닌지 하는 내부점검을 하게 되는 거죠.
어제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을 영등포 씨지브이 돌비관에서 다시 봤습니다. 정말 혐오하는 별점 시스템을 인용하자면 별점 하나를 더 얹어주었고 별점 세개 정도는 최소한 받아야하는 작품으로 평가를 수정했습니다. 다시 보면서 제가 놓쳤던 것과 여전히 안좋은 것들에 대해 새로운 확신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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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전체에 깔린 톰 크루즈의 나르시시즘은 여전히 별로였습니다. 일전에도 밝혔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다른 캐릭터들이 유난히 이든 헌트에게 고마워하거나 인정하는 대사들을 많이 하는데 좀 낯간지럽더군요. 그렇지만 이 영화가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인 이상 이건 피할 수 없는 숙명같은 것입니다. 견뎌야 할 뿐이지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다시 보면서 처음 봤을 때보다는 조금 더 너그러워지긴 했습니다.
어떤 평론가가 이든 헌트는 도대체 누구이며 왜 저렇게 치열하게 싸우는지 영화 내부에서, 심지어 캐릭터에서도 그 원동력을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게 기억이 납니다. 그렇기에 7편과 8편에서 계속 나오는 '우리 주변의 가까운 이들을 위해, 한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이들을 위해 싸운다'는 그 복무신조는 이 영화의 공허한 이념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달까요. 이런 지점에서 이번 작품이 제게는 흥미로웠습니다. 이든 헌트가 마지막 작품에 다다라서야 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든 헌트는 시리즈 안에서 주로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고 국가나 다른 기관으로부터 견제 및 의혹을 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아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미션을 하달받습니다. 그는 미 함모와 잠수함 등 미군의 위용을 등에 업고 임무를 진행합니다.
다른 인물들도 스스럼없이 미국을 대변합니다. 잠수함의 통제자는 노골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러시아는 CIA의 기지에 침입합니다. 그레이스는 지금 국가간의 다툼을 할 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영화는 다른 핵보유국가들을 언급하기도 하고, 대통령 에리카의 발언을 통해 미국의 힘과 양심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 이든 헌트는 명백하게 미국인이고 미국의 힘과 가치를 등에 업고 싸웁니다. 세계 패권국가로서 우리가 다른 국가나 시민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는 일종의 국가적 소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봤을 때 MIF의 요원들이 외우는 그 신조에서 '우리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미국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흐름이 외재적으로 [탑건: 매버릭]의 대성공 이후 톰 크루즈가 조금 더 솔직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미국인으로서 세계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그 미국패권주의를 이제는 눈가리고 아웅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 같기도 합니다. 혹은 톰 크루즈가 갈 수록 우경화되는 미국을 우려하며 이런 설정을 넣진 않았는지도 생각해보게 되지만, 그건 솔직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설정을 내수용으로 넣고 메이저 백인(남성)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거죠. 분명한 건 이 영화에는 의도적으로 선택을 해야만 나올 수 있는 흑인 여성 대통령, 백인 여성 해군 결정권자, 흑인 잠수함 사령관, 백인 여성 잠수함 요원, 동양인 여성 경호원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극 중 파리스는 계속해서 프랑스어로만 말합니다. 이 미국인들의 팀에서 프랑스인이 끼어있다는 이질성을 일부러 티를 내는 거죠. 결국 이든 헌트는 세상을 구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든 헌트가 그토록 구하고자 했던 세계는 어떤 곳인가. 그것은 흑인 어머니가 군인이자 아들을 껴안고 안도하는 세상입니다. 2020년대의 미국을 생각한다면 이 메시지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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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보면서 잠수함 시퀀스에 또 다시 감탄했습니다. 저는 경비행기 스턴트보다도 오히려 이 잠수함 시퀀스가 훨씬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미 어지간한 오락영화의 리듬은 다 학습했다고 생각했지만 잠수함 속에서의 씬들은 예측 불허의 긴장이 있었습니다. 보면서 정말 잘 찍었다, 라고 감탄할 때가 있는데 이 장면이 딱 그런 기술적 완성도를 체감할 수 있었던 씬이었습니다.
톰 크루즈의 스턴트의 핵심은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높은 곳에서 매달리면서 중력과의 싸움을 해야하는데 그는 고도를 조정하거나 중력을 조정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매달려야 합니다. (톰 크루즈는 히치콕 팬인데 그가 [현기증]을 어떻게 보고 그의 영화에 인용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잠수함 시퀀스는 조금 특이한 게, 그가 매달릴 곳이 없습니다. '추락'의 개념이 좀 옅은 수중이기 때문에 이제까지 해왔던 스턴트와는 다른 결의 스턴트가 작동합니다. 추락이라는 게 위에서 아래로의 현상이라면 이 잠수함 씬에서는 톰 크루즈의 몸이 x축 y축 z축 사방에서 통제불가의 상황에 놓입니다. 물 안에서 그가 계속 허우적대면서 자기 몸을 어떤 방향으로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습니다. 세바스토폴에 가기 위해 바닷속으로 진입할 때부터 그는 계속 거대한 흐름에 휩쓸립니다.
세바스토폴에 잠입한 이후에도 톰 크루즈는 계속 무력합니다. 어떤 장비의 힘을 빌려서 자신이 순간순간 통제를 하며 위기탈출을 하던 스턴트들과는 다르게, 이 잠수함 자체가 계속 굴러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몸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됩니다. 이후에는 거대한 쇳덩어리들이 떨어지고, 거기에 짓눌릴지도 모른다는 부담이 가중됩니다. 안팍으로 위기가 연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퀀스에서 톰 크루즈는 이 전과 다르게 끈기를 발휘한다거나 집요한 무엇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요.
이 시퀀스는 특히나 데드 레코닝의 액션과 비교됩니다. 2차원적으로 위 아래, 혹은 앞뒤옆, 이런 식의 단선적인 액션 스턴트들이 진행됐다면 이번 작에서는 아예 3차원적으로 사방팔방에서 신체를 옭아매는 장면들로 업그레이드 된거죠. 이것은 이후 나오는 경비행기 스턴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디자인이 굉장히 잘 된 액션 시퀀스라고 느꼈습니다.
탈출하는 장면에서 잠수복이나 산소통을 다 버리는 게 비현실적이긴 합니다만 저는 이게 톰 크루즈 장르 특유의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는 관용할 수 있는 거죠. 현실적으로 계속 따지면 [탑건: 매버릭]도 시작한지 10분만에 끝입니다. 그 정도 날아가는 비행기가 그렇게 추락했는데 파일럿이 살 확률이 없죠. 이걸 허용하는 관객들만다 편차가 있을 것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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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메인빌런으로 나오는 엔티티를 보면서 이 영화가 가능성을 놓친 것 같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 영화에서 엔티티가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 장면으로 딥페이크 이미지 위조의 씬들을 보여줍니다. 즉 엔티티는 뭔가를 거짓으로 바꾸는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당연히 영화 업계에서 진짜로 뭔가를 보여주려하는 톰 크루즈를 은유할 뿐더러, 진짜라는 감각을 어떻게 사이버세계에서의 위조된 감각으로부터 지켜낼 것인지에 대한 현실의 싸움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할 게 되게 많은 소재이고 첩보물로서 의심과 진실의 간극을 재미있게 다룰 소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엔티티를 세계멸망에 미쳐있는 광인처럼 의인화를 해놓았습니다. 엔티티와 맞서 싸우는 가장 큰 이유는 핵미사일 발사 저지입니다. 인간 테러리스트들이나 할 법한 생각을 인공지능이 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거죠. 물론 전세계에 팔아야하는 블록버스터이니 이렇게 쉽고 직관적으로 설정한 것은 이해가 갑니다만 다만 인공지능이라는 존재의 미지성을 영화가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다는 인상은 있습니다. 관 속에서 이든 헌트가 엔티티에게 너는 보여줄 진실이 없는 존재이고, 너가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은 우리가 진짜로 만들어낸 무엇을 그냥 위조한 것일 뿐이라는 대사 정도는 넣었으면 멋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톰 크루즈의 영화적 태도와도 바로 연결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 환상을 보고 보여주면서 살지만, 그래도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건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은 바로 우리의 육신의 감각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아마 제가 요즘 들어 많이 느끼는 것이라서 개인적으로 갖는 바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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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행기 스턴트에 관한 이야기는 추후 따로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