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책 두 권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 1시즌을 다시 봤어요. 8화 미친놈 목사 나오는 장면 비롯해서 극혐 부분은 스킵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을 다시 봤어요.
비호감이다가 점점 영혼의 단짝이 되는 인물들 이야기는 전형적인데, 남녀 연애물 아니고 유사 부녀의 관계라 더 마음 놓고 좋았고 이입한 바가 있었나 봅니다. 1시즌 후반으로 가면서 아이는 어른을 돌보게 되고 정신적으로도 어른을 넘어서고 있어요.
저는 씁쓸하게 인정합니다. 어른의 그 좁은 사랑이 내 입장이라는 확인, 아이와 같은 시야를 발전시키지 못한 평범한 어른이 되었다는 확인을 합니다.
잡담을 좀더 이으면, 4화에서 조엘이 동생 토미 얘기를 합니다. 토미는 항상 세상을 구해야 된다는 식의 선택을 했다며 파이어플라이도 토미도 다 망상에 빠져 그런다고요. 엘리는 다 듣고나서 아무 희망이 없으면 왜 사느냐고 물어요. 저도 어릴 때 신앙이 없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랬던 생각이 납니다. 죽으면 끝인데 왜 그렇게 살 수 있는지, 그렇게 살아도 아무렇지 않은지.(그래서 고1 때는 담임에게 신앙을 권유하기도.ㅋㅋㅋ 샘, 미안....)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읽었어요.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습니다.
1976년을 살고 있던 흑인여성이 백 년도 훨씬 전인 1815년 지점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과거를 방문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 시간과 공간은 자기 조상과 얽힌 곳이고요.
주인공이 흑인여성이므로 이 지점으로의 타임슬립 설정은 이중, 삼중의 억압을 드러내는 장치가 됩니다. 주인공의 파트너를 백인남성으로 만들어 놓아서 생각의 여지가 생기기도 하고요. 역사를 기록으로 보고 지식으로 챙기고 치워두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직결된 내 문제로 여길 수 있게 하는 데는 소설의 힘만큼 큰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이 소설이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이야기로 직선 구조로 되어 있음에도, 현대의 흑인여성이 특정한 시대를 반복적으로 가게 된다는 것 자체가 큰 충격이 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힘이 생깁니다. 현대를 사는 이들이 역사책이 아니라 이 소설을 통해 역사를 체험하는 것은 훨씬 강한 자욱을 남길 것 같네요. 소설은 미국의 어느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정세랑 작가 비롯해서 여러 분이 21세기 최고 책 중 한 권이라 꼽고 있습니다. 저도 이런 추천을 보고 이번에 읽었고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폴란드인]입니다. 얼마 전에 소개했던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작가 J.M.쿳시의 근작입니다.
사실 작년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궤도]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시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우주 정거장의 여섯 우주 비행사들 이야기라고 알고 시작했는데 이게 우주적으로다가 시적이네요. 존 벤빌의 [바다] 후유증이 남아 있었던지라 급히 궤도를 수정해서 같이 구입했던 [폴란드인]으로 옮겨 갔어요.
[폴란드인]은 중장편 정도의 분량인데 6장 중 이제 1장을 읽었고, 앞서 읽은 이분 소설에 비해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듯해요. 소설 읽을거리를 찾고 계신다면 시도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아직 초반이라 다 읽어봐야 알겠지만 육분의 일은 일단 재미있네요.
지난 번 올렸던 쿳시에 대한 글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데 [폴란드인]이 스페인어로 아르헨티나에서 먼저 발간되었다고 해서 스페인어로 썼는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고 스페인어 번역본을 원래 쓴 영어 원작 보다 먼저 출간한 거라고 하네요. 영어의 주도권, 패권에 대해 반발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과거 스페인어의 확장 과정을 보면 거기서 거기인 점도 있으나 현재 시점에서는 영어의 주도권은 비교할 수 없으니까요. 작가가 언어 식민주의적인 현실을 환기시키고 싶었나 봅니다. 우리가 영어 공부에 쓰는 돈만 떠올려 봐도 언어 식민주의라는 게 확 와닿습니다. 작가는 원래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이니 네델란드어가 변형된 아프리칸스어라는 언어를 쓰셨겠네요. 작가로서도, 출신지 언어 면에서도 이래저래 언어 문제에 예민하였을 듯합니다. 이 소설 [폴란드인]의 왕은철 번역가가 책 뒤에 이와 관련한 해설을 붙이셔서 참고가 됩니다.

게임 원작과 스토리는 거의 같지만 아무래도 드라마는 이런 식으로 대사를 통한 디테일을 넣고 그래서 설득력을 높이고... 그런 게 가능하니 원작보다 더 몰입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게임만 하고 드라마는 안 봤는데, 게임 하는 내내 '뭐야 칠드런 오브 맨이랑 너무 똑같잖아?'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ㅋㅋㅋ
+ 생각해보니 '킨'과 거의 똑같은 설정의 시간 여행 호러 영화가 있었는데요. 장편은 아니고 앤솔로지 중 한 에피소드 정도였던 것 같고... 제목은 이게 아니었는데 우연의 일치인 건지 개작을 한 건지 궁금해지네요. 더불어 그 작품의 제목두요. 왜 기억이 안 나니... ㅋㅋㅋㅋ
게임은 직접 인물을 움직이니 그것만의 몰입도가 있겠지만 드라마는 대사빨이 커지네요. 얼핏 듣기에 벨라 램지가 연기한 엘리 외모가 게임과 안 맞아서 말이 나왔다는 것 같은데 저는 게임 인물을 모르지만 이 엘리 너무나 찬성입니다. 여튼 만든 사람들이 능력자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음악도 좋습니다. 마음이 바뀌셔서 드라마 보시게 되길 바랄게요.(왜 안 보시려고 결심하셨을까요??)
시간 여행 호러 영화는 제가 거의 본 게 없어서 다른 회원분들의 도움을 요청해야겠네요..ㅎ
‘라스트 오브 어스’ 재감상
하시는군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 이야기가 2시즌에서 더 크게 펼쳐지는데 감탄하기는
했습니다.
조엘의 아버지 플래시 백을 통해서 대를 이어 물려주는 폭력성과 더 나아질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 또는 결국은 그 굴레를 끊지 못하는 저주 같은 게 아주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인류를 이어갈 생존을 이야기하는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최후를 이야기하는지 애매한 ‘라스트 오브 어스’라는 제목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고 느꼈습니다. (게임을 전혀 안해서) 게임 원작이라고 좀 가볍게 생각했는데 파헤칠
거리가 많은 드라마입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은
정말 흥미진진하면서 내용도 깊은 소설이었습니다. 현대인이 과거로 갔을 때 미국 남부의 흑인 여인이기
때문에 겪는 폭력과 억압을 주인공의 눈을 빌어 직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시대상을 생생하게 다가오게 했고요. 현대
흑인 여인인 주인공이 이 폭력과 억압을 휘두르는 백인 남자 조상과 인연을 끊고 싶어도, 그 사람이 조상이라
결국은 피와 살로 연결되어 있다는 현실을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한 결말을 읽으면서 미국 흑인들이 과거를 바라보는 복잡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듯 합니다. 이 작가는 시리즈도 많은데 마지막 편을 완성 못하고 작고한 Parable of the Sower / Parable of the Talents 시리즈도 역시 너무 좋았고요. 버틀러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서 그런지 그 다음에 읽은 Fledgling은
그만큼 다가오지는 않아서 실망했네요.(약간 헐리우드 영화풍으로 화려하고 재미있기는 했습니다.) 이보단 국내 번역물 단편선으로 읽은 ‘블러드 차일드’의 단편들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 정도 작가면 얼마 안되는 나머지 작품도 다 봐야겠다고 아마존에서 The
Xenogenesis Trilogy와 The Patternist Serie도 킨들로 받아
놓긴 했는데 언젠가는 읽겠죠;;;;
좀비들이 활약하는 디스토피아물인가 했는데 보고 나니 액션 위주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보다 인물 관계에 더 신경을 쓴 시리즈라는 걸 알겠어요. 언제나 기본이 되는 것, 알맹이는 관계이고 캐릭터인데 망한 세상을 배경으로 살아남기가 절대적 과제란 점이 그것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습니다. 잘 만든 드라마는 왜 재미있는지 자꾸 생각하게 하는 거 같아요.
[킨] 경우, 과거로의 시간 여행 이야기는 흔하지만, 어떤 인물이 어떤 시대로 가는지만으로 이만한 흥미와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되는구나 깨닫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을 손에 잡은 배경에 확실하게 의식한 건 아니지만 얼마 전에 본 '씨너스'의 영향도 조금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미의 경우에는 원주민, 흑인, 백인의 구분 내지 차별이 미국 같이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인종적으로 완전히 섞여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제가 지식이 없어서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한창 활동할 나이에 갑자기 떠나셔서 안타깝더군요. 저도 '블러드 차일드'는 언제 읽어 보려고요.
1. 라스트오브어스 너무 희망이 없어서 1시즌 보다 손놓고 있습니다. 20년이 지나도 백신이 안나왔다는게 참... 현대 생물학의 발전을 너무 모르는 거 아닌가 싶고. 20년이면 그동안 돌연변이가 수없이 출연하고 생성이 바뀌었을텐데 말이죠.
2. 옥타비어 버틀러는 블러드 차일드를 읽었는데 그때 말로 '공상과학'소설이 이렇게도 쓰여질 수 있구나 하고 충격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SF가 백인유럽남성의 바운더리를 완전히 깨고 나왔다고 봅니다.
그나저나 토마님은 신앙인의 과거를 가지셨군요.. 어째 그런 분위기가 좀 있었던 것 같기도...
너무 어이없이 세상이 폭싹 망해버렸죠. 하지만 코로나19 세상을 생각하면 저런 일도 불가능은 아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백신을 계발하면 돌연변이도 출몰할 것 같고...이 시리즈 내에서도 2시즌에 그 곰팡이 괴물들이 진화하는 거 같았어요. 아직 본격 다루진 않았지만요.
저는 sf를 별로 읽지 않았는데 최근 우리 문학계를 보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싶어요. 장르와 시대 현안이 결합되어서 크게 장을 만들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요즘은 이 장르에 관심이 갑니다.
개신교에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천주교는 '냉담자'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한 번 세례를 받으면 끝이라는 것이죠. 니가 아무리 그래봤자 벗어날 수 없다, 뭐 그래서 이런 단어도 있는 거겠죠. 제 짐작에 듀게에도 이 범주에 속하는 돌아서 있는 신자들 무리가 꽤 있는 거 같아요. 아주 저 멀리 간 것 같지만 교회 입장에선 여기 주인장도 냉담자로 분류.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소속이라고 할 수 있을지. 하여튼 어떤 성향 같은 건 남아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