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퍼즐 - 조은석 특검 임명으로 새로이 보이는 드라마

씨너스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이미 있는 글에 댓글로 달면 될 것 같아서, 드라마 이야기로 틉니다. 나인 퍼즐. 생각보다 너무 회자되지 않아서 의외인 드라마예요. 만듦새는 좀 허술하지만 현실과 조응하는 바가 큽니다. 드라마 속 인물이 그냥 그대로 조은석인데....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은 조은석이 칭송받을 때마다 얼마나 피눈물을 흘릴까요. 조 특검이 성과를 낸다고 해도 그의 과는 절대로 묻혀서는 안 됩니다. 하유불상엄이란 오자성어가 있습니다. 옥의 티와 광채는 서로가 서로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미덕은 미덕대로 평가하되 그 사람의 결점 비판도 냉정하게 해야 합니다.  

<나인 퍼즐>

퍼즐 한 조각이 배달될 때마다 살인이 일어난다. 살해된 삼촌을 최초 발견한 윤이나(김다미)는 목격 상황에 대한 기억을 잃은 상태로 프로파일러가 되어 경찰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경찰 김한샘(손석구)은 유일한 목격자인 윤이나를 10년째 살인 용의자로 의심하는 중이다. 10년 뒤 다시 퍼즐이 배달되고 연쇄살인이 시작된다. 주조연급뿐 아니라 잠깐 등장하는 특별출연들이 모두 무게감 있는 배우들로 채워져 있고 전체적으로 연기가 빼어나다.

범인이 보내는 퍼즐의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패닉 2집 '밑'의 수록곡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를 연상했다. 실제로 '밑' 앨범 표지와 퍼즐의 그림은 그로테스크한 흑백 드로잉으로 비슷한 분위기이다. 피해자의 원한이 복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노래와 드라마는 통하는 면이 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덟 명이 살해당하는 연쇄살인사건이 전체 드라마의 큰 줄기이고, 중간쯤인 5화에 컨테이너에서 노동자가 음독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액자처럼 들어 있다. 따라서 이 중간 사건은 전체 사건의 진행방향을 암시한다. 5화에서 중년의 남성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에 한 노동자의 아들이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단기 근무를 하러 온다. 이 젊은이는 2인 1조로 일해야 하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동료 노동자들이 안전 수칙을 어기고 혼자 일하게 내버려 두는 바람에 끼임 사고로 사망한다. 사고 발견시 119를 먼저 불렀으면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사장이 사고 발생시 자신에게 먼저 연락하라고 했기 때문에 신고를 늦게 하고 만다. 자신의 아들을 잃은 노동자는 닫힌 공간인 컨테이너 안에서 동료 노동자들과 술을 마시다가 타살로 위장한 자살을 한다. 왜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동료들 앞에서 자살했을까? 유서도 없고 원망의 뜻을 남긴 적도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동료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죄책감으로 고통받으라고 자살한 것으로 경찰들은 추정한다.

끼임사고는 SPC의 잇다른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의 고 김용균씨와 고 김충현씨, 구의역 김군 사고 등으로 널리 알려졌다. SPC의 최근 사고는 지난달 19일, 고 김충현씨의 사고는 이달 2일 일어났다. 2인 1조, 또는 3인 1조로 작업해야 하는데 혼자서 작업하다 끼임사고로 사망했으며 반복적인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드라마 속 사건과 흡사하다. 이 실제 사건들에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실제 사건들에서는 사측이 위험한 1인 작업을 지시했으며 피해자의 유족들은 사건을 알리고 재발 방지와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우고 있다.

참사의 해결을 위해 적어도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 번째는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명예 회복 및 공적 애도, 두 번째는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책임 추궁, 세 번째는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 도입이다. 실제 사건들에서는 유족들이 침묵하지 않았고 동료 시민들이 연대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싸워왔다. 실제 피해자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행동하고 쓰고 배우고 가르치는 주체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피해자의 아버지는 그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서 원한을 꽁꽁 숨긴 뒤, '내가 왜 자살하는지' 일언반구 없이 침묵 속에 자살하는 방법을 택한다. 또한 실제 사건들에서는 사측이 안전 수칙을 어기고 위험한 작업을 강요했지만, 드라마에서는 노동자들이 도덕적 해이로 위험한 작업을 신참에게 혼자 맡긴 것으로 그려진다. 실제 상황에서는 트라우마를 겪은 또다른 피해자였을 동료 노동자들이 드라마에서는 가해자로 설정되어 있다. 이전에도 있었던 산재 처리 과정에서 사장의 강요로 신고를 늦추게 되었다는 설정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사측은 이 드라마에서 가해자의 위치에서 빠져 있다. 또한 외부를 향해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침묵 속에 자살을 택한 피해자의 유족이라는 설정 역시 모티브가 된 사건과 판이하다. (추리극의 형태를 위해서 비밀스러운 죽음을 설정했겠지만, 단말마조차 내지 않은 억울한 죽음이란 오히려 어색하지 않은가. 심지어 장화홍련전에서도 원님에게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을 호소한다.)

드라마가 실제 사건을 그대로 그려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참사의 원인을 동료 노동자로 설정하고, 피해자인 노동자는 끝끝내 입을 다물고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끝을 맺는 설정은 곱씹을수록 불편하다. 이런 구도는 누구에게 이로울까. 드라마 후반까지도 살해된 사람들의 공통된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다가, 막판에 이들이 재개발 과정에서의 폭력적인 철거와 연루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한강 이북에서 가장 비싼 땅이라는 위치와 철거 과정에서 화재로 사망자가 나오는 장면, 철거 후 초고가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점 등에서 2009년 용산참사에서 모티브를 얻었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이라는 이름의 철거용역업체는 성폭력, 살인, 폭력, 방화, 횡령, 협박 등으로 악명이 높은 실제 철거용역 업체 '다원'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참사 피해자의 딸이 참사를 낳은 원흉들을 한 명씩 살해하는데, 이 때도 5화의 끼임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가해자와 가해 시스템에 대해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않고, 수수께끼의 살인을 이어간다. 철거용역업체 사장, 아파트 건설업체 사장, 철거민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를 쓴 기자, 폭력 철거를 눈감아준 경찰서장, 불법철거건 고소를 뒷거래로 각하한 검사 등이 그 대상이다. 강제철거의 가해자들을 왜 죽였는지, 그 내막은 경찰들이 파헤쳐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참사 유가족이 강박적인 자아 속에 고립되어 스스로 내파되어 원한에 의한 개인적인 복수만 이어가다가 결국 본인도 자살하는데, 이는 참사를 그리는 퇴행적인 방식이라고 느껴진다.

실제 용산참사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는 상황이며, 용산참사와 산업재해들의 담당 변호사인 권영국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이 사건들을 언급했다. (그는 용산참사 살인진압의 책임자인 김석기의 당선을 막기 위해 경주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기도 했었다.) 피해자들과 피해자의 지인들이 참사로 고통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싸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드라마 작가에게는 물론 창작의 자유가 있다. 한쪽 면에만 집중한 가상의 스토리를 짜는 것도 가능하다. 아예 모티브만 따온 미스테리 추리극이라면, 현실의 사건과 무관하게 가상의 상황 속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에서 높은 완성도가 필요하다. 복선과 암시가 해결 과정에서 적절히 연결되고 설명되는 만듦새가 탄탄해야 한다. 실제 사건들과 무관하다면 작품 내적으로는 짜임새가 있어야 할 텐데, 아쉽게도 뿌려진 '떡밥'들은 제대로 회수되지 않고 끝나 버렸다.

한편, 사회적 참사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는 시선이 있다. "왜 사람을 죽여서 사람 사는 곳을 만들지?"라는 대사에서는 나도 가슴이 저렸다. 이 드라마 때문에 참사가 낳은 파장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면 사회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술한 시선 때문에 참사를 다루는 방식이 소재주의에 그쳤다는 의구심이 든다. 참사를 그린 작품이 많다면 옥석을 가릴 수 있지만, 그간 별로 없었으니 다뤄지는 것만으로도 가치있게 느껴지게 되는 착시가 생길 수도 있다. 마실 물이 부족하여 너무 목이 마르면 수질을 덜 따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고민이 확장되지 않고 멈추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사람 갈아넣어서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인데 주인공은 숨쉬듯 일회용품을 쓰고 석유 낭비하는 대형 차를 타고 아무렇지도 않게 배달을 계속 시킨다. 그런 소비가 아주 무해하고 평화롭게 그려지는 것이 불편하다. 게다가 그런 소비는 윤이나도 마지막에 살짝 자각하듯이 거대한 착취에 기반한 상속받은 부에서 나온다. 부모가 재개발 지역에서 상가 열 개를 갖고 있다가 거액의 보상금을 받고, 삼촌이 강제철거 뒷거래 댓가로 아파트 세 채를 받고, 그 모두를 상속받은 윤이나는 거대한 불로소득을 누리고 거대한 저택에서 가사노동을 전혀 하지 않고 지낸다. '조선족'으로 보이는 가사노동자의 노동을 윤이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누린다. 이미 충분한 월급을 받고 있을 프로파일링 팀원들은 그런 윤이나가 매일 들고 오는 커피와 케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먹는다. "경찰 복지가 아니라 이나 복지라니까."라는 말을 하며, 거대한 불로소득의 떡고물을 자존심도 없이 주워 먹는다.

사람을 죽여 아파트를 만드는 가해자들의 죄악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 드라마는 그 모든 소비가 어딘가의 원주민 공동체와 생태계를 착취한 결과라는 연결까지는 닿지 않는다. 그 배달도 누군가의 피와 뼈와 눈물로 이루어졌다는 결론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그 쓰레기가 누군가의 삶과 삶터를 망가뜨린다는 점과는 연결되지 않는다. "왜 사람을 죽여 사람 사는 곳을 만들지?"라는 질문은 "왜 사람을 죽여 사람 먹는 걸 만들지? 왜 사람을 죽여 사람이 이동하지? 왜 사람을 죽여 사람 먹는 걸 배달시키지? 왜 사람을 죽여 전기를 만들지?"라는 질문들로 확장되지 않는다.이런 한계가 과거의 피해자가 증오로 가해자들을 한 명씩 죽이고 나중에 자신도 자살하는 퇴행적인 설정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피해자들과 연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왜 전혀 제시되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

    • 언젠간 봐야겠네... 라고 결심한 드라마라 스포일러 표기된 부분부터 쭉 내려 버렸기에 댓글로 할 말은 거의 없지만...




      요즘 정치 뉴스를 열심히 안 봐서 조은석 검사가 그런 사람이라는 건 이 글로 처음 알았습니다. 갑자기 기분이 참 찝찝해지네요. 뭐 지금껏 특검이란 거 하던 걸 보면 늘 주인님(...) 시키시는 방향으로 열심히 일 하던 터라 다른 걱정은 없습니다만, 아주 별로네요. 허허...;

      • 제 기준 별로 잘 만든 드라마가 아니라 정주행 추천드리기 뭐하고.. 대충 후딱 보시고 제 평을 읽어주시와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29217 [먹거리잡담] 저녁으로 시킨 치킨 망했어요ㅜ 13 409 06-22
129216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재밌던데요? 9 652 06-22
129215 [디플] 라이언 머피 사단의 소소한 시트콤 ‘미드 센추리 모던’ 7 252 06-22
129214 (쿠플) 1. 비틀쥬스 비틀 쥬스 2. 트위스터스 8 226 06-22
129213 존 밴빌 [바다] 잡담 4 156 06-22
129212 속보 - 미국 이란 지하 핵시설 폭격 5 416 06-22
129211 [vod바낭] 착한 놈들끼리 치고 받는 스릴러라니. '나이트 콜' 잡담입니다 2 280 06-21
129210 일본만화 잡담 - 작년에 나온 베르세르크 42권을 보고, 요츠바랑 16권(스포있음), 슬램덩크 전자책발매 4 256 06-21
129209 [프라임 비디오] 소박하지만 알찬 SF '어세스먼트' 4 235 06-21
129208 잡담, 책 두 권 6 372 07-01
129207 (쿠플, HBO) 더 소프라노스 5 264 06-21
129206 잡담 - 나이가 들어서 무력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랬다는 걸 이제 알았을 뿐 2 260 06-21
열람 나인 퍼즐 - 조은석 특검 임명으로 새로이 보이는 드라마 2 316 06-21
129204 케이팝 데몬 헌터즈 - 6월의 구려구려 컨텐츠 11 492 06-21
129203 [쿠팡플레이] 호기심이 고양이를...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 잡담입니다 10 301 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