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스베스 드라마 감상...주인공이 빽이라도 있는건가?


 1.엘스베스라는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진건지 모르겠어요. 굿와이프에서 엘스베스가 그렇게 중요한 캐릭터였나? 물론 나올 때마다 이기고, 미워할 수 없는 타입의 캐릭터인 건 맞아요. 엘스베스를 캐릭터로 쳐준다면요.


 한데 내가 보기에 엘스베스는 굿와이프에서 그냥 무안단물처럼 쓰여진 도구예요. 주인공들이 꼭 이겨야만 할 때 나타나서 확실한 승리를 보장해주는 천재이자 조커죠. 그리고 조커는 아주 가끔씩만 등장해야 재미가 있는 패지 너무 자주 나오면 질리죠. 엘스베스같은 캐릭터가 리얼한 드라마에서 레귤러였으면 얘가 왜 이렇게 똑똑한지, 어떤식으로 똑똑한지 작가는 머리를 싸매며 묘사해야 해요. 하지만 가끔씩만 써먹는 조커라서 '그냥 천재니까'가 통하는 거거든요. 


 시청자 입장에서도 자주만 안 보이면 캐릭터 설명에 허술한 부분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줄 수 있어요. 한데 얘가 너무 많이 등장했다면 나름대로 리얼한 굿와이프의 톤과 맞지 않는 엘스베스 특유의 질감은, 드라마의 수준을 떨어뜨렸을 거예요. 물론 굿와이프가 리얼한 척 하다가 초능력적인 전개로 쉽게 해결되는 장면이 많은 드라마긴 하지만.



 2.그런데 뜬금없이 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수사물이 나온다고? 배우나 캐릭터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저 나이의 배우가, 저 정도의 감초 캐릭터가 드라마 주인공을 꿰찮다? 지금 드라마판에 젊고 재능있는 배우들이 기회를 얻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는데 대체 왜? 뭐 빽이 엄청난건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드라마를 봤는데...솔직이 이 드라마는 허술해요. 내가 엘스베스에서 회색 뇌세포를 움직여대며 데미안 허스트의 신작같은 시체를 전시하고 철학적인 글귀를 살인현장에 남기는 범인들을 바라는 게 아니예요. 그래도 조금은 똑똑한 범인이 나와서 조금은 똑똑한 범죄를 저질러줬으면 좋겠는데 아메리카노에 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슴슴하게 사건이 해결되더란 말이죠. 솔직이 말하면 대충 만든 드라마라는 생각밖에 안들었어요.



 3.그런데 또 보다보니 슬금슬금 보게되는 건 있어요. 사실 크리미널마인드나 svu같은 드라마는 한 편을 보면 일단 좀 쉬어야 하잖아요. 너무 나쁘고 지독한 놈들이 시즌 파이널도 아니고 매 회마다 등장하니까요. 한데 엘스베스는 스포를 당하고 보는 것보다도 더 뻔한 드라마인데 그냥 멍하니 연속으로 몇편 보게 되더라고요. 


 일단 등장하는 범인들 중에 정말로 나쁜 놈은 없어요. 아니 있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덱스터나 한니발에 나오는 범인같은 놈들은 안 나오죠. 하긴 그런 범인들이 나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예요. 엘스베스가 그런 놈들이랑 마주치면 만나자마자 즉사할 테니까요. 결국 엘스베스의 능력과 톤에 맞는 수준의 범죄자들이 나오는 드라마인데...그게 그냥저냥 슴슴한 맛으로 볼만하다 이거죠.



 4.휴.



 5.위에는 엘스베스 캐릭터의 질감 얘기를 했는데, 이 드라마 자체가 엘스베스에게 맞게 조정된 톤과 질감을 지니고 있어요. 드라마의 세계관 전체가 말이죠. 엘스베스가 별 위기 없이 마음껏 뛰놀 수 있게 설계된 샌드박스 게임속이랄까. 


 사실 이게 조금만 리얼한 드라마였으면 범죄 묘사가 문제가 아니예요. 엘스베스같은 인간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받아들여지는 묘사부터가 졸라게 힘들 거란 말이죠. 한데 그냥저냥 푸근하고 상냥한 세계관이라 그런지 그런 부분도 별 무리없이 넘어가고.



 6.뭐 그래요. 매 에피소드마다 기괴한 철학을 지니고 죽인 사람의 숫자가 최소 두 자릿수에, 주인공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는 사이코 범죄자들이 나오는 드라마가 더 좋긴 하지만...그래도 이렇게 슴슴하게 진행되는 드라마도 하나쯤 있으면 경쟁력이 있을 거 같네요.


 

 7.물론 이런 드라마가 두개씩이나 있으면 안되겠죠. 슴슴한 음식이 팔리는 이유는 나머지 메뉴들에 msg가 그득하고 슴슴한 메뉴는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니까요.


 농담삼아 얘기하자면 엘스베스는 다른 드라마들에게 고마워해야 해요. 그 드라마들이 msg 팍팍 치면서 빡세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엘스베스같은 드라마도 한자리 차지할 수 있는 거니까요. 


 한데 엘스베스에게 깔맞춤된 세계관이 되어서인지 굿와이프랑은 좀 다른 세계 느낌인 게 좀 아쉬워요. 굿와이프에선 좀더 괴짜 천재같아 보였는데 여기선 범인들이 약해서 천재성을 발휘할 기회가 없는 건지. 그냥 적당히 발랄한 똑똑한 아줌마가 된 느낌이예요. 매 화마다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면 시즌3쯤 되면 수십건의 살인사건-본인만 해결 가능한-커리어를 가지는 거잖아요. 미스터몽크의 몽크나 멘탈리스트의 제인 급의 천재라는 건데...시즌에 한 명씩은 천재 범죄자가 등장해 줬으면 좋겠네요. 사실 굿와이프에서도 엘스베스의 천재성의 고점이랄까, 한계가 묘사된 적이 없으니까요. 여기 나오는 엘스베스가 멀티버스가 아니라 굿와이프의 엘스베스랑 동일인물이면 이 정도 범죄자들은 몸풀기도 안된다는 건데. 너무 약한 놈들만 나오는 거 아닌가.



 8.어쨌든 재밌게는 보는데 그렇다고 해서 제목을 수정하고 싶진 않아요. 다 만들어졌으니까 괜찮다고 느끼는 거지, 이걸 만들기 전에는 재밌을지 아닐지 알 수가 없잖아요. 굿와이프의 엘스베스와 그 배우를 가지고 주인공인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기획서를 올리면 윗대가리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이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 드라마를 만들면 먹힐 거라고 간부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떠오르지 않아요.







    • 저는 콜롬보의 리메이크 판이라는 느낌으로 봤습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29307 [씨너스:죄인들]에 대한 흥미있는 유튜브 영상이 있네요. 5 326 07-07
129306 극장에서 처음본 영화 11 323 07-07
129305 '미션 임파서블 8', '야당' 제치고 올해 최고 흥행작 5 261 07-07
129304 [나눔-완료] 롯데시네마 1+1 예매권 3 114 07-07
129303 수퍼맨 기대중! 11 352 07-07
열람 엘스베스 드라마 감상...주인공이 빽이라도 있는건가? 1 263 07-07
129301 F1 더 무비 : 트럼프 2기에 어울리는 영화 (스포일러 없음) 2 318 07-06
129300 기온 30도의 계절이 돌아왔네요 10 390 07-06
129299 앞으로 주 4.5일제가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에 대한 소소한 잡담 330 07-06
129298 '노태우 정권 이후 최초' 한화 전반기 1위 확정!…'대포 4방 쾅쾅쾅쾅' 키움 원정 10-1 대승+싹쓸이 … 3 158 07-06
129297 어제 하루 가장 놀라웠던 뉴스 257 07-06
129296 [쿠팡플레이] 간만에 만난 수작 해양 호러, '씨 피버' 잡담입니다 14 398 07-06
129295 스타워즈 비행체 4 212 07-06
129294 [넷플릭스바낭] 여러분들의 시간을 아껴 드립니다. '샌드맨' 시즌 2 보다말고 잡담 4 364 07-05
129293 쥬라기 공원3 보는 중인데요 4 306 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