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상. 건대입구나들이


 1.요전에는 건대입구역을 가보게 됐어요. 약속 장소가 거기로 잡혀서요. 이 더운 날씨에 왜 몰에서 안 보고 태양빛을 쐬야 하는지는 이해가 안 갔어요.


 그래도 막상 건대입구역을 가보니 색다른 활기가 있었어요. 이것이 대학가인가? 라는 느낌으로요. 홍대역이나 성신여대입구역이나 혜화역과는 다른 또다른 대학가의 느낌이었죠.



 2.듀게 모임에서 건대입구에 가본 적이 있어요. 그때도 광활할 정도로 느껴지는 상권의 크기에 놀랐는데 지금은 한층 더 커지고 한층 더 정신없어진 느낌이랄까. 도대체 단 하나의 대학교가 어떻게 이 큰 상권을 먹여살릴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어요. 


 그리고 메뉴를 보니...싸다! 압도적으로 싸다! 체감상 다른 곳보다 30%씩은 무조건 싼 느낌이었어요. 이게 젊은이들을 위한 대학가지 싶었어요.



 3.모인 사람들은 친구와, 약 20여년전부터 안면이 있던 라캉이라는 동생이었어요. 덕후들의 모임에서 본 동생인데 2~3년에 한번 정도씩 얼굴을 보고 있어요. 호르몬치치라는 새로 생긴 무한리필가게를 가려 했지만 대기인수가 너무 많아서 포기. 적당한 소고기가게에 들어갔어요. 고기를 대충 흡입하고 라캉 동생의 넋두리를 좀 들었어요. 인생에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결혼도 못하고 있다는 그의 넋두리에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고 친구는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줬어요. 지금의 인생에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의미와 희망을 찾으라는 조언을, 철학과 졸업생답게 멋들어진 표현으로 말아줬어요.


 사실 라캉이랑 동생이 술을 먹으면 자학적인 소리를 주욱 늘어놓는 건 약 5년 전부터 시작된 레퍼토리예요. 물론 굳이 듣고 싶은 넋두리는 아니긴 해요. 하지만 뭐...그가 얘기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다만 그런 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나는 표정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단 말이죠. 응원의 말 한마디도 가식적으로 보이고...그렇다고 넋두리를 하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듣고만 있어도 성의없어 보이고 말이죠.


 어쨌든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아 이봐! 나도 결혼 못했다니까? 요즘 남자들 중에 50%나 결혼을 못하고 있대! 너도 그냥 50%에 속하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라니깐?'정도로 무마해 봤어요. 



 4.휴.



 5.강남보다 30%쯤 싼 대신 80%정도 불편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귀가하게 됐어요. 예전 같으면 우리같은 사람들은 이런 인싸거리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어하는 법이죠. 그런데 그날은 건대입구 거리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어요. 라캉은 사진을 몇 장 찍더니 우리들에게 좀 걷자는 제안을 해왔어요.


 라캉은 '어렸을 때 이런 곳에 많이 올걸 후회돼.'라고 말했어요. 나도 반짝반짝 빛나는 나이의 청년들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어요. 


 하지만 20대로 돌아간다고 해서 이런 곳에 많이 오게 될까? 그렇진 않겠죠. 성향상 이런 인싸들 거리에서 마시고 놀고 하는 성격은 다들 아니니까요. 그저 이렇게 나이먹고나니, 있었을지도 모르는 가상의 과거를 아쉬워하는 거예요.



 6.라캉과 헤어지고 친구와 둘이 남았어요. 그에게 말했어요. '네가 라캉에게 이런저런 좋은 말을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알겠더군. 김난도가 왜 그렇게 욕을 먹었는지 말이야.'라고 말하자 그는 '그렇게 보였나'라고 대답했어요.


 '현실적으로 말이지, 라캉이 인생에서 희망을 찾는 것보다 네가 잘 돼서 그에게 동아줄을 내려주는 시나리오가 훨씬 가능성이 높아. 라캉이 희망을 갖길 원한다면 네가 라캉의 희망이 되어주는 수밖에 없어.'



 7.말해놓고 보니 그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말을 이었어요.


 '너에게 라캉이있듯이 나에게도 나의 라캉들이 있지. 우리들은 잘 되어야 해. 걔네들의 희망이 되어 줘야 하니까.'라고 말하자 친구가 '그랬으면 좋겠군.'이라고 대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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