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도 아마 힘들고 "맛있는" 운동을 끝낸 뒤 개운한 기분으로 샤워를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근육이 붙는 것 자체보다도 그 순간의 기분이 헬스의 가장 크고 강력한 보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땀을 씻어낼 때 그 순간은 자발적 고통 뒤의 해방감 그 자체이기도 하니까요. 유산소를 했든, 근력을 했든, 혹은 자전거에 앉아서 슬렁슬렁 페달만 돌리면서 쯔양 먹방을 보셨든, 당신이 헬스장에서 보낸 시간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운동하시고 나서 너무 지치셨나봅니다. 아니면 샤워타월을 깜빡하셨을까요? 샤워실에 공용으로 비치된 흰색 비누 중 하나의 상태가... 저는 진짜로 당신이 짧은 곱슬머리의 소유자라는 걸 믿고 싶습니다만 제 자신을 차마 속일 수가 없군요. 어쩜 그렇게도 많이 묻혀놓으셨는지... 보자마자 오만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당신은 콧노래를 부르며 몸을 깨끗이 씻으셨겠지만, 당신 뒤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 샤워기 앞에서 흠칫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비누를 능욕해놓으셨나요? "헤어투성이"인 그 비누의 상태가 정말 처참해보였습니다. 그 비누를 당신이 쓰고 난 뒤 다른 사람도 쓸 거라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셨을까요? 헬스장 운영비를 걱정하며 그날 담당자가 그 비누를 "제모"해줬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정말 너무하셨습니다. 왜 손에다 거품을 내지 않으셨을까요?


당신의 그 무심한 비누칠을 지탄합니다. 현장에서 적발된다면 저는 바로 당신의 손아귀에서 비누를 구해낼 것입니다. 당신이 비누에 "헤어질 결심"을 하는 걸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아 타월 갖고 다니쇼...!!!!



    • 아........ 위추드립니다.

    • 아 진짜 뭐같은 매너네요.

      • 왜째서 그러셨을지... 규탄한다 규탄한다!!
    • 생생한 묘사로 참사의 현장을 간접체험하게 만든 Sonny님을 강력규탄합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송!!

    • 샤워타올이 없을 때 손으로 거품 내면 잘 안 되니까 털이 있는 부위에 거품을 내면 좋다는 게 인터넷 팁으로 돌아다니던데 공공장소에서는 정말 곤란한 노릇이긴 하네요 ㅋㅋㅋㅋ 헬스장에서 고체비누 대신 액체비누를 비치하면 그런 불편함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 그렇게 하면 액체비누통의 주둥이를 누군가 백프로 깨먹을 것 같아요 ㅋㅋㅋ

    • 와... 꿈에 나올 것 같아요 ㅋㅋㅋㅋ 묘사가 생생해서 앞으로 하얀 비누를 볼 때마다 떠오를 것 같은데요. ㅋㅋ 소니님이 저걸 발견한 순간 강렬하게 이미지가 각인됐음에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앞으로 비누하면 ㅌ...)
      • 위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이 고통을 공유하겠습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22842 Beef(성난 사람들) 캐스팅에 대해서 잡담 1 698 04-12
122841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 극장판 (2017) 247 04-12
122840 Psg감독 갈티에는 흑인 이슬람 발언 2 286 04-12
122839 우리 나라에서 눈찢했던 발베르데 폭행 건은 296 04-12
열람 헬스장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10 729 04-12
122837 록맨 10 (2010) 2 209 04-12
122836 베스트 러브송인 아델의 너같은 사람의 실제 헤어진 연인이 2 369 04-12
122835 더 마블스 티저 예고편 7 453 04-12
122834 고유성 선생님께서 영면하셨습니다. 8 739 04-11
122833 [넷플릭스] 그러니까 남이 주는 거 덥석 받아오지 말라고! ‘인사이드 맨’ 4 565 04-11
122832 [넷플릭스바낭] 이런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옆집사람' 잡담 6 643 04-11
122831 인어공주 실사 영화의 갖가지 논란 2 627 04-11
122830 프레임드 #396 6 123 04-11
122829 넷플릭스에서 본 것들 11 595 04-11
122828 '슬픈 짐승' 읽고 잡담 4 331 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