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양식 돈까스 잡담...


 1.요즘 일본식 돈까스가 대세라지만 역시 경양식 돈까스는 특별해요. 나는 경양식 돈까스를 먹을 때마다 돈까스가 아니라 과거를 먹죠. 아직 일본 돈까스가 대세가 되기 전, 돈까스라곤 경양식 돈까스였던 시절의 설움의 감정...가난이라는 막막했던 감정을 느끼면서요.


 그래서 경양식 돈까스를 먹을 때마다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하죠. 가난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해 말이예요. 이까짓 아무것도 아닌 돈까스 하나를 사먹는데 왜 그토록 사람을 벌벌 떨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이까짓 아무것도 아닌 음식을 마치 대단한 음식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말이죠. 경양식 돈까스가 그리 대단한 음식도 아닌데 말이죠.



 2.뭐 어쨌든. 요즘은 경양식 돈까스가 별로 없어요. 그냥저냥 비슷하게 구색을 갖춘 걸 분식집이나 동네 밥집에서 팔지만, 예전의 그 싸구려 스프와 단무지, 빵과 함께 나오는 특유의 구성으로 파는 곳이 그리 없단 말이죠. 


 그래서 가끔 신도림까지 가서 모듬까스를 먹곤 하는데 돈까스, 함박스텍, 생선까스를 주는 구성으로 14000원인가 해요. 그런데 묘하게 맛도 없고 뭣보다 너무 비싸단 말이죠. 만약 내가 300억 부자가 되어도 모듬까스 한끼에 14000원은 비싼 거예요.



 3.뭐 어쨌든. 지난번 점심 글에 썼듯이 동네에 쯔양이 연 돈까스가게가 들어왔어요. 제대로 된 경양식 돈까스 구성에다가 가격도 9800원. 이미 갔다온 사람들의 감상을 보니 스프 무한에 밑반찬도 눈치볼것 없이 셀프로 리필 가능이더라고요. 그래서 기회를 노리다가 오늘 가봤어요.


 가오갤3이 16시 상영이니, 2시50에 가면 돈까스를 먹고 가오갤3를 보고 사우나를 갔다가 술을 마시러 가면 되겠다...싶어서 길을 나섰다죠. 평일에다가 2시 50분이란 시간이라면 웨이팅이 덜할 것 같았어요.



 4.휴.



 5.먼 발치엑서 돈까스가게앞에 사람이 한명도 없는 걸 보고...'와! 줄 안서도 되겠다!'라는 마음보다는 '오늘은 글렀군'이라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나는 부정적이니까요. 어렸을 때 돈까스 한번 사먹는 걸 오랫동안 고민한 사람은 커서도 부정적인 사람이 되기 마련이죠. 무언가의...모종의 이유로 영업이 일찍 끝난 것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죠.


 가게 앞에 가보니 역시. 재료가 소진되어서 일찍 장사를 접는다는 문구가 써있었어요. 이러면 미리 디자인해둔, 가오갤3 보고 사우나 가고 술마시러 가는 흐름도 어그러져 버려서 그냥 돌아왔어요.


 문제는 이러면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쯔왕돈까스를 먹을 수 없다는 거예요. 내일은 어린이날이고 그 다음부터는 주말이니까 웨이팅이 평소랑은 비교도 안 될 거니까요. 한국인들은 아무것도 아닌 경양식돈까스라도, 유명한 사람이 연 가게라면 줄을 서는 안좋은 버릇이 있어요. 유명한 사람이 연 가게라서 가는 게 아니라 그저 경양식 돈까스를 맛보러 가는, 순수한 의도인 나같은 사람에게 민폐예요.



 6.그래서 돌아와서...다른 비슷한 경양식 돈까스라도 먹을까 했는데 역시 무리였어요. 동네에서 파는 그럭저럭 괜찮은 옛날돈까스가 11000원. 예전이라면 돈까스가 땡기면 그걸 그냥 먹었겠지만 이미 나는 같은 동네에 쯔왕돈까스가 열었다는 걸 알거든요. 더 많은 돈까스를 더 싼 가격에 주는 돈까스가게가 동네에 있는데 다른 곳에 간다? 이건 돈이 아깝죠.


 물론 쯔양이 하는 가게처럼 싼 값에 더 큰 돈까스와 무한 스프, 밑반찬, 그리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주는 구성은 동네 가게가 따라할 수 없어요. 저건 쯔양이 연 가게니까 저렇게 싼값에 메뉴를 돌릴 수 있는 걸테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동네에 더 나은 돈까스가 있는데 더 비싼 돈내고 더 적은 돈까스를 먹는 건...경제적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돈까스는 아예 안 먹었어요. 월요일까지 경양식 돈까스를 참아 봐야겠어요. 이제 이 동네에서 다른 돈까스를 먹는다는 건 돈을 땅바닥에 버리는 행위니까요.



 7.그러고보니 이번주는 월요일도 근로자의 날이라 휴일. 금요일은 어린이날이라 휴일. 주식을 이틀이나 못하게 됐어요. 이렇게 놀아제끼면 돈은 대체 언제 벌죠? 300억으로 가는 샤이닝로드가 이틀씩이나 정체되는 한 주네요. 경양식돈까스로의 길도 지체되고. 한국인들이 벌써부터 이렇게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는 걸 보면 어른으로서 걱정이 돼요. 어떻게 한주에 이틀씩이나 휴일이 있을 수 있죠?


 뭐 어쨌든. 아까전에 못 본 가오갤3을 밤에라도 나가서 보려고 기다리는 중이예요. 술집 가기로 한건...생각해보니 내일이 휴일이니까 오피스상권들은 싹 비겠죠. 그럼 불금인데 장사가 안 되는 오피스상권의 술집에 가면 의자왕이 될 수 있을 거고요. 평소에는 불금 장사가 잘 되던 곳인데 내일은 안 될 테니...매상을 올려줄 구원 투수가 등판해야죠. 술은 내일 마시러 가도록 하죠.









    • 그림이 그려지는 글이네요. 말씀하신 그런 돈까스를 마지막으로 먹어본 데는 
      남산에 있는 돈까스 전문 기사식당에서 였어요. 지금은 없어졌겠죠.
      가족들이랑 명동에서 놀다가 배고프면 남산까지 올라가서 먹곤했는데..
      그때가 넘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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