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바낭] 연말엔 고전이죠(?) '밀회' 짧은 잡담입니다

 - 1945년작입니다. 런닝 타임은 85분. 스포일러는 없어요.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또 뻔한 이야기라 스포일러 무시하고 그냥 막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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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주인공 얼굴을 이렇게 그려도 흥행이 되었던 걸까요... ㅋㅋㅋㅋ)



 - 그 시절 칙칙폭폭 기차역의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승객들이 들렀다 가는 역 내 아담한 카페가 있고, 구석 자리에 한 남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어요. 그때 갑자기 혼자 들어온 아줌마 한 분이 앉아 있던 여자 쪽을 알아보며 반갑게 인사하고 다짜고짜 합석을 하구요. 잠시 후 남자가 탈 기차가 도착해서 정중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뜨네요. 남겨진 여자는 수다쟁이 지인과 함께 기차를 타고 가며 '와 저 입 좀 다물게 하고 싶다. 목 졸라 죽여 버리고 싶네.' 같은 생각을 하고. 집에 돌아가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가벼운 잡담을 합니다. 그러다 마음 속으로 남편에게 영상 편지(?)를 쓰기 시작하죠. 미안해요 당신. 죽을 때 까지 말 못할 얘기지만 사실 나는 몇 주 전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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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곧 끝이라는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게 정말 좋았습니다. 단순 반복이 아니라 살짝 비틀면서 추가되는 의미와 감정이 참 근사하더라구요.)



 - 봤지만 안 본 영화에 가깝습니다. 아마 거의 국민학생? 혹은 중학생?? 때 쯤에 공중파 방영으로 봤거든요. 줄거리 따라가는 데는 어려울 게 전혀 없는 이야기라서 그 나이에 보는 데에도 무리는 없었지만. 그 감정이나 분위기 같은 건 0.1도 이해를 못했겠죠. ㅋㅋㅋ 재감상 전까지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건 그저 하얀 증기가 날리는 기차역의 풍경. 아주 젊진 않으니 '아줌마, 아저씨'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남녀가 그 역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단편적인 장면들. 그리고 그게 대략 뭔진 모르겠지만 멋있고 좋아 보이더라... 는 기분 뿐이었네요. 그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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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느낌에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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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분위기가 지금까지 기억에 새겨져 있었지요. 다시 봐도 그렇게 오래 기억될만큼 멋졌구요.)



 - 다시 보니 참 놀랍습니다. 아니 이렇게 특별할 구석이 저엉말로 하나도 없는 FM 불륜 로맨스라니요. ㅋㅋㅋㅋ

 그냥 기차 역에서 스쳐가던 관계였던 두 사람이 아주 사소한 우연 몇 번으로 같이 식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게 되고. 그 순간 서로에게 꽂히고. 조심스레 추가 만남을 계획하고. 서로 망설이면서도 첫 만남의 이끌림 때문에 몇 번 더 만나다가 급기야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주변 사람 신경 쓰고 거짓말도 하고... 하면서 자괴감 느끼고. 헤어지려고 결심하지만 잘 안 되고. 하지만 결국엔 현실 여건에 굴복해서 이별을 결심하고. 그렇게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오고. 그냥 이게 답니다. 대단한 운명의 뭐시기도 없고 평생 동안 간직할 무슨 징표나 둘만의 아찔한 무언가도 없고. 만남도 데이트도 중간중간에 겪는 위기 상황도 심지어 마무리까지도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요. 너무나도 사소하고 소소한 이야기라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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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연애하는 사람들이 역전에서 뽀뽀라니! ㅋㅋ 대낮에 팔짱도 끼고 다니고 사회, 문화 차이인지 좀 신기하기도.)



 - 그런데도 이 영화가 이렇게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추억의 영화인 동시에 고전 명작, 걸작 취급을 받고 있는 건 뭐 당연히도, 이런 심플한 이야기를 영화로 아주 잘 풀어냈기 때문이겠고 그건 보면서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참으로 단정하면서도 아름답게 찍어내서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는 촬영. 군살 없이 심플하면서도 이야기에 필요한 요소는 다 들어가 있고 중요한 장면마다 기억에 남을만한 대사들까지 멋들어지게 장착된 각본. 장면 장면에 어울리면서 듣기도 좋은 음악. 역할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게 완벽해서 과함도 모자람도 없는 캐스팅. 막 화려하게 튀는 느낌은 없으면서도 모든 요소들이 조화로우면서 다 고퀄이에요.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각본이었습니다.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이렇게 안 식상하게 그려내다니요. 허허. 찾아보니 각본 쓰신 분이 워낙 훌륭한 분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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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비현실적으로 부여되는 고결함, 과도한 불행 옵션 같은 거 전혀 없이 욕하기 싫은 불륜극 주인공을 만들어낸 작가님의 공력에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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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딱 봐도 바람 피우고 싶겠네... 싶었던 요 남편 캐릭터가 극이 전개될 수록 참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든 것도 절묘했구요.)



 -  일단 주인공 캐릭터를 그려내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거의 신화에 가깝지 않나 싶을 정도로 원형적인 이야기지만 주인공 캐릭터에는 또 단단한 현실감 같은 게 있어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거든요. 낭만적이고 열정적이면서도 아주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안정된 가족과 생활을 버릴 마음은 전혀 없어서 결국 이별로 이야기를 맺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라는 걸 소소한 장면과 대사들로 잘 표현해주고요. 그래서 결말을 충분히 예상하면서 더 슬픈 기분으로 지켜보게 됩니다.

 덧붙여서 남자 주인공 캐릭터도 훌륭했지만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게 의외로 주인공 로라의 남편이었어요. 무덤덤하고 익숙한 '함께 오래 산 남편'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한데 이게 부정적인 느낌 전혀 없이 현실적으로 참 좋은 사람으로 그려지거든요. 그래서 다 보고 나면 주인공들 이야기가 비극은 비극인데 비극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오묘한 감흥을 남기게 해줬습니다. ㅋㅋ


 원제 그대로 '짧고 간단한 만남' 만 반복하게 해놓은 설정도 두 사람 만남의 간절함, 설렘을 표현하는 데 있어 여러모로 효과적이었구요. 그 만남의 장소를 거의 기차역과 그 주변으로 한정해서 비슷한 장소를 계속해서 보여준 것도 영화의 짧은 런닝 타임과 이야기 속 짧은 만남, 하지만 오랫 동안 기억에 남을 추억... 이라는 점에서 딱 좋았다고 느꼈어요.


 덧붙여서 뭣보다 기억에 남는 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구성해 놓은 방식이었네요. 스포일러 신경 안 쓰고 말씀드리자면, 그러니까 일종의 수미상관 비슷한 형식인데요. 시작에서 보여지는 것이 둘의 이별 장면이고 나머지 이야기는 다 주인공 로라 입장에서의 회상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을 다시 이별 장면으로 장식하는데, 이게 똑같은 듯 하면서 달라요. 말하자면 도입부의 이별 장면이 3인칭이라면 결말의 이별 장면은 플래시백의 주인인 로라 입장의 1인칭입니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두 번 보면서 처음엔 몰랐던 디테일을 깨닫게 되고, 거기에 덧붙여서 로라 입장에서의 그 이별의 슬픔을 아주 사무치게 느끼게 해줘요. 아주 소설 같으면서도 또 영화적인. 멋진 마무리였습니다. 엔딩을 보는 순간 곧바로 첫 장면을 다시 보고 싶어져서 다시 틀어봤다는 거. ㅋㅋㅋ 그랬더니 또 그게 새롭게 보여서 다시 회상 시작 장면까지 쭉 봐 버리고 그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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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님 연기가 참 좋았지만 물론 각본과 연출 파워도 강렬했던 거의 마지막 장면.)



 - 그래서 결론이야 뭐. 참 좋은 영화였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게 옛날 영화 느낌이 엄청 들거든요. 주인공이 회상을 하며 읊는 나레이션의 어조도 그렇고. 등장 인물들의 어투도 그렇고. 뭣보다 주인공들이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이나 보여주는 가치관이나 세세한 부분들까지 요즘의 비슷한 소재 영화들과는 전혀 달라요. 근데 그게 낡은 느낌 없이 그냥 옛스럽게 멋져요. 그랬구요.

 역시 옛날 영화스럽게 아름다운 촬영이나 음악, 연출들도 좋고. 뭣보다 요즘 세상엔 보기 어려워진 '구식 로맨스'의 이상적인 모습이랄까. 그런 게 작렬을 합니다. ㅋㅋㅋ 그래서 완전 오래 산 늙은이가 된 기분으로 허허 웃으면서 내내 반갑게. 정겨운 기분으로 잘 봤어요. 다시 보길 참 잘 했다... 라는 기분으로 보낸 80여분이었습니다. 끝.




 + 왓챠에도 있어요. 근데 화면비가 묘하게 안 맞아서 (가로로 살짝 깁니다) 살짝 어색하기도 하고, 화질도 떨어져 보이고 그렇더군요. 그래서 티빙으로 봤어요. 미안해 왓챠야...

    • 제가 본 최고의 로맨스 영화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이 영화 보고 나니까 다른 로맨스 영화들은 다 시시하더라고요.


      이 영화 보고 트레버 하워드가 좋아져서 이것 저것 조사했었는데 


      실제 성격은 영화 속의 알렉과 달라도 너무 다른 바람둥이에 (알렉이 왜 로라와 진작 동침하지 않는지 전혀 이해 못했다고;;;)


      주정뱅이라서 '역시 명배우여...'하고 새삼 감탄했었네요.

      • 이것이 '정통 로맨스'이자 로맨스의 원형이다!! 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 작품들에 미친 영향력들도 많이 보이고... 역시 이래서 고전이란 소중하구나 싶었습니다. ㅋㅋㅋ




        '명배우'로 인정하게 되는 이유가 재밌네요. ㅋㅋㅋㅋ 저는 처음엔 아 이 배우님 참 현실적으로 잘 생기셨네. 하다가 보면 볼 수록 멋지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캐릭터빨도 있겠지만 배우 연기력 덕이었겠죠. 그러니 저도 명배우로 인정해 드리는 걸로. 하하.

    • 감독이 무려 데이비드 린인데 그 이름 찾기가 어려운 포스터! 뭔가 배우들 모습이 현실적이어서 몰입하고 보기에 좋은 영화였습니다. 저 무렵 영국 영화들은 어딘가 다들 피곤해 보이지요 심지어 범죄자 갱스터들도 다 피곤해보이거든요 

      • 풋풋한 젊은이들이 아니고 적당히 세상 좀 살고 때도 묻고 일상도 열심히 사는 어른들이란 느낌이 이 신중한 로맨스 이야기에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뭐 물론 요즘 기준으로 하면 풋풋한 젊은이라 우길 수 있을만한 나이지만요. 하하.

    • 줄거리를 요약하면 뻔한데 직접 보면 너무 좋은 지점이 많아서 신기하였습니다. 현실을 잘 담으면서도 흑백 영화가 갖는 아우라가 넘 아름답죠. 오랜 전통의 스토리로 영화가 얼마만큼 표현해 낼 수 있는지 보여준달까요.  


      결이 다르지만 결혼한 여성의 연애라 얼마전에 읽은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도 생각납니다. 연인들에게 기차역이란 무엇인가... 기차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로버트 드니로, 메릴 스트립 나왔던 '폴 인 러브'도 떠오르네요. 연말 분위기 제대로 타시는 베티 님 되시겠습니다.ㅎㅎ  

      • 맞아요.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이렇게 잘 풀어내다니! 라고 감탄했는데, 그런 게 작가의 필력이란 거겠죠. 그걸 또 영상으로 기막히게 살려준 감독, 촬영감독의 공도 크겠구요. 




        이 시절 영화들을 보면 추리물도, 연애물도 다 기차에 집착하는 것 같아서 재밌습니다. 아마도 시대상의 영향이겠죠. 한국 영화들도 80년대나 그 이전 것들을 보면 기차와 기차역이 중요한 배경으로 많이 나오고 그랬는데요. 왜 그런지 요즘엔 잘 안 보이는 느낌입니다. 저는 기차를 많이 안 타 본 사람인데도 괜히 아쉬워요... 하하.

    • 쭉 읽어내려가다가 봐야겠다. 란 생각이 들어서 스포일러…나오자마자 밑으로 휙 내렸습니다. 나중에 영화보고 마저 읽을게요.

      왜 연말에만 고전입니까!!! 고전은 일년내내 봐야죠!!!!라고 해놓고 저도 손 놓은지가 어언(…) 내년엔 일주일에 한편 정도는 숙제처럼 봐야하나 싶기도 해요

      오늘도 뻘 댓글입니동ㅎㅎㅎ
      • 네. 사실 별 특별한 전개는 없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모르고 보시는 게 훨씬 좋을 거에요. 특히 정말 멋진 마지막 장면은요.




        사실 이제 '고전'이라는 표현의 의미도 좀 바꿔 써야 하지 않나 싶구요. 대략 80~90년대 영화만 해도 이젠 충분히 고전 아닐까요. ㅋㅋ 그런 기준이라면 저는 1년 내내 보고 있습니다!!

    • 이제 10년 전 영화가 되려는 '캐롤(2016)'이 이 영화의 첫장면/마지막 장면을 따라한 것이 생각나네요. 이혼의 금기가 깨진 이후 고전적인 불륜 이야기가 성립하기 어려워졌는데, 그걸 동성애의 금기로 옮겨내서 적절하게 재해석한 느낌이었어요. 

      • 엄청 극찬 받았던 기억과 대략의 이야기, 소재는 알고 있지만 안 봤어요. 이 영화를 따라한 부분이 있다니 궁금해서 문득 보고 싶어지네요.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찾아서 일단 찜이라도 해 놔야겠습니다. ㅋㅋ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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