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바낭] 아일랜드산 알찬 소품 호러, '오디티' 잡담입니다

 - 작년 영화인가 봐요. 런닝 타임은 1시간 38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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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할 때 많이 보는 ODT 생각이 나서 죄송합니다...)



 - 도입부를 적다 보니 너무 장황해져서 그냥 간단하게 줄여 봅니다.

 외딴 곳의 대저택을 혼자 수리하다 하룻 밤 자고 가려던 집주인 여성이 인근 정신병원에서 갓 퇴원한 환자에게 공격당해 죽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 환자는 다시 병원으로 끌려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영문을 알 수 없게 끔찍한 죽음을 맞았구요. 죽은 여성의 남편이 그 병원 의사였고 아내가 죽은지 1년이 다 된 어느 날 아내의 쌍둥이 언니를 찾아가요. 이 언니가 동생을 죽인 놈의 유품을 뭐라도 하나 갖다 달라 그랬다네요. 그런데 이 언니는 저주 받은 물건들을 주로 다루는 골동품상이었고. 동생의 남편에게서 받은 유품을 홀로 어루만져 보더니... 갑자기 동생 남편 집에 커다란 앤틱 나무 상자를 보내고 곧바로 본인도 쳐들어가요. 그 사이에 새로 만든 연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 했던 동생 남편은 매우 난감해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그러니까 쌍둥이 언니께선 박박 우겨서 결국 그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게 됩니다. 과연 이 분은 왜 이러는 걸까요. 뭘 하시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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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감독님의 전작으로 이런 끔찍하게 무성의한 포스터가 달린 영화가 있었더랬습니다.)



 - '경고' 라는 참 검색하기 어려운 제목의 2020년 호러 영화가 있어요. (관심이 가신다면 caveat 으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수년 전에 지니 티비에 무료 신작이라고 올라왔길래 아무 생각 없이 재생을 눌렀다가 참으로 드문 경험을 하게 되었죠. 정말 저엉말 가난하기 짝이 없다는 게 온 화면으로 전해지는 저예산 호러 소품이었는데, 정말 매 순간순간이 불편하고 어색하고 기괴한 영화였어요. 아니 이 감독(겸 작가) 양반은 대체 평소에 뭘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시길래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내셨을까... 라고 생각하며 잘 봤구요. 이 사람이 후속작을 내면 꼭 봐야지!! 했는데 그게 바로 이 영화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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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란성 쌍둥이 둘이 나오는 이야기라 한 배우님이 스타일링 바꿔 장착하고 1인 2역을 하지요. 이렇게 제작비를 조금 아끼는 데 성공!)



 - '경고'는 영화제 몇 군데서 상영되고 호평을 받은 후에 미국의 OTT 서비스 '셔더'에서 바로 구입해가서 흥행 실적이란 건 없는 영화였는데요. 비평도 괜찮았고 사람들 반응도 좋았는지 이번엔 극장에 걸고 제대로 상영을 했었나 본데... 수익이 딱히 아름답지는 않지만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작비를 훨씬 덜 들였을 것임이 분명하니까요. ㅋㅋ 그래도 전작의 호평 덕인지 영화의 때깔은 아주 훌륭했어요. 전작이 가난하고 작은 영화 느낌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냥 원래부터 작게 만든 이야기라는 생각만 들어요. 


 그리고 때깔 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전작 대비 상당히 멀쩡해졌습니다. 대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맺으려는지 전혀 짐작이 안 되던 '경고'에 비해 이 '오디티'는 대략 20여분만 보고 나면 미래가 보여요. 아, 사건의 진상은 이런 거겠구나. 그래서 주인공은 지금 무엇무엇을 하려고 저렇게 행동하고 있구나... 라는 게 쉽게 파악이 되거든요. 애초에 그렇게 특이하고 개성 있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감독의 능력은 오히려 더 빛을 발합니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현업 호러 감독들 중에 뻔한 이야긴데 뻔하지 않게, 흔한 장면인데 흔하지 않게 연출하기 능력자를 뽑아보자! 라며 순위를 매긴다면 아마 이 감독님은 최소 탑 3에서 자칫하면 1등을 하실 분입니다. ㅋㅋ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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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소품들 중 상당수는 감독님 소장품이거나 이 영화를 위해 감독이 새로 장만한 물건이었다고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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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되는 대저택은 야외 장면만 대저택이고 사실은 감독이 전작을 찍었던 장소랑 동일하다구요. 영화 촬영용으로 뜯어 고친 안 쓰는 헛간이었대요. ㅋㅋ)



 - 근데 이걸 뭐라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샷을 잡는 게 뭔가 미묘하게 특이하구요. 활용되는 소품들의 생김새 역시 흔한 듯 하면서도 조금 튀는 느낌에다가. 배우들의 연기 톤도... 뭔가 조금씩 다르긴 한데 크게 독창적이거나 그런 수준까진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보고 있노라면 뭔가 달라 보이고 신선하게 괴상하고 그래요. ㅋㅋ


 그 와중에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분 영화들은 리듬감이 좋다는 겁니다. 컷과 컷이 연결되는 타이밍이 참으로 예술적이라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호러 영화에 아주 많이 나오는 화면 속 인물이 고개를 돌리면 당연히 뭔가 깜짝 놀랄 것이 보여질 예정인 장면들 있잖아요. 이 감독님 영화들은 이런 장면들이 다 되게 효과적으로 잘 연출되어서 긴장감이 잘 살아납니다. 그리고 이런 걸 잘 하니 대단한 반전이나 놀라운 전개 같은 게 그다지 필요가 없어요. 이런 멋진 편집에다가 감독님 취향의 개성 있는 그림들로 인한 생소한 느낌 같은 게 결합되니 놀라거나 긴장해야할 장면들도 잘 살아나고. 다 예측해서 놀라지도 긴장하지도 않았다고 해도 어쨌든 기억에는 남습니다. 특히 이 영화엔 초중반부터 등장해서 내내 시선을 강탈하는 무언가가 나오는데... 그게 또 걸작이거든요. ㅋㅋ 나중에라도 챙겨 보실 분들을 위해 그것의 자태는 짤로도 넣지 않을 테니 호러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도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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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수상한 남자지만 장면은 긴장감 넘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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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 빠진 마스크 살인자도 이 영화 속에서 보면 꽤 그럴싸하게 무시무시하고 그렇습니다.)



 - 그래서... 능력이 부족해서 설명도 못 하겠고. 뭐라도 조금 이야기를 풀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고 해서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작년 최고의 호러 영화로 많이들 꼽는 '롱레그스'가 있잖습니까. 흥행도 대박이었고 저도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만. 같은 해에 나온 이 영화와 둘이 맞붙여 놓고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이 영화를 고르겠어요. 뭐 재미로 따진다면 롱레그스가 더 나을 수도 있긴 하거든요. 하지만 더 인상적이고... 뭣보다 더 맘에 드는 건 이 쪽이었어요. 기괴한 분위기도 튀는 연출도 이 쪽이 더 강렬한 가운데 주인공의 캐릭터나 드라마도 제겐 이 쪽이 더 낫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재밌게 잘 봤습니다. 그러니 호러 좋아하는 분들은 제발 한 번 봐 주세요... 하하. 끝입니다.




 + 가만 생각해 보면 이 영화의 스토리는 뭔가 고전급의 레퍼런스가 많습니다. 시각적으로도 옛날 영국 해머 영화사에서 만들던 호러 분위기가 물씬 나기도 하구요. 근데 뭐 위에서 계속 말했듯이, 그런 걸 이렇게 위화감 없이 엮어서 자기 스타일로 만들어 내는 게 또 능력이니까요.



 ++ '경고'에서 아주 중요한 소재로 등장했던 그 토끼 인형이 주인공의 소장품으로 슬쩍 지나갑니다. 무슨 유니버스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이스터에그였던 듯 해요.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만. 은근슬쩍 넘어간 후 후반에 중요하게 활용되는 떡밥들이 많아서 걍 진상과 결말 위주로 요약해 버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 달시의 동생이 수리 중이던 본인 집에서 살해 당했고. 범인은 남편이 일하는 병원에서 퇴원한, 정신적으로 많이 불안한 사람이었구요. 이 사람은 이후에 다시 끌려간 병원에서 끔찍하게 살해 당했구요. 이후로 동생의 남편은 달시와는 왕래 없이 지내며 새 여자 친구도 만들고 잘 살다가 달시의 부탁, 동생 죽인 놈의 소지품을 갖다 달라, 때문에 찾아와 짧은 만남을 갖습니다. 이때 달시가 '곧 동생 1주기인데 만나서 대화라도 좀 하자'고 제안하지만 남편은 거절해요. 자신에겐 이제 현재 여친이 소중하니 그러지 말아달라... 뭐 그런 건데요. 이날 동생 남편이 주고 간 살인자의 유품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던 주인공이 문득 기겁을 해요.


 그리고 1주일 뒤, 동생의 기일에 남편이 새 애인과 함께 사는 집에 커다란 골동품 나무 상자가 배달됩니다. 이게 뭐야?? 하고 있는데 문밖엔 어느샌가 달시가 쳐들어와 있구요. 남편은 출근, 애인은 시내 볼일 때문에 난색을 표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뻔뻔하게 우겨서 결국 하루 자고 가게된 달시. 남편이 출근한 후에 남편 새 여자 친구를 붙들고 이러쿵 저러쿵 이야길 하는데 그 시작이 이거에요. 내가 싸이코 메트리 능력이 있거든...


 까지만 적고 뒤는 초간단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남편과 새 여친은 사실 달시 동생이 죽기 전부터 내연 관계였습니다. 이혼을 하면 될 일이겠지만 자신에게 귀책 잡혀서 이혼했다가 그동안 번 전재산을 다 털어 넣은 그 대저택을 빼앗길 게 두려웠던 남편은 병원 경비에게 사주해서 달시 동생을 죽였어요. 근데 이 범죄 모의를 곧 퇴원할 환자 하나가 엿들었고. 걱정이 되어 그 집에 들렀다가 진짜로 침입하는 경비를 보고는 달시 동생을 구하기 위해 문을 두드렸던 거죠. 하지만 딱 봐도 수상하고 험악하기 그지 없는 인상의 모르는 남자를 집에 들일 수 없었던 달시 동생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결국 살해당했습니다.


 이 모든 걸 남편이 갖다 준 환자의 유품 & 남편과의 접촉을 통해 파악한 달시는 복수를 위해 자신의 저주 받은 소장품 중 나무 골렘을 세팅해서 이 집으로 배송 시킨 거였구요. 그걸 꺼내 놓고 복수의 기회를 노리지만 그때 나타난 달시 동생의 유령이 남편 새 애인에게 '도망가!!!' 라고 외쳐준 덕에 새 애인은 겁에 질려 도주하구요.


 잠시 후 달시는 동생 남편과 대면하지만 '니놈은 죽이지 않고 평생 몰락한 채로 후회하며 살게 해주겠다. 어쨌든 목숨은 살려 주는 거니까 내 동생 죽인 병원 경비나 이 집으로 보내!!!' 라고 협박한 후 기다리다가 남편이 파 놓은 함정(문자 그대로 함정입니다. 공사 중인 집이라 바닥에 구멍이 있었...)에 빠져 추락하고 곧 죽을 상태가 돼요.


 이때 남편이 상황 파악을 위해 보낸 병원 경비를 골렘을 이용해 공격하는데... 복수 완료 직전에 달시 본인이 숨을 거두는 바람에 골렘은 작동을 멈추고 경비는 목숨을 건지지만 그간 적립한 죄책감과 공포 때문에 맛이 가서 신부에게 고해를 하겠네 어쩌겠네 하고 떠들다가 결국 남편에게, 정확히는 남편이 일부러 들여 보낸 식인 환자에 의해 사망합니다.


 그래서 최후의 승리자가 된 듯한 남편님입니다만. 새 애인은 너도 그놈의 집구석도 다 미친 것 같다며 이별을 통보하구요. 씁쓸... 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 보니 택배 하나가 와 있고 보낸 사람 이름은 없지만 발송 장소가 달시의 골동품 가게에요. 찜찜해하며 상자를 열어 보니 영화 시작할 때 나왔던 그 "원한 벨보이를 소환하는 벨"이 담겨 있구요. 생전에 달시가 "이 벨을 울리면 목이 꺾어진 벨보이 귀신이 나타나 누른 사람을 죽인단다"고 말했던 게 떠올라서 머뭇거리던 남편은... 평소에 초자연을 믿지 않던 본인의 자존심 때문인지 벨을 울려 버려요. 그러고 한참 동안 집의 이곳 저곳, 이쪽 저쪽을 둘러 보며 쫄아 있다가, 결국엔 피식 웃으며 허허 그럼 그렇지... 하는 뒤에 목이 꺾인 벨보이가 서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끝이에요.

    • 조성용님 글에서 보고 관심이 갔던 작품인데 글을 읽으니 갑자기 기대치가 팍팍 올라가는군요. 아일랜드의 황량쓸쓸한 저택이 주요배경이라 사진들만 봐도 분위기가 일단 맘에 듭니다. 보고 재밌으면 그 '경고'라는 영화도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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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역할로 나온 귈림 리라는 배우 얼굴이 눈에 익어서 검색해보니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브라이언 메이로 나왔던 분이군요. 실제 아내분이 자기 남편 젊은 시절이랑 너무 똑같아서 놀랐다고 그랬었죠. ㅎㅎ



      • 아일랜드 잘 모르지만 영화로는 꽤 접하는 편인데 확실히 영국과도 다른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게 있어요. 마치 호주 영화가 미국이나 영국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듯이... 이런 게 참 신기하네요. 서양 사람들도 한국, 일본, 중국 영화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겠죠. 암튼 재밌게 보시길 바라구요.




        아... 진짜 닮긴 닮았네요. ㅋㅋㅋㅋㅋ 이렇게 보니 귀여운데요. 이 영화에선 의뭉스럽고 음험한 캐릭터라서 저런 해맑은 표정 보니 좋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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