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기념(?)으로 감상한 '어프렌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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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서 공개됐을 때부터 국내 포스터에 쓰여있는 문구처럼 "올해 가장 논쟁적인 영화"라는 반응도 있었고 트럼프 측에서 법원에 북미 개봉 정지명령 신청을 한다는 등 이래저래 잡음이 많았던 것치고는 실제 개봉 후에는 그냥 조용히 묻힌 작품입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 까는 영화라서 안볼 것이고 트럼프 싫어하는 사람들도 굳이 영화에서 트럼프를 보고싶지 않아서 안볼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일리가 있는 얘기이기도 했고 직접 보고나니 작품 완성도와는 별개로 다루는 대상을 고려했을때 결과물이 다소 심심해서 기대보다 엄청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그럴만한 부분이 부족한 것도 큰 요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작품에서 다루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야심은 있지만 요령도 경험도 부족한 그냥 부잣집 아들에 불과했던 시절 로이 콘이라는 미국 암흑세계 배후의 1인자를 만나 어떻게 그의 모든 것을 배우고 흡수하여 오히려 그를 뛰어넘는 괴물로 진화하여 지금 우리가 아는 재벌 사업가, 연예인에 이어 미국의 권력까지 거머쥐는 존재가 될 기초를 다졌는가 입니다.


트럼프, 콘이라는 각자 개별로 다큐멘터리, 영화/시리즈를 수없이 만들어낼 수 있을만한 매우 흥미로운 두 실존인물들의 관계를 다뤘다는 것만으로 큰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실제 초반은 상당히 흥미진진한데 생각보다 이후 스토리 전개, 둘의 갈등과 반목 과정이 다소 뻔하고 심심합니다. 전반엔 콘이 각종 비열한 술수들을 가르치고 시범을 보여주면 트럼프는 '이래도 되는거야?' 하면서도 잘 지켜보며 배우다가 후반에는 그걸 몸소 실현하는 존재로 성장하고 늙고 병약해진 콘은 '내가 괴물을 만들어냈구나...' 하다가 쓸쓸하게 퇴장하면서 그냥 그렇게 끝이납니다.


제작진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다소 쉽게 와닿습니다. 트럼프라는 원래 싹수가 노랬던 인물이 콘이라는 악당을 만나고 마침 이런 악덕 기업인들이 해먹고 성장하기 딱 좋았던 레이건 시대와 환상의 시너지를 이루었기에 미국의 현재가 가능했다는 것이겠죠. 다만 뉴욕시의 호텔, 트럼프 타워 건설 등의 초기 중요한 업적들은 콘이 뒤에서 손을 써서 척척 해결되고 나중엔 지가 알아서 다 잘했다 이런 식으로 위에 썼듯이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게 쉬운 전개가 되고 두 주인공의 관계도 도식적으로 마무리가 되는 바람에 이야기가 제작진의 의도한만큼 강렬하게 팍! 와닿는 효과는 없었습니다.


영화 엔딩이 '트럼프 비긴즈'같은 느낌으로 끝나다보니 영화에서 다루는 7~80년대가 딱히 짧은 것도 아니고 나름 묵직한 연출로 마무리를 하는데도 뭔가 계속 더 봐야할 것 같고 이런 아쉬운 느낌이 있어요. 실제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 시절을 다룬 2편과 대통령 당선까지 다루는 3편까지 나와서 트릴로지로 완성이 되야하지 않나? 싶기도 하구요. ㅋ 어쨌든 의도대로 나름 웰메이드 캐릭터 스터디물이긴 한데 만족감은 부족한 작품이었습니다. 처음 각본 완성이 2018년이었다는데 차라리 그때 바로 제작되서 2020년 전후로 개봉이 됐다면 좀 더 관심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트럼프가 쉴새없이 각종 매스컴에 노출되고 SNL 등에서 풍자되는 것 자체도 이제 피로도가 너무 쌓여서 뭐든지 관련된 컨텐츠는 미국 시민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상황이 흥행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이거든요.




트럼프, 콘을 연기한 세바스찬 스탠과 제레미 스트롱 두 배우의 연기 차력쇼케이스 무대로는 더없이 완벽한 작품입니다. 세바스찬 스탠은 영화 초반에는 그냥 윈터솔저가 트럼프 금발 가발을 쓴 것 같은데 점차 로이 콘의 술수는 물론 매너리즘까지 흡수해가며 갈수록 우리에게 익숙한 그 트럼프의 초상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은근히 소름을 돋게 만듭니다. 특히 후반부~엔딩에서의 모습은 거의 호러영화 같아요. 각본상으로도 그렇게 설계가 됐고 감독도 그런 방향으로 디렉팅을 해줬겠지만 배우가 정말 노력해서 완벽하게 소화해낸 공로를 인정해줄만 합니다. 마블 밖에서 별의별 비호감 배역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쌓아온 내공이 최근에 빛을 발하는 느낌이네요.


스탠의 트럼프가 점차 진화해가는 연기라면 제레미 스트롱의 로이 콘은 그냥 처음부터 완전 풀 메소드로 몰입했다는 게 느껴지는 연기입니다. 듀나님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 연기를 평하시면서 했던 '숨소리도 발걸음 하나도 전부 의미가 있는' 그런 스타일을 보여주네요. 트럼프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컨설턴트로 로이 콘하고도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로저 스톤이 영화를 보고나서 소름끼칠 정도로 실제 콘과 비슷했다는 평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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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 미니 시리즈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알 파치노도 이 인물을 연기했었다고 합니다. 메릴 스트립, 엠마 톰슨도 나오고 작품 자체가 엄청나게 호평이었다는데 찾아보고 싶네요.


다만 아쉽게도 트럼프의 첫 아내였던 이바나 트럼프 역할을 맡은 마리아 바칼로바는 거의 캐스팅 낭비였습니다. 나름 그녀의 캐릭터에게도 관점을 부여하려는 노력은 있지만 궁극적으로 트럼프-콘의 관계가 영화의 주동력이고 이바나와의 관계는 양념처럼 다뤄지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를 제대로 활용할 공간이 없었어요. 


작품 자체로는 몰라도 내년 시상식 시즌에 남우 주연상/조연상 후보는 충분히 노려볼만한 결과물인데 트럼프 측의 여러 태클 때문인지 북미에서 제대로 배급을 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어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겨우 개봉을 했다고 합니다. 흥행적으로는 실패했기도 하고 아마 시상식 캠페인을 할만한 여력이나 의지도 부족할 것 같아요. 제레미 스트롱은 탄력만 받으면 수상 가능성도 충분한 퍼포먼스였어서 아쉽게 됐네요.

    • 제목만 보고 옛날 옛적 그 예능 프로그램을 어디서 찾아 보신 줄 알았습니다. ㅋㅋㅋ 이런 영화가 나와 있었군요.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봤는데 알 파치노 캐릭터가 실존 인물이란 것도, 대략의 행적도 당시에 검색 해 보고 알았지만 트럼프와의 그런 관계는 몰랐네요. 상상보다 훨씬 더 아아주 나아쁜 놈이었군요(...)


      말씀대로 HBO 드라마라 원래 웨이브에 있었는데 이젠 사라졌습니다. 과연 다시 돌아올 일이 있을 것인가... ㅠㅜ

      • 요즘 예능도 하나도 안보는데 그걸 굳이 찾아볼리가요. ㅋㅋㅋ 아무리 트럼프에 대한 피로도가 있다지만 어쨌든 현재 세상의 시대정신 중 하나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의 전기영화가 나왔는데 썼듯이 현지에서도 묻혔고 국내에서는 개봉한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멘토 비슷한 그런 존재였었다는 건 어디서 줏어들었지만 자세히는 몰랐는데 트럼프와의 관계를 몰랐던 분들에게는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전 이걸 보고나서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찾아보고 싶더군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뤘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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