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전날 탄핵집회에 있다가 바보같이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새벽 두시에 귀가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좀 찌뿌둥하더군요. 여건이 되서 금요일 오전 반차를 쓰고 안국역으로 향했습니다. 그 전날부터 안국역은 무정차인 걸 알았는데 그 전 역인 종로 3가 역의 5번 출입구도 아예 통제중이더군요. 멈추던 곳이 멈추지 않고 열려있던 곳이 막혀있는 걸 보면서 오히려 길이 뻗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최후의 결정이 우리 모두에게 내려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안국역에 어찌저찌 도착했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가득했습니다. 박근혜 파면 선고 당시에도 헌법재판소 쪽에 갔었는데 그 때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파면 선고가 유력했기 때문이었겠죠. 그 때와 다르게 이 날은 긴장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아침밥을 안먹어서 지하철 안 빵집에서 빵을 사서 갔는데 배고프단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11시 2분쯤 안국역에 도착했는데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벌써 판결문을 읽고 있더군요. 피청구인은 이러이러하다고 했으나 그것은 인정할 수 없다, 사실이라 보기 어렵다는 문장을 계속 말했고 그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하거나 탄식했습니다. 판결문을 들으면서 그동안 집회에 나가던 나날이 스쳐가더군요.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걸 참으면서 문형바 판사가 시간을 확인하는 걸 듣고 덜컥했습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그 순간 다함께 소리를 지르면서 울었습니다. 제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더군요. 같이 갈 일행이 있었으면 얼싸안고 방방 뛰었을첸데 그러지 못해 좀 아쉬웠습니다.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을 때는 모르는 시민들이랑 같이 울면서 기뻐했거든요. 정말 누구라도 포옹하고 그 감격을 같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혼자서 약간 외롭게 감격에 젖어있었는데 무려 한겨레 기자님이 인터뷰를 따가서 괜히 으쓱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보니 제 인터뷰는 안나왔더군요. 좀 안나와서 살짝 배신감을 느꼈습니다ㅋ
파면이 선고되고 광장에서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길'이 바로 울려퍼졌습니다. 그동안 행진을 하면서 수도없이 들었던 노래인데 이 날이 오기까지 간절히 기다렸다는 가사가 직격으로 꽂혔습니다.
'솔직히 말할게
지금이 오기까지
마냥 순탄하진 않았지
오늘이 오길
나도 목빠져라 기다렸어
솔직히 나보다도
네가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라고 믿어
오늘을 위해
그저 견뎌줘서 고마워'
정말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제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 유족대표분이 첫번째로 말을 건넸습니다. 이 탄핵은 모두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위한 위령제이기도 했다는 걸 곱씹었습니다.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이긴다! 라고 외치던 걸 우리가 이겼다! 라고 박민주씨와 김형남씨가 트럭 위에서 외쳤습니다. 스포츠 선수나 경쟁을 업으로 하는 사름이 아니고서야 승리라는 걸 직접적으로 느낄 일이 없는데 이렇게 진정으로, 뭔가를 해서 직접 승리했다는 걸 느끼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절망 속에서 억지로 힘을 쥐어짜내며 행진을 했는데 이 날만큼은 정말 가벼운 발걸음으로 신나게 걷고 외쳤습니다. 행진을 하다가 좀 웃기는 깃발이 있어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운전면시허 실기 1번 문제로 제가 연습하던 게 깃발로 나오는 게 괜히 웃기던...

이 날 회사로 돌아가서는 반차를 쓰고 현장에 나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윤석열 파면에 전혀 관심이 없고 빈말도 안나누더군요. 그제서야 제가 광장에 나갔던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내란을 당한 이 울분과 모욕감을 같이 나누고 싶어서, 민주주의를 소망하는 시민으로서 외롭지 않고 싶어서 광장을 나갔던 것은 아닐지. 광장의 사람들에게 그저 무한한 감사와 자부심을 속으로 나눴습니다. 저를 외롭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저도 우리들이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다고요. 이번 윤석열 탄핵 집회를 나가면서 저는 가장 절실했던 게 바로 '동지'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비록 그 순간만일지라도 동지애를 나눌 수 있어서, 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아마 이렇게 온몸으로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배울 기회는 또 오지 않겠죠. 그리고 무조건 그래야 합니다. 저는 이 세성 수많은 부조리를 멈추거나 사라지게 할 수 없는 일개 개인이지만 "계엄"이란 현상은 저나 제 사촌동생이나 제 조카가 살아있는 평생 두번은 안겪게 할 겁니다. 그리고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너무 외롭지 않게 할 겁니다. 아주 가끔씩이라도 동지를 찾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실천은 가능할 겁니다. 남은 숙제가 많지만 잠깐 쉬면서 되찾은 민주주의를 만끽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