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산 책.

책 구매를 자제하는데 그래도 한 달에 한두 권은 사게 되네요.

읽은 책, 일단 책장에 모셔진 책, 읽고 있는 책 순서로 몇 권 소개합니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

제목의 그해 봄은 2020년 코로나로 뉴욕이 봉쇄되던 봄입니다. 작가 자신인 듯한 노인이 지인의 지인이 비우게 된 아파트에 홀로 있는 앵무새를 돌보기 위해 거처를 그곳으로 옮기는데, 이전에 이 새를 돌보던 청년이 돌아오는 바람에 한 지붕 아래 지내게 되는 것이 표면적인 줄거리입니다. 사건이랄 것은 없어요. 많은 부분이 작가의 지인들과 나눈 대화의 복기와 과거 회상으로 되어 있고요, 돌보는 앵무새에 대한 관심과 사랑, 초면에도 무난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청년과 대화를 트게 되는 과정, 그런 것이 내용입니다. 초유의 전염병 사태 속에서 홀로 사는 노인이 그 시간을 어떻게 타고 넘었는지 돌아본 글이었습니다.

이 책보다 앞서 읽은 [어떻게 지내요]가 좋을 듯 말 듯해서 더 최근 책인 이 책을 읽어 보았어요. [어떻게 지내요]도 작가 자신인 듯한 화자가 등장하는데 중심 이야기는 친구의 암투병과 안락사를 희망하는 그 친구를 조력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역시 작가와 친구의 주변 인물들 일화가 많고 뉴욕 지식인들 다운 예리한 대화가 많아요. 그리고 짜임새도 일반적인 이야기 전개 구성을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형식에 매이지 않고 전개됩니다. 이런 형식적인 면, 그러니까 화자와 주변인들 대화나 사변을 에세이처럼 자유롭게 풀어 놓는 전개가 맥락없이 자주 나오는 경우에는 껄끄럽기도 했습니다. 

이번 [그해 봄의 불확실성]은 그런 게 더 두드러집니다. 제가 소설에서 기승전결에 집착하는 독자는 아니지만 작가가 쓰는 당시의 모든 얘기거리를 그냥 담는 식이라면 한 권의 책에 기대하는 바가 충족되진 않습니다.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를 허무는 글쓰기.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지점. 이런 언급을 책 속에서 하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는 작가 중에 제가 존경하는 작가도 있지만 작품 속에서 직접 언급하여 설득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가볍게 읽어 보기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특히 앵무새에 대해서는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었네요. 수명이 30-40년은 기본이고 검색해 보았더니 어떤 앵무새는 70-80년을 산답니다. 아셨습니까? 저는 이번에 알고 놀랐네요. 지능이 높고 외로움도 강하게 타네요. 이 책을 읽고 며칠 후에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버렸다'를 봤지요. 이게 뭔 일? 주인공이 탐조인이네요. 사실 몇 달 전에 김혜리 기자의 팟캐스트에서 동물학자 이원영이라는 분이 탐조인으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는데 그때부터가 시작이긴 했어요. 왜 갑자기 사방에서 새로 공격해 오는 것일까.ㅋㅋ 저에게 새란 차에 새똥 묻으면 부식되기 전에 빨리 닦아야 한다, 외에는 접점이 없었거든요. 새소리가 들리면 새가 우네, 새가 크게 우네, 이 정도? 그런데 어제는 걷다가 새소리가 들리자 유심히 듣게 됩니다. 어디 있는지 찾아 봄. 아파트 단지내에서 뭐 먹고 사는지도 궁금해지고요. 

8932924929_1.jpg

e842539363_1.jpg


[젊은 인민의 초상]

저자 피터 헤슬러의 첫 책 [리버타운]을 오래 전에 읽었습니다. 생생하고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책이었어요. 읽을 당시에 이 책에 기껍지 않은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책이었어요. 저자가 평화봉사단으로 푸링이라는 중국의 도시에 체류하는데 푸링사범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만나며 그 생활을 중심으로 중국 경험을 쓴 책입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부분이 학교 주변 청소봉사활동을 하는 날 학생 한 명이 와서 왜 함께하지 않느냐고 따지자 '이곳에 와 있는 거 자체가 봉사야'라고 답했다는 것. 이런 식의 거리낌 없는 솔직함이 불쾌함만으로 남지 않는, 그것을 넘어서는 읽는 과정의 즐거움과 알맹이(진심 같은 것?)가 담긴 글이라고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문학 전공자이기도 해서 문학에 대한 학생들과의 교감 부분도 상당히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중국의 쓰촨 대학에 적을 두게 된 저자의 경험을 저도 다시 따라가 보려고 이번 책을 샀습니다. 아직 시작하진 않았고요. 

k682934395_1.jpg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도입 부분을 지나자 책 소개를 하고 싶어져서 이 글을 시작했습니다.  

2011년 기노쿠니야 인문 대상 수상작이라고 하는데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은 모양입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쉽고 재미있습니다. 이제 고작 70페이지 정도 읽었지만요. 

다 읽을 때까지 흥미로울지 완독해 봐야 알겠지만, 게시판에서 추천받은 시리즈도 있고...끝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하네요.

책의 성격을 드러내는 일부를 아래 인용하며 마칠게요.


'지루해하는 사람은 흥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갈구한다. 그 정도로 지루함은 힘겹고 괴롭다. 니체도 말했듯 사람은 지루함에 괴로워할 바에야 오히려 괴로움을 주는 다른 것을 갈구한다.

그런데도 사람이 쾌락 등을 갈구하지 않는다니 놀라운 사실이다. '쾌락'이라는 말이 좀 딱딱하다면 '즐거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지루해하는 사람들은 "어디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라고 종종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는 실은 즐거운 일 따위는 갈구하지 않는다. 그가 갈구하는 것은 자신을 흥분시키는 사건이다. 

이는 다시 말해 쾌락이나 즐거움을 갈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즐거운 것을 적극적으로 갈구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사람은 지루함 때문에 흥분을 갈구하는 것이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은 즐거움, 쾌락을 이미 얻은 사람이 아니라 즐거움, 쾌락을 갈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즐거움, 쾌락, 마음 편함, 그런 것을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진심으로 갈구할 수 있는 것이 더 귀중하다.

성경의 유명한 말씀을 빌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쾌락을 갈구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들은 사건을 갈구하지 않을 테니.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즐거움, 쾌락을 얻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해서 즐거움, 쾌락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가이다.'

k142036710_1.jpg






    • 책 소개글 오랜만에 올려주신거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잘 읽었어요.

      thoma님의 글을 읽으면 읽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차분해집니다. 그래서 저한테는 더 좋게 다가오는 거 같아요.

      그래서 thoma님의 독서를 방해할 시리즈랑 영화 후기를 더 많이 올릴테다. 하고 생뚱맞은 다짐을 해봅니다ㅋㅋㅋㅋ(농담인거 아시죠?)
      • 근래에 많이 보시고 후기도 열심히 올리시는 덕분에 참고가 많이 되고 있어요. 더 분발해 주십시오.(쏘맥 님께 농담 및 아무말 허용권을 드리고 싶네요. 받아만 주신다면요.)

        • 네 주세요. 허용권

          무한대로 주십시요
          •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ㅎ

    • 예전에도 한가함과 지루함... 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던 게 살짝 기억이 나는데요. 이번에 적어 주신 내용을 보면 적어도 저는 '지루해하는 사람'에 해당되지는 않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ㅋㅋ 저를 지루하게 만드는 건 강제로, 수시로 끌려가서 불쾌한 잔소리만 듣다 와야 하는 직원 회의 정도... 인데 매번 10분을 못 넘기고 잠들어서 인사 고과에 반영(!)된 적도 있습니다. ㅋㅋㅋ 그 외엔 워낙 멍 때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딱히 재미를 갈구할 틈은 없는 것 같아요. 




      앵무새 이야기가 흥미롭... 긴 한데 제가 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ㅋㅋ 혐오증까진 아니지만 특별히 정이 가지도 않고 그렇습니다. 그냥 멀리서 볼 때, 높은 하늘을 훨훨 자유로워 보이게 날고 있을 때는 조금 좋지만요.

      • '즐거운 것을 적극적으로 갈구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이 부분에서 직장과 가정의 일과를 마치고 거의 매일 집중해서 보고 글로 정리해 올리시는 로이배티 님 경우가 떠오릅니다. 지난 번의 그 멍때리는 거, 심심함은 긍정적으로 쓰였는데 이번의 지루함은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 지루해 하지 않으려면 즐거움(쾌락)을 찾아야 하는데 이걸 갈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에 매우 동의하고 있어요. 


        저도 새는 좀 거리감을 가졌고 낯설게 생각했는데 최근에 자주 접하다 보니 다시 보게 되네요. 아주 조금이지만요. 

    •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을 인용한 부분이 의미심장하네요. 저도 종종 유튜브를 볼 때마다 느끼곤 합니다. 이게 재미있어서 보는 게 아니라, 따분한 무위의 시간을 견디기 위한 수단으로 틀어놓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런 점에서 '흥분'과 '즐거움'이 구분되는 게 또 여러 생각이 들게 합니다. 아주 짜릿하고 몰입감을 주는 듯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뭔가 솜사탕이 물에 녹은듯한 허무감이 들 때가 있거든요.




      즐거움이 뭔가 생각해보니 저에게는 요리가 그나마 가까운 것 같습니다. 

      • 예전에는 '권태'라고 표현한 것인데 이런 감정이나 상황에 처하는 것이 무척 불쾌하고 위험하다고... 인간의 많은 불행이 여기서 출발한다는 파스칼의 말도 이 책에서 인용하더군요. 이 책의 어느 부분에 공감한 것은 제가 오래 전부터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영화나 책읽기가 그것을 즐거움으로 계속 누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즐거움을 갈구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싶네요.ㅎ


        요리 좋아하시는군요. 직접 해 먹는 걸 좋아하게 된다는 건 정말 유익한 거 같습니다.  

    • 즐거움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사건을 추구한다... 맞는말이네요. 일을 벌이고 말아 버리게 되죠. 즐거움이 오거나 고통이 와도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뭔가 일어난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인생이 무료하고 길다는 걸 나이 들면 알게 되니까...

      • 네 히틀러가 득세하게 되는 독일 쪽 당시 분위기도 이런 바탕이 있었다는 서술이 나와요. 최근의 우익화도 그렇고요.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는 젊은 세대에서도 뭔가 강력한 한 방을 원하고요. 뭐가 됐든 윤리적인 지루함을 벗어난 자극적인 비전 같은 것.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28857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6 573 04-14
128856 Jean Marsh 1934 - 2025 R.I.P. 132 04-14
128855 (뒤늦은 추모글 2) 걸작 누아르 <말라버린 꽃>을 남긴 일본 쇼치쿠 누벨바그의 주역,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 152 04-14
128854 (뒤늦은 추모글 1) 다르덴 형제의 걸작 <로제타>의 천재 배우, 에밀리 드켄을 추모하며 4 244 04-14
128853 [왓챠바낭] 어떤 노숙자의 억세게 운수 좋은(?) 날. '스턱' 잡담입니다 4 266 04-14
128852 [뮤지컬] 알라딘 뮤지컬.. 을 빙자한 육아바낭 7 327 04-13
128851 Ted Kotcheff 1931 - 2025 R.I.P. 115 04-13
128850 [먹부림잡담] 추울 땐 따끈한 스튜를 먹어요 14 283 04-13
열람 최근에 산 책. 10 346 04-13
128848 [넷플] 간만에 착한 드라마 ‘이런, 북극!‘ 4 342 04-13
128847 [쿠팡플레이] 애들 보라고 틀어준 '와일드 로봇'을 함께 보고 그만... 13 488 04-13
128846 <선의의 경쟁> 보셨나요? 3 319 04-12
128845 10CM _ To Reach You(너에게 닿기를) 1 119 04-12
128844 [넷플릭스바낭] '브러쉬업 라이프'를 재밌게 보셨다면 '핫스팟: 외계인 출몰 주의!'도 보세요 24 467 04-12
128843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2차 예고편(약 스포?) 1 168 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