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에 대한 다른 생각

  • Mono
  •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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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역사적 예수 (Historic Jesus) 에 대한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복음서의 저자들이 입힌 여러 신화적 외피를 걷어내고 이천년전 이 땅에 태어나 살다간 어떤 인물의 기행을 실증적으로 따라 가본 책 말이다. 그러다가 오늘 도서관에서 그러한 책을 한 권 읽게 되었다.

아시모프의 바이블이란 책. 그렇다. 바로 그 아시모프이다. 책을 추천한 이는 성서 고고학의 여러 성과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며 조금은 허투로 보는 듯 했고,책을 번역한 이는 아시모프의 세속적 접근 방식에 불경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책이 보이는 잡다한 정보력과 이해하기 쉬운 필체만은 인정하고 들어갔다.

중간쯤에 바리새파와 헤롯당의 사람들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찾아가 질문을 던지는 부분을 다시 접하고 책을 멈춘채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과연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 틀리는지를 묻는 장면 말이다.

어떻게 대답하든 그들이 준비한 올가미에 걸려들게 되는 상황이었다. 예수가 대답을 거부했다면 청중 가운데 로마에 대한 저항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를 겁쟁이라 여기며 경멸할게 확실했다. 당시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의 다수가 그러한 이들이었다. 예수가 로마에 대한 납세를 지지한다면 더 불리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납세 거부를 지지하게 된다면 로마인들에게 그는 불온한 정치적 선동을 하는 이로 여겨져 개입할 빌미를 주게 될 터였다.

예수의 답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로."

청중의 대다수는 이러한 예수의 기지에 감탄하며 갈채를 보냈을 것이며,예수의 적들은 허무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를 지지하던 당시 정치적 급진 세력이었던 셀롯파 사람들은 그의 애매한 대답에 실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고난받는 민중을 구원하기 위해 온 메시아가 아니다. 아시모프는 가롯 유다 역시 셀롯파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과격한 급진파의 일원으로서 유다는 기대를 채워주지 않는 예수의 대답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일이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기로 마음 먹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유다를 은전 몇닢 때문에 스승을 팔아 먹는 단순한 인물로 보는건 탐탁치 않게 여기는 편이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유다를 예수에 비견하는 정신적 크기를 가진 인물로 묘사한 데에는 심미적 이유 뿐 아니라 또 다른 당위성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가롯 유다가 종국에 가서 돈 몇 푼에 스승을 파는 인물일 뿐이라면,애초에 그런 비루한 이를 제자로 거둬들였던 예수의 안목 역시 문제 삼을수 밖에 없게 된다. 예수의 신성에 값하기 위해서는 배신자도 그에 맞는 품격을 갖춰야 한다.

유다가 예수의 답에 실망하는 것과는 별개로 예수는 애초부터 당시의 정치 권력에 반항하고자 할 의도가 없었던 것 같다. 그가 세우고자 했던 하늘 나라는 잘은 모르겠지만 땅 위의 권력들을 치우고서야 건설되는 무언가는 아니었나보다. 훗날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이교도인들의 피를 흘리며 정복 전쟁을 일으킨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예수를 오해한 것은 당시의 지배 권력이었다. 그의 대답에서 알수 있는 그대로 그는 정치적으로 결코 불온한 인물이 아니었다. 예수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면 지배자들에게 예수는 좋게 봐서 로마 황제에 대한 납세 의무를 지지하는 종교 지도자이고 나쁘게 봐서 기껏 메시아를 자처하는 망상광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왜 예수는 죽어야 했을까. 지배 권력이 그에 대해 정말 심각한 오해를 했거나 혹은 이유를 알수 없는 상당한 불안감에 시달리기라도 했나 보다. 어찌 되었거나 그들이 실수를 한 것은 분명하다. 내버려두었으면 혹은 과정에 개입해 적절히 조정했더라면 정치적으로 크게 위해를 끼치지 않았을 어떤 인물을 순교자로 만듦으로서 의식하지도 못한 큰 종교적 환란극의 속으로 말려 들고 만 것이다. 빌라도는 이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수를 처형하라는 압력에 대해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다며 여러번 망설였음을 기록은 보여주고 있다.

물론 종교 지도자들의 입장에서 예수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갑자기 나타난 나사렛의 이 시골뜨기 젊은이는 자유 분방하게 교리를 해석하며 자신들을 화석화된 교단으로 비판하고 그를 따르는 군중의 수는 점차 불어나고만 있었다. 그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보이는 종교적 열정은 위험 수위를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교단의 지배자들로서는 어쩔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빌라도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라도 예수의 처형을 막았다면 어떠했을까. 로마의 정치 권력에 간섭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를 방면하고 예수의 종교적 권위는 자연스레 지배 계급의 시스템 내에 편입되도록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납세 의무를 지지하는 예수는 충분히 그럴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체재화된 교회를 생각하면 간단히 이해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예수는 죽음을 피하고 갈릴리 바닷가를 떠돌며 마지막까지 제자들과 함께 천수를 다하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랬다면 비극적인 최후가 주는 강렬함이 사라지고 지금보다 몇 배는 두꺼워졌을 복음서를 우리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적 상황에서라면,밤거리의 도시 위로 숱하게 보이는 네온 십자가와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돌아가셨다며 믿음을 강매하는 지하철 전도사들의 모습 또한 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분명해지지 않는가. 사람의 아들은 정녕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는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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