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 멀리하기
대부분 직장생활하는 사람들의 식생활이 그러하듯이 저 역시 끼니는 주로 일품요리로 때우죠.
스파게티나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울때가 많고, 중국집을 자주 가며, 분식집이나 일반 식당을 가더라도 볶음밥, 덮밥류, 우동 종류를 많이 먹고, 영 먹고 싶은게 없을 때는 근처 분식집에서 양은냄비에 끓인 라면에 떡볶이나 김밥을 추가로 시키곤 합니다.
밥을 좋아하지만, 국수나 빵 종류 역시 너무나 좋아해서 먹을 고민하는 일은 별로 없거든요.
얼마 전, 병원에서 받은 건강진단을 받고 충격받았습니다.
제 혈당 지수가 건강한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높다고 나왔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당뇨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매우 높고, 자칫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임신성 당뇨가 될 확률도 높다구요. 그리고 혈당 지수가 이렇게 높은 사람은 탄수화물 대사 작용에 문제가 있어 비만이 될 가능성도 높다는군요.
올 여름쯤 임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제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몸보신이 아니라 식단을 바꾸고 살을 빼서 혈당 지수를 낮추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 먹는 식단을 적고 운동을 시작한지 20일 째를 넘겼습니다.
집에 있던 라면을 모두 버리고, 저 기간동안 식빵은 물론 샌드위치 조차 입에 댄 기억이 없습니다.
식당에 가면 일품요리보다는 찌개류를 시켜서 반찬과 부식으로 배를 채우고, 중국집이라도 가는 날에는 볶음밥으로 일단 때우되, 1/3만 먹고 나중에 간단한 과일이라도 사서 부족한 열량을 채우고 있죠.
집에서 밥을 먹는 날에도 밥의 양은 1/3로 줄이고, 식탁에는 푸성귀와 두부, 콩 종류를 주로 올리고 있습니다.
빵과 국수를 너무나 사랑하는 제게-아무리 배가 불러도 빵배는 따로 있는- 의사의 지침은 지키기 너무나 힘든 일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는 저 스스로 놀랄 정도로 잘 지키고 있습니다.
얼마전 어쩔 수 없이 햄버거를 먹었는데, 절반을 남겼음에도 소화가 되지 않아 하루종일 고생했거든요. 이미 식성이 바뀐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고작 20일 동안에요.
그리고 휴일이면 남편과 운동화끈을 동여 매고 근처 대학교를 산보하고 걷는 일이 주요 일과가 되었습니다. 제 건강진단 결과에 자극받은 남편도 식습관과 운동습관을 고치려 노력하고 있거든요.
요즘 흔히 말하는 웰빙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식비도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유기농 채소는 아니더라도 푸성귀 몇천원 어치로 쌉밥을 해먹거나 영 해먹을게 없으면 두부 한 모 사들고 들어오면 되니까요.
그런데, 오늘은 어버이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심장질환을 앓으신 시아버님, 이미 당뇨증상을 보이시는 친정아버님, 그리고 저까지 건강에 문제많은 가족들이 함께 외식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열량과 저콜레스테롤 식단을 갖추고 맛 역시 갖춘 그런 식당은 사실 좀 많이~ 비싸더군요. 그렇게 외식한번 하려면 저희집 엥겔지수가 수직상승할 듯...
식당 예약을 고민하면서, 그간 간편하게 즐겨왔던 외식이 얼마나 제 몸을 갉아 먹었던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쉽게 편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들은 지금 제 식단의 금지리스트에 모두 올라와 있거든요. 친구들과 가볍게 만나 밥먹는 행위조차도 이제는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 되어버린 겁니다.
또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식단도 지겨워질겁니다. 그러면 저는 새로운 식단을 개발해야 하죠. 정기적인 퇴근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맞벌이 부부에게 식단 고민은 사실 좀 많이 사치스럽습니다.
케이블티비에서는 나이젤라라는 여성이 일하는 여성이라고 간편하면서도 영양가 높고 맛있는 식사를 포기할 순 없다고 이것 저것 가르쳐주고 있지만, 제 눈에는 저거 하나 해 먹으려고 갖춰야 하는 온갖 장비들과 재료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게다가, 저는 평생 이런 식습관을 유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정크푸드를 너무나 사랑했던 제가, 과연 이런 모범적인 생활을 평생 유지할 수 있을까요?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긴장의 끈이 어느 순간 툭 끊어지면 만사 다 포기하는 상태로 가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는군요.
결국, 정해진 한달의 식비 내에서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 한정된 먹거리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포기하지 않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저의 지금까지의 문제 많았던 식생활은 독특하고 유별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것이라고요. 긴 업무시간, 짧은 식사시간, 줄어들지 않는 노동강도, 비싼 물가, 이런 것들 안에서 나름대로 타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식생활인 것이죠. 제 시아버님과 친정아버님만 해도 기름진 음식을 넘치게 드셔서 그런 병환에 시달리고 계신 분들은 아니거든요.
청담동에서는 유기농바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고, 비싼 돈을 지불해 가며 토마토와 양상치를 먹으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 유기농 음식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현실에서는 유기농 음식을 먹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 되어버린 현상이 유별난 건 아니겠죠.
사람들에게 좋은 먹을거리를 허하는 것. 그건 사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