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엇을 예로 들면서 노동계급이 어쩌고 살벌한 욕이 저쩌고...그걸 읽으면서 그 사람들 좀 오바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을수록 딴지 기사가 번역해놓은 한국 욕이 맥락상 훨씬 강도가 세게 느껴졌어요.
욕만큼 사용되는 사회와 문화의 맥락, 더 작게는 상황에 따라 강도나 전달하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도 드물죠. 딴지가 주장한 욕 번역의 현실화란건 서로 다른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죠. 한국처럼 아직 보수적이고 성적으로 이중적인 사회에서 영어권 영화의 성적 욕을 직역하려고 시도하면 과장과 불편함만 줄 것 같거든요.
게다 영국사람들은 같은 영어권이지만 미국 사람들보다 fuck을 그렇게 강도 높게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아요. 좀 더 받아들여졌다고 할까요. 중상류층이 주인공인 네번 결혼식과 한 번 장례식의 첫머리를 생각해보세요. 미국이라면 damn정도 할 경우인데 휴 그란트는 fuck을 연발합니다. 역시 그 계층인 브리짓 존스도 그렇구요. 브리짓의 친구 하나는 fuck을 입에 달고 살지만 막가는 게 아니라 입이 그냥 좀 거친 정도로 그려지죠. 러브 액추얼리에서도 그랬구요. 하긴 리처드 커티스는 인물들이 좀 과하게 영국식 욕을 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휴 그란트 상대역으로 나오는 마틴 매커친이 계속 험한 입버릇 때문에 말조심하는 장면은 영국 사람들한테도 낯선 것이었습니다. 누가 실제 생활에서 piss it이란 말을 쓴단 말입니까.
하지만 영국에선 욕의 계층간 벽이 꽤 무너졌습니다. 성적 레퍼런스가 있는 욕이 분방히 사용되는 건 세속화된 덜 종교적 사회라 그렇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아주 보수적인 배경을 가진 영국 애 하나는 남들이 shit 쓸만한 경우에 sugar를 쓰더군요. 제가 노팅힐을 보고 와서 'I have been a daft prick'이 정확히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더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어디서 그런 표현을 들었냐고 하더라구요. (휴 그란트가 기자회견 장에서 고백하기 전에 하는 말이죠. 성적 의미가 완화되어서 '내가 그동안 절라 멍청한 녀석이었다' 정도이지 더 이상의 성적 의미는 없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 같아요) 영국에선 이런 애들이 소수파에 속할 걸요. 제 주변의 사람들이 계층을 망라한 평범한 젊은이들 샘플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얘가 예외였어요.
충실히 보수당에 투표하며 꼭 타임즈지를 읽고 주말마다 승마를 하던그애가 sugar, darn it 하는 걸 듣더니 리버럴한 다른 애들이 '보수파들은 욕도 제대로 못해'하고 코멘트하던 게 기억이 나네요(그런 보수적인 애도 근데 교회는 안 나가더군요. 결혼식때나 갈 생각을 하던 걸 보면).
해리 포터 1편 영화에서 보면 올리버 우드가 퀴디치를 설명하면서 블러저를 the nasty little bugger라고 하잖아요. 거기선 망할놈의 골치아픈 녀석 정도의 의미지만 미국으로 가면 아이들이 얌전한 영화에 나와 쓸 법한 말은 아닌 것 같더군요. 말포이가 네빌더러 미국식으론 fat ass정도 되는 의미이지만 영국식으로 fat arse라고 하는데 그게 미국선 강력한 뜻을 가지게 되죠. 아이들 영화로는 그 표현들이 강도가 너무 세다고 미국서 개봉할 때 경고문이 붙었다고 하는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빌리 엘리엇에 나오는 욕의 강도가 그사람들이 거친 뉴카슬 지역 광부 가족으로 설정되어서 평균보다 좀 험한 것도 사실이고 노동계급이라 그런 것도 맞다고 볼 수 있지만 딴지 기사가 색칠하는 정도의 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빌리 친구가 쓰는 'fucking hell'이란 표현도 딴지가 등가라고 주장하는 한국말 욕의 성적 의미보단 훨씬 강도가 낮지요. 딴지가 자랑스레 소개한 'twat'이야 말로 ㅆ과 ㅈ 들어가는 한국 욕의 강도쯤 될 것 같아요. 그 욕은 QAF에서 때로는 욕으로 때론 애정을 담은 역설적 표현으로 많이 쓰입니다. 알렉산더가 약물 과용을 하곤 앰뷸런스를 불렀을 때 빈스가 막 걱정하면서 이 표현을 쓰죠. 이런 멍청한 놈..정도의 의미지만 표현은 훨씬 강도가 셉니다. QAF에 나오는 욕설은 한국 영화로 치면 '친구'정도의 강도가 아닐까 싶어요. 하긴 빈스는 시리즈 첫머리부터 네이단한테 스튜어트는 (원래 남한텐 신경도 안 쓰는 이기적이고 못된) 나쁜 놈이란 뜻으로 he's a c__t 라고 말하기도 하네요.
다시 빌리 엘리엇의 언어로 돌아가서, 빌리가 발레 선생님에게 Don't lose your blob 이라고 하는 건 맥락상 don't lose your temper/head 정도의 의미를 가진 말을 엉뚱하게 표현한 걸로 이해해야지, 딴지 기사 쓴 사람은 어디서 blob이 속어로 월경을 매우 안 좋게 말하는 표현이란 걸 들었는지 꿰어 맞추었단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리 정서가 거친 지역의 당돌한 아이라도 엄마뻘인 선생님한테 텍스트 포르노그라피 수준의 농을 한 걸로 보면 곤란하죠. 뭐 귀엔 뭐만 들린다고....딴지 답습니다.
영국에선 공중파라도 9시 watershed만 넘으면 별별 성적 묘사와 언어가 많이 허용됩니다. QAF는 게이 스테레오타입, 미성년 섹스가 논란거리가 되었지만 사용하는 언어는 맥락에 맞는다고 생각했던지 그걸 뭐란 사람은 없는 것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