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하나. 일본 사회의 역사성 미비에 대하여.
일본사회의 역사성 미비에 대하여
1. 전후시대
일본인들에게 20세기 초중반의 기억은 대부분 식민지배자로서의 기억과 함께 서구 세력과의 대결에서 최선봉에 있었던 기억, 그리고 그 ‘선봉에 있었기 때문에’ 격어야 했던 아픈 기억들 일 것이다. 오늘날 까지 일본에서 1945년 8월 15일은 하나의 종전기념일 이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느끼는 해방기념일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20세기 역사의 전반의 기억이란 결국 대동아 해방과 그 공영을 위한 노력, 그 좌절과 새로운 공영권의 건설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시각이지 아시아적 관점이나 세계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보편적으로 인정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엄연히 일본에서 사실로서 존재하는 기억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본에 대한 관찰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분석을 원한다면 일단 이것을 현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전쟁은 언제 어디서든 전쟁당사국의 구성원들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하지만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당시 일본에게 크나큰 충격의 연속이 되었다. 그전까지 견제가 있었다고는 하나 서구 열강들과 같은 위치에서 제국주의 지배세력으로 인정되던 일본에게 서구의 포위정책과 압박은 일종의 공포로 다가왔다. 비록 아시아의 우등생 자리는 차지했으나 더 이상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 메이지 시대 이후 만주철도의 지칠 줄 모르는 폭주 기관차처럼 진보, 근대, 서구화에 매진했던 일본에게 서구는 전쟁을 선포했다. 게다가 한차원 아래라고 여겨진 중국까지 일본에게 더 이상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을 확인했다.
전쟁이 완전한 패전으로 끝나면서 이러한 감정은 더욱 강화되었다. 더 이상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 정신"이란 이념적 헤게모니를 잃게 되었고 그 틈을 서구의 사상들이 메꾸기 시작했다. 파시즘 시절 억눌렸던 민주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물리적 해금과 패전, 불황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일본에게 정치의 계절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고찰은 숨어버렸고 전후 질서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그것은 미국의 신질서를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였으므로 정치권의 재편은 물론 사상계의 변화에도 한계가 분명했다.
신헌법은 미국의 허가를 받은 헌법이며 대전 전의 체제에서 생겨난 것이었기 때문에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장점과 단점, 대전 전의 구조적이고 정서적인 문제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조문의 문구 자체보다 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정치권(일본인의 대표집단)의 문제라고도 하겠다. 일본국헌법의 문제는 9조의 부전결의 뿐만 아니라 전체의 헌법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게 문제다. 명백한 군대인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할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 정치적 공방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아직 일본이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를 반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과거의 망령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미래로 나가기 위해 불가결한 과정이다. 물론 모두가 일치하는 역사인식이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기본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아예 알지 못하는 것은 역사성의 부재이다. 역사를 반추하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 되풀이된 역사의 희극에서 비극적인 캐릭터로 존재하게 된다.
2. 전후가 ‘아닌’ 시대
‘55년 체제’의 출범과 안보투쟁의 ‘실패’ 후 경제의 계절이 몰아쳤고 이후 일본은 엄청난 경제성장을 하게 된다. 56년 경제 백서에서 호언된 말대로 ‘이제는 전후가 아닌’ 것이었다. 과거 일본에게 전후시대가 부담되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뒤돌아보지 않고 지금 당장의 일에만 매진하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 분위기가 된 것이 이 시기부터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경제호황이 계속되고 일본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부터 정치적으로도 ‘전후가 아닌’ 시대를 꿈꾸는데 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전전의 경제성장 처럼 전후의 이런 경제성장의 배경에는 생산기술의 연구와 축척, 양질의 인력확보, 호의적이고 계획적인 국제정세가 있었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분배되면서 대중은 중산화, 보수화되었고 고도의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일본이 기업중심적인 사회구조로 변화하게 되는 것도 이때부터 강화된다.
이러한 체제가 모든 이에게 완벽한 만족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당대의 시대적 요구에 일정정도 부응했기 때문에 수십년간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변화하며 체제의 위기가 닥치게 된다. 90년대 들어 ‘헤이세이 경기’가 ‘헤이세이 불황’으로 바뀌면서 문제점들이 들어나는데 그 전에도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현대 일본’에 대한 의문은 제기되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양적인 측면의 풍요로움은 늘어났지만 그것이 행복을 보장해주는가라는 질문들, 학력사회의 교육방법이 가져온 폐해, 고령화와 소자화로 나타나는 가정에 대한 관념의 변화들은 사회 대중의 불만과 불안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여기에 정보화와 세계화라는 경제 환경의 변화, 냉전의 종식, 후발 국가의 추격이 겹치게 되며 나카소네 야스히로 류의 ‘신보수주의 정치’로는 더 이상 대처할 수 없게 되자 필연적으로 정계개편이 일어나게 된다. 93년 자민당 지배체제의 붕괴로서 기존 체제가 일부 붕괴했지만 아직까지 그에 대한 분명한 대안은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무당파의 증가로만 해석될 수도 있지만 무당파조차 기존의 일본 체제에 대해 불만과 불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 생각된다.
국내정치의 지형변화, 국제외교에서의 대미추종의식 배격, 사회문화의 새로운 바람은 각자 추구하는 방향과 그 이념적 토대는 다르지만 분명 일본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전후시대와 전후가 아닌 시대를 넘어 ‘전후를 모르는 시대’로 가고 있음이다.
“...자신에게 이로운 것만 이어받고 자신에게 해로운 것은 나 몰라라 하겠다는 거냐? 너희들은 선조의 모든 것을 이어받으며 죄만은 이어받지 않겠다는 거냐? 너희들이 선조의 죄를 상속받기를 거부한다면, 선조가 남긴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그와 같아야 하지 않느냐!"
“..선조가 찾아낸 알량한 지식! 지혜! 깎아낸 산과 개간된 들판! 너희들의 배를 불려줄 그런 것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으면서, 선조의 죄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냐!"
이영도, 1999. 『퓨처워커』황금가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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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대충 써서 그런데... 부당한 공격이 혹시 있나요? 내일 제출할 거라 누구 보여줄 사람도 없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