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류인생]은 부천 [야인시대] 세트에서 찍은 게 아니라 같은 부지 안에 [하류인생] 세트를 따로 지어서 찍은 것입니다. 물론 [야인시대] 세트에서 찍기도 했지만 다 합쳐봐야 몇 컷(몇 씬이 아닌!)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후시녹음 문젠데..... 제 주위의 많은 분들 역시 오해하시는 부분입니다. [하류인생]의 후시녹음 비중은 근래 만들어지는 한국영화에 비해서 결코 큰 편이 아닙니다. 동시녹음의 외부 여건(차 씬, 비 씬) 혹은 대사의 추가,변화의 상황 이외에는 거의 안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후시녹음이라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아마 임권택 감독님에 대한 선입견이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작품 내적으로는 주연배우들을 제외한 배우들이 연극배우 출신(거기다 영화는 대부분이 처음이죠)이다 보니 발성이나 연기 양식에서 그런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영화의 스타일이나 그에 따른 감독님의 연기지도도 극사실적 연기양식을 내보이기엔 무리가 있었죠.
그리고 쓰레기!!! 이건 약간의 변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쓰레기 셋팅은 할 만큼 했습니다. 단,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한도 내에서........ 현장의 어르신들이 입을 모아서 하시는 말씀들..... 명동은 그당시 최고의 멋쟁이들이 오는 유행의 최첨단 거리다. 지저분 한 느낌을 줘서는 절대 안 된다...... 결국 쓰레기는 사실감을 살릴 수 있을 만한 디테일의 부분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걸어다니며 오감으로 느끼는 디테일과 프레임 안에서 볼 수 있는 디테일에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죠. 프레임 안의 디테일은 카메라로 쫙 한 번 훑어 주던지 혹은 한 컷 따로 따 주던지...... 결국 카메라 시선의 취사선택에 따라 디테일은 그야말로 디테일로 끝날 수 밖에 없습니다.
압니다.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그런 디테일들로 영화에 사실감을 부여해 왔는지...... 그래서 결국 변명이라는 겁니다. 결국 요는 1.어르신들 왈 '명동은 지저분하지 않다' 2.그래서 지저분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쓰레기 세팅을 했다. 3. 하지만 그런 디테일이 보일 만큼 프레임은 친절하지 않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디테일을 왜 하느냐?라는 질문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영화 한 편을 만들면서 이런 뻘짓을 정말 부지기수입니다. 근데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결국 영화 만드는 사람들끼리는 다 보이거든요...... 차유리 지저분한거..... 카메라 살짝 덜컥거리는 거...... 설정 안되어 있는 조명 그림자 보이는거....... 딴 영화에 나왔던 소품 나오는 거....... 영화 앞부분에 경찰로 나왔던 보조출연자가 뒷부분에는 행인으로 나오는 거........ 주연배우 머리길이 미세하게 왔다갔다 하는 거....... 결국 한 영화 만드면서 그런 것들 신경쓰다보니 딴 영화의 그런 것들이 보이고 또 보이니까 더 신경쓰게 되고........ 게다가 시대극은 쓰레기 마저도 고증에 맞춰야 하는 고충이 있죠. 전화기 하나를 놓기 위해서 전화기가 언제 공전식 전화기에서 다이얼 식으로 바뀌었는지 하얀 전화기는 언제부터 들어왔는지 알아야 하고, 벽보를 붙이기 위해서 절미운동이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났는지 등 우리나라의 모든 캠페인은 줄줄 꾀고 있어야 하며. 간판 하나를 붙이기 위해서 우리나라에 아크릴 간판이 언제 들어왔고 외래어 표시가 언제부터 가능했으며 전화번호는 한자리 국번에서 언제 두자리 국번으로 바뀌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근데 이런것들이 눈에 보이느냐....... 잘 안 보이죠. 매 실내 씬마다 전화기가 나오고 매 야외 씬마다 벽보와 간판이 붙지만 카메라가 그런 것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한 관객들이 보기는 힘들죠. 4.19, 5.16 씬 정도나 되야지 그런 주변 환경들에 카메라가 관심을 가져줄까...... 대부분 카메라의 관심(결국 관객의 관심과 동일하죠)은 인물이고 사건이죠. 그렇게 카메라의 관심도 못 받는데 신경을 써야 하는 건 결국 그런 수많은 디테일들이 영화의 사실성을 덧붙여주는 기본 조건이 되기 때문이고요.
에구, 변명이 너무 길었네요. 그냥 짧게 글 남기려고 했는데 주저리주저리 길어져 버렸습니다.
저 역시 [하류인생]이란 영화를 보니 어떻더라 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이미 객관적이기 힘들것 같고 또 스스로 객관적이라고 생각해도 듣는 사람이 의심할 터이니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도 혹 보신 분이나 보실 분이 있다면 감사하단 말은 드리고 싶네요. 좋게 보셨든 나쁘게 보셨든 결국 그건 보신 분들이 몫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