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다. 인간이 욕심을 품는 대상은 다양하다. 권력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전쟁이 나면 많은 사람이 죽어가지만 욕심에 끝이 없듯이 전쟁도 끊이지 않는다.
3200여년 전에 일어난 트로이 전쟁은 고대 전쟁의 모체로 불린다. 적어도 서양에선 지금까지 전해온 전쟁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트로이 전쟁을 노래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는 신과 영웅들의 무용담이 뒤범벅돼 있다. 그러나 영화 '트로이'는 이 전쟁에서 신들의 이야기를 지우고 인간들의 욕심을 부각했다.
트로이 전쟁의 직접적인 발단은 여자였다.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는 그리스를 방문했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와 바람을 피우고 함께 트로이로 도망친다. 신화에는 이 사건이 여신들의 미모 다툼 때문에 생긴 것으로 그려져 있다. 반면 영화에선 늙은 왕에게 성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왕비와 넘봐선 안 되는 여인을 넘보는 청년의 정욕이 원인임을 암시한다.
물론 전쟁이 여자 하나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 왕은 이 기회에 트로이를 굴복시켜 그리스와 에게해의 패권을 손에 넣으려 한다. 동생의 아내인 헬레네를 되찾아 오는 것을 명분으로 했지만 그 뒤에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스 최고의 전사이자 주인공인 아킬레스는 불멸의 명예를 얻으려는 욕심으로 전쟁터에 나선다. 그에게는 떠나기 전부터 불길한 예언이 주어진다. 그리스에 남아 있으면 평화로운 삶을 살겠지만 후세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전쟁에 나가면 돌아오지 못하지만 영원히 이름을 남길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강점은 사실적으로 되살린 전투장면이다. 화살이 빗발치는 가운데 수만명의 군대가 격돌하는 장면은 장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화면에 나온 모두가 실제 사람은 아니다. 제작진은 1000명이 넘는 엑스트라를 동원하고, 나머지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했다. 트로이 성곽과 목마도 각각 10m 이상 높이로 재현했다. 제작비로 1억5000만달러(약 1800억원) 이상을 썼다고 한다.
단점이라면 이야기 전개에 다소 어색한 부분이 눈에 띈다는 것. 방대한 분량의 '일리아드'를 2시간40분짜리 영화에 요약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트로이의 여사제 브리세이스가 아킬레스를 죽이려고 칼을 들이댔다가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논개를 기억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화려한 볼거리에 치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로맨스가 약해진 것도 아쉬운 점으로 들 수 있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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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여자분이 쓴 듯한 일간 스포츠 기사
아킬레스, 그 치명적인 섹시함
21일 개봉 영화 '트로이'
할리우드 대작 사상 최고로 섹시한 영화가 탄생했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트로이>는 단일 영화 사상 최고인 2억 달러(약 2360억 원)의 제작비로 화제를 모으는 작품.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남녀를 사로잡는 섹시함이다. 거대한 자본의 뒷받침을 받는 화려하면서도 원시적인 섹시함이 지중해의 쪽빛 바다와 함께 스크린을 넘실댄다.
섹시함의 진원지는 뭐니뭐니해도 아킬레스를 맡은 브래드 피트(41). 40대로 접어들었음에도 도저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단단하고 매끈한 몸을 과시하는 피트는 움직임 하나하나에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매는 흡인력을 발휘한다.
치명적인 약점을 뜻하는 말인 '아킬레스 건'의 주인공 아킬레스는 고대 그리스 최고의 전사. 최고답게 왕의 명령에도 코방귀를 뀔 만큼 건방지고 제멋대로지만 치명적으로 매력적이다.
여전히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피트는 상상 속 아킬레스의 모습에 쏙 들어갔다. 지중해만큼 파란 옷을 입은 이 금발의 '청년'이 창과 방패를 360도로 회전하고, '척척' 소리를 내며 저돌적으로 뛰어가는 모습은 넋을 빼놓는다. '아침부터 왕자를 죽이긴 싫군'이라며 한껏 잘난 척하다가도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앞뒤 안 가리는, 인간과 신의 경계에 선 영웅의 모습은 관객의 너그러운 몰입을 이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다. 그리스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트로이가 패할 수밖에 없었던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전술적 패착. 거기에 영원불멸의 소재인 사랑을 꽤나 에로틱하게 입혀 놓아 오락적인 조건을 두루 갖췄다. 숨이 턱에 넘어가는 대규모의 육박전은 애프터 셰이브 로션처럼 짜릿하고, 말과 수레 창과 칼, 활의 움직임은 남성성을 극대화한다.
이미 <반지의 제왕>에서 충분히 즐기긴 했지만 CG로 심은 배와 병사들의 모습은 화면을 압도하고, 난공불락의 트로이 성은 웅장하다.
하지만 <트로이>는 오락영화에 머문다. 지글거리는 지중해의 태양과 모래밭만큼 원색적이고 강렬하지만, 이 모든 사단이 '한낱' 사랑 때문에 비롯됐다는 낭만적인 시선만큼 단순 편리하다. <반지의 제왕>이 던지는 '절대 반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윤고은 기자<pretty@il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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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의 중앙일보 기사의 맨 마지막 문단에 논개를 인용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