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매니아라는 건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대중적인 영화를 보거나 '비'에 열광하는 그런 일반적인 대중을 말하는 게 아니라 대중문화의 분야에 속하되 일반적인 대중들의 관심분야 바깥에 있는 그런 문화의 매니아들을 말하는 겁니다.
즉 서브컬쳐(하위문화)라고나 할까요? 사실 매니아라는 단어 자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가 언더그라운드 적인 거잖아요.
예를 들면 락(메탈까지 포함하여) 매니아 라든가 재즈 매니아 라든가 힙합 매니아 라든가 아니메 매니아 같은 것인데 다른 매니아들은 잘 모르겠지만 락 매니아들의 편협함이나 젠체하는 모습(듀나님 표현대로라면 스노비즘), 권위주의 등이 어떻게 보면 클래식같은 소위 순수예술 분야의 애호가들을 능가한다고 느낄 때가 많아
요.
만약 문희준 팬이 클래식이나 국악 동호회 같은 곳에 가서 좋은 클래식 음악이나 국악을 알려달라고 했다면 그 쪽 사람들은 아주 반가워할 겁니다.
하지만 락 매니아들이 모인 곳에선 문희준 때문에 락 듣는 빠순이라고 무시하려드는 경향이 있죠.
저는 국악 쪽은 잘 모르지만 몇년 전 인터넷 상에서 황병기씨의 '미궁'이란 곡의 음원파일이 '악마의 노래'이니 '들으면 자살하게 되는 음악'이라느니 하는 괴담과 함께 떠돌아 다닐 때 황병기씨의 홈페이지에 그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황병기씨는 이런 사람들에게 화 내지 않고 오히려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이 음악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시더군요.
그리고 국악하시는 분들은 가끔씩 대중가수들과 협연도 하지만 락 매니아들 세계에서는 헤비메탈 가수가 트롯트 가수와 잠깐 한 무대에 서는 것도 그 음악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행위인양 여기더군요.
물론 위에서 예를 든 국악하시는 분들은 아주 소수의 예이고 그들의 세계에서도 그러한 '외도'에 대한 비판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같은 대중문화 안에서 그런 편가르기가 있다는 것은 일반가요 보다는 락을 더 좋아하는 저에게도 이상하게 보여요.
그리고 또 하나 우스운 건 정통이니 전통이니 원류니 하는 것에 대한 집착이죠. 원래는 클래식이나 국악에서 절대시하던 것이 전통문화와 비교하자면 이단적이라 할 수 있는 락이나 힙합 같은 서브컬쳐(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안에서도 더욱 서브컬쳐)의 매니아들이 절대시하고 있죠.
예를 들면 힙합 매니아들 사이의 라임 논쟁이나 락 매니아들 사이에 벌어지는 진정한 락의 정신에 대한 논쟁이 그런데 물론 그런 논쟁 자체가 모두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라임논쟁을 통해서 그동안 우리문학에서 좀처럼 시도되지 않은 각운이 좀 더 활발하게 쓰여 표현방식이 더 다양해졌다는 순기능도 있고(그래서 문학도 중에는 랩에도 배울 게 많다고 하는 사람이 있죠) 락의 정신에 대한 논쟁을 통해서 대중문화의 올바른 방향을 생각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그러한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라임을 힙합이라는 장르만의 필수요소인양 안다거나 우리말에도 영어 랩가사처럼 라임이 쓰여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 그리고 락 매니아들이 락을 댄스음악과 전혀 별개 분야인것처럼 여기는 것은 하나만 알고 다른 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영문학 하시는 분들이나 국문학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라임은 본래 영문학에 있던 것이었고 한국시에는 엄밀히 말하자면 율은 있어도 운은 없죠(엄밀히 따지면 운율에서 운과 율은 다른 개념이라고 합니다.) 우리말 자체의 특성 때문에 문학인들 조차도 라임은 실험단계에 머물렀다고 알고 있습니다(요즈음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락의 경우 락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락큰롤이 사실 그 시절의 댄스음악이었죠. 엘비스 프레슬리는 아이돌 스타였고 락큰롤이란 단어 자체가 상당히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죠. 그런데 락 매니아라는 사람들은 락은 결코 댄스음악이 되어서는 안된다느니 락은 본래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한 이미지가 생긴 건 반전운동이 일어나고 나서 부터인데 말이죠. 오히려 당시의 기존 락 매니아들에겐 락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이슈를 노래한다거나 한다거나 아트락이라고 해서 난해한 예술성을 추구한다는 게 생경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런 경향은 그 장르의 곁가지로 갈 수록 심함니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 음악은 ***락으로 부르면 안된다느니 하면서 장르분류에 신경을 쓰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그게 이상하게 보이는 건 그 분류기준으로 드는 기준이 특정 장르에 기준으로 삼을만큼 그렇게 독창적이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하드코어나 이모코어 등이 펑크락에서 파생된 펑크락의 정신을 계승한 음악이기 때문에 그 정신(아나키즘, 노동자 계층 대변, 반골정신 등)이 담겨있지 않으면 하드코어나 이모코어 같은 이름으로 분류하면 안된다는 식의 주장을 들을 때 그래요.
거기서 필수요소로 말하는 정신이라는 게 펑크락이 처음 생겼을 때 부터 생겼습니까? 알고보면 이미 수백년 전에 그 원형이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그 락매니아들이 펑크족이 아나키즘을 만들었다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면 너무 그 점을 강조하니까 마치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리더라구요.
그리고 이러이러한 음악의 원류격에 해당되는 사람이 아무개이니까 그 사람 다음에 나온 사람들은 다 그 사람의 아류에 불과하니 같다 버려라 같은 식의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백년도 못되는 락의 역사 안에서 그렇게 원류를 따져봐야 뭐합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만 그 원류에 해당되는 사람은 클래식 음악의 아류에 불과하게요.
사실 어떻게 보면 락 뮤지션의 원조가 클래식 음악가들이거든요. 피아노를 부쉰 리스트는 기타 부쉬는 락 기타리스트들의 원조인 셈이죠. 그리고 리스트의 그런 과격한 무대매너에 반해 기절한 여성팬들은 락 뮤지션들의 그루피의 원조격인 셈입니다.
그래서 어떤 클래식 음악 연구가는 락 공연장의 모습이 오히려 클래식적인 모습이라는 말까지 했죠. 이 얘긴 서점에서 별 생각없이 클래식 음악서적을 들추다 우연히 발견한 건데 제가 이 글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쿨'이란 단어하면 왠지 서브컬쳐에 어울릴 것 같은데 그것과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고급문화' 쪽 사람이 어떤 면에선 그걸 더 잘 이해하고 열린마음으로 받아들이니 오히려 '쿨'하다는 거죠.
일반화 시킬 순 없지만 위에서 예를 든 그런 부류의 매니아들을 보다가 이런 사람을 만나면 요즈음 문화는 소위 '고급문화'를 누리는 계층과 '하위문화'를 누리는 계층이 서로 반대 쪽의 태도를 닮아가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예전엔 '고급문화'를 누리는 계층이 자기네들의 문화를 고상한 취향이라 부르면서 보수적으로 굴었는데 요즈음에 보면 '고급문화'를 누리는 계층이 그동안 저급한 취향으로 불렸던 자기와 정 반대 계급의 있는 계층의 문화적 요소를 과감하게 받아들이더라구요.
교양있는 부자집 가문에서 태어났고 그 자신이 18세기 귀족문화 애호가인 칼 라거펠트는 몇년전 샤넬 컬렉션에서 철물점에서나 봄직한 쇠사슬을 감은 의상을 선보였고 그 자신도 6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바지에 체인장식을 달아 정장을 펑크풍으로 입었죠.(작년 12월 보그지 화보에 그 사진이 있습니다)
반면에 '고급문화'에 반기를 들고나온 '하위문화'계층은 자신들의 문화가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는 다른 고상한 것으로 인식되기를 원하고 자기네들의 순수성을 지키는데 신경쓰는 경향을 보입니다.
일부 락 매니아를 보면 이런 로고가 있는 티는 이런 사람이 입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못을 박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