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과 양심적 병역거부
예비군과 양심적 병역거부 | 2004.05.23 15:03:25 by 펜더
지난 5월 21일 난 예비군 6년차 상반기 향방작계 훈련을 받았다. 군대를 갔다오신분이라면, 또 예비군 훈련을 받아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향방훈련이란게 말 그대로 ‘애들 장난’같은 훈련이란걸 알고 계실 것이다. 2차대전때의 유물인 M1 카빈 소총 한자루 받아들고 길가에 퍼질러 앉아 담배만 빼어물다 동대장이 한참 관내의 목진지를 설명하고, 행군(?)하고 예비군들은 그 와중에도 씨팔씨팔 거리며 예비군을 왜 해야 하는지 성토하는 분위기 군대있을땐
- 까짓 예비군 100시간이라도 받겠다!! 제대만 시켜다오!!
이리 외치던 것이 막상 삶에 치여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안그래도 바쁜데 끌려나와 이게 무슨 개같은 짓이냐며 언성을 높이기 일쑤이다. 어떤 예비군 말처럼
- 차라리 현역 복무기간을 늘려줘라!! 예비군 같은거 하지 말고!!
란 말이 그렇게 가슴에 와닿을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 엿같은 예비군도 이제 두 번만 더 받으면 졸업이다. 물론 7,8년차가 남았지만, 그때는 소집점검이라고 전화만 받으면 된다니 이제 그야말로 졸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1살 그 꽃다운 나이에 끌려가 나이 서른이 되어 한 아이의 아빠가 될 때까지 근 10년을 국가에 의해 강간당한 내 청춘...어떤이의 말처럼,
- 젊고 싱싱할 때 국가에서 내 청춘을 다 빨아먹고, 나이들어 쓸모없다 싶으니 버리는거 아냐...예비군 끝났다고 좋아하지 마라, 네 청춘이 끝났다고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거니까...
그렇다 내 청춘은 그렇게 끝이 나려 하고 있다. 국가에선 이제 더 이상 내가 국방의 의무란 것에 쓸모가 없다 생각하고 날 버리려 하는 것이다. 버리던 말던 그 엿같은 국방의 의무란 늪에서 빠져나올수 있단 사실 하나만으로 난 감격하고 있다. 내 짧은 30년 인생의 1/3을 잡아먹은 군대...아니 고등학교 시절 3년간 받은 교련까지 합하면 물경 13년의 인생을 좀먹은 그 군대라는 탈...이제 제발 국방색 군복을 찢어버렸으면 좋겠다.
1. 전투화
5월 21일 훈련을 받다가 난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다. 겨우 1시간 걸었나?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을 걸었다고 내 양쪽 발뒤꿈치에 물집이 잡혀 버렸던 것이다. 한발짝 걸어나갈때마다 쓸려내려가는 그 아픔이란...논산에서, 현내에서 그리고 유격장에서 죽도록 뺑이치며 굴렀을때 잡힐까 말까한 물집...그것도 상병 달고 부터는 행군 할때나 발바닥에 잡혔던 물집이 잡혔던 것이다. 쪽팔렸다고 해야할까?
내가 사회에 나와 너무 편하게 살았던 것일까? 아니면 이제 전투화를 받아들이기에 내 발이 너무 고급이 되었던 것일까? 나이키 농구화와 리복 농구화만 신는 내발이 근 3년만에 다시 신은 전투화를 거부하는 것인가?(그동안 난 전투화를 신지 않고 훈련을 받았다. 전투화는 그저 목에 걸고 나가 전투화 가져왔다는 것만 보여주면 되었다)
여하튼 나른한 초여름의 햇볕 앞에서 물집잡힌 내 발은 날 괴롭혔다. 상근에게 총을 건네주며,
- 아파서 못걷겠으니 택시타고 집결지 가겠다
며 떼를 쓰는 내모습을 보며, 나도 어쩔수 없는 ‘야비군’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울상이 된 상근의 얼굴을 보며 한숨 반 체념반으로 끝까지 걸었지만, 발뒤꿈치의 고통은 결국 이 나라에 대한 원망과 국방부에 대한 증오로 날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결국 주민등록증과 총을 바꿀때까지 나는 내 양쪽발의 시큰거리는 아픔을 참아야 했다. 총기안전고리...한때는 총기 피탈방지끈이라 불리는 내 허리춤과 카빈소총을 연결하는 끈을 풀고 장판지로 만든 명찰을 반납하고 난 향방 6년차의 첫 향방작계 훈련을 마치게 되었다...영광의 상처와 함께 말이다.
2. 양심적 병역거부
집에 와 발 뒤꿈치의 물집을 터트리고, 살을 뜯어낸 나...과산화수소를 뿌리고, 그 짜릿한 아픔을 뒤로 한체 하얀포말을 닦아낸 뒤 후시딘을 바르는 그때 난 뉴스에서 나오는 좀 황당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 서울 남부 지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그랬다.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물론 1심재판이고, 법원에서의 첫 판결일 뿐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천지개벽이 된 것처럼 들불처럼 들고 일어났다. 병무청과 국방부는 입에 거품을 물고 성명을 발표했고, 재향군인회는 이 나라가 조만간 무너져 내리기라도 할 듯이 비분강개조로 자신들의 주장을 하였다. 시민단체도 찬반으로 나뉘어졌고, 주말 토론프로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을 말하기 위해 저마다의 대표선수를 내보내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내 발뒤꿈치의 아픔속에서 난 묘한 그 무언가를 느껴야 했다. 잘됐다...이 나라가 드디어 전체주의의 탈에서 벗어나는 구나란 생각과 내 발뒤꿈치의 아픔이 교차하고 있었다.
내가 군대를 왜 갔을까?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처럼 창원 병무청에 내려가 팬티 한 장 달랑 걸치고, 각종검사(?)를 받던 그때가 생각이 났다. 치질검사를 위해서 똥구멍을 벌리라던 명령이 생각났다. 징병검사를 받고 나서 1년이 흐른 뒤에 나는 영장을 받아들어야 했다. 그 막막함을 어찌 필설로 다 받아적을까? 전혀 낯선세계로 떨어지는 그때의 그 심정, 내가 원해서가 아닌 국가를 위한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라는(도대체 이게 왜 권리가 되는 것인지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2년2개월동안 개패듯이 두들겨맞고, 사람죽는 거 보면서, 나중에 가선 내가 내 후임들을 두들겨 패야지만 ‘인정받는 고참’이 되는 그 시간들이 어째서 내 권리가 되는 것일까? 그런 권리라면 난 백번이라도 포기하고 싶다) 그 군역(軍役)을 하기 위해 나는 낯선 땅 낯선 사람들에게 끌려갔다.
21년을 살아오면서 내 아버지의 눈물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게 된 장소가 바로 논산 입소대대였다. 내게 있어선 강건하기 그지없는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에게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셨다.
그리고 난 처음으로 그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단아’들을 보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이단, 대한민국의 암적인 사이비 종교...다들 뺑이치고 고생하는 군대를 저혼자만 피하겠다며 집총거부를 하는 엿같은 존재들....
입소대대에서 부모님들과 친지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장정’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사라지는 입소대대 뒤편 건물로 들어가자 마자 우리는 원산폭격을 해야 했다. 바짝 땡긴다 해야 할까? 담배피며 조교를 무시하던 불과 몇분전의 상황은 180도로 변했고, 우리는 개돼지마냥 뒹굴고 군화발에 채여야 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뒤 장교 한명이 나서서 우리 중에서 ‘피’를 솎아 내기 시작했다.
- 여호와의 증인, 제7안식일교 나와
그랬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는 정장을 입은 차분한 얼굴의 우리또래의 남자 한명...안경을 끼었지만, 그 눈빛은 선함 그 자체였다. 아직 훈련병 딱지도 달지 못했고, 군번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벌써부터 국가권력의 힘 앞에 무력해질데로 무력해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그를 보며 까닭모를 외경심을 느껴야 했다. 그가 우리와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들의 욕을 먹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의 그 의연한 자세...20대 초반의 아무것도 모르던 천둥벌거숭이 였던 나와 내 주변의 이들에게 있어서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을 상대로 그렇게 의연하게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 한다는 자체가 이해불가였다. 아니 어쩌면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그들은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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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츄리닝에 평상복을 입고 온 그 중에서 그는 쥐색 정장을 차려입고는 누런 봉투 하나를 옆구리에 들고 장교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를 비롯해 3명의 사람들은 그렇게 장교의 통제하에 몇 번 얼차려를 받았다. 구르고, 돌고, 대가리 박기를 하더니 그렇게 어디론가로 향했다. 그리고 조교의 나지막한 한마디...
- 독한노무시키들...
3. 도그빌....
제대를 했고, 사회는 빠르게 변해갔다. 군생활 기간동안 나는 소위 어른들이 말하는 ‘어른’이 되어가야 했다. 둥그런걸 보고 ‘네모’라고 말할수 있는 마음가짐을 배웠고, 말로 해선 안될때는 개돼지처럼 패야된다는 걸...18평 좁은 내무반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생활해야 하는 인내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뛰어다녀야 했던 유격훈련의 참혹함 속에서 도대체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대한민국 군대는 국민의 군대라서 국민의 안위를 지켜내야 한다는 대대장의 훈시 뒤에 시골촌부들이 모내기 철만 되면 ‘대민지원’이라는 허울좋은 명목으로 우리병력을 빼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
얼마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을 보며 느꼈던 그 불편함...나는 도그빌을 보며 느꼈던 그 ‘불편한 감정’이 지난시절 내가 2년2개월 동안 군대에서 강간당하는 그때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사실에 놀랬던 것이다. 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도그빌을 보며 불편해 했던 그 감정을 나는 26개월 동안이나 몸으로 체득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탈했었다.
한달에 9천2백원을 받으며 개패듯이 두들겨 맞았고, 사람이 죽는 걸 봐야했고, 착취 당해야 했던 26개월...대한민국 국민중 1천 5백만이 군대를 갔다왔다고 그런다...그렇다 무려 1천5백만의 국민들이 국가에게 강간을 당했었던 것이다.
자신의 그 아픈 상처를 달래려고 소주잔을 들면 자신의 군생활을 쏟아내며 허풍으로 자신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터진 ‘월짱사태’ 부산대 여학생들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한 예비역에 대한 비하는 전국을 강타했다. 보지에 수류탄을 쑤셔박은 다음에 오바로크 쳐 버리겠다는 욕이 아무렇지 않게 게시판을 가득 메우던 그때 내가 느낀 한가지는
- 대한민국에서 절대 건드려선 안되는 성역의 확인
이었다. 예비역들은 분노하고 아파했다. 그들이 국가로부터 강간당한 그때 그 시절 도그빌의 그레이스가 되어야 하는 그때 방관자인 톰이 되어 그레이스의 착취모드에 같이 뛰어든 그들의 모습에 그들은 분노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분노는 정당했다. 다만 그들이 분노를 표출해야 하는 대상이 잘못되었을 뿐....
국가는 매년 30만의 청년들을 강간하며 그 틀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청년들은 단지 ‘국방의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라는 재단에 끌려가 강간당하고, 두들겨 맞고, 개돼지 취급을 받다가... 재수 없으면 시체로 끌려내려오는 것이었다.
4.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전세계 80여개국의 징병제 유지 국가중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국가는 40여개국 정도에 이른다. 나머지 40여개국은 징병제만 유지하고 있다. 그 40여개국의 국가중 우리가 눈에 익은 국가로 대체복무로 유명한 나라가 러시아, 독일, 대만, 쿠바 정도이다. 독일, 대만, 쿠바라...한눈에 봐도 이해가 안가는 구석이 있는 국가들이다.
독일의 군 복무기간은 9개월이다. 대체복무자의 경우는 10개월을 근무한다. 덕분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징병가용자원의 절반 정도가 대체복무로 사회봉사에 참여한다. 이들 대체복무자들의 임무는 다종다양해서, 간병인부터 시작해 의용소방대원, 구급차 운전수에, 안전관리요원등에 종사한다. 그 중 일부는 아프리카 난민촌에 가서 국제구호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그들의 활동영역은 넒다.
그들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들은 그저 편지한통만을 쓴다. 자신이 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지에 대한 편지를 써서 심사관에게 보내면 그 편지를 읽고 심사관이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징병가용자원의 절반 정도가 이런방식으로 대체복무를 선택하고 있었다.
대만은 어떠할까? 언제나 한국과 비교되는 대만...인구 1천8백만에 한때 40만 대군을 운용하는 국가...지금은 천수이벤 총통의 군개혁 작업 덕분에 30만까지 줄어들었고, 조만간 24만까지 병력을 줄이겠다고 군개혁을 가열차게 시도중인 대만...대만은 2천년대 들어와서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근무를 허용하였다. 22개월의 군 복무기간에 50%를 더 붙혀서 33개월의 대체근무기간을 정해놓은 그들은 대체복무자의 지원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대체복무 기간을 26개월로 줄였다. 이들 역시 양로원이나 무의탁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한국은 어떠한가...매년 600여명의 젊은 이들이(거의 대부분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다) 집총거부의사를 밝히고 정찰제로 3년형을 언도받다가 요즘은 1년6개월형으로 정찰제 선고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철창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신념에 대한 호된 댓가를 치루고 있다.
그들이 과연 병역기피자들일까? 병역기피자들과 그들이 동일선상의 죄를 짓고 있는 것일까?
헌법은 분명 국가와 국민간의 약속이다. 이미 헌법 19조는 개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물론 그들만이 양심이고, 군대를 갔다온 많은 이들은 비양심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제 우리사회도 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말할 정도의 ‘성숙함’과 ‘여유’가 있지 않을까?
그들이 다른 병역기피자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사회는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과 다른 병역기피자들을 구별하기 위한 장치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국제기구에서 말하듯 병역기간의 1.5배를 복무기한으로 잡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업무의 강도를 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 안되면 군복무기한의 2배를 봉사하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에는 7만 2천명의 합법적인 ‘대체복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60개월짜리...요즘은 4년으로 줄어 48개월짜리 산업특례요원들부터 시작해, 공익근무와 낙도오지의 의료봉사를 하는 사람들 등등등 많은 이들이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 이들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다른점은 오직 한가지이다.
- 6주간의 기초군사교육을 받는 동안 총을 잡게 된다.
그렇다 이미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7만 2천의 대체복무인원들은 기초군사교육을 받고 나갔다 뿐이지 이미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다만 총만 잡지 말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기초군사교육을 면제받는 대신 그 기간만큼, 혹은 그 기간 이상이라도 다른 방법으로 국가에 봉사하겠다고 말을 한다. 또한 병역기간이 끝난 뒤에 받는 예비군 훈련기간도 그 기간만큼 더 국가에 다른 방법으로 봉사하겠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병역기피라 할 수 있을까?
나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0.2%정도의(한해평균 대한민국 60만 대군을 유지하기 위해선 30만명 정도의 병력이 들어가야 한다. 그 중 600여명 정도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철창으로 들어간다) 그들을 용인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과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보면 충분히 허용가능한 범위라고 믿고 있다. 정녕 대한민국은 0.2%의 예외도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 국가여야 하는 것일까?
5. 대한민국의 군대...
양심적 병역거부가 사회의 공론으로 부상하면서 많은 이들이 우려섞인 목소리로 양병거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군 면제를 원하는 일부계층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 도대체 대한민국은 누가 지킨다는 것인가??
그들의 논리를 듣다보면(아니 다수의 의견이다. 양병거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의 22%만이 양병거를 찬성하였고, 그 나머지는 반대의사를 표명했으니 말이다. 신뢰도 95%의 여론조사이니 믿어야겠지...) 그들의 반대의사의 내용은 크게 두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군대는 누가 가는 건가?
둘째, 대한민국은 누가 지키는가?
첫째 의견을 보면서, 난 불현듯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이 객관식 문제를 찍는 방법을 강의 하던게 생각이 났다.
- 객관식 문제는 문제에 답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군대는 누가 가는가라는 질문속에 대한민국 군대의 모순점이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군대는 말 그대로 개돼지들도 살기 힘든 엿같은 곳이다. 그것도 한달에 2만5천원씩을 월급이라고 쥐어주면서 말이다. 징병제를 택하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급하는 월급이 그 나이또래의 직장인이 받는 평균 봉급의 1/3 수준이나 1/4 수준을 주는 것에 비하면 대한민국 군대의 월급이라 불리는 만원짜리 몇장은 코미디 차원을 넘어선 말 그대로의 ‘장난질’이다 생명수당이라고 하루 130원을 주는 우리나라...우리의 목숨값이 쵸코파이 한개값도 안된다는 것일까? 기를 쓰고 병역기피를 하고, 손가락을 자르고 온몸에 문신을 해서라도 안가려는 군대...단순히 내 청춘의 가장 소중한 2년이란 시간을 베어나가기 때문일까? 칼잠을 자야하는 내무반에 일병짬밥엔 물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초코파이를 씹어먹어야 하는 엿같은 상황.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 자체를 ‘군복’이라는 족쇄로 무자비하게 억누르는 군대... 다른 제재수단이 없기에 일단 두들겨 패고 보는 군대, 사람이라는 느낌 보다는 개돼지라는 느낌이 더 강한 그 군대를 겪고 나온 그들이 다시 군대를 가고 싶어할까? 제대한 예비역들이 최고의 악몽이라 말하는 ‘다시 군대 끌려가는 꿈’이 농담처럼 받아들여지겠지만, 당사자들에게 있어선 악몽을 넘어선 죽음과도 같은 시간이었음을 우리들은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논리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는 순간 그 누구도 군대를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 말 자체가 대한민국 군대가 ‘선택상황’앞에선 어떤 댓가를 치루고도 가지 말아야 할 엿같은 곳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양병거를 거부하기 이전에 군개혁이 선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 아닐까?
대한민국 군대는 이렇게도 약한 존재였을까? 선택의 상황 앞에서 외면받을 정도로 최악의 존재라면, 이미 인간적인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가공권력을 앞세워 국민들을 끌고가는 폭군의 그것이라는 걸 스스로가 인정하는 곳이 아닌가? 1년에 수백명이 시체로 돌아오는 그곳...6.25 당시 의병제대자가 9천5백명인데, 평시인 요즘 한해평균 2만명이 병력이 의병제대자로 나오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멀쩡히 잘 들어간 대한민국의 아들 중 2만명이 병신이 되서 제대를 하는 곳...그곳이 바로 군대이다. 이런 군대를 우리는 왜 바꿀 생각을 못하고, 단순히 국가의 공권력을 앞세워 납치해 가는 것일까? 양심적 병역거부는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에 순기능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해보는가?
둘째, 대한민국은 누가 지키는가? 역시 첫 번째 질문과 맞닿는 질문이지만, 구체적으로 분단상황의 대한민국을 염두해 둔 질문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준전시상태에서 휴전중인 대한민국에서 이미 시기상조란 주장이다. 여기에 대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주장은 ‘대만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과 칼날을 마주대하고 있는 대만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왜 못하는가에 대한 주장이지만, 여기에 대해선 양병거를 주장하는 측이나 현체제를 고수하자는 쪽이나 똑같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
대만과 한국은 다른 케이스이다. 안보환경은 비슷하더라도 지리적 여건이 다른 것이다.
전세계 국가중 섬나라 치고 30만 수준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일본이나 영국 조차도 24, 5만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징 덕분에 방어측이 유리한 부분이 있고, 해군과 공군 위주의 ‘자본집약적 군대’를 유지하는 것이 방어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40만 대군을 유지하던 대만의 경우는 바로 얼마전까지 ‘계엄상태’에서 본토진공을 대만군의 시대적 과업으로 설정한 상황이었지만, 천수이벤의 민진당이 집권하면서 본토진공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현실적인 ‘대만방어’에 나선 것이다. 결국 대대적인 군개혁은 노동집약적인 군대를 해공군 위주의 ‘자본집약적’군대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현재 30만 수준에서 조금 모자른 군대를 보유한 대만군은 개혁을 여기서 멈추지 않고 25만수준으로 병력을 더 줄여나갈 것을 대외적으로 선포한 상태이다. 물론 이런 병력의 감축으로 전력이 줄어들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들은 병력이 줄어든 대신에 확보된 재원으로 해공군력에 투자하며 이를 상회하고도 남을 전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대만은 중국과의 체제경쟁을 포기한 상태에서 자국방위의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이미 북한과의 체제경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지난 2천년의 6.15 공동성명에서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순군사적 측면만을 바라보자.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육지속의 섬’이다. 3면이 바다로 막혀있고, 전방은 155마일 휴전선으로 막혀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해공군력의 확충만큼 육군병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부분은 양병거 반대론자의 말이 옳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육군의 현재모습과 가용자원에 대한 논의이다.
현재 대한민국 60만 대군의 절반 정도는 ‘비전투요원’이다. 아니 비전투요원이 아니라 ‘전투지원부대’란 호칭이 적절할 것이다. 즉 30만의 전투병력을 지원해주는 전투지원부대성격의 병력이 전군 병력구성비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30만의 병력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간과하면서 병력이 모자란다고 해야 할까?
더군다나 그들이 주장하는 2008년부터 병력가용자원이 부족해 이제부터 매년 30만씩 군대로 보낼수 없기에 60만 대군을 운용할 수 없다는 주장 역시 일고의 가치가 없는 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이 부분에 대해선 이미 1990년대 말부터 국방연구원등을 통해서 연구결과가 나와 필연적으로 대한민국 군대를 감축해야 하고, 그동안의 노동집약형 군대를 자본집약형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위를 환기 시켰던 문제였다. 만약 지금의 인구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2015년경에 이르러선 현재 수준의 외국의 노동자 숫자의 3배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대한민국 경제가 돌아가지 않을 판이 된다. 이 상황에서 계속 병력위주의 병력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자격요건을 강화해 군복무기간의 1.5배나 2배정도의 대체근무 복무기간을 상정해 두고, 엄격한 자격제한 조건을 걸어두고도 징병자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국방부의 잘못이라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이다. 군복무기간보다 훨씬 길고, 힘든 일을 시킨다는데도 군복무를 회피한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이게도 군대가 사람이 살곳이 아니란걸 반증하는 증거가 아닐까?
6. 마치며...
필자 개인적으로 국가란 존재는 국민들이 좀 편하게 살고 싶어서 만든 것이라는 로크의 사회계약설을 믿고 있다. 국민 개개인은 좀 더 편하고 안전한 삶을 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하고, 국가는 그 권리로 국민들을 편하게 살게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는 일종의 계약관계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은 국가와 국민이 체결한 계약의 [계약서]와 같은 존재이다. 그 계약서에 나와 있는 것이 바로 국민의 4대의무인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것이다.
이 두가지 계약조건이 상충되었던 기간이 지난 50여년동안의 시간들이었다. 그 사이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계약조건의 계정을 끊임없이 요구하였다. 아니 계약서의 해석을 좀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해석했다고 해야 할까? 병역의 의무를 하겠다. 단 조건이 총을 들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터이니 그 기회를 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조건이다. 문제는 국방부와 국가는 자신들이 끌고간 군대란 공간이
- 도저히 사람이 살 곳이 아닌데, 국가 공권력이란 힘으로 억눌러 끌고 간 곳
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의 예외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수많은 병역기피자가 넘쳐나는 이때에 자진해서 철창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과연 군기피자의 그것일까? 유승준처럼 합법적으로 군면탈을 목적으로 빠져나간자도 있지 않은가? 그런 그들에 비해 그들은 일견 무모하게까지 보인다. 그럼에도 국방부와 국가는 이들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그 ‘쓰레기 같은 군대’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개혁할 필요가 있음에도 단순히 ‘국가방위’라는 거국적인 이름을 걸어 합법적인 폭력의 재생산을 지난 50여년간 이어온 국방부와 국가는 계속해서 매년 30만이란 우리의 아들들을 끌고가 매년 수백명을 죽이고, 2만명을 병신으로 만들고, 그 나머지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를 피폐하게 만든다음 ‘대한의 건아’라며 추켜세우고 있다.
이제 그 계약조건을 바꿔야 할때가 됐다. 아니, 가졌지만 행사하지 못한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 할때가 된 것이다. 양병거를 통해서 양심의 자유를 실현하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일견 사회부정적이고, 통합에 저해된다 말할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대원칙이 무엇이던가? 다수결에 의한 결정에서도 소수에 대한 배려와 인정을 기본 전제로 한 제도가 아닐까? 대한민국의 기본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1995년 11월 30일 논산 입소대대의 막사 한퀴퉁이 보도블럭에서 대가리를 박던 내눈에 들어왔던 쥐색 양복을 입었던 그 선한 눈빛을 하고 있던 여호와의 증인 신자의 모습과 지난 금요일날 향방훈련을 하며 까진 발뒤꿈치의 상처를 생각하며 말이 많아졌다...사람이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간다는 것...그 신념이 공익을 위해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를 떠나 그 신념을 위해 50여년이 넘게 묵묵히 희생해 왔다면, 한번쯤은 그 신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들어보고, 고민해 보는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글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