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일단 아킬레우스 씨가 죽을 때 저는
"최악의 급소를 맞은 것 치고는 별로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화살 빼고 일어나던가 아니면 그만 떠들고 빨리 죽는 게 어때?"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그리고 패리스가 화살을 자꾸 쏠 때도 "거리도 가까운데 갑옷 입은 몸통을 쏘지 말고 드러난 목을 쏘란 말이야!" 하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아무리 줄리 크리스티라 해도) 테티스 여신을 보고 비명을 질렀지요. (속으로만.) 브리세이스도 솔직히 신음이 나오더군요. 귀엽게 생기긴 했는데 고전적인 외모는 아니에요. 웨이트리스 복장을 두르고 미국 시골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나오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헬렌은 영화 안에서 보니 꽤 괜찮았어요. 예전에 이 게시판에 오른 다른 사진을 보았을 때는 으악! 했는데요.
그리고 아무리 비겁한 역으로 나왔다 해도 전 패리스가 좋았답니다. 원래 일리아드에서도 활 잘 쏘는 거 외에는 그렇게 용감한 인물로 나오지도 않잖아요. 그냥 사랑에 눈이 멀어 사고를 친 어린애라고 생각하니 너그럽게 봐주게 되더군요. (물론 블룸이 갑옷을 입고 폼 잡는 모습이 꽤나 멋있었다는 것도 그 이유지요.) 헥토르는 누구나 인정하듯 멋지게 나오기 때문에 할 말도 없고요. 오딧세우스도 나 교활해요. 하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것 같았지만 고결한 척 하는 것보다는 천만 배나 나았고요. 솔직히 아킬레우스가 "인간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신들이 인간을 질투한다..." 어쩌구 대사를 읊을 때 속으로 막 웃었답니다. 그런 대사를 읊으려면 "왜 싸우지?" 하고 인생 살기 싫은 표정이나 짓지 말던가.
아가멤논이랑 메넬라오스는 아무리 악당 스테레오 타입이라 해도 둘 다 목줄기를 푹 쑤셔주고 싶을 정도로 싫었어요. 이 영화에서 제게 제일 통쾌했던 장면은 브리세이스가 아가멤논을 찔러 죽일 때였답니다. 그것마저 아킬레우스가 했다면 아가멤논을 토막 내서 온 트로이 성벽에 걸어놨다 해도 시원찮았을 겁니다. 솔직히 협정 위반인지 알면서도 헥토르가 메넬라오스를 죽일 때도 너무 상쾌했고요.
어쨌든 "지나친 신앙심은 모든 걸 망치고 국가는 꼭 정교분리가 되어야 한다!" 는 교훈을 얻은 셈이네요. 그렇게 태우자고 주장했는데도...(전 솔직히 그 목마를 화끈하게 태워먹고 그리스 군이 졌다! 는 엔딩을 보고 싶었습니다!)
신상이 끌어내려지는 걸 보고 무도하다고 고함치는 프리아모스 왕을 누군가(아가멤논이었던가요? 그렇다면 죽을 이유 하나 추가) 찔러 죽이는 걸 보니 신과 신화, 영웅의 시대는 가 버렸다는 생각이 드는데 전 신화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어딘지 아련한 느낌이 마음을 누르더군요.
어쨌든 개인적으로 꽤 괜찮은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상당히 긴 러닝 타임 동안 시계를 한 번도 보지 않았으니까요.
p.s. 피트는 왜 그렇게 턱선이 무너졌죠? 원래도 딱 벌어진 편이었지만 하관이 더 넓어진 것 같아서 보는 내내 "쟤가 나잇살이 쪘나...?" 하고 궁금해하고 있었답니다.